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사제직과 성체의 경외>
- 성 프란치스코의 「유언」 6-10절을 중심으로 -
이상호 세라피노 신부 / 작은형제회
1. 시작 성가 - 주께 감사드리자(지침서 성가 15번)
2. 시작 기도 (지침서 158-159쪽)
3. 출석 확인 및 인사
4. 독서 나눔
5. 생활 나눔. 생활 실천
6. 공지사항
7. 마침 기도(지침서 159-160쪽)
8. 마침 성가 -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지침서 성가 7번)
"그 후 성품(聖品)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로마 교회의 관습에 따라 생활하는 사제들에 대한 큰 믿음을 주님께서 나에게 주셨고 또한 지금도 주시기에, 만일 그들이 나를 박해한다 해도 나는 그들에게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내가 솔로몬이 가졌던 그 정도의 많은 기혜를 가지고 있고, 이 세상의 가엾은 사제들을 만난다 해도, 그들의 뜻을 벗어나 그들이 거주하는 본당에서 설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다른 모든 사제들을 마치 나의 주인인 듯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존경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보고, 또 그들이 나의 주인이므로, 그들 안에서 죄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제 자신들도 받아 모시고 사제들만이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신 아들을 내 육신의 눈으로 결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언」 6-10)
성 프란치스코의 「유언」으로 우리 삶을 반추합니다. 이번에는 그 가운데 사제직과 성체에 대한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에 귀를 기울입니다.
1. 성 프란치스코의 사제들에 대한 믿음의 표양
성 프란치스코의 사제들에 관한 생각과 사제들을 공경한 예를 그분의 글과 전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인은 올바르게 사는 사제만이 아니라 "가엾은 사제들"이 있는 현실을 알면서 사제가 비록 죄인이어도 그를 자신의 주인인 듯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존경하기를 원하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고합니다. 성인의 뜻을 이해하는 데는 위의 유언과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매우 흡사한 「권고」 24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로마 교회의 규범에 따라 바르게 생활하는 ㄴ성직자들에게 믿음을 지니는 하느님의 종은 복됩니다. 하지만, 이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은 불행합니다. 비록, 그들이 죄인들이라 하더라도, 주님 자신만이 이들에 대한 심판을 당신 자신에게 유보하시기에 아무도 이들을 심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 자신도 받아 모시며 그들만이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모모가 피에 봉사하는 그들의 직분이 다른 모든 것보다 더 큰 것이기에, 이들에게 죄를 짓는 자는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보다 그만큼 더 큰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고」 24)
성인은 말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직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토마스 체라노는 『2 첼라노』8,146,201에서 성인의 이러한 표양을 증언합니다.
"그는 여러 번 가난한 사제들에게 제의를 만들어 주었고, 낮은 위치에 잇는 성직자들에게까지 합당한 공경을 드렸다. 그는 사도적 사명을 받은 자가 되고, 전적이고도 완전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자가 되려고 처음부터 하느님의 성직자들과 성직에 존경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 『2 첼라노』8)
"우리는 영혼들을 구하는 일에서 성직자들을 도와주도록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부족한 점이 발견되면 우리가 채워야 합니다.... 성직자들과 불화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면 영혼의 소출은 더 많아집니다.... 성직자들과 물의를 일으키면서 신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보다 성직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더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2 첼라노』146)
"그가 사제들의 손에 크나큰 경의를 표하기를 바란 것은, 그들의 손이 하느님으로부터 권한을 받아 빵과 포도주를 성체로 변화시키기 때문이었다." ( 『2 첼라노』201)
성인은 사제에게 무조건적인 존경을 바쳤고, 죄악의 사슬이나 세상의 욕심, 이 세상의 유혹에 매여 잇는 죄인 사제여도 존경하고 형제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요청합니다.
2. 현실의 부정적인 체험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선한 뜻과 의지로 프란치스칸 성소의 길을 살아갑니다. 신앙 여정이 꽃길이면 좋겠는데, 가시밭길도 만나게 됩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성직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거나 내가 당사자가 되어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사제들이 너무 권위적이라거나, 세상 것에 너무 밝다거나, 게다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악에 빠져 있다거나 하는 비판이 절대 거짓이 아닌 현실입니다. '성직자가 그래도 되는가?', '죄인인 성직자를 어떻게 믿고 신앙을 살 수 있을까?', '올바른 성직자만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질문 속에서 신앙에 회의감을 갖기도 하고, 성직자를 위해서 기도하거나 마음 아파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말씀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이고, 그분은 나와 다른 성인이었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것은 아닐까? 성인의 말씀을 어떻게 바라보고 실천해야 할까요?
