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여행 둘째날(해남~강진~보성)
밤새도록 창밖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잠자리가 바뀌었음에도 일찌감치 골아 떨어졌다가 기분 좋게 아침에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TV부터 켜보니 마침 기상특보가 나오고 있었다.
태풍은 더욱 빨라진 속도로 제주도 근해를 거쳐 통영 쪽을 향해 가고 있다고 했다.
창문 밖에서는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시각 중부지방에는 호우 주의보가 내려진 곳이 많은 듯 했다.
이번 주말에는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도 코스모스 축제를 어제부터 시작했는데
밤사이에 폭우가 내렸다 하니 꽃들이 폭탄을 맞은 듯 무너져 있을 것 같다.
영암호가 눈앞에 보이는 호텔 내 식당에서 뷔페식 식사를 했다.
먹고 싶은 것이 꽤 있었지만 아침에 늘 먹던 양이 있어서 잘 먹히지 않았다.
식사 후 짐을 다시 싣고 버스에 탑승하여 9시에 해남을 향해 출발하였다.
강진의 '가우도'와 함께 오늘 일정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두륜산' 케이블카 관광이
강풍 때문에 취소되었다.
두륜산 케이블카에서는 땅 끝을 넘어 다도해와 제주도 한라산이 한눈에 보인다고 한다.
날씨로 인해 중단 될 시 대흥사 관광으로 대체 된다고 스케쥴표에 나와 있는데
그 역시 무리가 되는 것인지 본사와의 협의 후 전라 우수영을 가는 거로 결정되었다 한다.
우수영은 1597년 충무공이 이룩한 명랑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옛 성지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울돌목이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국민관광지와 명량대첩 기념공원으로 조성,
명량대첩의 역사적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기념관으로 들어가서 먼저 명랑대첩 영상물을 시청하였다.
안경을 쓰고 4D 영상으로 보는 명랑대첩은,
시퍼런 바닷물이 바로 눈앞에서 넘실거리고, 때로는 의자도 흔들렸으며
총이나 화살이 날아올 때는 얼굴로 물이 분사되기도 했다.
영상물 관람을 한 후 전시물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10m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버스를 향해 가는데
바람이 무섭게 휘몰아쳐서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날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엘리사벳과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서 버스에 올라탔다.
그 때가 10시 10분경이었는데, 알고 보니 바로 태풍이 통영에 상륙하고
부산 쪽을 관통하고 있던 때였던 것이다.
다음 행선지는 고산 윤선도 유적지였다.
봄을 깨우는‘녹우’와 같은 곳이라 하여 ‘녹우당’으로 불리는 이곳은
고산 윤선도 선생이 해남으로 낙향하여 기거한 장소이며,
유물 전시관에는 공재 윤두서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장소를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가이드는 지금 가고 있는 장소나 인물에 대한 해설을 해준다.
정안 휴게소를 지날 때는 차령산맥 등 우리나라 산맥들에 대한 것과 평야,
밤 생산지와 밤의 종류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해 주었고,
새만금 방조제를 드라이브 하며 지나 갈 때는
방조제 공사의 시작과 과정과 완성 시기에 대하여,
그리고 당시의 통치자들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목포대교를 거너면서 삼학도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녹차밭으로 향하고 있을 때는 녹차의 종류에 대해 말해 주어 상식을 넓혀주었다.
윤선도 유적지를 향해 가고 있을 때도 윤선도에 관한 출생과 인물됨,
정치적 성향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주어 학창 시절에 배웠지만
잊혀져 가던 지식들을 소환해 주었다.
윤선도의 본관이 해남, 해남 윤씨라 해서 해남 태생인 줄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문리대 마로니에공원 에 있는 농구 골대 자리가 태어난 곳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사 간 곳이 명동성당 근처 ‘민들레 홀씨되어’ 카페 자리이고,
지금도 그곳에 가 보면 표지석이 있다.
윤선도가 낙향해서 해남에 살았고 보길도에도 살았던 것은 유배를 갔기 때문이 아니다.
윤선도가 정치적으로 적이 많아 유배를 여러 번 가기는 했지만 이곳이 아닌 다른 곳들이었다.
윤선도는 워낙에는 서울태생으로 후손이 없던 해남 윤씨 종가에 양자로 들어가
해남에 내려가 살게 된 것이라 한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가서 살게 내력은 이러하다.
병자호란 때 왕이 강화도로 피난하게 되자, 윤선도는 가복(家僕) 수백 명을 데리고
왕을 보호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강화도로 향하였다.
그러나 이미 강화도가 함락되고 결국 왕이 청나라에 항복, 화의했다는 소식에
이를 욕되게 생각하고 은거를 결심, 뱃머리를 돌려서 제주도로 향하던 중,
심한 태풍을 만나 이를 피하기 위해 들린 곳이 보길도였다.
윤선도는 보길도(甫吉島)의 경치를 보고 반해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여생을 마칠 곳으로 삼았다고 한다.
윤선도는 낙향하였을 때는 해남과 보길도를 오고 가며 살았으며
이곳에서 ‘오우도’와 ‘어부사시가’를 지었다.
