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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부안 45코스
곰소광장공원-곰소항-작도마을-석포들-관선마을-운호들-왕포마을-
작당마을-도롱골-마동방조제-쌍계재-국립변산자연휴양림-
모항갯벌체험장-모항항-모항해나루호텔-모항해수욕장
2023.04.12
1.변산반도 곰소만 모항으로 가는 길
서해랑길 44코스를 마치고 곰소젓갈발효식품센터 앞에서 아침을 먹었다. 팽나무는 새 잎을 틔우느라 분주히 양분을 가지에 올리고 있다. 곰소만 바다 건너 고창군 부안면 상암리와 봉암리 일대 그리고 곰소항 위쪽에 내죽도, 이들 풍경이 황사 때문에 흐릿하지만 그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황사가 몰려오면 황사의 고향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몽골의 고비사막에 가고 싶다. 내 마음의 고향은 사막, 어린왕자가 내려앉은 사막의 땅 같다. 고비사막에 가서 그 여우를 만나고 사막의 아름다움을 빛내는 오아시스에서 샘물을 마시며 삶의 갈증을 풀어내고 싶다. 우리의 삶이 투명할 것 같은데도 자세히 살피면 몽롱하기만 하다. 황사의 봄날은 우리 삶의 몽롱성과 꼭 닮아서 그 갈증을 풀어내고 싶은 욕망이 더 크게 발동되는 것 같다.
서해랑길 45코스는 부안 곰소만 북쪽 해안을 따라가는 길이다. 그 길에서 지나가는 주요 지점은 곰소항, 작도마을, 석포들, 관선마을, 운호들, 왕포항, 작당마을, 마동방조제, 쌍계재, 변산자연휴양림, 모항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진서면의 곰소리(곰소항), 진서리(작도마을), 석포리(석포들), 운호리(관선마을, 운호들, 왕포항, 작당마을, 마동방조제), 변산면의 도청리(쌍계재, 변산자연휴양림, 모항), 2개의 면(진서면과 변산면)과 5개의 법정리(곰소리, 진서리, 석포리, 운호리, 도청리)를 통과한다.
곰소항 상가거리에서 말린 슬치를 보았다. 곰소항의 명품 요리가 슬치조림이라고 하는데 슬치가 무엇일까? 슬치는 갈치 새끼를 이른다고 한다. 말린 슬치들이 흰빛 무늬를 반짝이며 길손의 눈길을 끌었다. 바다에서 슬치들이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흰빛 살결을 반짝이며 유영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슬치들은 죽어서도 흰 몸빛을 반짝인다. 이제 저 몸은 조림으로 지져져 인간의 미각을 돋울 것이다. 다음에 곰소항에 온다면 싱싱한 생명력의 슬치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말려져 조리된 슬치조림의 미감을 꼭 맛보겠다. 슬치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상상하면서.
줄포항의 폐항 이후 생겨난 곰소항은 한때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제 그 자리를 격포항에 내주고 단정하고 검소한 자태로 묵묵하다. 곰소항에서는 나룻배 형상의 조형물이 조성된 나룻산공원에 올라서 곰소만을 조망해야 탐방의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길손은 허둥거림인지 시간에 쫓겨서인지 그만 지나치고 난 다음에 이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의 삶은 지나친 뒤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서해랑길 탐방에서도 이 지나침과 후회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순간에 그곳을 지나치고 만다. 지금 곰소항 앞을 지나간다면 길손은 나룻산공원으로 발길을 옮길 것이다.
곰소항을 지나 곰소젓갈타운을 돌아나간다. 아침이어서인지 아직 손님들은 붐비지 않는다. 15년 전이었을까? 부안에 와서 하룻밤을 묵고 이곳에 와서 젓갈을 사가지고 간 일이 추억 속에서 솟아오른다. 그때 부안 도청리 호랑가시나무군락지에서 호랑가시나무를 처음 보았으며 그 이후 호랑가시나무는 언제나 부안 곰소만을 떠올리게 한다. 호랑가시나무 감동을 품고 곰소 젓갈타운에 와서 젓갈을 샀다. 기억은 불분명하고 현장은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한다. 젓갈을 산 곳이 어디였던가? 현장 변화와 불분명한 기억 때문에 그곳을 확인하지 못하고 탐방 코스를 따라 속도를 낸다.
곰소초등학교를 지나면 곧바로 작도마을이 있다. 작도마을이 무슨 뜻일까? 의문이 곧 풀렸다. 청자로 건너편 작도마을 입구에 진서리요지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며, 작도마을 경로당 앞에 부안마실길 이정목과 작도마을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作陶, 도자기를 제작하다", 고려시대 때 고려자기를 만들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작도(作陶)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13세기에 고려청자를 생산하는 가마터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44코스 보안면 유천리 지역을 통과하며 부안청자박물관을 어림하였다. 유천리에도 가마터가 발굴되어 유천리에 부안청자박물관이 2011년 4월에 개관하였으며, 부안의 고려청자를 홍보하기 위하여 서해안고속도로 부안 지역에 부안고려청자휴게소가 2022년 3월에 개장하였다. 길손은 강진 고려청자박물관을 관람하고 청자박물관은 강진에만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서해랑길을 탐방하면서 부안에도 청자박물관이 있음을 알았다. 강진, 신안, 부안, 개성, 송나라, 고려청자의 해상로가 어림된다.
작도마을에서 해안으로 곰소만 북쪽 제방길을 따라간다. 방금 지나온 곰소항이 역광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고 건너편에는 고창군 부안면 일대의 해안이 흐릿하게 들어온다. 곰소만 바다에는 내죽도가 무릉도원처럼 떠있다. 제방에 의해 간척된 똥섬은 허물어지고 있고 소나무들이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위태롭게 자라고 있다.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지만 길손의 마음은 아프다. 반듯하게 세워서 하늘로 솟아오르게 하고 싶다.
