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잘못 느끼고 실수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정정하고, 그 원인과 관련해서 프로그램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2월드 프리 곡 No more fight left in me입니다.
이 곡에서 voice는
무대 위 (인물 역을 맡은) 배우 혹은 성우에 비유할 수 있고, 이는 감각입니다.
따라서,
조화를 이루는 skating은
무대 위 인물에 비유할 수 있고, 그 표현을 관념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실수입니다.
이 곡의 표현은 관념입니다.
그리고 voice 역할은 인생 事라는 형상화에 편성된 악기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번 프리 곡 Elastic heart처럼,
곡의 표현에 관여하고 형상을 결정하는 그런 voice가 아닙니다.
다만 여느 악기와 달리 스스로 감각적 표현을 하는 악기입니다.
따라서,
조화를 이루는 skating은
무대 위 (인물 역을 맡은) 배우에 비유할 수 있고, 여느 일본 여자 싱글처럼 사카모토 가오리 양도 감각입니다.
지난 22월드 프리에서 사카모토 가오리 양은 엔딩 후 바닥을 내리치는 격한 감정을 보였습니다.
무대가 무대인 만큼,
곡의 형상이 절망을 극복하는 인생 事다보니,
무의식적으로 그와 같은 모습이 나왔다고 봅니다.
이번에는 엔딩 후 일순 욱하고 터진 만감을 숨기지 못하고 무너질 듯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무대가 무대인 만큼,
곡의 형상이 영 희망이 없는 비탄이다보니,
역시나 무의식적으로 그와 같은 모습이 나왔다고 봅니다.
연속 월드 우승 축하합니다.
voice는 관념적 표현이고,
무대 위 인물에 비유할 수 있고, 사람의 내면에 해당합니다.
그 연기는
무희망에 오열하는 image를 그렸습니다.
이와 같은 뜻이 느껴지나요?
skating은 감각적 표현이고,
무대 위 (인물 역을 맡은) 배우에 비유할 수 있고, 사람의 외면에 해당합니다.
그 연기는
희망을 토로하나 그것을 잡을 수 없는 story, 이와 같은 정서의 흐름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연기에서 story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
image화, 소위 image를 잘 표현하는 유나화로 봅니다.
감각적 스케이터든, 감각적 안무가든,
피겨 아이콘 유나양의 관념적 표현을 좇다보니, 이 같은 현상이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까닭에, 사람의 외면이 마치 사람의 내면처럼 보입니다.
이것 또한 뭔가 갸웃하면서도, 감각을 관념으로 보게끔 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어떻든,
사람의 내면과 외면을 가진 하나의 존재,
피겨 프로그램 상에서만 존재하는 character를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다가온 감동은
곡의 형상, 곡의 감동입니다.
곡 image와 skating story의 조화를 통한 감동, 생생하고 드라마틱한 그런 감동이 아닙니다.
즉 skating은 비트 전후 강약 역할, 혹은 곡 도중 간주 멜로디 역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2월드 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약하면,
사카모토 가오리 양, 지난 월드 프리와 이번 월드 프리는 우승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형상이 뚜렷하고 강렬한 곡이 skating과 잘 어울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선곡이 우승을 안겨준 셈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