문학 기행의 마지막 장면이자, 극적인 갈등이 풀리는 장소는 개울이다. 소설 속에서는 하필 불어난 물에 널다리도 없어서 맨몸으로 건너야 하는 걸로 나온다.
하지만 축제장에는 징검돌이 놓여 있어 물에 풍덩 들어갈 필요는 없다. 단, 돌을 잘못 디뎌서 발이 빠지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시각장애인들, 주의하자!
나는 돌다리 건너면서 운동화 쫄닥 젖을 뻔하긴 했다. 다행하게도 그럴 뻔한 것뿐, 신발은 무사했다.
사진은 돌다리를 배경으로 찍었는데, 마침 무지개도 떠서 제법 운치가 있다.
여하튼 작품 말미에서 허 생원은 물살을 해치며 가던 중 발을 헛딛고 물에 빠지는데, 그걸 동이가 엎고 물을 건너게 된다.
그 와중에 허 생원은 동이가 자신처럼 왼손잡이임을 눈여겨보고, 또 동이 모친의 사정을 이리저리 끼워맞추면서 모종의 기대와 확신을 품게 되는데.....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해 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이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 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디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 버렸다. 허우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이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요."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허 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에겐 더운 물을 끓여 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 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 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내용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