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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나와라~”, “×× 다 죽여버려!”, “다 밟아 죽여!”
지난 1월 19일 새벽 서울 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도들이 법원 문짝과 컴퓨터를 때려 부수며 내뱉은 말들이다. 폭도들의 음산한 목소리에 몸서리 친 국민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 목소리가 변성기를 갓 지난 듯한 청년들 목소리이기에 더 그랬다.
청년들을 괴물로 만든 한국 사회의 제도와 구조, 그리고 교육
사람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이들의 괴상한 모습은 우리가 보던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건 괴물이었다. 그런데, 이번 폭동으로 체포된 9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46명이 20대와 30대 남자로 파악됐다. 법원에 불까지 지르려고 한 자는 10대라고 한다. 청년과 청소년이 그날 폭동의 주력이었던 것이다. 국민들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투블럭 머리를 한 남성이 서부지법에서 깨진 창 너머로 기름을 부은 뒤 종이에 불을 붙이고 있다. 2025.01.24. 제이컴퍼니_정치시사 영상 갈무리
누가 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나? 가짜뉴스로 폭력을 부추긴 유튜버, 백골단을 국회에 불러들여 홍보 기회를 준 정치인, ‘국민저항권으로 윤석열을 구치소에서 모시고 나와야 한다’는 목사,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사랑한다는 유명 학원강사…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열거한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오랜 기간 끊임없이 괴물을 만들었고, 괴물의 등을 떠밀어 온, 바로 한국 사회의 제도와 구조다. 독일교육을 잘 알고 있는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한국의 ‘파시스트 교육’에서 문제점을 찾는 듯하다. 다음은 지난 1월 22일 김 교수가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서 한 말이다.
“그것(폭도들이 생긴 원인)은 저는 근본적으로 보면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처럼 민주시민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그러한 선진국은 많지 않아요. 한국 교실에서 12년 동안 교육을 받으면 과연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될까, 잠재적 파시스트가 될까, 이 물음이에요. 우리의 경우는 32년 동안 육군 소장들이 지배하는 끔찍한 군사 독재를 경험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이것을 극복할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이 있었느냐, 이렇게 물으면 거의 없었어요. 교육의 변화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이어져 온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파쇼 교육이에요… 우선 한국의 교실 자체가 민주주의자를 길러내기가 어려워요. 한국은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 교육이 심한 나라예요.”
‘학교 결정론’만으로 어떻게 응원봉 청년들을 설명할 텐가
이 말을 한 김 교수는 1970년대 이후 독일이 한 교육 개혁을 다음처럼 소개한다.“그 교육 개혁의 핵심적인 모토가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였어요. 이때부터 경쟁 교육을 안 시켰어요.” 김 교수의 이런 말은 그가 10여 년 가까이 이어오는 레퍼토리다. 하지만 그 10년 훨씬 이전부터 한국 교육도 살아 움직였고, 혁신을 위해 몸부림쳐왔다. 혁신학교 운동과 학생 인권 운동, 학교민주화 운동 등이 그것이다. 사실, 김 교수 말이 100% 맞으려면 독일에는 파시즘 세력인 나치를 신봉하는 청년들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김 교수 말이 100% 맞으려면 한국에는 민주와 평화, 인권을 외치는 응원봉 청년들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윤석열 탄핵운동을 이끄는 주력부대는 바로 이 응원봉 청년과 청소년들이다. 지금 한국에서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의 상징은, 제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밝게 빛나는 응원봉을 든 청년과 청소년들이다.
며칠 전 만난 내 친구이기도 한 교원단체 간부는 다음처럼 말했다.
“어떤 일만 생기면 다 학교와 교사 탓을 하고 있어. 이건 완전히 학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교육)학교 결정론’이야. 이번 폭도들의 난동도 학교 교육이 한 원인일 수는 있겠지만 학교 문제로만 환원하면 학교 교육과정만 엉클어지지 해결이 되지는 않을 거야.”
11일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6차 시민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2025.1.11. 연합뉴스
교사 보다 훨씬 영향 큰 친구와 어머니, 그리고 유튜브, SNS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주는 이들 가운데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의 역할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난 1월 22일 우리은행이 만 14~18세 청소년 3729명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펴낸 대한민국 청소년의 라이프스타일 보고서 '틴즈 다이어리(Teens Diary)'를 보면, 고민 상담 대상에서 ‘선생님’은 3.7%에 지나지 않았다. 친구가 31.7%로 가장 많았고, 어머니는 19.6%였는데, 교사는 이보다 훨씬 낮았다. 가짜뉴스 또한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얻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주로 뉴스사이트를 통해 얻는 것도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2년 7월 13일부터 9월 7일까지 전국 청소년(초4~고3) 2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복수 응답)를 보면, ‘유튜브 등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뉴스를 본다’는 답변은 63.7%였다. 이 비율은 2019년 30.8%에서 두 배 이상 뛰어오른 수치다. 최근엔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뉴스를 본다’는 답변도 49.3%였다. 2019년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 비율은 41.4%였다. 반면, ‘언론사 홈페이지를 통해 뉴스를 본다’는 답변은 15.3%였다. 2019년엔 28.8%였다.
그날 나는 그 교원단체 간부한테 다음처럼 말했다. “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괴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 학자는 학자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기자는 기자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노력해야지. 어느 하나를 콕 찍어서 그것에 책임을 돌리면 해결책이 나올 것 같지 않아.”
모두 나서서 가짜뉴스부터 잡아야 한다
이런 말을 한 다음 날, 나라 안팎 여러 단체들이 낸 ‘가짜뉴스 분별 방법’을 모은 “괴물 만드는 ‘유튜브 가짜뉴스’, 분별 교육 어떻게?”라는 기사를 썼다. 우선 가짜뉴스를 분별하는 힘을 키우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교육을 해야 할 사람은 학교에 있는 교사뿐만이 아니다. 학부모, 기자, 정치인, 학원강사,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까지… 모두 나름대로 자신들의 몫을 해야 한다.
위 기사에 나온 ‘가짜뉴스 분별법’ 7개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생각부터 하라.
-뉴스의 출처와 작성(제작)자를 확인하라.
-근거자료를 확인하라.
-전문가의 공신력 있는 발언을 토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라.
-특정한 관점이 정보를 왜곡하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라.
-폭력을 부추기는 혐오 표현이 들어 있지 않은지 확인하라.
-뉴스와 영상을 지나치게 반복하여 보면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