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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고 싶었습니다 - 대담 / 본지 편집주간 임 애 월
우주와 삶의 순환론적 동질성을 추구하는 여정
성 백 원 시인
처서를 앞둔 주말 저녁
수원천변의 작은 카페에서 성백원 시인을 만났다.
참 오랜만이었지만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둥글고 부드러운 웃음을 만면에 짓고
변함없는 모습의 그가 저만치서 걸어 들어왔다.
임애월 : 성백원 시인님, 안녕하세요? 참 오랜만입니다.
성백원 : 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품위가 깊어지는 듯합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면 가르쳐 주시면 좋겠어요.
임애월 : 네에? 저는 그런 거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웃음) 처서가 내일모레인데 날씨는 아직도 푹푹 찌네요. 그래도 이곳 수원천 화홍문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니 내적 청량감은 충만합니다.
성백원 : 여름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매미는 떠날 시간까지 힘차게 울어주는 시간의 변곡점이 오늘인 것 같습니다. 유난히 비가 많아서 그런지 화홍문 홍예의 물소리가 수원의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네요. 더군다나 이곳은 화성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이 있는 곳이라 역사의 숨결도 주변을 넉넉하게 감싸는 명소에서 만나니 저도 내적 충만감이 더욱 커지는 느낌입니다.
임애월 : 수원팔경 중의 하나인데 오늘따라 더 멋스럽게 보입니다. 오랫동안 못 뵈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시인님의 근황을 듣고 싶네요.
성백원 : 아무래도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의 시간이 상상 외로 길어진 탓도 있겠지만, 퇴직을 하고 나서는 스스로 활동 범위가 위축되는 느낌도 많았습니다. 넉넉한 시간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고 하면 좀 이상하겠지요. 그래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그 일에 전념하다 보니 지인들과의 만남이 소홀해진 듯합니다.
임애월 : 새로운 일자리요? 재취업을 하셨나 봅니다.
성백원 : 아,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새벽부터 길거리를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2~3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고맙게도 정년을 넘겨서도 계속 써 주시네요. 객관적으로는 욕심을 부려 뭐 그런 일을 하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주관적으로는 너무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시간보다 더 역동적인 점이 행복하게 만들어 주네요. 그러다 보니 어느덧 7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임애월 : 정년퇴직 후 아름다운 일을 하신다고 전해들은 적 있습니다. 설마 아직도? 했는데 벌써 7년째라고요? 그 소식 듣고 맨 처음 든 생각은 ‘참 대단하시다’였어요.
성백원 : 별로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공직이나 회사에서 고위직에 있던 것이 큰 자랑은 아니지요. 오히려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는 것을 알아주기는커녕 더 무시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척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요즘의 세태랍니다. 저는 지난 일은 신기루와 같으니 목마른 나그네가 오아시스를 찾은 것과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즐겁습니다. 이제 더 나이가 들어서 찾아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이 걱정이랍니다. 건강한 몸과 맘이 노년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데, 지금 하는 일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아주 효과가 좋아요.
임애월 :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교단에서 수십 년간 학생들을 가르치시다가 갑자기 대학교에서 청소를 하신다니... 실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서도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성백원 : 빗자루를 처음 들지는 않았어요. 학교에 근무할 때도 시간만 나면 교문 주변이나, 복도 계단 등을 쓸고 다녔어요. 물론 작은 빗자루였지요. 그래서 청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어요.
물론 첫 출근 때 조금 늦었고, 동작이 느려 배우면서 구박을 많이 받았어요. 비가 오는 어느 날이었어요. 낙엽을 큰 통에 담아서 큰 자루에 담으려고 하는데 저 아래에서 부르는 겁니다. 그 통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어요. 그 사람은 자루를 채우려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못 가지고 가겠다고 거칠게 대꾸를 했더니, 동네방네 다니면서 저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이 오히려 저를 감싸줘서 그냥 지나간 적도 있었습니다.
일 년이 지난 후에 재계약을 해야 되는데 소장이 와서는 제 지난 신분을 캐묻는 것입니다. 대답이 궁색해져서 저는 지금이 참 행복하다고만 했더니, 웃으면서 그래요 하고는 계속 일을 하게 해 줬답니다. 그렇게 지나간 세월이 벌써 6년이 흘러갔네요.
임애월 : 그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족이나 주변 분들이 말리지는 않던가요?
성백원 :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격려해 줬지요. 그 학교 동네에 사시는 지인이 저를 보고 놀라시더니 박수를 치며 칭찬해 주시는 바람에 조금 쑥스러웠던 적도 있었지요. 직업의 귀천이 많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요.
임애월 : 물론 청소라는 일은 매우 숭고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지녔지요. 오염으로부터 환경을 지켜내는 일이 쉽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성백원 : 힘은 들었어요. 몸무게가 10kg 줄기도 했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가 숲길을 1년 정도 청소하면서 눈이 엄청 좋아졌어요. 손에 굳은살도 박히고 여러 군데 아픈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적응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2급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웃음)
임애월 : 그래서 그런지 외람된 말씀이지만 왠지 전에 뵈었을 때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 하시는 일이 적성에 맞으시나 봅니다.(웃음)
성백원 : 그런가요? 땀을 많이 흘리고 동료들이 아껴줘서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산에도 같이 다니고, 국내외 여행도 여러 곳 다녀왔습니다. 사람이 못할 일은 없어요. 제 아니 오르고 뫼만 탓하면 안 되지요. ㅎㅎ
봄이 오면
눈물을 떨구며
꽃잎을 쓸어내는 당신
낙엽이 흩어져 내리는 날에는
낙엽 출입금지 쪽지를 걸며
살짝 미소 짓는 당신
배수구를 퍼내며 땀에 젖은 동료들에게
달콤한 한 잔의 냉커피로
휴식을 나눠주는 당신
손목이 뒤틀리는 대청소를 할 때
함께 하는 이들을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간식을 준비하는 당신
모처럼 가는 나들이에
여행 차를 발칵 뒤집어놓아야
직성이 풀려서
그 힘으로 반년의 삶을 지탱하는
가슴 저미는 사연을 품고 사는 우리
높기만 하고 무지한 헛된 꿈보다
작지만 아름다운 하루하루
오늘은 닫힌 가슴 활짝 열어놓고
소주잔을 기울여 그윽하게 마주 보며
노랫가락 한 소절 빵 터트리고 싶다
그대와 나의 위대한 삶을 위하여
- 「살아있는 것이 위대하다」 전문
임애월 : 청소하는 시인 성백원...! 참으로 위대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단한 삶의 얼룩을 닦아내주시는 분들 모두 모두 위대하십니다. 진심입니다.
