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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9:1-15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여호수아서는 오늘 본문인 9장부터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개별 성읍을 상대로 전투해 온 이스라엘이 이제 가나안 연합체를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입성 후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비록 아간의 범죄로 인해 아이 성 전투에서 큰 희생을 치렀으나, 백성은 다시 한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자신들의 유일한 살길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에발산과 그리심 산 사이, 민족의 유서 깊은 장소인 세겜에서 거행한 율법 낭독 집회로 매듭지어졌습니다. 한편 이렇게 이스라엘이 심기일전하며 전열을 가다듬는 사이 이 불청객들 소문이 가나안 전역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식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반응을 보입니다. 그중 첫 움직임을 성경은 이렇게 밝힙니다.
가나안 여섯 왕의 반응(1-2절)
(1-2)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성경이 밝히는 첫 반응은 가나안 여섯 왕의 연대입니다. 이들은 요단강을 동쪽 경계로 하는 가나안 땅 전역에 퍼져 있었습니다. 가나안 중앙 산지와 평지만 아니라 레바논에 접한 북부지역과 대해로 표현한 지중해 연안 서쪽 경계까지, 가나안 전역을 장악한 여섯 부족 왕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항전을 결의했습니다.
이때 지금까지 본문 앞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한다면, 가나안 왕들의 이런 반응은 다소 의외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가나안 원주민들은 이스라엘의 진군 소식에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는 라합의 진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수 2:11). 가나안 모든 왕들도 이스라엘이 요단강 바닥을 마른 땅으로 밝고 지나온 일로 같은 반응을 보였었습니다(수 5:1). 하지만 그동안 이렇게 두려워 떨던 이들이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놓지 않고 더 강하게 움켜쥐며 결집한 계기가 있습니다. 게다가 그건 이스라엘이 제공했습니다. 바로 아이 성에서의 패배입니다. 가나안 여섯 왕은 자신들이 힘을 합치면 이미 한 번 패한 저 불청객을 몰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일을 이스라엘 편에서 보면 아간 한 사람의 죄가 눈덩이처럼 커져 돌아온 셈입니다. 아이 성에서 치른 희생과 소중한 형제 일가 몰살로 죄의 처분이 끝난 줄 알았지만, 아니었습니다. 더 큰 싸움이 남아있었습니다. 이처럼 죄의 파급력은 상당합니다. 그래서 어리석고 연약한 인간이 죄의 유혹 앞에서 취할 길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도 자녀들에게 이렇게 외치십니다. 잠언 5장 7절과 8절입니다. “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그렇지만 자칫 위기감이 고조되는 9장 도입부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기억하는 이들에겐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복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 전인 신명기에서 이미 지금 연합군을 이룬 여섯 부족을 순서까지 정확히 같게 나열하며 이들을 진멸하라 명하셨었기 때문입니다(신 20:17). 그리고 이후 이들은 하나님 계획대로 패망하고 맙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이 저지른 죄까지 사용하셔서 자기 일을 이루십니다. 한편, 가나안 여섯 왕과 걸음을 같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기브온의 반응(3-13절)
(3-6)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기브온 주민들입니다. 이들은 가나안 여섯 왕과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기브온의 정확한 위치는 학자들이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지만 대략 아이 성 남서쪽 10여km 지점에 있는 오늘날 ‘엘집’ 지역으로 추정합니다.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은 아마 누구보다 먼저 이스라엘이 여리고와 아이 성을 함락한 일을 들었을 것입니다. 자연히 이들도 행동 방향을 정해야 했습니다. 이때 이들은 투항을 택했습니다. 다만, 순수한 백기 투항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사절단을 꾸려 이스라엘에게 평화 조약 맺기를 제안하기로 합니다. 게다가 조약 성사 여부가 자신들의 생사를 좌우할 것임을 알기에 소품까지 준비했습니다. 해진 전대, 찢어져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 낡은 신과 옷, 그리고 곰팡이 핀 빵입니다. 이들은 이것들로 자신들이 먼 나라에서부터 온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기브온의 이 작전은 단순히 이스라엘에 동정심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들은 이스라엘 율법을 꽤 자세히 알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우선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이 진멸할 대상이고 거기엔 일말의 자비가 끼어들 틈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전쟁 규정에는 예외도 있었습니다. 신명기 20장 10절과 15절입니다. “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이스라엘은 가나안 원주민이 아닌 먼 곳 사람들에게는 화평을 먼저 선언 해야 했습니다. 기브온 족속은 바로 이틈을 노렸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이스라엘 율법 예외 조항까지 알았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님 말씀은 원수에게도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자녀로 부르심 받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도 응당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며 말씀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시편 119편 105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렇게 기브온은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이스라엘이 머문 길갈 진영을 찾아가 화친조약 맺기를 제안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반응합니다.
(7-8)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 하나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기브온 사람들이 멸절 대상인 히위 족속인 걸 알아채고 조약은 불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렇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찾아온 이들은 일체 요동 없이 한껏 자세를 낮춰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라고 답합니다. 이에 한발 물러서서 낯선 손님의 정체를 묻는 여호수아에게 기브온 사람들이 준비해온 말을 합니다.
(9-11)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소문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또 그가 요단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들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주민이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들이니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라 하였나이다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기까지 온 건 순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과 요단 동편 두 나라에 하신 일을 듣고 온 국민이 이스라엘과 화친조약 맺기를 소망해 걸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때 여리고와 아이 성 사건은 일부러 빼고 이야기했습니다. 멀리서 온 이들이 최근 일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뒤 앞서 준비한 상하고 찢어지고 낡은 물건들을 꺼내 보이며 자신들 여정이 길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답합니다.
