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밖의 사람 ‘이현주’
복사함: 라이프 북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가톨릭, 불교 언저리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서성였거나, 마음공부 또는 ‘영성’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저자’ 또는 ‘역자’라는 이름으로 그를 만나본 적 있을 것이다. 그는 감리교 목사이자, 한국 어린이문학사에 적잖은 자취를 남긴 동화작가이며, 시인인 동시에 에세이 작가이고, 백수십 여권에 달하는 번역서를 낸 번역가이기도 하다. 성서의 가르침을 종교적 틀 밖으로 확장해 보편적 삶의 원리로 해석해온 성서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수십 년간 단소를 불어온 연주자인 동시에 솜씨 있는 서예가이자 화가, 소목小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대의 현자賢者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그의 팔순을 맞이하여 가깝게 또는 멀리서, 말과 글로 그를 만나온 사람들이 그에 관해 짧은 글 한 편씩을 써서 엮은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지내온 가족, 친구, 제자들을 비롯해 여러 해에 걸쳐 그를 인터뷰해온 기자와 그의 글을 깊이 읽어온 평론가, 책을 통해 그의 사상을 면밀히 들여다본 신학자의 글까지 다양한 관점이 담겼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입을 모아 말한다. 이현주는 틀에 갇히지 않는, 틀에서 벗어난, 혹은 틀을 넘어선 사람이라고.
이 책의 대표저자이자 신학자 이정배는 머리말에서 ‘이현주라는 걸출한 인물을 한국 교회와 사회가 제대로 품었다면 세상이 좀더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종교전문기자 조현 또한 이렇게 썼다. “좌건 우건 선을 넘으면 안되는 나라에서, 그는 선을 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태연자약 선線을 베고 태평가를 부르며 살았으니, 그가 목청 높은 투사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 삶이 바로 변방의 북소리요, 혁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p.98)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단에서 아웃사이더를 자처해왔으나, 이현주의 여정은 그 누구보다도 기독교적이었다. 그는 동서양과 유불선儒佛仙을 막론해 모든 것에 임재하는 하느님을 느꼈으며, 오직 그 한 가지를 전달하는 데 평생을 바쳐왔다. 이 책에 참여한 필자들은 삶의 어느 길목에서 그와 공명했고, 그래서 그를 ‘스친’ 데 머무르지 않고 그와 ‘만난’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조곤조곤 들려준다.
‘아무개’에서 ‘모두’에게로
스승 장일순에게서 받은 ‘관옥觀玉’이라는 호號와 절친 북산北山 최완택 목사로부터 받은 ‘이오二吾’라는 호號, ‘이 아무개’라는 필명 중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의 이름은 ‘이 아무개’다. ‘아무개’는 하느님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비우고 낮아진 이름인 동시에 자신이 더 큰 무언가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름이며, 또 그렇게 살면 무언가와 싸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누누이 무엇과도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거기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빛이 어둠과 싸우지 않듯이 그는 매순간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자신으로 존재하려 해왔고, 이는 그를 만난 사람들에게 ‘자각’이라는 고요한 파문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