밖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허영심과는 아주 먼,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시인님께서는 지니신 게 분명합니다. 어디에도 거칠 게 없는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요.
성백원 : 제가 다른 분들에게 붙여주는 이름이었어요. 자유로운 영혼... 그것은 아마 스스로에 대한 통찰이 아니었나 싶어요. 대부분의 동년배들이 그렇듯이 가난하고 거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은 있어도 원망은 하지 않았죠. 낮은 곳으로 흐르는 구름이 비를 품고, 땅을 보고 걷는 사람이 곡식을 가꾸잖아요. 살아가는 동안 불만 없이 떠도는 구름이나 방향 잃은 바람으로 살다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가족이나 주변에 제 역할은 하면서요.
임애월 :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그게 진정한 자유가 아니겠어요? 듣기 좋으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요, 시인님께서는 이미 속세의 욕망을 다 비워낸 성자처럼 맑아 보이십니다. 늘 웃고 계시는 모습도 참 좋아보이시고요.
성백원 :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대로 느끼는 것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싶네요. 어느 겨울날 건물 앞에서 대리석을 닦고 있는 여사께 지금 뭐하시냐고 물었더니, 지구를 닦고 있다고 하여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성자가 아니겠어요?
늦가을의 하루는
논문을 쓰는 일이다
어둠 속에서 낙엽을 쓸면
작은 탑이 하나씩 늘어난다
각도와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
서너 시간의 여정이지만
수많은 방정식을 들이대는 하루
낙엽을 쓸어 담는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 앞에 겸허하게 무릎을 꿇는 일이다
무너진 양심과 추악한 욕심도
함께 담아내는 일이다
늦가을은 하루도 편하게 지나치는 날이 없지만
하루도 헛되게 보내는 날이 아니다
보석 같이 빛나는 하루하루 속에
수백만의 작디작은 이파리들이 속살을 섞으며
수런수런 바람을 맞으러 먼 길을 떠난다
자신에게 달려있던 이파리들이 떠난 후
낡은 가지는 부러져 햇살 앞에 널브러진다
이 땅의 늦가을은 새로운 질서를 위해 젖몸살 중이다
- 「낙엽을 담으며」 전문
임애월 : “낙엽을 쓸어 담는다는 것은/계절의 변화 앞에 겸허하게 무릎을 꿇는 일이다/무너진 양심과 추악한 욕심도/함께 담아내는 일”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속고 속이는 인간 군상들의 추악한 양심들을 낙엽처럼 싹싹 쓸어 담고 싶다는, 그래서 깨끗한 상태로 되돌려 놓고 싶다는 대리 반성, 대리 성찰의 시간인가요.
성백원 : 지구상에서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문명이 발달한 곳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난한 지역, 일 년에 옷이 두벌만 있으면 된다는 사고를 지닌 곳입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 중요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불행은 욕심이라는 다른 말 같기도 하고요. 스트레스는 비양심의 동의어가 아닌가 싶어요. 원시인의 삶은 누추하나 진솔합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몸짓에도 그들은 웃을 수 있잖겠어요.
임애월 :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행복의 척도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그게 맨 첫 번째 조건일 것 같습니다.
조용숙 시인은 이 작품 해설에서 ‘몸을 힘들게 부리는 행위는 겸허해지는 행위이며 동시에 양심을 일으켜 세우고 욕심을 비우는 일이다. 시적 화자는 어느새 가을이라는 계절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면서 자연의 이치를 온몸으로 배워간다’고 하셨어요. 저는 이런 과정을 ‘求道’라고 명명합니다.(웃음)
성백원 : 조용숙 시인께서 제 시를 평해 주시느라고 한 달이 넘게 수도 없이 읽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딱히 보이지 않는 숨은그림 찾기를 하신 것 같아요.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찾아주신 것이 우주의 순환이라는 거창한 명제를 내 주신 겁니다. 계절의 변화 앞에 겸허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우주의 순환에 거부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지 않겠어요. 낙엽 한 장의 의미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삶이라면 살아가는 동안 아름다운 창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느낌입니다.
임애월 : 참... 시인님 고향이 충청도 영동 맞나요?
성백원 : 네, 삼도봉이 있는 곳입니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잇는 곳이고, 제가 태어난 학산은 무주와 경계입니다. 박연이 태어난 국악의 고장이기도 하지요. 월류봉이라는 경치 좋은 곳도 추풍령 근처에 있어서 바람뿐만 아니라 나그네가 쉬어가기도 좋은 곳입니다.
임애월 : 아, 저도 예전에 월류봉을 딱 한번 등산한 적이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곳이지요. 거기에 아직 누가 살고 계시나요?
성백원 : 고종사촌 형수님이 계시기는 합니다. 선산이 있고 어릴 적 만난 동년배들과 1년에 한 번씩 만나서 가기는 해도 그 전만은 못하네요.