3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 이야기(마르 6,34-44)에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엿봅니다.
목자 있어도 없는 것이 더 나은 길 잃은 양들을 말씀과 육신의 양식으로 먹이시는 이 이야기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은 늦은 시간이 되어 밥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앞에서 보이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다른 처신입니다.
제자들은 군중이 각자 알아서 밥을 해결하라고 합니다. 배고픔의 문제는 개인 영역의 문제이니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생각을 무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정 부분 산뜻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러니 배고픔이나 가난을 개인의 무능과 무지의 탓으로 돌리는 생각도 일부분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선은 다릅니다. "가엾은 마음" 곧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일관하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군중을 먹이는 것은 일부분 제자들의 몫이요, 우리의 몫이라는 말씀입니다. 너의 몫이어서 네가 스스로 할 것이어도 내 몫을 나눔으로써 내가 하고, 그로써 풍성한 배부름이 이루어지는 사랑의 신비의 관점입니다. 제자들의 이유 있고 합당해 보이는 시각과는 달리 예수님은 오직 "가엾은 마음"으로 보고, 담으며, 당신의 몫을 실행하십니다.
삶을,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한데, 가가자가 서 잇는 위치와 상황, 경험과 성숙도의 차이에 따라서 다릅니다. 시각에는 다양성에 따른 다름도 있지만, 차이도 있습니다. 높고 낮고, 얕고 깊고, 중요하거너 덜 중요하고, 본질적이거나 부차적이고, 근본적이거나 표면적이고... 등의 차이 말입니다. 가치 우선순위에 따라서 사건과 경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흘러나오는 층위가 다르고, 그에 따라서 사람은 그가 서 있는 지점에서 행위를 하게 됩니다. "가엾은 마음"을 가장 중심에 두고 실천하시는 예수님께 다른 시선은 부차적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4. 성 프란치스코처럼
성 프란치스코는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어서 성직자를, 심지어 죄지은 성직자를 존경하라고 권고하는 것일까요?
회개하면서 성인은 세상과 자기 안에서 발견되는 역겨움을 맛보았고, 감사하고 이 과정에서 하느님의 사랑받는 죄인이라는 자기 정체를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성인에게 빛과 어둠,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과 분별의 시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인은 자기에게서 역겨움과 단맛을 맛보고 그것을 넘어선 사랑으로 초대하는 하느님 체험에서 얻게 된 시선 위에 자신을 정초 하고, 그 시선으로부터 모든 것을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신앙과 교회에 대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교회의 중심 구성워닝요. 교회 전례, 특히 성체성사의 집전자인 사제들에 대한 사랑과 신앙을 낳았습니다. 사제들 안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을 알아 뵙고, 성체성사 신비에 봉사하는 그들의 직분이 다른 모든 것보다 더 큰 것이기에 성인은 성직자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복종하며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며 그들의 잘못에 대한 판단은 하느님께 맡기라고 권고합니다.
성인의 시선은 사제를 통하여 그가 그토록 뵙고 싶어 하고 사랑하고픈 분에게 향합니다. 자기 삶을 온통 그리스도 예수께 집중한 그는 영신의 눈과 육신의 눈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뵙고자 갈망햇ㄱ, 사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육화의 신비는 그를 살아 있게 하는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더 큰 사랑을 보려는 마음과 그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는 성인의 시선에서 성직자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볼 수 있게 하는 아주 고마운 존재입니다.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도 인간의 죄와 어둠을 더 큰 사랑으로 담아 안으신 예수님처럼 성 프란치스코도 사제들이 죄를 알지만 더 큰 사라이 그런 부정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나 성인의 사랑은 쓰라리며 애달픈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랑만이 구원을 가져오고, 사람을 살게 합니다.
이것이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이것이 온갖 생각의 다양성과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성 프란치스코가 자기중심을 잡고 살아낸 바입니다.
생활 나눔
1. 쓰라린 체험 후에 더 큰 사랑을 맛보고 나를 다시 살게 한 체험을 나누십시오.
2. 교회의 구성원들을 통해 살아가는 힘을 얻은 체험을 나누십시오.
생활 실천
1. 성체성사 신비의 봉사자인 성직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2.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온통 휘감았던 성체의 그리스도 사랑에 맛을 들이며, 그 사랑의 맛을 내 이웃과 함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