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개천절 날, 서산의 보원사터에 놀러갔다. 보원사터 오층석탑-2층 기단부에 돋을 새김된 팔부중(八部衆) 가운데 하나인 간다르바 (乾闥婆: 건달바)를 친견하러 간 것이다. 아침 10시쯤에 출발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요즘이 서해안 꽃게철, 대하철인지라 서해안 고속도로 편도 3차선은 승용차로 꽉 차서 거북이 걸음으로 당진을 거쳐 행담도를 지나 서산 IC를 빠져 나오는데 꼬박 4시간이 더 걸렸다. ㅠㅠ 보원사에 도착하니 오후 2:30시경이었다. 아침도 차 안에서 빵으로 떼운지라 배가 출출하였지만 저녁 6시까지 집에 가야하는 일정이 있어서 서둘러 보원사 폐사지로 향했다. 보원사터는 예전에 답사팀을 따라서 두어 번 와 봤는데도 직접 차를 몰고 내려 와보니 가는 길목이 생소하였다. 보원사터 조금 못 미처 서산 마애석불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 서산 보원사터 5층 석탑과 2층 기단부에 돋을 새김된 팔부중 가운데 하나인 간다르바
간다르바는 불교 세계의 말단 수호신인 8부중((八部衆) 가운데 하나로 머리에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투구도 아닌 사자가죽을? 그렇다면 간다르바는 왜 머리에 사자머리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일까?
이걸 알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대영 박물관에 가봐야 한다. 아래는 대영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바즈라(Vajra: 금강저)를 든 사나이' 란 뜻의 바즈라파니 (Vajrapani) 부조이다. 사자머리 가죽을 뒤집어 쓴 건장한 사나이가 오른손엔 짤막하지만 예리하게 각이 진 단검을 쥐고 스님들을 호위하는 모습을 넓적한 돌에 돋을 새김한 것이다. 이 부조가 바로 AD 1~2세기 오늘의 북파키스탄 지역에 해당하는 간다라 지방에 처음으로 등장한 부처님과 관련된 부조이다. 사자머리 가죽을 뒤집어 쓴 용사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앗! 그렇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신반인의 천하제일 용사, 헤라클레스!! 네메시아의 사자를 맨 손으로 때려잡고 가죽을 벗겨 머리에 쓰고 다녔던 바로 그 헤라클레스!!!
바로 이 헤라클레스가 부처님을 호위하는 바즈라파니로 변신한 것이다. 오른손에 쥔 예리하게 각이 진 단검은 제우스 신이 들고 다니는 비장의 무기인 벼락을 형상화한 것이다. 즉, 불가의 수호신, 바즈라파니는 헤라클레스의 막강한 힘과 제우스 신의 필살 무기를 든 호위무사가 된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가 인도의 바즈라파니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BC 330)의 결과로서,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지역에 그리스 문명(헬레니즘)이 전파됨으로써 석가모니께서 돌아가신지 7~8백년만에 처음으로 이와같은 부조나 불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 바즈라파니 ('바즈라' (vajra: 금강저 = 벼락)을 든 사나이'란 뜻으로 부처님 호위무사이다.
AD 1~2세기, 간다라 지방 출토, 대영박물관 소장
<그리스인의 모험>을 쓴 프랑스인 피에르 레베크는 1세기경 간다라에서 조성된 불상이 그리스 신 아폴론을 빼다 박은 것 같은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 1권
간다라 불상, 서기 2~3세기: 페샤와르 박물관 수금을 타는 아폴론: 신 중의 신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난 아들로
예술, 의술, 궁술, 예언을 주관하는 태양 신이다.
부처님 호위무사로 탄생한 인도의 바즈라파니(헤라클레스 간다라 버전)는 불교의 동전(東傳)에 따라서 중국의 후한(後韓)이 멸망하고 등장한 남북조 시대 (AD 439-589)의 북위를 거쳐서 한반도로 건너오게 되었는데, 이 분이 바로 간다르바 (헤라클레스 중국 버전 또는 신라 버전)인 것이다.
(1) 그리스 신화의 반신반인 영웅 (2) 헤라클레스 간다라 버전 (3) 헤라클레스 신라 버전
: 헤라클레스 : 바즈라파니 (Vajrapani) : 간다르바 (gandharvas: 乾闥婆 건달바)
- 기원전 - AD 1~2 세기 - AD 9-10 세기초 (고려 초)
헬레니즘 문명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후기 신라 버전인 간다르바는 헤라클레스가 갖고 다니는 몽둥이 대신 수금을 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빈손으로 있는 경우도 있다.