석포리 간척지들로 나가면 동쪽에 관음봉이 솟아있고 그 아래 위치한 내소사가 어림된다. 내소사에 가본 지가 까마득하다. 서정주의 시 '내소사 대웅전 단청'의 전설 때문에 내소사가 더 유명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내소사 대웅보전 단청은 사람의 힘으로도 새의 힘으로도 호랑이의 힘으로도 칠하다가 칠하다가 아무래도 힘이 모자라 다 못 칠하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내벽 서쪽의 맨 위쯤 앉아 참선하고 있는 선사, 선사 옆 아무것도 칠하지 못하고 너무나 휑하니 비어둔 미완성의 공백을 가 보아라.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왜 이렇게 공백이 되었을까를 밝히는 것이 미당 서정주의 이 작품이다.
단청을 그리는 나그네의 당부를 어기고 방정맞은 중이 창 구멍 사이로 단청을 칠하는 것을 몰래 들여다 보자 나그네는 보이지 않고 단청을 칠하던 새 한 마리가 떨어져 죽으니 불호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불호랑이가 내생에나 소생하라고 내소사라고 절 이름을 짓고, 내소사 대웅전 단청을 공백으로 남겨 두었다는 것이다. 시 작품은 이렇게 끝난다. "그러고는 그 단청하다가 미처 다 못한 그 빈 공백을 향해 벌써 여러 백년의 아침과 저녁마다 절하고 또 절하고 내려오고만 있는 것이다." 미당의 작품과 더불어 내소사의 빛나는 작품은 내소사 꽃창살 무늬일 것이다. 꽃 창살무늬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대웅전 단청의 공백을 찾던 일이 아득하다. 지금도 모두들 잘 있을 것이다.
석포리 간척지들에서 관선마을로 해안길이 이어지지 않아서 청자로를 거쳐서 진서면 운호리 관선마을 입구로 올라갔다. 마을 입구에 관선헌(觀仙軒) 표석이 세워져 있다. 관선헌(觀仙軒)이라고 하면 관선마을의 어느 집 당호가 아닐까? 아니라면 관선마을 자체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의미를 모른 채 관선마을, 신선을 바라본다는 관선(觀仙)마을을 청자로에서 내려본다. 황사가 없으면 곰소만 건너편의 고창군 심원면 일대와 바다의 내죽도가 멋지게 조망될 것이지만 희부연 모습으로만 조망한다. 건너편에 부옇게 솟아오른 산봉은 선운산 경수봉이 맞을까? 아, 관선헌(觀仙軒)을 이렇게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이 마을이 신선을 바라보는 마을이라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선운산 경수봉이 신선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부옇게 솟은 경수봉 모습이 갑자기 신선의 모습으로 들어온다.
관선마을을 지나 청자로에서 해안으로 내려가면 간척지 운호들이 펼쳐진다. 운호들의 제방길을 따라 앞쪽 왕포마을로 향한다. 제방길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중앙에 우뚝 솟은 산봉이 보이는데 내변산 쌍선봉일 것이라 추정하며, 그 아래쪽에 운호마을과 휘목미술관이 있을 것이라 가늠한다. "구름과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운호(雲湖)라 불리는 이곳은 해안 산간마을로 계곡을 타고 들어가면 다양한 수종과 자연 그대로의 경관은 마치 소금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설명안내판에서 운호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멀리 운호마을과 내변산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왕포마을로 향한다.
예전 왕포마을은 칠산어장의 고기잡이 배들이 모였던 포구로 근방의 바다에서 고기잡이로는 으뜸이라는 뜻에서 왕포(王浦)라 하였다고 한다. 왕포항(王浦港)에서는 곰소만의 양 해안이 가장 좁은 것처럼 느껴져 건너편 고창군 심원면 일대가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 같다. 왕포항은 보기에 비교적 넓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곰소항이 곰소만 안쪽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면 왕포항은 곰소만 입구가 지척인 것 같다. 그래서 칠산어장과 가까운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곰소에 비하여 뒤떨어지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가까이 위치한 작당항(鵲堂港)도 같은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왕포마을 위쪽에 작당마을이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작당이 무슨 뜻일까? 한 패의 무리를 이룬다는 작당(作黨)일까? 아니었다. 까치가 마을 당산나무에 둥지를 틀었다고 하여,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까치 작(鵲), 집 당(堂)자를 써서 작당(鵲堂)마을이 되었다. 작당(鵲堂)마을은 왕포마을보다 면적이 더 넓게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칠산어장의 요충지로 각처에서 모인 등불들이 밤이면 꽃밭처럼 장관을 이루어 '작당의 어선 불은 볼수록 유정하다.'라는 가사가 변산팔경 노래에 실려 전해오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왕포마을과 작당마을은 곰소만 양쪽 해안에서 가장 가깝게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서 고창군 심원면 일대는 손가락으로 부를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작당마을에는 오래 묵은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있어 마을의 연륜을 증거하고 있다. 마을은 해안에 가까이 또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주택들이 깨끗하고 아담하며 아름다운 모양의 주택도 보였다. 작당마을 주택 뜰에 호랑가시나무가 지난 해 가을 맺은 붉은 열매들을 주렁주렁 달고 서 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는지, 아니면 이미 피었다 떨어졌는지 자잘한 꽃들은 보이지 않았다. 호랑가시나무에 얽힌 먼 추억이 떠올랐다.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모항마을 도로변의 호랑가시나무 군락지,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겨울날 햇살에 반짝이는 호랑가시나무 가지의 푸른 잎들과 가시를 그때 처음으로 보았다. 그 추억을 퍼올리니, 호랑가시나무와 맺은 인연들이 하나 둘..., 그 중 완도 상왕산 아래 수목원에서 만났던 완도호랑가시나무 암나무와 수나무, 2그루가 성큼 다가섰다. 그때 함께했던 길동무, 나누었던 이야기가 호랑가시나무 붉은 열매처럼 반짝이며 조잘거린다. 작당마을 위 도로로 나왔다. 곰소만 바다는 황사에 부옇게 떠있다. 바다에 호랑가시나무들이 보인다. 황사 속에서 호랑가시나무들이 바다에서 불쑥불쑥 솟아오르고 있다. 푸른 잎을 반짝이며, 가시를 내 보이며. 부안 곰소만 바다는 호랑가시나무가 자라는 곳처럼 환각되었다.
