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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32회
벌재-문복대-저수령-촛대봉-투구봉-시루봉-배재-싸리재-남천마을
20230416
1.예쁜 봄처녀들과의 소중한 만남
이 구간을 산행한 지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산행 체험을 기록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떠돌다 이제사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앙상한 기록을 남긴다. 그날 봄날의 황사 현상에 봄바람이 싸늘하게 불어대고 날씨는 잔뜩 흐렸다.
경북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 벌재에서 백두대간 산줄기를 북진한다. 벌재에 여러 차례 와 보았는데 벌재 마루금 생태축을 통과하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마루금 생태축을 통과하기로 마음먹었다. 산악회 회원들은 마루금 생태축과는 상관없이 곧바로 돌목봉 산줄기로 진행했다. 나는 마루금 생태축 방향으로 올라가 육교를 건너서 천천히 백두대간 산줄기를 북진한다. 일행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고 홀로이 산길을 걷는다.
첫 산봉 돌목봉에 오르는 것이 힘들었다. 그리고 돌목재로 내려섰다가 1030m 산봉 오르기가 엄청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을 넘어서면 짙붉은 진달래꽃이, 음산한 날씨로 인한 음울함과 급경사 오르는 고통을 한꺼번에 씻어준다. 화사한 진달래꽃이 이렇게 곱구나. 봄날의 진달래꽃이 모두 진 줄 알았는데 남쪽 문경 지역 산에는 아직도 진달래가 서울 지역보다 훨씬 더 짙붉은 색채를 날리고 있다. 진달래 처녀 앞으로 가서 그녀들의 색채를 칭송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몸도 흔들어댄다. 진달래꽃 흐드러진 1030봉에서 문복대까지 얼마간의 오르내림과 암릉 구간이 있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 문복대에 이르러서야 산우 세 분을 만나서 반가웠다. 이제 혼자가 아니다. 곧 그들에게 뒤떨어지겠지만 일행을 만난 것으로도 힘이 솟았다.
저수령으로 가는 길은 지루했다. 특별한 조망도 없었고, 조망하려고 해도 황사 때문에 풍경이 부옇기만 하다. 어슬렁어슬렁 저수재 옛고개로 내려섰다가 올라서면 용두산 갈림길, 앞쪽에 우뚝 솟은 촛대봉을 가늠하며 내려서면 해맞이전망대와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2년 전에는 이곳에서 산우들과 휴식을 취하였는데 오늘은 맨 뒤에서 그냥 통과하여 저수령으로 내려갔다.
저수령(低首嶺)은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에 있는 고개로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을 경계로 한 도계(道界) 지점이다. 이 고갯길은 예전에는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인데다 경사가 급하여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뜻에서 고개 이름이 저수령이 되었다고 한다. 충북 단양군 방면 저수령으로 가서 서쪽을 바라보면 방금 걸어왔던 백두대간 산줄기가 보인다. 그리고 단양 쪽 저수령에는 고드미와 바르미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데, 21세기 새 시대를 "올곧고”, “바르게” 개척해 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촛대봉 오르는 급경사 비탈길을 쉬엄쉬엄 오른다. 갈수록 비탈길 오르기가 버겁다. 무릎도 무릎이지만 심장의 고통이 더 힘겹다. 촛대봉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서 시루봉 가는 길에서 점심을 홀로 먹었다. 모두가 앞서가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늘 겪는 일이지만 오늘 날씨 탓인지 아니면 감정 탓인지 쓸쓸하고 서러운 기분마저 든다. 삶의 길을 홀로 걸어야 하듯 산행 또한 혼자서 사막의 낙타처럼 가야 하거늘 자잘한 것에 감정 휩쓸려서야 되겠는가? 마음을 다잡고 발목과 손목에 힘을 준다.