이스라엘의 반응(14-15절)
(14-15)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브온과 화친조약을 맺습니다. 이때 성경 자는 이들 행동에 주석을 하나 답니다.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를 필두로 한 이스라엘 대표단은 기브온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겠다는 맹세를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절인 16절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속았단 걸 알게 됩니다.
성경은 기브온 사람들을 처음 마주했을 땐 히위 부족임을 알아차렸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분별력을 잃은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연이은 승리에 취해 마음이 한껏 고양되어 판단력이 흐려졌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자신들의 옷과 의복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도 해지지 않았는데, 하나님 없는 이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그만 동정심이 차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 이런 가능한 모든 이유가 가리키는 한 가지 죄가 있습니다. 교만입니다. 이 순간 이스라엘은 교만했습니다. 그리고 이 교만은 앞서 아간의 죄와 마찬가지로 민족 전체에 큰 위험을 초래합니다. 실제로 10장에 이르면 이스라엘은 기브온 때문에 가나안 연합군과 전쟁을 치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 기자는 오고 오는 모든 세대를 교훈하기 위해 앞서 주석을 달았습니다. 바울도 로마서 15장 4절 상반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성경 자의 이 진솔한 고백은 삶에서 하나님께 가져가지 않아도 될 만큼 사소한 일은 없음을 알려줍니다. 나아가 영적인 사고가 불필요한 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관심을 보이시지 않는 일이 없기 때문이고, 우리가 주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용된 문제나 어려움 역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매 순간 하나님께 묻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말씀을 읽고 난 뒤 삶의 현장에 복귀할 때 찾아오는 답답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은 수천수만 아니 수억 가지 선택의 연속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우리는 과연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물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당장 이 새벽기도회에 나오기까지도 우리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5분만 더 잘까, 찬송은 건너뛰고 말씀만 들어도 되지 않을까. 새벽기도를 마친 뒤에도 선택의 순간은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찾아옵니다. 등굣길 지하철은 몇 번 칸을 탈까, 출근길 도로 2차선이 더 잘 뚫리는 것 같은데 지금 차선을 바꿀까! 이런 사소한 결정 말고도 우리 앞에 놓인 선택 상황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사람이 내 평생의 반려자가 맞을까. 지금 이직하는 게 좋을까. 집값이 내려가는 지금이 매매 타이밍인가! 사실 우리는 애초에 모든 순간 주님께 물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혹여나 묻더라도, 우리는 주님의 응답을 기다릴 실력과 인내가 없습니다. 그러다 이런 내 현실을 가지고 다시 이 말씀 앞에 설 때 우리는 자책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 말씀은 우리를 괴롭게 하는 가시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맙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릴 대신해 지금 이 시각에도 쉬지 않고 아버지께 물으시며 기도하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히 7:25, 새번역) 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우릴 위해 끝없이 간구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만큼 하나님께 묻기를 쉬지 않으신 분이 없습니다. 여호수아로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이자 더 큰 여호수아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예정된 아버지와의 단절 순간에도 이렇게 물으셨었습니다. "(마 27:46)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우리 위로가 되는 이유는 그분은 아버지께는 끝없이 물으시면서도 우리에겐 묻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유다가 배신할 걸 알면서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빵을 떼어 주시고, 잔을 함께 마실뿐이셨습니다. 기세등등한 수제자가 배신할 걸 알면서도 동산에서 아버지 다음으로 자기 가장 가까운 자리를 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저주한 그에게 왜 그랬냐고 따져 묻지도 않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이 자신을 속인다는 걸 모르고 속았지만,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속인다는 걸 알면서 속아 주십니다. 게다가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단 걸 모를 만큼 뿌리 깊은 거짓된 마음마저 다 끌어안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는 우리가 쓴 죄의 굴레를 벗긴 뒤 자기 형제 삼으셨고 아버지 자녀 됨의 권세까지 나누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을 지나며 오늘 말씀 앞에선 우리가 바라봐야 할 건 아버지께 묻지 않는 답 없고 연약한 나 자신이 아닙니다. 이런 우릴 긍휼히 여기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계속해서 말씀을 뱉어내고, 내면의 파인애플과 바위를 움켜쥘 걸 알면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오늘 하루 이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그리스도께 나아 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 어떤 두려운 소식에도 위축되지 않을 것입니다. 혹 속임수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주님의 사람, 세상 속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군대의 진군 소식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뜻을 좇아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을 배척하며 대항하기도 했고, 하나님을 속이려 얕은꾀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자기 의가 범람하는 세상에 사는 우리는 분별력을 잃은 채 살아갑니다. 그러다 우리 안에 새겨진 주님의 이름마저 잊고 맙니다. 이처럼 혼탁한 세상에 살며 아버지께 마땅히 모든 걸 묻고 구해야 하는 우리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우릴 위해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릴 대신해 아버지께 쉬지 않고 물으십니다. 동시에 우리에겐 그 무엇도 묻지 않으시고 그저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릴 위해 겪으신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에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가길 결단합니다. 연약한 내 모습에 좌절하며 나 자신을 억압하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누리며 주님을 삼킨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이 그렇게 주님과 동행하는 한 날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작은 욕심이나 거짓말이 큰 어려움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나요? 죄의 파급력을 경계하며 지금 속한 곳에서 죄의 자리를 피할 나만의 방법을 묵상해 봅시다.
2. 하나님은 우리 실수까지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3.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 내가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고, 선택 전 하나님께 먼저 묻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묵상해 봅시다.
4.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다 기도할 수 없는 나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우리 대신 간구를 쉬지 않으시는 그리스도를 묵상해 봅시다.
(작성: 이종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