임애월 : 괴산과도 인연이 있지 않나요?
성백원 : 화양계곡에서 10분 거리인 청천면에 집 하나가 있습니다. 건강 때문에 아이들 엄마가 지내고 있어요.
임애월 : 아하, 그래서 처음에 저는 선생님 고향이 괴산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중·고등학교도 영동에서 다니셨나요?
성백원 : 아닙니다. 서울 남대문 초등학교와 한성중·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임애월 : 서울로 유학을 가신 건가요?
성백원 : 저는 5살에 서울로 왔습니다. 엄니 손에 이끌려 염천교 다리를 걸었습니다. 그날 제가 “엄니 오늘이 영동 장여?”하고 물었다고 자주 그날을 기억해 내곤 하셨지요. 엄청 개구쟁이였던 제가 처음 본 남의 자동차의 번호판을 떼서 아버지 갖다 드린다고 해서 많이 웃었다고 하셨지요.
임애월 : 아주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사셨군요. 그럼 서울내기나 다름이 없겠네요.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모범생이었나요? 혹시 말썽을 피운 적도 있으세요?
성백원 : 모범생은 결코 아니었어요. 중림동이라는 산동네에 살 때였어요. 6학년을 마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어요. 동네 친구들과 엿 사먹겠다고 시멘트 봉투를 훔치다 잡혀가서 아주 혼이 났어요.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지나가면서 조금씩 끌어당겨 놓고 가다 마지막 주자가 갖고 뛰는 전략이었는데, 그 마지막 주자가 한쪽 다리가 긴 아이였어요. 다 숨었는데 그 아이가 잡히는 바람에 모두 파출소에 끌려가서 혼쭐이 났습니다. 그 뒤로 제 신조는 정직하자입니다. 참말로 그 뒤로 지금까지 도둑질은 못해 봤어요. 그때 너무너무 혼나서....
임애월 : 누구나 그 시기에 그 정도 사건은 경험을 해 봤을 것 같은데요.(웃음)
성백원 : 다른 하나는 중학교 때인데 동생이 누구에게 맞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나는 연탄집게를 들고 그 집 앞에서 한나절을 기다린 적이 있어요. 그 덕분에 부자가 된 동생이 지금까지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저에게 무지하게 잘 합니다. 정과 우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세상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네요.(웃음)
임애월 : 그림이 그려집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 장 추억의 장면으로 남는 일화들이네요.
1995년 《문예한국》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왜 시를 쓰기 시작하셨나요? 아, 취조하는 건 아닙니다.(웃음)
성백원 : (웃음)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선생님께서 시를 외우게 하셨어요. 제가 유난히 시를 잘 외었던 것 같습니다. 칭찬도 많이 받았어요. 그때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지금도 외우고 있습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제 애송시가 되었지요.
임애월 : 맞아요. 그때만 해도 책이 귀한 시절이라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주는 영향력이 대단했지요. 특히 국어교과서요.
성백원 : 그때의 기억이 시에 대한 남다른 추억으로 남아있던 중 1992년 6월 20일 오산에서 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가 창립될 때, 큰처남의 친구였던 조석구 시인님의 권유로 가입을 하여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년배였던 이원규 시인과 함께 문학활동을 열심히 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임애월 : 오산에는 조석구 선생님이 아직도 건재해 계시지요.
참 오산문인협회 회장도 역임하셨으니까 당시 오산 문단에 대해서도 말씀 좀 해 주시지요.
성백원 : 오산 문단의 어른이신 조 시인님은 팔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얼마 전에는 시 전집을 출간하시기도 했지요.
제가 오산문협 회장을 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노작 홍사용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화성문협과 공동으로 주관을 했지요. 2차 때는 20주년 기념행사로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다문화 공연을 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임애월: 오산문협에서 큰 행사를 많이 치르셨네요.
성백원 : 오산에는 청해 이 씨 세거지가 있었습니다. 이성계의 의형제인 툰두란이 하사 받은 성씨지요. 그를 모시는 사당이 오산에 있었는데 택지개발로 모두 이주를 해 버렸어요.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으면 다문화의 원조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오산 문단이 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보전하는 것이 문화원만의 일은 아닌 듯합니다. 문인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네요.
임애월 :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특색을 살려 작품에 담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겠지요.
첫 시집 『내일을 위한 변명』을 2001년에 출간하셨지요? 벌써 20년이 지났군요. 유한근 평론가는 작품 해설에서 ‘성백원 시인은 시 세계의 공간이 넓고 깊은 시인이다. 시법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있기 때문에 사회적, 문학적 상상력이 어디까지 증폭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는데 20년이 지난 후 첫 시집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요?
성백원 : 다듬지 못한 원석 같아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직설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고 보입니다. 방향성이 없다 보니 사방팔방의 주제와 소재를 들이대서 그리 평을 하시지 않았나 싶어요.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지만, 거침없이 써 내려간 느낌도 있습니다. 그래도 첫 아이는 소중하잖아요.(웃음)
임애월 :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시잖아요.(웃음)
첫 시집 표제시 「내일을 위한 변명」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하늘보다/땅이 더 소중하다고 말한다”의 의미는, 다음 행의 “땅의 신음소리가/멈추는 세계를 만드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이 지구의 오염과 난개발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읽힙니다.
