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사십년
임 재 문
일천 구백 팔십 년 일월, 떠거머리 노총각이 장가를 갔다.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일정한 직장도 없이 방랑삼천리 떠돌이 생활을
하던 서른 살 노총각이 장가를 갔다.
어찌어찌 하다가 말단 공무원시험에 합격을 하고나서, 이어지는 경사가 결혼식이다.
신부는 스물여섯 그래도 꽃다운 나이에 이 노총각과 함께 80년도를 힘차게 새 출발 하게
된 것이었다.
결혼식 날 목사님 주례로 교회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데, 신랑 입장이 끝나고, 신부입장 !
하고 사회자가 큰 목소리로 외쳤건만, 기다리는 신부가 나타나지를 않는다.
기다리다가 지친 내가 그냥 털썩 주저앉았더니, 결혼식장 안이 온통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그 웃음소리의 여운이 체 가시기도 전에 면사포를 쓴 신부가 드디어 입장을 해서 결혼식을
올릴 수가 있었다.
신혼여행은 산이 좋아서 산에서 사노라네, 무등산으로 갔다. 그 때 흰 눈이 쌓인 설경의 무등산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데 세월이 흘러 흘러서 어언 사십년 !
노총각 때까지 이어지던 방랑삼천리의 내 인생은 공무원생활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인사이동으로 발령통지서 한 장 손에 들고 산 설고 물 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돌아야 했던 30여년 공직생활 !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이삿짐을 꾸리는 것은 아내의 몫이었다.
지금처럼 고가사다리 차가 있고, 포장이사 업체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시절은 그냥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떠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러나 아내는 이삿짐 꾸리는 달인이 되었노라고 홀로 웃음 짓는다. 나는 한 없이 미안하고 송구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아내를 고생만 시켰으면 아내의 마음이라도 편하게 했어야 하는데, 술꾼으로 살아가며 취생몽사 그렇게 살아왔으니 아내에게 한 없이 미안할 뿐이다.
그 뿐인가? 애지중지 사랑하던 내 딸이 스물여섯의 나이에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하늘나라로 갔다. 내 딸아이는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가 내리던 날 태어나서 봄비가 내리는 날 하늘나라로 갔다. 아내에게 기쁨을 주기는커녕 또다시 슬픔을 느끼게 해야만 했다.
어느덧 십여 년이 흘러갔으니, 천상재회 할 그날을 생각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지금도 장대비가 내리는 날, 보슬비가 내리는 날, 나는 내 딸아이를 생각하며 홀로 눈물짓는다.
이제 곡예를 하듯 살아오던 직장생활도 정년퇴임을 했고, 아들도 결혼해서 분가를 해 초등학교 6학년 손녀와 4학년 손자가 있어서 주말이면 둘만 살던 아파트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칠순의 이 나이에 느끼는 인생살이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후회스러운 날들이 흘러가고, 이제 앞으로 남은 생을 더 보람차게 보내야 하겠다는 것이다.
결혼 40년 !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이혼을 많이 하고, 황혼이혼도 모자라 졸혼을 해야 하는 세태를 보며 부부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해야 하고, 끝까지 함께 해야 부부가 아닌가 한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결혼 사십년의 그 날 !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그동안의 내 모든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아내여 ! 미안하다. 이제 남은 인생 ! 신혼처럼 그렇게 살아봅시다. 사랑하는 내 아내여 !
2007년 6월 30일 강릉교도소 복지과장 정년퇴임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역임,
수필집 "담너머 부는 바람" "사형수의 발을 씻기며" 전자책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