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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7:1-14
찬송가 374장 나의 믿음 약할 때
오늘 본문이 속한 사사기 7장은 기드온과 이스라엘이 미디안과 전쟁을 치르는 상황을 그립니다. 앞서 6장에서 기드온은 양털 뭉치 이적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확인했습니다. 사실 그때 기드온의 요청은 꽤 맹랑한 주문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그에게 이적을 충분히 보여주셨고, 성령까지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피조물의 맹랑한 요구에 불호령으로 응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넓은 바다처럼 요구를 받아주셨고, 양털과 주변 땅을 각각 충분히 적시며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여실히 보여주셨습니다. 기드온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이해와 배려는 이토록 일방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론 기드온의 요청은 걱정과 의심의 발로라기보단, 나팔 소리를 듣고 모인 군사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의 산물이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이렇게 긴밀히 소통하고 있음을 드러내려는 저의가 있는 요청 말입니다. 성경이 그의 속내를 밝히지 않기에 독자는 추측만 할 뿐이지만, 이러나저러나 기드온이 결코 큰 용사가 아니란 사실은 더욱 명약관화해졌습니다. 이런 기드온이 드디어 출정합니다.
기드온을 약하게 하시는 하나님(1-8절)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성경은 기드온을 여룹바알로 호명합니다. 이는 그가 앞서 바알의 제단을 파괴한 일로 얻은 별명입니다. 우상을 부수고 하나님과도 소통하는 기드온은 백성에게 더할 나위 없는 지도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모순된 모습에 순순히 속아주지 않습니다. 되려 지금 이스라엘이 진 친 곳의 이름으로 이 모순을 밝힙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롯’샘 곁에 있습니다. 여기서 ‘하롯’은 히브리어 ‘하렛’에서 나온 말로, ‘떨림, 두려움, 공포’라는 뜻을 갖습니다. 이를 고려해 1절을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바알을 쳐부수는 자와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아침 일찍부터 두려움에 머물며 바알 숭배자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큰 용사라고 부르셨지만, 여전히 기드온은 작은 자라는 것을 구태여 감추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기드온의 심정이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3절에 나오지만 지금 모인 이스라엘 백성 수는 3만 2천 명이었습니다. 반면에 미디안 군의 수는 사사기 8장 10절을 통해 유추하면 13만 5천 명이었습니다. 즉, 산술적으로 1대 4의 싸움이기에 기드온과 백성의 두려움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당시 가나안 주민들은 철기로 무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갓 유목민티를 벗은 농부들이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미디안 군사들은 낙타를 타고 기동했습니다. 이 미디안 낙타 부대는 꽤 유명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이 안 그래도 불안한 기드온의 마음을 더욱 흔드십니다.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은 모인 백성 수가 많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미디안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십니다. 왜냐하면 지금 승전가를 올린다면 그들이 자기 능력으로 이겨 자신 스스로 구원했다 착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죄로 물든 인간 본성은 자기 행위를 자랑할 기회라면 그것이 아주 미미해도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점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를 통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8:17, 새번역)당신들이 마음 속으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아끼고 걱정하시는 하나님은 이들이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기드온에게 두려워 떠는 자는 돌려보내게 하셨습니다. 이때 떠난 사람 수가 2만 2천 명이었고 남은 자는 만 명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군대 수는 1대 13이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아마 돌아가는 병사들 뒷모습을 초조하게 봤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아직은 해볼 만하다고 스스로 위로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래전 모세도 군 지휘관들에게 두려워 겁먹은 군사는 집으로 돌려보내게 할 만큼 전장에선 사기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신명기 20:8). 또한 드보라와 바락도 군사 1만으로 철병거로 무장한 적군을 물리친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사사기 4:10). 즉, 현재 남은 만 명은 아직 계산이 서는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축은 아직 끝이 아니었습니다.
(4) 주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여전히 군인이 많다고 하시며 한 번 더 그 수를 줄이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 기드온이 군인들을 물가로 데려가면 그들을 시험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시험은 사탄이 하는 유혹이 아닙니다. 마치 리트머스 용지로 산성과 염기성을 가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기준으로 전쟁에 나갈 군인을 가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기준은 이렇습니다.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군인들의 물 마시는 자세를 본 뒤 개처럼 물을 핥는 그룹과 무릎을 꿇고 마시는 그룹으로 나누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물을 핥아 마신 자는 300명이었고 무릎을 꿇고 마신 자는 9,700명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앞선 300명을 남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군인은 처음 모인 수의 1%만 남아 이스라엘 대 미디안의 수는 1대 450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여러 설교자는 이 본문을 해설하며 하나님이 정예군을 남기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손에 물을 떠서 개처럼 핥는 자들이야말로 눈으로 사주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 참 군인이라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하나님 편이 아닌 우리 편에서 논리를 찾아 인과율로 엮어내는 오류입니다. 실제로 히브리 원문상 하나님이 말씀하신 물 마시는 자세 구분은 모호합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 300명이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이 시험은 정예군을 뽑는 게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소수를 남기시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드온과 이스라엘을 약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약함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우리가 연약해야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 사도가 자기 고백을 통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새번역)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하늘의 환상을 직접 보는 특권을 누렸지만, 육체의 가시로 인해 평생 고통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이 자기 건강을 가져가신 걸 ‘내가 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고, 약한 그때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즉,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이 약한 나를 좀 보시죠. 하나님이 나를 통해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시는지도 보세요. 우리가 높여 찬양할 분이 바로 이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우리 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은 군인 3만 2천을 300으로 줄이며 기드온을 약하게 하셨습니다.