성백원 : 사람과 자연은 하나입니다. 하늘만 바라보는 것은 허공에 집을 짓는 일처럼 느꼈지요. 땅이 죽어가고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면 좋은 삶은 아니라는 것과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런 주문을 했던 것 아닌가 싶어요. 지구의 신음은 문명의 발달과 정비례하고 있고, 인간의 고통은 성장과 더불어 커가고 있잖아요. 제자들이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해요. 수업시간에 시처럼 강의했다고요. 삶이란 아름다움을 가꾸는 과정이라고 기억하는 한 제자는 평생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사람은 사람을 만납니다. 서로가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내 삶에도 힘이 되어서 에너지가 솟아날 거예요. 나는 누군가의 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임애월 : 근래 들어 전에 없던 기록적인 가뭄이나 폭염, 물난리 등의 전 지구적 재앙들도 “땅”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만.
성백원 : 인간이 문제입니다. 원자력이 주는 피해는 이미 알려진 바이고요. 전자기기의 발전은 편리함을 주는 대신 인간다움을 빼앗아 갔어요. 자동차의 보급률과 난방기구의 발달은 기후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모두 자연의 순수를 파괴한 인간에 대한 징벌이 아닌가 싶습니다.
임애월 : 여름은 너무 덥다고 시원하게, 겨울은 춥다고 따뜻하게 살고 있는 저부터 참 할 말이 없어집니다. 앞으로 견디고 극복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겠습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일회용품 사용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주문 배달음식 수요가 넘쳐나면서 하루에도 수천 톤이 넘는 일회용품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 합니다. 쉽게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종류의 쓰레기들로 인해 이제 천일염에서나 생선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니 미래가 정말 암담합니다.
성백원 : 환경을 보전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일은 다가 올 재앙을 막는 일이지요. 이를 실천하는 캠페인도 중요하겠지만, 스스로 각성해야 합니다. 저도 작년까지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견뎠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자주 사용을 했습니다.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생활습관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걱정을 줄이는 일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재활용되는 생활용품만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기후 문제와 더불어 쓰레기 문제 해결에 시인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감동을 줄 수 있는 한 편의 시가 환경을 살릴 수도 있겠지요.
임애월 : 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개개인이 스스로 각성해야지요. 두 번째 시집 형님, 바람꽃 졌지요의 촌평에서 김광기 시인은 “성백원 시인은 결코 詩라는 궤에 갇히지 않으리라. 그는 아름다운 것에 잘 빠진다.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 나는 그의 인간다움에 매료되곤 한다”라고 하셨는데 저도 이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선생님을 뵐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참 따뜻하고 인간적인 분이시구나’였어요. 꾸미거나 연출한 것이 아닌 타고나신 품성이요.
시인들은 대체적으로 개성이 강해서 성격도 제각각의 문양을 지니고 있거든요. 선생님의 문양은 아마 둥글둥글하고 따뜻한 색감을 지니셨을 거예요. 그게 개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그런저런 조잡함을 넘어선, 무한 자유를 지향하는 여유가 넘쳐흐르거든요.(웃음)
성백원 : 에구, 저 성질 거시기해요. 똑똑하지 못해서 늘 당하는 축입니다만.(웃음) 어떤 사람은 저를 우유부단한 성격이라고 합니다. 할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속에 담아두기만 한다고요. 그러다가 저수지에 담긴 물이 넘쳐서 둑을 무너트리는 것처럼 폭발을 해서 주위를 적셔버리는 때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는 잘 참는 성격입니다. 가급적 이해를 하려고 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점점 쌓여 도에 지나치다고 하면 욱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 성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현명하지 못한 탓에 형제들과 서먹한 관계가 되어버렸고, 직장에서도 적군이 있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잘 소통하고 이해하거나, 힘든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자세는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옹호해 줘서 위기를 넘긴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임애월 : 아하, 둥글둥글 풍선도 누르면 가끔씩 뿔이 나기도 하고 터지기도 하지요.
성백원 : 이제는 그런 시절도 다 지나가 버렸고, 그저 더 참고 웃으며 살아 보려고요. 그저 왔다가 가는 인생 짜증내서 뭣하겠나 싶어요. 모자란 물감을 더 구하려 애쓰기보다 백지로 남기는 부분을 늘여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임애월 : 사실 저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자존심은 더 강한 것 같거든요.(웃음)
성백원 : 성정은 다 같을 수 없어요. 자라온 환경과 사회적 구조에 따라 두드리고 떼어져 나가서 하나의 형체를 갖게 된 거잖아요. 자존심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는 항상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겸양의 미덕이 어찌 보면 자존심을 약하게 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더 큰 보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승진을 앞두고 경쟁을 벌이던 사람에게 통 크게 양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비밀스럽게 공개된 약속을 믿었지요.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퇴직한 지금에 와서는 제 자존심은 팽팽하게 살아있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떳떳하지 못하지요. 그래도 자존심을 내세우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서 저는 그냥 웃습니다.
칠보산 사는
종걸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바람꽃 졌지요
이놈아,
여긴 지천이야
- 「형님, 바람꽃 졌지요」 전문
임애월 : 이 짧은 시에서는 그냥 사람 냄새가 훅 퍼집니다. “종걸이”라는 실명도, “이놈아‘라는 격식 없는 호칭에서도 오래되어 잘 숙성된 사람 냄새가 납니다. 선생님의 웃음처럼 편안한 긍정의 향기라고 할까요. 인간에 대한 애정이 그 바탕을 이루는 따스한 감수성이라고 할까요.
성백원 : 강원도 진부에 제가 아는 화가 한 분이 계십니다. 저 오기 전에 학교를 떠난 분이신데 수원에서 활동을 하시다가 강원도 깊은 계곡에 자리를 잡고 사십니다. 그 집은 계곡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데 양쪽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왼쪽은 편안하게 다리를 담그고 앉아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고, 오른쪽으로 세게 흐르는 물이 있어 술이 얼근해지면 몸을 적시고 오는 그런 곳입니다. 그 집 옆으로 헛간 같은 것이 있고 그 앞마당에 바람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습니다. 꽃 이름을 알려주면서 종걸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칠보산 밑창에서 자연학교를 운영하는 후배 화가인데 바람꽃 폈냐고 전화를 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의 그 느낌을 가감 없이 옮긴 것이니 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그 화가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더니 아주 좋아하시더군요.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작품들은 하나 같이 따스함이 묻어 있습니다. 보이는 그대로에다 인간의 심성이 녹아들어 공감을 갖게 하는 에너지가 발산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임애월 : 네, 그런 일화가 있었군요.