힌두교에서, 간다르바는 남성성을 갖는 혼령이며, 압사라(Apsara)의 남편이며, 몸의 일부는 동물, 보통 새나 말로 되어 있으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있다. 이들은 소마(Soma)를 호위하며, 신들을 위해 궁정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간다르바는 종종 신들의 법정에서 가수로 묘사된다.
압사라 (Apsara)와 함께 있는 간다르바 (Gandharva; 오른쪽), AD 10 세기, 참(Cham), 베트남
불교에서, 간다르바는 부처님 세계에서 계급이 가장 낮은 천신(天神) 가운데 하나이다. 간다르바는 공기 속을 날아다닐 수 있고 음악가로써 재능이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나무와 꽃과 연결되어 있어서 나무껍질, 수액 및 꽃과 같은 향 속에 거주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혼자서 명상하는 수도승을 방해하는 광야의 존재이다.
간다르바를 포함한 팔부중상은 본래 불교 이전의 고대 인도 신들로서 그 성격도 악마나 구신에 해당하지만, 석가에게 교화된 뒤 불법을 수호하는 선신으로 재구성되어 10대 제자와 함께 부처의 설법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간다르바는 시간이 더 지나면서 본래 갖고 있는 간다르바 특유의 형상 (헤라클레스 특징)을 잊어 버리게 된다. 즉, 머리에 뒤집어 쓴 사자머리 가죽의 앞발을 가슴팍 앞에서 "X"자로 교차하여 질끈 묶은 헤라클레스 오리지날 패션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가슴팍 앞에서 살포시 포개지는 형태로 변하게 된다.
* 간다르바 초기 패션: 사자머리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앞발을 가슴팍 앞에서 "X"자로 교차한 형태로 질끈 묶었다. 그리스-헤라클레스 오리지널 패션이다.
(1) 양양 진전사터 삼층 석탑 - 간다르바 (2) 서산 보원사터 오층 석탑 - 간다르바
건축시기는 불확실하나 8 세기 후반으로 추정됨 건축시기는 불확실하나 9세기~10세기 초(고려 초)로 추정.
* 아래는 글쓴이에 의해서 간다르바 후기 패션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사자머리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앞발을 가슴팍 앞에서 "X"자로 살포시 얹었지만 서로 질끈 묶지는 않았다. 또 사자 머리에 다리가 바로 연결되어 있어 보기에 매우 부자연스럽고 다소 기괴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세월이 더 흐르면서 석공이 헤라클레스 오리지널 패션의 원형을 잊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아래 작품은 간다르바 후기 모델이며, 최소한 고려 중기 이후에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1) 경주 담엄사터에서 수습한 간다르바 상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 경주 석굴암 앞칸에 있는 간다르바 상
* (참고) 경주 석굴암 전실(앞칸)의 왼쪽, 오른쪽 벽면에 부착된 팔부중상은 그 조형 쏨씨로 볼 때, 앞칸에서 안칸으로 가는 복도 벽면에 돋을 새김한 사천왕상이나 안칸 벽면의 제석천, 범천의 돋을 새김 쏨씨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석굴암 팔부중상의 건립시기는 석굴암이 세워진 신라 경덕왕 10년(751년) 때 작품이 아닌 고려 때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 없었던 것을 고려 때 추가로 설치한 것인지? 아니면 후기 신라 때 만들어 세웠던 팔부중상을 무슨 이유에선지 고려 때 다시 제작하여 설치하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다.
첫댓글 감사 합니다^^
그리스 신화도 다시 써야 되나요 ?
아닙니다. 그리스 신화 내용에 대해 우리가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 지식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엔 어트리뷰트(Attributes)라 해서 반드시 상징물이 있습니다. 헤라클레스의 상징물은 사자가죽이랑 올리브 몽둥이입니다. 만약 그리스.로마 석상 가운데 웃통을 벗어제친 힘쎈 남자상이 있다고 했을때, 석상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상상해보는 것은 무척 재미납니다. 만약 그 남자 장사가 사자가죽을 뒤집어 쓰지 않았거나 올리브 몽둥이를 손에 쥐고 있지 않다면 그는헤라클레스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석굴암의 금상역사를 동양의 헤라클레스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 신화를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