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사의 짧은 이야기 56 (“에스키모의 막대기”)
살다보면 웃을 일보다는 마음이 아프고 힘든 일이 더 많습니다. 사는 게 다 그렇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위의 상황에 우리의 정서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슬픔, 걱정, 분노”는 이럴 때 반응하는 우리의 아주 자연스러운 인간 정서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환경에 지금 이렇게 반응하고 있다는, 그리고 내 심리적 상태가 이렇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감정을 발산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동양적 억압정서로 인해, 우리가 이 신호에 반응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게 되면 “슬픔, 걱정, 분노”는 “우울, 불안, 적개심”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 단계로 넘어가게 되면 심리적으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슬픔, 걱정, 분노”의 신호가 올 때, 민감하게 반응하고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이것이 늦어지게 되면 심리적 질환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신호를 잘 인식하고 나를 발견하는 것을 “메타코그니션(meta-cognition)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두 자아“가 등장합니다. 알기 쉬운 예를 들어보면, 현관문을 새로 달고 생일날짜로 비밀번호를 설정합니다. 이 비밀번호를 정하는 자아를 ”1번 자아“라고 가정하면, 생일날짜로 설정하면 ”1번 자아“가 비밀번호를 잘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2번 자아“가 있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이 두 자아가 원활하게 대화를 합니다. 자기 상태를 잘 인식하고, 잘 반응하고, 많이 대화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두 자아의 대화가 단절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아의 요구에 반응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자아가 심리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가서야 비로소 깨달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암 환자가 암이 있는 지도 모르고 살다가, 자각증세가 생겨 병원에 가보면 이미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상태가 그렇지는 않습니까? “1번 자아”와 “2번 자아”가 원활하게 대화하려면 “휴식”이 필요합니다. 휴식의 한자 구성을 보면 “나무에 기대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슬픔, 걱정, 분노”의 신호가 느껴지십니까? 그러면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아와 대화를 가지십시오. 대화가 잘 통하지 않고, 자기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으면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때입니다. 그래야 다시 힘차게 달려갈 수도 있고, 심각한 심리적 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것들을 초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휴식의 뜻이나 방법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다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에스키모의 휴식법”입니다. 에스키모는 자기 내부의 “슬픔, 걱정, 분노”가 밀려 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고 합니다.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 때 되돌아섭니다.
그리고 돌아서는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둔다고 합니다. 이후 살다가 또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걷기 시작했을 때, 이전에 꽂아 둔 막대기를 발견했다면 요즘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기를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견딜 만 하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휴식은 내 삶의 막대기를 꽂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의 나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움이 찾아올 때까지 걸어가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문제의 실마리를 잡게 되면 그 곳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십시오. 이것이 우리 생명과 영혼과 마음을 살리는 “휴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