이 시집 『형님, 바람꽃 졌지요』를 읽고 “바람꽃”이라는 어감이 좋아서 검색해 본 적이 있어요. 미나리아재빗과의 바람꽃은 그 종류가 참 다양하던데요. 백두산바람꽃, 제주바람꽃,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 홀아비바람꽃, 그늘바람꽃, 숲바람꽃 등등... 우리 꽃이라 그런지 이름들이 더 정겹습니다.
성백원 :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도 있어요.
수원 남문 근처 <시인과 농부> 앞에 식당 이름이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시낭송회를 매달 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임애월 : <바람꽃 문학회>도 있었지요? 그때 성 시인님께서 주관하신 걸로 기억하는데요.
성백원 : 수원의 시인은 물론이고 여러 지역의 문학인들을 초청하여 시를 읽고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토론하던 시절이 2004년부터 몇 년 동안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시 창작 강의도 하면서 시인들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었습니다. 지금은 <박꽃 피는 마을>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때에 시인들이 벽면에 써 놓은 시들이 조금은 남아서 그때의 정취를 느끼게도 합니다.
정겨운 이름으로 모였던 시인들이 하나 둘 떠나갔지만, 여전히 바람꽃의 향기는 골목을 채우고 있어서 그때를 추억하게 합니다. 그래서 더 바람꽃에 대한 정이 깊이 가슴에 들어찬 것 같습니다.
임애월 : 지금도 수원의 골목골목에는 시인들이 몰려다니며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낭송하던 정겨운 시간들이 살아 숨 쉬고 있겠지요. 세 번째 시집 아름다운 고집은 2009년도에 출간하셨네요.
절반의 생은
즐거운 착각으로
나머지 절반은
아름다운 고집으로
- 「아름다운 고집」 부분
여기서 아름다운 고집이 의미하는 게 뭘까 생각해 봤어요. 왜냐하면 “고집”과 시인님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서요.(웃음) 물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데... 시인님은 특별히 어떤 면에서 어떤 고집을 갖고 계신가요?
성백원 : 이 시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연이 있습니다. 처음에 쓰기로는 <수원성>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연극계를 이끌던 김성열 극작가의 부탁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 그분에게 헌시로 바쳤고, 전태일 열사 동산 제막식에서 낭독을 했던 작품입니다.
임애월 : 아, 그런 깊은 의미가 내장되어 있었군요.
목숨과 바꾼 아름다운 고집입니다.
성백원 : 사람은 누구나 착각을 합니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뜻깊게 살았다는 자긍심을 갖기도 합니다. 즐거운 착각이라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선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아름다운 고집은 필요하지요. 김성열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도, 전태일 열사도 나름대로는 우리 사회의 디딤돌로써 큰 역할을 하신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한 때는 명함의 뒷면에 이 부분을 인쇄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공감을 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임애월 : 물론입니다. 아름다운 고집...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성 시인님께도 특별한 고집이 있으신 것 같네요.
성백원 : 제 고집은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일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지요. 영리한 머리는 아니지만, 결과에 상관치 않고 과정에 충실하고 싶은 못난 저의 고집입니다. 그리고 후회는 하지 말자. 스스로 선택이 잘못되어 결과가 나쁘더라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자는 것이 고집 같지 않은 나의 고집입니다.
임애월 : 김경수 시인은 이 시집의 작품 해설에서 ‘시인 성백원은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들을 아름답게 긍정적으로 보는 독특한 눈을 가졌’기 때문에 시적 공간에도 통일된 안정감을 준다고 평하셨어요. 사람 냄새나는 넉넉한 품성이 작품에도 녹아나 있다는 뜻이겠지요.
성백원 :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김경수 시인의 말을 하나의 구차한 칭찬이라고 믿어요. 하지만 남들이 보는 눈이 나보다 때로는 정확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 말도 전혀 틀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ㅎㅎ
임애월 : 그럼요, 사람 보는 눈은 거개가 다 비슷한가 봐요. 시인님의 인간적인 모습에 모두 매료되고 있으니까요.
성백원 : 감사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모습을 바다에 비유해 보자면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어머니의 품처럼 고요하면서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눠주는 부드러움이 될 것 같고요. 둘째는 요동치는 파도와 같이 거센 표현을 통해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경우도 있겠죠. 셋째로는 심연의 아래쪽으로 고요하고 느리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유의 깊이가 있을 것입니다. 저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첫 번째의 경우를 주로 보았기 때문에 부드러운 인상을 갖게 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사실 제 마음도 파도칠 때가 가끔 있기는 합니다.(웃음)
임애월 : 재작년인가요? 네 번째 시집 싼티 입고 가는 길은 《시산맥》에서 선정하고 묶어 준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성백원 : 그렇습니다. 감성 시집으로 선정하여 나오게 되었습니다. 11년 만에 엮는 시집이기는 했는데 코로나 시대에 나오다 보니 주변에 제대로 알리지는 못했습니다. 제목을 가지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산티아고 가는 길’을 잘못 쓴 것 같다고요.
임애월 : 다분히 의도성이 있어 보입니다만.(웃음)
모 방송사 프로그램 때문인지 요즘 들어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긴 해요.