투구봉에서부터는 남쪽 예천군 상리면 풍경이 부옇지만 활짝 열려 있고, 북쪽으로 가야할 산봉들이 위치를 확인해 준다. 그래서 마음도 둥실둥실 떠올랐다. 마음을 한껏 부풀려 정신을 혼미하게 한 곳은 처녀치마 군락지, 시루봉 전위봉인 1100m 산봉을 내려가면 처녀치마들이 푸른 치마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있다. 용두산에서 만난 뒤 몇 년이 흘렀는가? 치렁치렁 늘어진 치마을 입고서 처녀들이 여기저기서 자신을 보아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눈맞춤하며 어여쁜 처녀들과 담소했다. 아우성을 치다가 부끄러운 듯 다소곳해진 처녀들이 더없이 곱다. 그 기슭에는 풀솜대도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제 꽃망울이 맺혀 있다. 풀솜대와 두루미 꽃은 설악산의 명물들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풀솜대 역시 내게는 소중한 존재로 빛난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정코스는 흙목 정상을 지나 송전탑이 있는 곳에서 하산하게 되어 있는데, 그 방향으로 가면 제한 시간 안에 도저히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싸리재에서 하산하는 단축 코스로 내려가자. 이렇게 마음 먹으니 만사가 형통하는 것 같다. 솔숲 정상, 배재를 거쳐 바위전망대에 오르니, 하산 지점인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저곳이로구나. 정코스를 다 산행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하산 지점을 확인하니 마음이 설렌다.
싸리재에서 계곡길로 하산한다. 그런데 다시 횡재했다. 올봄 만나지 못한 노루귀 3종 선물세트를 싸리재 계곡에서 선사받은 것이다. 거기에다가 꿩의바람꽃까지. 노루귀는 제 철을 지나서 시들어가고 있었지만 분홍, 청, 흰 노루귀 처녀들을 한꺼번에 본 것에 감사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귀한 것, 이 노루귀는 벽돌 공장에서 찍어내는 벽돌이 아니다. 벽돌은 다시 찍어내면 똑같은 형체를 만들 수 있지만, 이 노루귀는 다른 어떤 노루귀와도 다른 단독자로서의 가치가 있다. 그날 만난 노루귀들 그리고 꿩의바람꽃, 봄처녀들이 지금도 내 옆에서 조잘대는 것 같다. 늦은 봄날의 귀한 야생화를 만난 기쁨에 가슴이 뛰었다. 싸리재 계곡을 사뿐사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2.산행 과정
산행 거리 : 15.47km
소요 시간 : 6시간 18분
금천로의 벌재에는 백두대간 벌재 마루금 생태축이 복원되어 있다.
벌재 표석 오른쪽으로 진입하여 왼쪽 백두대간 마루금 생태축 방향으로 올라가 위쪽 육교를 통과한다.
쉼터정자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백두대간 벌재 마루금 생태축 북단에 이른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북진한다.
벌재는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에 위치한 해발고도 625m의 황장산(1,077m)과 문복대(1,074m) 사이 안부에 있는 고개이다. 벌재라는 지명은 벌재의 남쪽 마을이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인데 한자표기가 붉을 '赤'인 것으로 보아 '붉은 재'를 이 고장 말로 벌재라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단양의 옛 지명 적성 역시 벌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경시 동로면에서 벌재를 넘어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으로 연결되는 국도 59호선이 이곳을 지난다. 벌재는 일제강점기인 1900년 도로가 개설된 이후 83년간 백두대간 마루금이 단절되어 있었으나 산림청의 백두대간 마루금 생태축 복원사업에 따라 2013년 복원이 완공되어 현재 백두대간 마루금이 연결된 상태이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자리인식 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서 총 길이는 약 1400km에 이릅니다.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체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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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를 건너 돌목봉 오르는 급경사 비탈길로 이어간다.
돌목봉 오르는 비탈에 세워져 있다.
왼쪽의 산봉은 1030m 산봉이라 추정한다.
문복대 2.5km 지점이다.
중앙에 솟은 산봉이 문복대일 것이라 추정한다.
1030m 산봉의 진달래꽃이 짙붉다.
문복대는 운봉산이라고도 불린다.
가야할 저수령이 중앙에 보인다.
보이는 곳은 경북 예천군 효자면 지역일 것이다.
경북 예천군 효자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충북 대강면 저수령에서 올려본 저 산봉이 문복대일 것이라 추정한다.
“고드미”와 “바르미”는 예로부터 중원문화의 발상지요 애국충절의 고장인 우리 충북 전래의 선비정신과 기상을 바탕으로 21C 새시대를 "올곧고” “바르게” 개척해 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조형물 표석 뒷면
표석 아래에 저수령의 유래가 적혀 있다.
