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시민공원과 어린이 놀이터, 학교 시설물에서 산책로나 벤치, 계단 등으로 쓰이고 있는 '철도 폐(廢)침목'이 발암물질을 뿜어내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정부 조사를 통해 처음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이 폐침목은 현재 전국에 61만 개가 깔려 있으며, 2004년 정부가 별다른 인체 위해성 여부를 조사하지 않고 단순히 물품 재활용 차원에서 사용을 허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변 토양도 오염시켜
강원대 김희갑 교수(환경과학과)팀이 환경부 의뢰를 받아 올 초부터 8월까지 전국의 공원과 놀이터, 학교주변 부지 등 6곳을 골라 폐침목 주변의 토양 오염도를 조사해 최근 제출한 결과에 따르면, 인체 유해물질인 '벤조피렌'이 미국 환경청(EPA) 기준의 3~36배까지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벤조피렌은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의 하나로, 국제암연구기구(IARC)가 '유력한 인체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김희갑 교수는 "사람들이 폐침목이 깔린 주변의 흙을 만지거나, 그 주변에서 호흡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인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조사 대상이었던 놀이터 가운데는 폐침목 주변 토양이 아이들 10만명당 9명꼴로 암을 유발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다른 곳도 100만 명당 2~7명꼴로 발암 위해성을 지닌 것으로 조사돼 김 교수팀은 "빠른 시일 내 오염방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환경부에 보고했다.
폐침목 주변 땅을 오염시킨 것은 폐침목에 칠해진 '크레오소트'를 비롯한 유해물질이 흘러나와 땅 속으로 침투했기 때문이다. 크레오소트는 침목 제조과정에서 방부(防腐)용으로 첨가되는데, 벤조피렌을 비롯해 인체 유독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를 다량 함유한 화학물질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임산물품질검사팀 강승모 박사는 "전국 각지에 깔린 폐침목 주변 토양이 이미 벤조피렌을 비롯한 유해물질로 오염됐다고 보면 된다"며 "폐침목 재활용을 당장 금지하고, 이미 설치된 폐침목은 걷어내서 폐기 처분한 뒤 오염된 토양을 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난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시민들이 철도 폐침목으로 만들어진 나무계단을 통해 인근 아파트 단지로 올라가고 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업자에게 개당 1만여원에 팔려
이 같은 연구결과가 나오자 환경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관련 법규를 고쳐 폐침목을 더 이상 재활용하지 않기로 최근 내부 결재를 마쳤다"며 "철도공사를 비롯한 관계부처에 이런 방침을 통보했으며 조만간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폐침목은 1990년대부터 시중에 유통돼 오다가, 2004년 환경부가 "옥외 계단용이나 바닥재용, 노반 보강용 등으로 폐침목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 명기했다. 그 뒤로 한 해 평균 15만여 개의 폐침목이 철도공사 입찰을 통해 개당 1만~1만5000원에 민간업자에게 팔렸다.
이와 관련, 환경부 관계자는 "당시엔 (어떤 물건이든) 재활용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환경부 정책의 대세였다"며 "다만 환경이나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은 채 재활용을 결정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미 해외에서는 폐침목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논문과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정부가 폐침목의 재활용을 허용하면서 유해성 검토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현재 전국 각지에 뿌려져 있는 61만여 개의 폐침목을 누가 수거하고, 오염된 토양은 어떻게 정화할지 등에 대해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폐침목 재활용을 허용한 환경부로서는 향후 사용을 금지할 수는 있지만, 이미 사용된 폐침목에 대한 철거 명령을 내리기에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산림과학원 강승모 박사는 이에 대해 "폐침목을 사용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정부나 지자체가 돈을 들여 폐침목을 철거하고 오염된 토양을 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도 "민간에 책임을 물을 순 없다"고 했다. 결국 환경오염을 부추긴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그 뒤처리 비용까지 대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준선 의원(한나라당)은 환경부가 이런 내용의 '폐침목 사용실태 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자, "환경부 산하기관이 이미 올해 1월 환경부에 '폐침목의 재활용을 엄격히 제한하거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보고했다"며 "폐침목의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킨 환경부가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피해에 대해서도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