성백원 : 사실은 그런 오해를 통해 관심을 가져달라는 의미이긴 했어요. 이 시집은 주로 빗자루를 들고 일하는 시기에 쓴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절의 순환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나 싶어요.
임애월 : 서문에서 “제 시는 모두 현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지요. ‘산티아고 가는 길’이 순례길인 걸 가만하면 머리가 아닌 몸을 쓰는 현장에서 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지혜가, 면벽을 통해 얻는 지혜보다 오히려 더 맑고 환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봅니다.
성백원 : 몸을 쓰는 일은 이목구비가 동시에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길거리에 서서 새벽길을 가다 보면 위험성도 있어요. 그래서 눈에 잘 띄는 야광조끼를 착용하잖아요. 새벽이나 밤늦게 길을 가는 사람들은 환한 색 옷을 입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운전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해서 사고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노출된 삶은 항상 긴장감을 갖게 합니다.
임애월 : 당연하시겠지요. 혹시 현장에서 일하시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시겠어요?
성백원 : 한 번은 선배가 밥 먹으러 가는 저를 비롯한 두 사람을 불러 네 사람이 등나무 그늘에 앉아 소주를 한 컵씩 마셨어요. 그리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데 감독이 저를 불러서 갔더니 몇 명이서 마셨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경위서를 썼지요. 그런데. 그 다음 날 감독이 제가 일하는 현장에 맥주를 바구니에 잔뜩 담아왔어요. 그러더니 하나 골라서 먹으라 하더군요. 그래서 바로 한 캔을 따 먹었습니다.
임애월 : 와우~ 감독님도 한 고집이 있으시네요. ㅎㅎ
성백원 : 아이러니한 이 모습이 현장성을 말해 준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지 모르겠네요. 아름다운 현장도 있습니다. 가을이 오면 도토리를 모으잖아요. 산 쪽에서 일을 하다 보니 눈에 띄는 도토리를 줍기도 합니다. 그것을 도토리 모으는 여사에게 조금씩 드렸습니다. 어느 날 새벽 제 꽃마차 위에 보따리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쓰레긴 줄 알았다가 느낌이 좀 달라서 풀어보니 도토리묵과 양념간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여사께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었죠. 그래서 저는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움을 주고받는 일하는 현장은 인간미가 물씬물씬 풍깁니다. 그렇지만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꼬투리를 잡히지 않습니다. 노출된 현장은 많은 지혜를 얻는 과정이라 느껴져요.
임애월 : 참 아름답고 지혜로운 선물이네요.
사실 저도 요즘 농사일에 빠져 있거든요. 4,500여 제곱미터 정도에 복숭아나무를 심었어요. 몸을 많이 쓰는 일을 날마다 하다 보니 복잡하던 생각들이 단순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답니다. 한여름에 그야말로 비지땀을 흘리며 일을 하다 보면 혼탁하던 머릿속이 환하게 맑아지거든요. 정신적인 휴식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참 희한한 일이지요.(웃음)
성백원 : 우리가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이잖아요.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고요. 지나치게 머리를 쓰게 만드는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잘잘이 중요하다고 봐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 원초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농담일 수 있죠.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살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 보면 걱정거리가 크게 없습니다.
특히 농사는 뿌린 대로 거두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땀을 흘리는 것은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작용도 되기 때문에 몸과 맘이 거뜬해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편안해지는 것은 하루의 목표가 뚜렷하게 정해져 있질 않고 하다가 못하면 내일 할 수 있다는 여유가 정신적 압박감을 줄여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무를 가꾸는 일은 빗자루보다 더 힘들고 고귀한 일이 아니겠어요. 생산이라는 위대한 작업이라서...
임애월 : 사실 저는 날라리 농부랍니다. 그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욕심 부리지 않고 주는 대로 거두고 있답니다.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그렇지요..(웃음)
성백원 : 그게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랍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욕심을 비우면 스트레스가 없어요.
우주는 영원히 돌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들이나 생명이 없는 물체나 물질들도 대우주 안에서 물결의 파동처럼 흥망성쇠를 반복한다고 하지요. 이것은 나선형으로 돌아 영원히 돌고 돕니다. 이렇게 자연은 시간의 흐름에 맞춰 변화를 갖는데 우리들 삶도 크게는 자연의 일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에 순응하는 우리의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순환의 법칙에 따라 순응하는 여정이 곧 우리네 삶이고요.
임애월 : 네, 둥글둥글 자연스럽게 순응하며 살아가야죠.(웃음)
“싼티 입고 가는 길” 즉 “산티아고 가는 길” ...
800km가 넘는다는, 발이 부르트도록 긴 여정을 ‘야고보’를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걷는 순례자들이나, “싼 티를 입고” 현장에서 땀 흘리며 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모두 그 목적은 마음의 안식을 구하기 위한 것, 즉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러 가는 求道의 길이라는 의미인가요? 어떻게 보면 삶이 곧 구도의 여정이기도 하니까요.
성백원 : 앞으로 제 꿈 중의 하나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래도록 걷는 것입니다. 고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활력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 길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의 하나가 될 수도 있겠지요. 분명한 이질적인 여건이지만, 묘한 동질성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땀을 흘리며 가는 길, 그 힘든 여정을 통해 나태한 삶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또 다른 나를 찾아서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가는 기폭제가 될 거라는 작은 소망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일을 하면서 여러 번 손바닥이 까지고 발바닥이 아픈 경험도 했습니다. 안 쓰던 근육을 무리하게 쓰다 보면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제는 굳은살이 박여서 별로 아프질 않아요. 구도의 길이라고까지 단언할 순 없지만, 원시적 삶의 복원을 통해 욕심을 버리는 작은 나를 만나는 것은 되는 것 같습니다.