남인이었던 윤선도는 제 1차 예송논쟁 때 서인인 송시열과 대적하여 송시열을 맹렬히 공격 한 적이 있다.
후에 송시열이 제주도로 유배를 가다가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는데
윤선도의 후손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었음에도 송시열은 결코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윤선도에 대한 송시열의 원한이 컸던 것이다.
현재 녹우당은 어초은공파가 거주하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어
밖에서만 바라다 보았다.
윤두서는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삼재(三齋)로 일컬어진 사람으로
윤선도의 증손이자 정약용의 외증조부이다.
장남인 윤덕희와 손자인 윤용도 화업(畵業)을 계승하여 3대가 화가 가문을 이루었다.
(윤두서의 자화상)
윤선도 유적지를 본 후 버스는 해남을 출발하여 강진으로 이동하였다.
‘다양한 재료와 남도 아낙의 손맛이 더해진 맛!
남도를 대표하는 음식 중 최고로 손꼽히는 다양한 요리가 서른 가지가 넘는다는
남도 한정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우리가 찾아간 한정식 집은 한옥식 건물로 강진군을 대표하는 관광 코스로 만들기 위해
지자체에서 집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코스 자체가 평탄해서 에너지 소모가 적어서인지,
기상 때문에 걷는 것을 많이 생략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작년과 달리 식사량이 줄어서인지
이처럼 한 상 가득한 밥상은 먹기가 부담스럽다.
식사 후 보기로 했던 ‘가우도’ 역시 태풍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가우도’는 소머리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여 붙은 섬으로
육지와 섬을 연결해주는 출렁다리가 생긴 이후로
6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강진의 핵심 관광지라고 한다.
가우도를 포기한 투어 버스는 보성 녹차밭으로 향하여 달려갔다.
그 때 포콜라레 모임 친구로부터 사진이 전송되어 왔다.
오늘 여수에 내려왔는데 그곳은 태풍이 물러나고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계속 동진을 하고 있는 우리의 하늘은 아직도 잔뜩 흐리기만 했고
윤선도 기념관에 있었을 때는 비도 꽤 내렸었다.
차가 달리고 있는 동안에 가이드는 녹차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청명 전에 딴 잎으로 만든 차가 명전차, 곡우 전에 딴 것은 우전차,
어린잎으로 만든 것은 세작차라고 하고 큰 잎으로 만든 것은 대작차라고 한다.
잎이 클수록 쓴 맛이 나는데 현미녹차는 쓴 맛을 감추기 위해 현미를 넣는 것이다.
그리고 명전차는 우리나라에서는 날씨가 추워서 나오지 않고 중국에서도 무척 비싼 것이라고 한다.
차 농원에 들어서는 길은 일본인들이 심어놓은 삼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었다.
삼나무 길을 지나 녹차 밭으로 가기 전에 녹차를 시음 할 수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우전차 티백을 넣은 뜨거운 물을 포트에 담아 탁자 마다 한 대씩 갖다 주었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까지 우려서 마시라고 했다.
엘리사벳과 나는 그곳에서 시키는 데로 네 번을 다 마셨지만
남편은 두 번만 마시고 먼저 일어섰다.
그런 다음 녹차가 심어진 언덕을 가이드가 가라는 길로 올라가 사진 몇 장을 찍고 돌아서 나왔다.
가우도 관광을 생략하는 바람에 시간이 남아
저녁 식사를 하기 훨씬 전인 3시 30분에 광주 홀리데이인 호텔에 도착하였다.
저녁식사 시간까지 2시간 넘게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까
호텔 사우나 이용권을 줄테니 사우나를 하고 쉬었다가
5시 50분에 버스 타러 다시 나오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우리 세 식구는 안으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방에서 그대로 쉬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버스를 다시 탔을 때
일행 대부분이 쉬는 시간에 사우나를 다녀왔다고 말했다.
저녁 식사는 광주 시내에 있는 음식점으로 가서 광주육전을 먹었다.
육전은 쇠고기를 얇게 포를 떠서 계란을 입혀 부친 전인데
프라이팬을 밀고 다니면서 따끈따끈하게 부쳐서 상마다 갖다 주었다.
부드럽고 맛은 있었지만 나는 한 점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내게는 점심도 과했는데 저녁 역시 과한 것이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엘리사벳은 소화를 시켜야겠다며
한 시간 정도 길거리를 돌다가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여행 이틀째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첫댓글 잘 읽었다. 모처럼의 여행인데 일정대로 골고루 다녔으면 더 좋았을 것을...
네 여행기를 한 문우에게 보냈더니 아래 싸이트에 들어가 보라고 하더라.
http://cafe.daum.net/moosimjae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자기는 매일 들어가, 집에서 여행을 즐긴다고.
엘리사벳이 수행 카메라 기자처럼 따라 다니며 찍어 준 사진이 많아
기록물을 남기는 작업이 쉬우면서도 어렵네요.
아쉬운대로 이정도로 올리고 있어요.
천천히 보완하려구요.
남도여행기가 우리 가족만이 보는 것이 아니라
가을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다른 이의 블로그나 카페에 들어가서
정보를 얻기도 하기에 아무렇게나 쓸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