작당마을에서 마동마을로 이어지는 해안길은 조성되지 않았다. 마동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청자로로 올라와 해안의 도롱골 제방길을 거쳐 언덕을 넘어 마동방조제로 나아가야 한다. 이 길에서 곰소만 바다 풍경도 멋진데 황사가 가로막고 있다. 마동방조제 서북쪽 끝에는 '부안 변산마실길 6코스 쌍계재 아홉구비길' 문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쌍계재를 넘어서 부안군 진서면에서 변산면으로 건너간다.
쌍계재로 가는 길에서는 걸어온 해안길과 곰소만 남쪽 바다가 잘 조망된다. 내죽도, 고창 해안에서부터 그리움으로 살피고자 했던 내죽도가 이제 멀리서 무릉도원처럼 아득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동남쪽으로 내변산 산줄기 신선봉이 운치있게 솟아 있다. 살아온 삶의 풍경 또한 저러한 것이겠지. 경험한 것들과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한 풍경속으로 들어와 아득한 그리움으로 뒤돌아보이는 것이리라. 쌍계재 숲길은 신우대 터널을 거쳐가는데 비교적 잘 정리되어서 거추장스럽지 않게 편안히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마동 해안경비초소, 아, 분단의 비극과 전쟁의 상흔이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낸다.
진서면과 변산면의 경계가 쌍계재일까? 구체적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산길을 걸어나오면 곰소만 해안이 나타나며 멋진 숙박시설이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무엇이지? 변산자연휴양림 숙박시설이었다. 이곳을 찾는 탐방객들이 많아서인지 맞은편 언덕에 신축 숙박시설이 준공되어 있다. 자연휴양림에서 한 번도 숙박한 적이 없는데 숙박시설이 증축되고 있다는 것은 자연휴양림에서 숙박하는 탐방객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곰소만이 해안 안쪽으로 좀더 깊이 들어온 곳에 산 언덕을 중심으로 숙박시설이 조성되어 있는데 바다와 숲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어느 기회에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숙박료를 알아 보니 주말과 평일의 가격 차이가 큰데 평일에 오면 괜찮을 것 같다.
변산자연휴양림은 변산면 도청리 지역이다. 이제 진서면 운호리에서 변산면 도청리로 넘어온 것이다. 낮은 구릉의 자락길을 따라 해안으로 나갔다가 숲을 거쳐 국도30호선 변산로로 나왔다. 모항이 가까웠다. 띠 茅, 목 項, 모항(茅項)으로 간다. 모항은 변산자연휴양림이 위치한 곳보다 곰소만 해안이 더 깊숙하게 내륙으로 파고 들어 넓은 갯벌을 형성하였다. 모항은 길손에게는 호랑가시나무군락 추억이 전부인 것 같다. 서해랑길은 모항항(茅項港)으로 향한다. 모항에서는 안도현 시인의 '모항으로 가는 길' 한 구절을 읊조려야 제격이다.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짓밥 먹다가 석삼년 만에 제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 먼 데서 오신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자고,/ 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 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마디 던지면 돼/ 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말이야/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 - 안도현의 '모항으로 가는 길'에서
"걱정하지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 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모항으로 가는 길에서는 내 몸에 이미 모항이 들어와서 몸과 마음이 모두 모항으로 비벼져 있다고? 이 시를 생각하는 것으로 모항은 내 몸과 마음이 되고, 그리하여 변산 전체가 모항 속에서 녹아드는 것 같다. 모항해수욕장에 이르니 곰소만 바다의 대죽도와 칠산어장의 위도가 모항에 섞여드는 느낌에 젖었다. 모항야영장 취사장 서해랑길 안내도 앞에서 짧은 45코스 탐방을 허겁지겁 마치고 나니 무언가 공허감이 밀려왔다. 모항에서 공허감이라니? 모항에서는 모든 게 다 혼융되는데 공허감이 밀려오다니? 그렇다, 모항에서는 허기를 느껴야 한다. 모항의 허기가 있어서 모항은 아름다운 것이다. 야영장 앞 식탁에서 캔맥주를 마셨다. 해송숲을 스쳐오는 봄바람 향기가 모항의 허기를 채워주고 빠져 나간다. 투봉 자락의 호랑가시나무군락지 풍경이 공허감을 씻어 내리며 새로운 모항 추억을 그려 넣는다.
2.탐방 과정
탐방 거리 : 15.34km
탐방 시간 : 3시간 49분
부안군 진서면 곰소리 곰소광장공원 끝쪽 쓰레기수거장 울타리 서해랑길 45코스 시작점 표지판에서 45코스를 출발한다.
서해랑길은 곰소리 곰소항 방향으로 이어진다.
"곰소 지명은 과거에 소금을 곰소라고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곰소 일대 해안의 형태가 곰처럼 생겼고 작은 소(沼)가 존재한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 두 가지가 전한다. ‘웅연(熊淵), 웅소(熊沼), 웅연도(熊淵嶋)’ 등으로도 불렸다. 『광여도(廣輿圖)』「부안현(扶安縣)」과 『해동지도(海東地圖)』「부안현」에 ‘웅연도(熊淵嶋)’가 표시되어 있고, 『1872년 지방지도』「부안 검모포 지도」에는 검모포진 남쪽 입구에 ‘웅연(熊淵)’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부터 어업과 염전이 발달하였으며, 1945년 광복 이후 조기잡이의 대표 어항인 줄포항이 퇴적물로 점차 쇠퇴하자 곰소항이 부안군의 중심 항구로 발전하면서 큰 마을로 성장하였다. 곰소만 염전은 1980년대 후반부터 줄어들었으나 최근 젓갈 생산과 판매로 염전과 젓갈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2009년 1월 1일 진서면 진서리에서 면소재지가 있는 곰소리가 독립된 법정리로 분리·설치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곰소항으로 가는 곰소항길을 따라 수산물 판매장과 식당가, 숙박업소가 있다.