임애월 : 그 고행의 순례길에 동행해 보고 싶은 욕심이 갑자기 생기네요. 800km라니 버텨내기가 사실 어렵겠지만요.(웃음)
공자나무 꽃잎이
가볍게 떨어지는 초록 날 아침
쇠나무 둥치를 매달고 나타난 텃새들이
너는 후문지기라 한다
순간적으로 꿈틀거리는 생각의 근육을 어루만지며
잔잔하게 끄덕이는 숲의 미소를 보았다
뒤에서만 살아온 지난날 따라
새 길도 후문에서만 노는 걸 보니
내 전생은 후미진 산성 뒷문을 지키는
졸개였나 보다
중략~
맑은 하늘을 나누는 인생 후반기
부끄럽지 않게 얻은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그늘의 뒷바라지
나는 기꺼이 후문을 떠돌며
뒤처진 삶의 거리를 순례하는 그들과
평화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 「후문지기」 부분
대학의 후문 쪽 환경관리를 맡으신 거로군요. “공자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정말 있어요? 아니면 학교 이름과 연계해서 시인님께서 명명하신 건가요?
성백원 : 외곽을 6군데로 나눠서 쓸어요. 해마다 자리를 이동하는데 후문을 담당할 때 쓴 글이네요. 공교롭게도 다음 달부터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전철을 타고 성대역에서 내려 등교하는 많은 학생들을 보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동네 분들이 자주 찾는 길이라서 다소 어지러운 길이기도 합니다. 그 길부터 동문 쪽으로 심어 놓은 나무가 공자나무입니다. 사실은 회화나무인데 예전에 총장을 하시던 분께서 공자나무라 불렀다고 해서 그리 불려집니다.
임애월 : 아, 회화나무군요. 이 나무를 선비나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요. 근데 그 학교에서는 공자나무라고 부르는군요.
성백원 : 성균관대가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쓴 것 같아요. 기숙사의 이름조차 예관, 인관, 의관, 지관, 신관으로 명명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교목은 은행나무랍니다. 또 하나 힘들게 하는 나무는 낙우송입니다. 침엽수의 일종인 이 나무는 붉은색으로 단풍이 들고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고 해서 낙우송이라고 하지요. 지난 날 좋아하던 꽃과 나무들이 이제는 원수처럼 보인다고들 해요. ㅎㅎ
임애월 : 저런... 때가 되면 잎을 떨구어, 사철 푸른 소나무보다 조금 더 인간적(?)으로 보여서 제가 좋아하는 낙엽송이 더러는 미움을 받기도 하는군요. 하하하
앞장서서 진두지휘하는 사람들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 하시는 분들이 더 많잖아요. “나는 기꺼이 후문을 떠돌며/뒤처진 삶의 거리를 순례하는 그들과 평화의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끝부분 구절의 이미지에서 시인님의 가치관이 아주 잘 드러나고 있군요.
조용숙 시인이 ‘성백원 시인의 시는 늘 새로운 주체를 향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주체다. 겸손의 바탕 위에서 늘 사유의 유연성을 추구하는 시인의 자세는 시인에게는 가장 큰 생명력’이라고 하였듯이,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시인님의 자유로운 사고체계가 더 넓은 상상력의 확장성을 가져다줄 수 있겠습니다.
성백원 : 어찌 보면 구속되지 않은 새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과 같아서 너무나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것은 나름대로 인정이 되네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인이라면 어떤 한 면에 깊이 있게 천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제가 아는 어떤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현장을 찾아다녀요. 자신의 소재를 직접 만나고 그것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한 치열한 고뇌의 시간을 갖곤 합니다. 그 결과 신춘문예를 비롯한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도 하였습니다. 부러운 적도 많았지요. 그래서 그의 길을 따라가 보고 싶은 생각도 해 봤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간 투자와 발품은 더 늘려가야 된다고 봅니다.(웃음)
임애월 : 형식보다는 개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듣습니다.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성백원 : 누군가 내 시를 보고 공감해 줄 때입니다.
박지원 씨가 문화부 장관이었던 시절 손숙 씨 연극에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초청장에 저의 시 「봄」을 인용한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이 좋았어요. 국민대 정문 앞에 제 시 「기다림」의 일부를 대형 현수막으로 걸어 놨을 때도 참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제 시가 방송으로 흘러나온다는 친구의 전화가 그리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또 인터넷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제 시를 가져다 나누는 모습에서 존재적 가치를 느낍니다.
봄이
꽃을
부르더니
꽃이
당신을
불렀습니다
당신은
봄
입니다
- 「봄」전문
임애월 : 아, 시가 참 좋습니다. 문화부장관이 행사장에서 인용하셨으니 그 순간이 정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겠네요. 누군가와 함께 같은 마음을 나눈다는 것, 행복한 일입니다. 시 때문에 절망적일 때도 있으셨나요? 자꾸 취조 질문 같아지네요.ㅎ
성백원 : 크게 절망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 자유로움이 가족들에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고민을 한 적은 있는 것 같습니다.
임애월 : 앞으로 꼭 해보고 싶으신 특별한 일이 있다면... 그 첫 번째는요?
성백원 :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산티아고 순례를 가는 것과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저는 여행작가가 되고 싶어요. 좋은 곳에서 맛난 것 먹고 재밌는 글도 쓸 수 있다면 더 이상의 행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나이이긴 하지만 더 익기 전에 이루어야 할 꿈이기도 합니다.
임애월 : 소박한 꿈, 꼭 이루시고 지금처럼 늘 둥글둥글 사시는 모습 종종 뵙기를 희망합니다.