저수령은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에 있는 고개로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을 경계로 한 도계(道界) 지점으로 경북과 충북을 넘나드는 이 고개 이름은 예부터 저수령(해발 850M) 이라고 불려왔다. 저수령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이전에는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며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뜻에서 불려진 것으로, 지명이 '고개의 지리적 환경'에서 유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殷豊谷)까지 피난길(避難路)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外敵)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저수령의 해발고도는 850m이며, 현재는 927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는 소백산관광목장의 언저리에 있다.
저수령에서 0.65km 지점으로 촛대봉 0.3km, 투구봉 0.7km가 남아 있다.
이러한 모양의 바위들이 몇 군데서 떼지어 있다. 이 암석의 종류는 무엇일까?
촛대봉 삼각점 앞 촛대봉 이정목에는 저수령 0.8km, 투구봉 0.73km, 솔봉 12.43km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촛대봉 오름길의 이정목의 거리 표시와 다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촛대봉 정상의 이정목 거리 표시가 맞을 것이라 예상한다.
촛대봉에서 뒤돌아보니 저수령을 잇는 지방도 927호선과 그 위 문복대가 가늠된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12:45
촛대봉에서 0.4km 지점으로 시루봉까지는 0.9km가 남아 있다.
용두산이 어디쯤일까?
중앙에 솟은 산봉이 학가산일까?
왼쪽의 시루봉, 그 오른쪽 소나무 푸른 숲이 있는 산봉 아래가 배재이고, 맨 오른쪽 뒤가 흙목일 것이고 그 아래가 싸리재이다. 중앙 맨 뒤쪽에 솟은 산봉이 도솔봉일 것이라 가늠한다.
촛대봉 0.4km, 시루봉 0.9km 지점에서 중앙의 촛대봉을 뒤돌아보았다.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산은 나뭇가지 뒤쪽 산봉일 것이고 그 아래 예천 용두리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왼쪽 두 번째 산봉이 시루봉, 중앙의 산봉 아래가 배재, 그 오른쪽 산봉 뒤쪽이 싸리재, 오른쪽 뒤에 보이는 산봉이 흙목, 중앙 맨 뒤에 보이는 산봉은 도솔봉일 것이라 추정한다.
왼쪽 뒤가 시루봉일 것이라 추정한다.
해발 1100m 산봉 기슭에 처녀치마 군락지가 있다.
시루봉 정상에는 표석이 없고 시루봉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시루봉(1,110m)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을 경계로 하는 봉우리이다. 산의 모양이 떡을 찌는 시루와 같이 생겨서 붙은 이름인데, 뭉뚝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다. 시루봉에는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신구리로 넘어갈 수 있는 갈림길이 있다. 저수령에서 죽령 구간은 18km가 넘는 긴 구간으로 저수령~촛대봉~시루봉~싸리재~솔봉~묘적령~도솔봉~삼형제봉~죽령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저수령부터 시루봉까지는 경사가 급한 편이며, 시루봉에서 묘적령까지는 대체로 평이하게 이동할 수 있다. 죽령으로 향하는 길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시간 조절이 필요하며, 하산시간이 늦어지면 갈림길을 통해 하산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갈림길은 묘적령을 통해서 동쪽에 있는 고항재로 내려가는 구간과 싸리재를 통해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바로 앞 산봉 뒤쪽이 배재, 중앙 맨 뒤 나뭇가지에 가린 산봉이 흙목 정상이며 바로 그 아래가 싸리재이다.
솔숲 정상으로 오르며 뒤돌아보았다. 맨 오른쪽 산봉이 시루봉이며 그 왼쪽이 1100m 산봉일 것이다.
이 솔숲을 내려가면 배재에 이른다.
시루봉에서 1.19km 지점이며, 배재는 0.65km, 솔봉은 6.96km 거리에 있다.
왼쪽이 흙목 정상일 것이라고 가늠한다.
왼쪽으로는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 오른쪽으로는 예천군 상리면 야목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솔숲 정상에서 내려왔다. 시루봉에서 1.6km 지점으로 왼쪽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야목은 2km, 싸리재는 0.92km 거리에 있다.
왼쪽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야목 방향, 오른쪽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맨 왼쪽이 촛대봉, 그 오른쪽이 투구봉, 중앙이 시루봉, 맨 오른쪽이 솔숲 정상봉이다.