풀치가 무엇인가? 풀치는 갈치 새끼를 이른다. "갈치는 칼 모양을 닮은 고기라는 뜻에서 원말이 갈치였고, 갈치 새끼는 기다란 풀잎 모양을 닮았다는 뜻에서 풀치라고 불렀다. 이른 봄에서 초여름까지 잡히는 어린 갈치를 부안의 해풍에 바짝 말린 건풀치는 최상의 맛을 자랑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소형선부두가 곰소항에 있다. 건너편은 고창군 부안면 상암리와 봉암리 일대일 것이라 가늠한다.
"곰소항은 갯골의 퇴적으로 줄포항의 출입이 힘들어지자 그 대안으로 건설되었다. 과거에는 국가 어항으로 지정될 만큼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으나 지금은 격포항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곰소만 일대에만 영향을 미치는 지방 어항이다. 곰소항은 칠산 어장을 주요 어장으로 삼고 있으며, 주요 어종은 갈치, 병어, 주꾸미이다. 곰소항 주변에는 곰소 젓갈 단지, 부안해양경찰서 곰소출장소, 곰소항 수산물 종합시장, 진서면 사무소, 곰소우체국 등이 자리하고 있다. 곰소항은 변산 마실길 7코스인 곰소 소금밭길에 해당하는 구역[왕포-운호-관선마을-작도-곰소항-곰소 염전]으로 노을과 갯벌, 그리고 인근의 곰소 염전 및 곰소 젓갈과 연계한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줄포항이 폐항되면서 생겨난 곰소항도 이제 격포항에 자리를 내주고 격하되었다. 뒤쪽의 섬은 내죽도이다.
"곰소항은 줄포항이 토사로 인해 수심이 점점 낮아지며 폐항하자 그 대안으로 일제가 제방을 축조하여 만든 곳으로, 조선에서 착취한 농산물과 물자를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목적에서 건립되었다. 1972년 4월 12일 제1종 어항[현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었다가, 1986년 3월 1일 제2종 어항[현 지방 어항]으로 격하되었다. 2019년 해양수산부가 선정하는 ‘2020년도 어촌 뉴딜 300 사업’[낙후된 어촌과 어항을 지역 특성에 맞게 개발하는 국책 사업] 지역으로 선정되었고, 2022년까지 108억 원을 들여 물양장, 방파제, 젓갈 거리, 어울림 센터, 카페 조성 등의 개발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예전에 곰소는 3개의 무인도로, 이곳에 곰 2마리가 살았고 연못이 있다고 하여 웅연도(熊淵島)라 했으며 일제시대 우리 민족에게서 착취산 농산물과 군수물자 반출용 항만을 축조함으로써 전라북도에서 2번째로 큰 칠산어장의 항구로 유명했던 포구다.
나룻산공원에 올라가 곰소항과 곰소만을 조망하면 멋질 것이지만 그냥 통과한다.
입구에 진분홍 박태기꽃이 피어서 길손을 맞이한다.
평일 아침이어서인지 젓갈 손님들이 없는 것 같다.
고래식당 앞에서 직진하면 청자로로 이어지고 서해랑길은 고래식당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곰소항길로 이어진다.
서해랑길은 앞에 보이는 곰소만 해안으로 이어진다. 황사 때문에 풍경이 부옇다.
국도30호선 청자로 작도마을 버스정류소 옆에 곰소초등학교 입구가 있다.
곰소만 바다에 내죽도가 떠있다. 서해랑길은 청자로 작도마을에서 곰소만 해안으로 나가 해안길을 따라간다.
청자로를 따라가면 길 건너편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작도마을 입구에 이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판 글을 옮긴다.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일대 사적 제70호 진서리요지는 고려시대 청자를 만들었던 곳으로 연동마을, 진서초등학교 뒤 구릉, 곰소초등학교가 있는 마을 구릉, 작도마을 앞뒤 구릉 등 모두 6개 구역 약 40여개의 가마터가 남아있다. 이곳 진서리 4·5·6구역은 다른 구역에 비해 많은 수의 가마가 밀집 분포하고 있다. 지표에서 수습된 많은 청자조각과 1990년대 초 전서리요지 18·20호 가마의 시굴 및 발굴조사 시 수습한 유물들을 보았을 때 13세기에 가마를 운영했던 것을 알 수 있다.
4구역에 있는 일부의 가마터와 2구역의 가마터에서는 무늬가 없는 조질(粗質)의 청자를 제작하였으나, 이외의 가마터에서는 무늬가 없는 비색청자와 국화·연화·모란·넝쿨진 포도송이·넝쿨진 보상화·넝쿨진 연꽃, 연꽃과 연잎이 어우러진 무늬 등의 꽃과 식물을 소재로 한 무늬, 앵무새와 구름 속을 나는 학·파도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등의 동물무늬 등이 있는 청자를 만들었다. 이들 무늬는 날카로운 칼로 새기거나, 흙을 도장처럼 만들어 찍거나, 흑백의 연료를 붓에 묻혀 그리거나 날카로운 칼로 홈을 판 후 그 자리에 다른 색깔의 흙을 메워 넣는 상감기법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곳에서는 13세기의 고려청자를 생산하였다.
작도마을 경로당 앞 청자로에서 작도마을과 그 뒤 부안 진서리 요지 4·5·6구역을 가늠하였다. 작도(作陶)마을은 해발 10m에 있는 해안 중산간 마을로 고려시대 때 고려자기를 만들었다고 하여 작도(作陶)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부안 진서리 요지(扶安鎭西里窯址)는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있는 11세기 후반~13세기까지 고려청자를 대량으로 생산했던 가마터로 줄포만 바다와 연접한 구릉에 11세기 후반~13세기까지 약 40개소의 가마에서 다량의 고려청자를 생산하였으며, 제작된 자기는 배에 실어 조운로를 통해 개경과 전국으로 운송되었다. 진서리 인근에는 고려 중앙 정부에서 관리했던 변산 재목창이 있어 청자 제작에 필요한 땔감이 풍부했으며, 좋은 자토(瓷土)와 조운로가 있어 청자 제작과 유통에 유리한 지리 환경적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1, 2, 5구역에 대한 문화재 시굴과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총 5기의 가마와 불량 청자 제품을 폐기한 다수의 유물 퇴적구가 확인되었다.
