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장 1 -20절
찬송가 67장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신명기 20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4절)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먼저 전쟁의 주관자는 너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너희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적군과 싸우시고,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떨지 말고, 놀라지 말라 명령하십니다.
지피지기백전백승이란 말처럼,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입니다. 즉 누구와 함께 전쟁에 임하는가, 하나님께서 누구와 전쟁을 하시는 가를 알 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대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해 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떨지 말라, 놀라지 말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전쟁에 참여할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도 이해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크게 네 분류의 사람들은 참여할 수 없습니다. 먼저 세 부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새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입니다. 여기서 낙성식은 건축물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지 못한 자입니다. 즉 완공식을 마치지 못한 자입니다.
2) 포도원을 만들과 과실을 먹지 못한 자입니다.
3) 약혼은 하고 아직 결혼하지 못한 자입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 모두 두 마음으로 나뉜 자들입니다.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 주셨습니다. 집을 짓는 수고, 직장을 세우는 수고, 그리고 사랑의 수고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애쓰는 집을 짓고, 일을 하고, 사랑을 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수고를 소중하게 여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고를 강제적으로 빼앗지 않으시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누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4) 마음이 허약한자입니다. 앞 세 부류는 하나님의 배려라면, 마지막 부류는 전투에 참여할 자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군대의 사기가 꺾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10-11절)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적들에게 화평을 청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문을 열거든 항복할 기회를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공을 바치고 섬기는 자로 살아가게 하라 하셨습니다. 반면, 항복하지 않고 전쟁을 선택할 경우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넘겨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치르시는 전쟁의 목적은 에덴동산의 회복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든지 화평하게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 모두 하나님의 샬롬 속에서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에덴동산의 회복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이전처럼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얼굴과 얼굴을 거리낌 없이 바라보며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되기 위해, 적에게 화평을 청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질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9-20절에서는 적들의 농장과 농토도 폭력적으로 취하지 않았습니다. 질서와 조화 속에서 살아갈 나라가 바로 에덴동산의 회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전쟁임을 잊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두마음 갖지 말고 임하라 명하셨습니다. 동시에 전쟁의 목적은 에덴동산의 회복으로 질서와 조화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엄하셨습니다.
(16절)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의 족속들을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죄악이 만연한 가나안의 헷 족속, 아모리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그리고 여부스 족속을 반드시 진멸해야 했습니다. 이는 언약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시기 위해서 입니다. 진멸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담당하셨습니다. 죄에 대해 하나님은 엄중히 심판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삼 일 만에 살아나신 우리 예수님께서 인간을 새롭게 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유일한 선택 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일구어 가시는 에덴동산의 회복인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세워 갈 수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며, 질서와 조화 속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자연(창조물)사이에 부끄러움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되어 버렸고 빛 되신 주님께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아니, 함께 하기를 거부합니다.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주님을 마음에서 밀어버리고,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첫째주일을 살아가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흙으로 왔다 흙으로 돌아갈 재 같은 인생임을 잊지 마십시다.
예수님께서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인생에게 찾아오셔서 다시금 생기를 주시기 위하여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바로 십자가였음도 잊지 마십시다.
십자가로 이루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자연 사이에 질서와 조화가 이뤄졌음을 잊지 마십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일상이 전쟁터 같이 치열하고, 끝없는 두려움의 파도가 몰려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민주와 법치를 위한 전쟁 속에서도 여전히 함께 하시고 응원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 땅에 에덴동산의 회복이 시작되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민주와 법치를 외치고 실천함으로 혼란스럽고 안타까운 대한민국에도 분명 때를 따라 찾아오는 봄처럼 회복과 희망도 찾아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해 봅니다.
기도
하나님 매일매일 전쟁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작금의 현실은 참으로 어둡고, 실망스럽지만, 법이 법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한 사람의 야망으로 대한민국이 통치되지 않게 하시고, 법이 법으로서 통치하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이를 위해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로 공의와 사랑을 이루셨듯이, 우리도 공의와 사랑을 위해 법을 법으로 지키는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법을 법으로 여기고 지키고 살아가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렇게 십자가의 예수님으로 확실히 돌아섬으로, 우리를 통해 이 땅 가운데 에덴동산의 회복이 질서와 조화로 이뤄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