많이 바쁘실 텐데 귀한 시간 내주시고 솔직한 답변 허심탄회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성백원 : 주간님의 연락을 받고 겸손하게 거절을 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잘한 것도 없는 학생이 상을 받는 심정이라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한 시간과 지면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시학》이 문예지로서 독자들에게 더욱 사랑받기를 기원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새들은 허공을 날기 위해
제 뼛속까지 말갛게 비운다고 한다.
성백원 시인은 새벽마다
교정의 후문에서 낙엽을 쓸고 눈을 쓸며
마음속에 고이는 욕망의 조각들도 싹싹 쓸어낸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무한한 우주 속에서 무한하게 자유롭다.
■□ 시인의 자선시
기다림 외 4편
성 백 원
매일 만나는 사이보다
가끔씩 만나는 사람이 좋다
기다린다는 것이
때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절망이지만
돌아올 사람이라면
잠깐씩 사라지는 일도 아름다우리라
너무 자주 만남으로
생겨난 상처들이
시간의 불속에 사라질 때까지
헤어져 보는 것도
다시 탄생될 그리움을 위한 것
아직 채 벌어지지 않은
석류알처럼 풋풋한 사랑이
기다림 속에서 커 가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는
슴벅 슴벅한 가슴일지라도
다시 돌아올 사랑이 있음으로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리라
대추 한 알
아스팔트에 떨어져 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직 채 익지도 못한 녀석이
우주 밖으로 내몰려
저리 새벽바람에 떨고 있는가?
나무에 매달려 살면서
하늘을 나는 새가 부럽거나
미지의 세상을 오가는
바람의 자유를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떠난 길바닥에 떨어진 몸이
한 곳을 응시하면서 움직임조차 없다
다시 올라가고 싶어도
부름이 없는 무정의 공간에서
시간의 공포에 떠밀려 다닌다
대추나무에서 뛰쳐나가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아이들 이름이 달리는 차바퀴에 으깨진다
새파란 청춘의 넋이 하수구에 박혀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지 않는다
반쯤 갈라진 내장이 흩어진
대추알의 앓는 소리가
발바닥에 붙어 귓속에 윙윙거린다
설익은 대추는 잘린 몸을 추스르며
누군가의 이름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다
가지 말라고 붙잡던 그 마음을
껍데기가 더 좋다
이글거리는
불판에서
탁탁 타닥 탁
껍데기가 익어간다
세류동 새벽 노동시장
허름한 소주잔에
친구로 살아가는 나를
그 누가 탓하려는가
안창살은 못되어도
껍데기로 살아가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눈비를 맞아
머리가 벗어지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
굵은 음성보다도
실없는 농담에도 깔깔대며
웃을 줄 아는
껍데기가 나는 좋다
광화문
추모행사에 가서
앞장 서 소리치지 못하고
뒷걸음치면서도 울타리로 남아주는
이름 없는 촛불들이
나는 더 좋다
죽어서야 그리운 이름, 아버지
아버지란
가족이라는 이름 속에서
늘 가려져 숨어지내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병아리 떼처럼
엄마의 품을 파고들 때
묵묵히 뒷전에서 서성이는 사람이다
간신히 눈을 뜨고 나서
말없이 아침을 거르고 나서지만
늘 미안한 마음이 파도로 출렁대는 사람이다
아는 이 없는 출근길 차창 밖으로
바람에 흩어지는 꽃잎을 흐릿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오늘의 일과를 더듬으며 걸어가는 사람이다
오랜 시간 속에서도 늘 낯선 일터에서
웃사람의 큰소리에 비겁한 웃음을 흘리다가
아랫사람의 당당함에 주눅이 들어 뒷걸음치는
남루한 하루가 아버지의 삶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선 저녁 무렵
가야할 곳이 마뜩치 않아 집으로 돌아와서도
전화를 거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다가
냉장고를 열어 주섬주섬 오래된 반찬을 꺼내 놓고
찬밥을 물 말아 허기진 하루를 채우는 한없이 초라한 사람이다
월급날이라고 해도 빈털털이가 되어
누구 하나 술 한 잔 나누자는 이가 없을 때
빈주머니에 손을 푹 찌르고 들어서도
그의 노동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기가 죽는 사람이다
사라진 세월 속에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노란 봉투를 호기롭게 흔들던 기억을 해 내곤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이리 저리 돌아가는 화면을 초점 없이 바라보다
슬며시 돌아누워 코를 골다가
아내의 쇳소리에 진저리를 치며 안방으로 쫓겨가는 사람이다
가족들의 따뜻한 손길에 목마르고
빈 가슴을 채워 줄 말 한마디를 아쉬워하다가
끝내 사랑스런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나고 나서야
목메어 불리어지는 이름
아버지는 죽어서야 그리운 이름이다
가을식탁
가을이 차려놓은
아침 식탁에
햇살 한 그릇
이슬 몇 방울
풀꽃나물 무침
보글보글 끓는 개울물소리
총각바람 한 줄기
새털구름 몇 조각
벽을 보고 홀로 앉아
강아지 풀 쑤욱 뽑아 드니
하얀 벽 앞자리엔
그리움이 배시시 웃고 있다
그렇구나
가을은 외로운 사람에게
그리움을 보내서
아침 식탁을 채우는구나
■□ 성백원 시인 약력
1954년 충북 영동 학산 출생
건국대학교 사학과, 경기대 대학원 졸업
1995년 《문예한국》으로 등단
시집 내일을 위한 변명 형님 바람꽃 졌지요
아름다운 고집 싼티 입고 가는 길등
논문 「1920년대 노작 홍사용의 민족주의 운동」
방촌문학상, 경기시인상, 경기문학작품상, 오산문학상
한국착시문학대상, 한국예총공로상, 옥조근정훈장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장 역임
수원인문학자문위원회 위원장 역임
오산중학교 교사 퇴임, 장안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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