부안 진서리 요지는 일제 강점기 노모리 켄[野守健]이 최초로 발견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70호로 지정되었다.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부안 진서리 도요지’에서 ‘부안 진서리 요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부안 진서리 요지는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1013 외 98필지 일대로 동쪽으로는 보안면과 접해 있으며, 곰소염전을 중심으로 북쪽·동쪽·서쪽을 감싸고 있는 산 구릉 하단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진서리에는 약 40개소의 가마터가 분포하며 이를 6개 구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1·2구역은 현재는 논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3·4·5·6구역은 민가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현재는 개간되어 육지화되었지만 청자 요지가 위치한 산 구릉은 대부분 줄포만에 연접해 있어 바닷길을 이용하여 개경을 비롯한 각지에 청자를 운송하기에 편리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해랑길은 작도마을 경로당 옆을 거쳐 해안으로 나간다.
작도마을 경로당 앞에 작도마을 설명안내판과 서해랑길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청자로에서 왼쪽 해안으로 나간다.
"옛날 고려시대에는 고려자기를 만들었다고 하여 '작도(作陶) 즉 그릇만드는 마을'이라 불렀다고 하고 또 옛 풍수지리설에 '마을 뒷산이 까치가 날아가는 형국'이므로, '작도(鵲島)'라 불리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부안군 사적 제70호로 1939년에 도자기 굽는 마을로 지정된 곳이다." - 작도마을 설명안내판
이 섬을 똥섬이라 이르는 것 같다. 제방을 쌓기 전에는 섬이었을 것이다.
곰소항과 나룻산공원, 곰소젓갈단지가 중앙에 그리고 진서면 진서리 중심시가지가 왼쪽에 보인다.
"곰소만에서 퇴적물의 퇴적에 의해 사포[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와 후포[고창군 흥덕면 후포리]가 항구의 기능을 잃었고, 이후 중심 어항이던 줄포 역시 뻘의 퇴적으로 수심이 얕아지면서 항구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1938년 곰소항을 개설하였다. 곰소항은 진서리 앞바다의 곰섬을 중심으로 범섬[虎島]과 까치섬[鵲島]을 잇는 제방을 쌓아 만든 항만이다. 1958년 어업 조합과 부두 노동조합 등이 줄포에서 곰소로 옮겨지면서 곰소항이 중심 어항이 되었다. 그러나 곰소항 역시 갯벌의 퇴적과 연안 수산 자원의 고갈로 점차 쇠퇴하고, 곰소만의 입구에 위치한 격포로 어업의 중심지가 이동하고 있다. 격포항은 1987년 1종 항구로 승격되었다. 전반적으로 항구는 곰소만의 안쪽[동쪽]에서 바다 쪽[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청자로를 걸어서 곰소초등학교를 거쳐 작도마을 입구에서 해안으로 나와 왼쪽 똥섬을 거쳐왔다. 중앙 뒤쪽에 실학의 선구자 반계 유형원 유적지가 가늠된다.
곰소만 남쪽은 고창군 부안면 일대이다. 중앙의 섬은 내죽도로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지역에 속한다.
곰소만 북쪽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제방길을 따라간다. 간척지들에 양식장이 있다.
간척지에 목초지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앞쪽에 석포천 배수갑문이 보인다. 진서면 진서리에서 석포리로 넘어간다.
뒤쪽에 보이는 산봉이 진서면 석포리 관음봉이며 그 아래 능가산내소사와 내소사 전나무숲길이 있을 것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에 있는 석포리(石浦里)는 예전에 돌이 많은 갯가 마을이란 뜻으로 돌개라고 불렀다. 돌, 바위와 관련한 지명이 많이 보이는 지역이다. 원암마을은 뒷산에 원바우가 있다 하여 원암(元岩)이라 하고, 마을 뒤에 자라가 바다를 향하여 내려오는 듯한 형상의 바위가 있다 하여 ‘자라 원(黿)’ 자를 써서 원암(黿巖)이라고도 부른다. 임암마을은 선돌이 많이 서 있어서 선돌마을로 불렸다는 설과 내소사 월봉이 우뚝 솟았다 하여 입암(立巖)이라 불린다는 설 두 가지가 내려온다. 용동마을의 경우 용이 비룡산에서 승천을 하였는데 동쪽에 있는 용이라 하여 ‘용 용(龍)’, '동녘 동(東)' 자를 썼다고 전한다.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좌산내면(左山內面) 지역이었다. 1914년 좌산내면의 용동리, 원암리, 석포리, 입암리, 관선리 일부를 병합하고 산내면 석포리로 개설하였다. 1983년 산내면 진서출장소가 진서면으로 승격되면서 진서면에 편입되었다. 남쪽은 황해와 맞닿아 있고 북쪽은 산지로 북고남저 형태를 보인다. 특히 북쪽으로 관음봉[433m]과 벌통봉, 용각봉 등 부안군의 대표적인 산지가 분포한다. 국도 제30호선이 남쪽의 동서를 가로지르며, 내소사까지는 내소사로로 연결되며, 이 도로를 끼고 석포1구, 석포2구, 원암마을, 입암마을 등이 있다.
633년(백제 무왕 34) 창건된 내소사(來蘇寺)가 있다. 내소사는 원래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으며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는데, 현재의 내소사는 소소래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내소사와 관련하여 “소래사는 신라의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한 것인데, 크고 작은 두 소래사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소사에는 부안 내소사 동종(扶安來蘇寺銅鍾)[보물 제277호],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扶安來蘇寺大雄寶殿)[보물 제291호], 「내소사 영산회괘불탱(來蘇寺靈山會掛佛幀)」[보물 제1268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내소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전나무 숲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곳으로, 남양주 광릉 수목원과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과 함께 한국 3대 전나무 숲의 한 곳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이곳에서 해안길이 조성되지 않은 탓인지 오른쪽으로 꺾어 청자로로 나갔다가 맨 왼쪽 뒤 왕포마을로 이어진다.
관선헌(觀仙軒)이 무엇일까? 관선마을의 옛집인지, 관선마을 자체를 뜻하는 것일까? 청자로에서 왼쪽 관선길로 들어간다.