진달래꽃은 진분홍 빛을 휘날리고 생강나무 노란 꽃은 시들이가고 있다.
싸리재 위 전망바위 직전 산봉에 돌을 몇 층으로 얹어 놓았다. 앙증스러운 돌탑에 정성이 스며 있다.
전망바위에 오르면 백두대간 북쪽과 서쪽 방향 조망이 열려 있다.
아래의 마을은 충북 대강면 남조리 일대이다. 오늘 산행의 목적지가 남천리 샘골마을이다.
왼쪽 뒤 산봉이 도솔봉인지 솔봉인지 아니면 무명봉인지 판단할 수 없다.
싸리재로 내려가며 전망바위를 뒤돌아보았다. 이정목 뒤쪽에 솔숲 정상, 그 왼쪽 뒤에 시루봉이 가늠된다.
전망바위에서 싸리재로 내려가면서 앞을 내다보았다. 중앙에 우뚝한 산봉이 흙목 정상, 백암산이다.
물푸레나무 군락지 아래가 싸리재, 그 위에 솟은 산봉이 흙목, 백암산이라고도 불리는 것 같다.
남쪽 방향은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원용두 0.93km, 북쪽 방향은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이다. 남조리로 하산한다.
백두대간 산줄기 산행을 싸리재에서 마치고,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 싸리재 계곡으로 하산한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 싸리재 계곡으로 하산하며 싸리재를 뒤돌아보았다.
맨 왼쪽 산봉이 흙목, 그 아래가 싸리재, 중앙이 전망바위, 그 오른쪽이 배재, 맨 오른쪽 산봉이 솔숲 정상이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 남조마을이다. 앞의 태양광 집광판이 설치된 건물은 남조리다목적회관이라고 한다.
'마을자랑비' 내용을 옮긴다.
단양의 대표 하천인 남조천의 발원지. 멀리서 소백산맥의 긴 실루엣 속으로 잠기어 들 때 길의 끝 갑작스레 열리는, 아침보다 저녁 풍광이 고즈넉이 아름다운 곳. 소백이 지켜온 태고의 수림과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샘물이 청량하고, 경상도와 교류를 여는 싸리재는 옛사람들의 애환을 간직하고 마을을 보듬어 안아 주는 포근한 마을. 500여 년 전 손씨 성을 가진 이가 처음 들어오고 반세기가 지나 박씨 성이 들어와 집성촌을 이룬 마을. 가리나무를 파는 점이 있다 해서 가리점-마조리가 되었다가 대흥면이 금강면과 합병할 때 같은 이름의 마을이 있어 남면의 남 자를 따서 남조리라 개칭한 마을. 한때 50여 가구가 번성했으나 현재는 20여 호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정격운 마을. 땅 속에 가득한 유황 온천물이 마을의 미래를 바꿔가는 곳.세세토록 첫 마음 잊지 않고 사람이 땅을 이루고 땅이 사람을 살피는 마을로 영원하소서. 2002년 5월 주민 일동
온천로의 남조교를 건너 남천리로 넘어간다.
단양군 대강면 남천리 대흥정미소는 지금도 정미소를 운영하는지 궁금하다.
표석 아래에 '남천리비문'이 적혀 있어 옮겨 놓는다. 뒤쪽으로 백두대간 산줄기가 휘감고 있다.
장엄한 소백산 도솔봉의 아래에 자리한 우리 마을 샘골은 조선말에는 천동리리고 불렀다. 그러다가 1917년 대흥면과 금강면이 합쳐질 때에 금강면의 천동리(현재의 단양읍 천동리)와 구별하기 위해 남천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한 집안처럼 도우며 그 어려움을 나누어 극복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 우리 마을은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름다운 미풍도 함께 가지고 있다. 양주 조씨의 비문은 이러한 우리 마을의 전통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우리 마을은 동학의 성지이기도 하다. 1881년 여규덕 선생의 집에서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이 동학의 경전인 용담유사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산 좋고 물 좋은 우리 고향 남천리, 샘이 많아 샘골이라고 한 이곳에서 우리는 채소와 과일을 가꾸며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 고향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후손들에게 복지의 낙원으로 물려 주리라.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천리 온천로 샘골마을에서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