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단풍
오늘 선배 수녀님이 폐에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받는다는 급한 기도 요청이 전달되었다. 너무 중요한 부위의 위험한 수술이라, 감실 앞으로 달려가 하느님과 성모님께 은혜를 청하였다.
같은 오늘, 실비아와 통화하였다. 이미 남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고 수술할 것이란 소식을 들었었다. 남편은 추석 무렵 아프기 시작했고, 췌장암 초기라더니, 큰 병원의 오늘 진단은 간까지 전이되어 수술이 불가하다는 청천 하늘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 울음을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담담한 듯 소식을 전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부가, 환자 당사자가 감당할 아픔과 슬픔과 두려움이 전해져 참으로 안타까웠다. 아직 다 젊고 세 아이도 아직 어린데.
나의 친정 올케도 췌장암으로 수개월 동안 힘든 항암을 마치고, 수술을 위해 병원 입·퇴원과 요양원을 오락가락하고 있다. 99년에 남편을 뇌출혈로 보내고, 홀로 고독하게 병마와 직면하고 있을 처지를 생각하니 가엽고 불쌍하다. 겨우 세 남매를 시집·장가 보내고 이제 아주 조금 여유가 있나 했더니 병이 복병처럼 치고 들어온 것이다.
어제는 전에 일했던 성당의 사목 회장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들었다. 그분도 암으로 2년여 독한 투병 생활을 하시더니 그만 일어나지 못하시고 떠나가셨다. 먼 곳이고 사도직의 특성상 가보지도 못하면서 고맙고 감사한 추억과 영원한 안식을 빌며 연도를 바쳤다.
얼마 전에는 오랜 시간 좋은 우정을 맺고 있는 부부께서 극심한 경제적 생활고를 알려오셨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형제님은 현재 상황이 너무나 괴로워 식음을 전폐한 자살을 시도하시기도 하셨다. 나는 ‘생명은 하느님의 명령이고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하면서 간곡히 고통을 헤쳐가 보시라고 따듯한 위로를 드렸다. 칠십 대의 낙천적인 부인은 고깃집에서 세 시간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으셨는데 할 만하고 좋다고 밝은 소식을 전해오셨다. 전직 교수에 연구원에 부인도 사업을 하시던 분이셨다.
한 달 전쯤에는 후배 수녀가 갑자기 귀천하였다.
나의 건강에도 여러 가지 적신호들이 신고를 보내오고 있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를 일이다. 내 몸이지만 내가 다 알 수 없고, 내가 오로지 통제도 관리도 불가하기 때문이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인간사!
기쁨과 즐거움만이 아닌 슬픔과 고통도 성사임이 분명함을 알고 있음에도 좀 침울한 심경이었다.
하느님 앞으로 나가 독대했다. 늘 그렇듯이 그 끝은 평온과 회복이다.
22년 가을, 계절이 자연이 주는 정경이 유난히 곱고 아름답다. 특별히 형형한 색깔로 곱게 물들고 마침내 땅 위에 그 생명을 내려놓는 낙엽들의 일생을 보고 있다. 그들의 사명은 낭만적이고 곱고 아름답다 못해 위대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그들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추하다고 비참하다’라고 하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 단풍임에야. 갈대처럼 약하나 각자는 형형색색 단풍처럼 곱고 아름답고 강하고 위대한 것이다.
가을 단풍이 그러하듯이, 자연인으로 주어진 나날과 순간들에 감사하며 성실하다가 단풍처럼 낙엽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