석포리 간척지들을 가로질러 이곳으로 올라왔다. 아래 해안길이 관선마을과 왕포마을로 이어지도록 조성되어야 할 것 같다.
청자로에서 관선길로 들어가 진행하다가 다시 청자로로 나왔다. 관선마을은 청자로 위쪽과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청자로에서 관선길로 들어갔다가 오른쪽에 보이는 주택 앞을 거쳐 다시 청자로로 나왔다.
바로 앞은 관선마을의 하이얀펜션, 바다에는 내죽도, 건너편은 고창군 심원면 일대이다. 팽나무에 까치집이 지어져 있다.
곰소만 건너편은 고창군 심원면 일대로 흐릿한 산은 선운산 경수봉일 것이라 추정한다.
"풍수지리에 의한 마을의 형세가 뒷산엔 장삼 바위, 시루봉, 목탁바위, 큰바리바위, 작은바리바위, 북바위, 목탁채바위, 촛대바위 등 스님이 불공하는 형상으로 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 설명안내판
진서면 운호리 구름 호수마을 1.2km 후방이다. 청자로를 딸 앞 왼쪽의 카페를 거쳐 진행한다.
청자로에서 왼쪽 왕포 방향으로 내려가면 간척지 운호들이 펼쳐진다.
청자로에서 해안으로 내려가 운호들의 제방길을 따라 앞쪽 왕포마을로 올라간다. 맨 오른쪽 산봉은 도심봉일 것이다.
뒤쪽 중앙에 솟은 산봉이 내변산 쌍선봉일 것이라 추정하며 운호들 건너편에 운호마을과 휘목미술관이 가늠된다.
"부안군 진서면 운호리(雲湖里)는 중심 마을인 운호마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운호(雲湖)는 구름 호수라는 뜻으로, 운호저수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운호리의 중심지에 있는 소운호마을은 깎아지른 듯한 바위로 이뤄진 군신봉에 안기듯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좌산내면(左山內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운호, 소운호, 왕포, 작당, 중마, 마동, 관선 일부를 병합하고 산내면 운호리로 개설하였다. 휘목 미술관과 펜션, 관광농원, 숙박 시설 등이 조성되어 있다. 동쪽 운호저수지에서 운호길과 구름호수길로 나뉘는데, 이 길의 가운데에 형성된 구름호수[운호]마을은 하늘 위 맑은 구름이 모여 호수가 된 마을이라는 뜻이다. 운호마을은 행정안전부의 정보화 마을로 지정되었으며, 농촌 체험 휴양 마을로 지정되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해랑길은 언덕 위 펜션 앞을 거쳐 운호리 왕포마을로 이어진다.
앞에는 왕새우양식장이 있고, 내변산 산줄기 아래 운호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서해랑길은 왼쪽 왕포길로 이어진다.
"구름과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운호라 불리는 이곳은 해안 산간마을로 계곡을 타고 들어가면 다양한 수종과 자연 그대로의 경관은 마치 소금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 운호마을 설명안내판
아래에 왕포마을, 왼쪽 뒤에 진서리 운호리 작당항, 그 뒤 산모롱이 뒤쪽은 변산면 도청리 모항일 것이라 어림한다.
왕포마을은 낚시꾼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서해랑길은 왼쪽 왕포항 방향으로 진행하여 작당마을로 향한다.
"예전 왕포마을은 칠산어장의 고기잡이 배들이 모였던 포구로 근방의 바다에서 고기잡이로는 으뜸이라는 뜻에서 왕포라 하였으며 전국 낚시매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 설명안내판
건너편 산봉은 고창군 심원면 선운산 경수봉인 듯. 서해랑길은 왕포선착장으로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 작당마을로 향한다.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운호리에 있는 王浦港은 어촌 정주 어항이다. 어촌 정주 어항은 어촌의 생활 근거지가 되는 소규모 어항을 의미한다. 2020년 기준으로 전라북도에는 총 16개의 어촌 정주 어항이 있고, 그중 5개가 부안군에 있다. 왕포항은 도청항, 모항항, 대리항, 벌금항과 함께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는 5개 어촌 정주 어항 중 하나이다. 왕포항은 지역 주민의 생활 편의 향상, 어업 기반 시설 확충을 통한 어선의 안전 수용, 어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 등을 위해 조성되었다. 1972년 4월 12일 소규모 어항으로 지정되었고, 2008년 12월 16일에 어촌 정주 어항으로 지정[부안군 고시 제2008-67호]되었다.
왕포항은 칠산 어장을 주요 어장으로 삼고 있으며, 주요 어종은 주꾸미, 전어, 오징어, 새우 등이다. 2008년 어촌 정주 어항으로 지정된 이후로 어촌 정주 어항 개발 계획에 의해 방파제 등을 갖추고 있다. 선착장의 왼쪽 사면을 ‘95 부안권역 어촌 종합 개발 사업’의 양식장 제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왕포항에서는 매년 운호어촌계 왕포마을 주관으로 포구에 만선 깃발을 꽂고 풍어와 안전 조업을 기원하는 왕포 풍어제를 열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왕포항 소형선박 부두 물양장(物揚場) 옆 길을 따라 작당마을로 향한다.
"왕포항은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운호리에 있는 어항이며, 가장 가까운 작당항과는 육상으로 1.6㎞, 해상으로도 1.6㎞ 정도 떨어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왕포마을에서 청자로로 올라왔다가 청자로에서 왼쪽 작당마을로 내려간다. 왼쪽 뒤에 작당항이 보인다.
진서면 운호리 작당마을이 청자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까치 작(鵲), 집 당(堂)자를 써서 작당(鵲堂)마을이라 이른다. 마을 뒷산 까치봉에서 까치 자웅이 마을로 내려와 정자나무에 둥지를 틀면서부터 풍어의 전성기를 이룬 칠산어장의 요충지로 각처에서 모인 등불들이 밤이면 꽃밭처럼 장관을 이루어 '작당의 어선 불은 볼수록 유정하다.'라는 가사까지 변산팔경 노래에 실려 전해오고 있는 마을이다." - 작당마을 설명안내판
중앙에 작살랑산, 그 왼쪽 아래에 운호리 마동방조제가 보이며, 맨 왼쪽 끝 산 뒤쪽에 국립변산자연휴양림이 위치한다.