당연히 이때 기드온은 겁도 많고 의심도 많았던 자기 본 모습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때가 그에겐 은혜의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온전히 누릴 때였습니다. 그 어떤 자기 의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을 만한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 우리에게도 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보고 누리게 하고, 동시에 우릴 통해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시려 우리 앞에 장애물을 두시며 우리를 약하게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장애물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눈물을 짓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기억해보면 우리가 약해진 그때 비로소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더욱 구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즉, 우리는 우리가 약한 그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히 여기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릴 약하게 하는 장애물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은혜를 누립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 위해 우리를 약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묵상하시길 축원합니다.
기드온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9-12)
(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이제 하나님 보시기에 기드온과 백성이 충분히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밤 기드온을 찾아가 진군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여러 번 약속하신 승리를 한 번 더 확인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기드온과 300명은 출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10-11)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온 우주의 왕의 사려 깊음은 어느 정도인지, 이번에도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에게 남은 의심과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부하 부라와 함께 미디안 진영에 잠입해 그들의 말을 들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진군 명령에는 순종하지 못해도 이 제안까지 거절할 수 없었던 기드온이 미디안 군 진영 근처로 갔을 때 마주한 광경을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기드온에겐 목숨을 건 순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건 메뚜기 떼만큼 많은 군사였고,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낙타였습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두려움이 기드온을 사로잡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위험을 감수한 그의 귀에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숨죽인 기드온이 듣는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기드온에게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13-14)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한 미디안 사람이 친구에게 자기 꿈을 말합니다. 꿈에 보리 빵 한 덩이가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을 쳐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그냥 무너진 게 아니었습니다. 장막의 위아래가 뒤집힐 만큼의 위력을 보였습니다. 정말 앞뒤 맥락 없고 황당하기까지 한 꿈입니다. 실제로도 미디안의 장막은 이스라엘에서 적어도 지난 7년간 무너진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친구는 대번에 그 꿈을 풀이했습니다.
(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보리 빵은 이스라엘 사람 기드온의 칼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장막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이 미디안 모든 군대를 보리 빵, 즉 기드온의 손에 넘겨주신 것을 뜻했습니다. 여기서 친구의 마지막 말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는 앞서 9절에서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잠입을 명하시며 하신 승리 약속과 같았습니다.
아마 기드온은 이 대화를 듣고 놀랐을 것입니다. 해석 자체에도 놀랐고, 자신이 이 둘이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각에 잠입한 것에도 놀랐을 것입니다. 아마 기드온은 이제야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을 통해 먼저 듣고, 적군의 입을 통해서 재차 들은 승리를 확신했을 것입니다. 이제 비로소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충분히 약해졌고, 충분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선 안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기드온에게 확신이 필요할 때, 그가 요청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다가가셔서 그를 움직이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실상 기드온이 하나님께 요청했던 것들은 구태여 확인할 필요가 없던 일들이었습니다. 그가 한 일들은 창조주의 전능하심을 의심해 기적을 요청하는 촌극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참 작은 자를 큰 용사 되게 하려 작정하셨고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먼저 사자를 보내셨고, 그의 부족한 제물을 직접 태우기까지 하며 받아주셨습니다. 또한 성령을 입히셨고, 양털 뭉치 기적도 보여주셨습니다. 나아가 미디안 사람에게 꿈꾸게 하고 그 해석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기드온 자신으로선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용기와 확신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기드온에게 일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하십니다. 기드온에게 직접 말씀하셨듯 오늘 우리 손에 들린 말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확신을 주십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입술을 통해 기드온이 확신을 얻은 것처럼 우리에게도 같은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나누는 구역모임이 바로 그 은혜의 창구입니다. 나아가 기드온이 딱 맞는 때에 딱 맞는 장소에서 확신을 얻은 것처럼, 오늘 우리 삶의 정황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에 우리 약한 믿음을 세우고 북돋으십니다. 전쟁에 앞서 기드온 한 사람을 먼저 깨우치신 하나님이 오늘 교우님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하나님의 약하게 하심과 말씀하심과 확신 주심을 기쁨과 감사로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기드온을 어떻게 빚어가시는지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겁 많고 의심 많았던 기드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작고 작은 그를 큰 용사라고 부르셨었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은혜를 한 치 오차 없이 주셨습니다. 그를 약하게 하시며 그를 하나님의 능력을 담아낼 그릇 삼으셨습니다. 그에게 말씀하시며 움직이셨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때에 그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기드온처럼 믿음이 약한 우리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빚어가심과 세워주심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이 하루를 주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성경이 이스라엘 진영을 묘사하며 ‘여룹바알’이 ‘떨림의 샘’에 진을 쳤다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군대 숫자를 급격하게 줄이셨을까요?
3. 나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강하심이 드러난 경험을 묵상해보세요.
4. 하나님이 내게 확신을 주신 상황들을 묵상해보세요.
(작성: 이종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