"운호리는 1983년 진서출장소가 진서면으로 승격, 분리되면서 진서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의 갑남산[413.3m], 북동쪽의 신선봉[488.2m], 남쪽의 작살랑산과 도심봉 등 산지와 서해안이 맞닿아 있으며, 왕포선착장과 마동방조제가 자리한다. 대부분이 구릉성 평지로, 넓은 경지와 하천이 마을의 서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마동천은 운호리에서 시작하여 곰소만인 황해로 합류하는 지방 하천으로 수지상(手指狀)의 수계를 가진다. 청자로를 따라 중마동마을, 작당마을, 왕포마을, 소운호마을, 운호마을, 관선마을 등이 차례로 자리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건너편 왼쪽은 고창군 심원면 선운산 경수봉, 중앙 뒤에 고창군 해리면 동호항과 그 앞 바다에 외죽도가 있을 것이다.
느티나무 오른쪽 가지 뒤에 작살랑산, 그 왼쪽 아래에 마동방조제, 맨 왼쪽 산 뒤에 변산면 국립변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작당마을 느티나무 나이는 600살이며,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초 굿을 치고 정월대보름 줄다리기를 하고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비는 당산제를 지낸다." - 느티나무 설명안내판
언덕에 작당마을 할아버지 당산나무인 팽나무가 까치집을 거느리고 그윽하게 위치하고 있다.
"수령 200년 팽나무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 그리고 주민들의 화합을 염원하는 나무로 마을 주민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 작당마을 위쪽에 서 있는 팽나무는 할아버지 당산, 웃당산이라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마을집 담장 안에 호랑가시나무가 붉은 열매를 달고 서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제주도나 전라남도 남해안에서 자라는 난대성 나무인데 변산반도까지 북상해 자라고 있다. 변산반도는 호랑가시나무가 자연 상태에서 자랄 수 있는 북방 한계선으로 식물 분포학적 가치가 높아 부안 도청리 호랑가시나무 군락을 천연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감탕나뭇과에 속하는 늘푸른넓은잎작은키나무[상록활엽관목]로 3~4m 정도 자라며 줄기는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가죽질의 두꺼운 잎은 길이 5~7㎝이고, 매끈하니 윤기가 나며, 잎의 표면은 진녹색이나 뒷면은 황녹색을 띤다. 잎의 모서리마다 날카로운 가시로 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호랑이 발톱처럼 무섭게 생겼다 하여 ‘호랑범발톱’이라고도 한다. 변산에서는 ‘호랑이등긁기나무’라고도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지리산 호랑이가 등이 가려우면 변산에 와서 이 나무에 등을 긁고 갔다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4~5월에 피고, 우윳빛이 돌며, 향기가 좋아 많은 벌과 나비를 불러들인다. 진한 초록색의 열매는 직경 0.8~1㎝ 정도이며, 9~10월에 붉게 익어 이듬해 3월경까지도 선명한 채로 남아 있는데, 무채색의 겨울철에 하얀 눈 속 진초록의 잎과 붉은 열매가 매우 매혹적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작당마을 할아버지 당산목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작당마을에서 청자로로 올라가 마동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작당마을에서 청자로로 나와 '추억을 나누며' 카페 앞을 거쳐왔다.
황사 때문에 칠산어장 바다에 위도가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뒤 산봉 뒤쪽에 변산면 국립변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청자로를 따라가다가 왼쪽 해안으로 내려간다. 왼쪽 아래의 해안을 도롱골이라 이르는 것 같다.
서해랑길은 도롱골 해안에서 앞 구릉을 넘어 마동방조제로 이어진다. 중앙 뒤쪽의 산봉은 작살랑산이다.
이 길은 전북천리길 중 부안마실길 6코스 쌍계재 아홉구비길로, 왕포마을-작당마을-조릿대숲-모항갯벌체험장까지 이어진다.
운호리 마동마을 앞 마동방조제를 거쳐 왼쪽 뒤 변산면 국립변산자연휴양림으로 넘어간다.
왼쪽에 작살랑산이 솟아 있고, 간척지에 왕새우양식장이 있다. 왼쪽에 마동천이 흐른다.
"마동마을은 옛날 선비가 이곳을 유람하던 중 유유동의 말재(말등 모양)를 넘어 마동을 지나다 말이 쉬기에 알맞은 곳이라 하여 마동(馬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앞산 장군봉에 장군이 북을 올려 강을 건너는 형국의 대혈맥이 있다 하여 유래되었다고 한다." - 마동마을 설명안내판
마동방조제 서쪽 끝에 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푸른 바다 파도 소리와 파란 하늘 그리고 솔바람 부는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며 걷는 부안 마실길, 예쁜 꽃들을 마음에 담아가는 추억의 마실 꽃동산입니다. 제5회 부안 마실축제 「부안 오복 마실길 걷기 행사」 2017년 5월 5일
중앙 뒤에 신선봉이 우뚝하고 지형이 말(馬)과 같다 하는 마동마을 들판을 가로지르는 마동천이 곰소만 바다로 흘러든다.
중앙 뒤에 왕포항 선착장과 왕포마을, 그 앞쪽에 작당마을, 그리고 왼쪽에 마동방조제가 있다.
언덕의 숲길을 통과하여 해안으로 내려갔다가 쌍계재로 올라간다.
쌍계재 입구에서 뒤돌아보았다. 마동방조제와 언덕의 숲길을 넘어 쌍계재 입구로 왔다.
쌍계재 신우대 숲길 입구에서 뒤돌아보니 신선봉, 마동마을, 마동방조제, 마동천 수문이 한눈에 들어온다.
쌍계재 신우대 숲길 입구에서 바라보니 중앙 오른쪽에 내죽도가 흐릿하게 보이고 왼쪽에 왕포마을과 작당마을이 보인다.
쌍계재를 넘어가는데 해안경비초소가 있고 경비초소 벽에 설명안내판이 붙어 있다. 설명글을 옮긴다.
부안군의 해안선 길이는 97km(동진강~줄포만)로서 이곳 마동 초소는 변산 마실길 제6코스의 시점인 모항갯벌체험장에서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6.25전쟁 이후 1970년대 해안선을 통하여 무장공비가 침투함에 따라 이를 감시하고자 설치된 마동 초소는 변산 내륙지역으로의 침투를 방호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내무반을 중심으로 상황실, 야간경비를 위한 탐조등이 설치된 초소근무 장병들의 휴식 공간이었습니다. 변산 마실길을 걸으면서 6.25전쟁의 참상을 되돌아보고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한 안보교육 시설로 후손에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초소 주변을 정비 후 보존하고 있습니다.
진서면 운호리(雲湖里)에서 변산면 도청리(道淸里)로 넘어왔다. 쌍계재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국립변산자연휴양림(邊山自然休養林) 신축 숙박시설이 보인다. 서해랑길은 신축 숙박시설 앞을 거쳐 변산면 도청리 모항 해안으로 내려간다.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해안에 있는 국립 변산 자연 휴양림은 국립 자연 휴양림 중 산림과 해양의 특색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최초의 해안 생태형 휴양림이다. 변산반도 국립 공원과 연결되는 소나무 숲에서 탐방객들이 숲을 체험하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편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국립 변산 자연 휴양림은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경관과 다양한 생태 환경을 활용하여 건전한 국민 휴식 공간 및 청소년 자연 학습 교육장을 제공하고, 지역 개발에 기여하기 위해 2015년에 개장하였다. 국립 변산 자연 휴양림은 2009년 자연 휴양림으로 지정되어 2011년 자연 휴양림 조성 공사를 시작했다. 2015년 2월에 개장했으며,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가 운영하고 있다.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1980년대 후반부터 유명산(有明山), 대관령, 신불산(神佛山) 폭포 자연 휴양림을 시작으로 2019년 현재 42개소의 자연 휴양림을 조성·운영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국립변산자연휴양림 신축 숙박시설 앞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숙박시설이 산속에서부터 왼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립변산자연휴양림은 크게 방문자안내소와 산림문화 휴양관, 습지생태 관찰원으로 나뉜다. 육지 쪽으로 방문자안내소와 숙박시설이 있고, 바다 쪽으로 습지관찰원이 있다. 국립변산자연휴양림 숙박시설은 연립동 5동 10실, 숲속의 집 10동 10실, 산림문화휴양관 2동 23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립동은 한 동에 두 개의 객실이 있으며, 객실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객실에서 바다를 전망할 수 있다. 숲속의 집 트리 하우스는 객실 바로 앞에 주차할 수 있고, 독채로 사용할 수 있다. 베란다에 나가면 바다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변산자연휴양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숙박시설이다. 산림문화휴양관은 2층 건물 연립식 객실로 A동과 B동이 있고 바다와 가까우며, 바로 앞에 수영장과 모래 놀이터가 있다. 휴양관 앞에 있는 바다전망대 아래에는 습지관찰원이 있다. 국립변산자연 휴양림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속하는 갑남산(甲南山)[413.3m]의 산줄기가 곰소만과 만나 경사가 급한 암석 해안을 이루며, 소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는 곳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국립변산자연휴양림 신축 숙박시설 앞을 통과하여 산자락길을 넘어오면 모항 해안에 이른다. 중앙 왼쪽에 보이는 섬은 고창군 심원면 만돌리 대죽도일 것이라 추정한다. 그 오른쪽 위쪽에 있는 부안군 위도면 위도 섬은 황사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건너편에 변산면 도청리 모항항(茅項港)과 모항해나루호텔이 보인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숲길을 통과해 나간다.
곰소만 바다 서쪽을 향해 있는 숲속의정원 펜션은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 것 같다.
숲속의정원 펜션 앞에서 모항(茅項)마을과 모항항(茅項港)을 조망하였다. 곰소만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하게 들어온다.
"모항(茅項)은 격포에서 남동쪽으로 해안 도로를 따라 약 6㎞쯤에 위치한 마을로 줄포만(茁浦灣)에 돌출되어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줄포만에서 서해로, 또는 서해에서 줄포만으로 통하는 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외지의 선박 출입이 빈번하였다. 또 1940년대 초 곰소항이 개설되기 이전에는 위도(蝟島)는 물론이고 고창, 영광, 흑산도를 내왕하는 요지의 항구이기도 하였다.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모항 일원의 모항 갯벌은 줄포만의 만입된 갯벌 중 유일하게 간척되지 않은 곳이다.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모항마을 서쪽에는 해변의 소나무 숲이 일품인 모항 해수욕장이, 남쪽에는 암반 해안과 선착장이 있고, 동쪽은 갑남산 큰골에 깊숙이 파고든 만(灣)으로 썰물 때면 만 전체에 갯벌이 드러난다. 변산반도 국립 공원에 따르면 모항 주민들이 뒷장불이라 부르는 조간대(潮間帶) 최상부에 민물이 흘러드는 곳에 멸종 위기 야생 생물 2급인 대추귀고둥이 서식한다. 또한 이곳 조간대 상부에는 멸종 위기 야생 생물 2급인 흰발농게도 서식하고 있다. 예전의 모항 갯벌은 부안의 여느 갯벌처럼 갯살림이 풍성한 곳이었다. 특히 앞장불에서는 흉년에 끼니를 이었을 정도로 낙지가 많이 잡혔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모항갯벌체험장이 건너편 오른쪽 해안에, 중앙에 토봉이 솟아 있고, 그 왼쪽 자락에 도청리호랑가시나무 군락지가 가늠된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숲길을 통과하여 국도30호선 변산로로 나간다.
국도30호선 변산로 북쪽에 김해 김씨 세천비(世阡碑)와 김해 김씨 사당 구택재(龜澤齋)가 있다.
국도30호선 변산로에서 왼쪽 모항길로 진입하여 모항갯벌체험장과 모항항(茅項港) 방향으로 이어간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道淸里)는 중심 마을인 도청마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우산내면(右山內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우산내면의 수락동, 언포리, 통포리, 격포리 일부와 좌산내면(左山內面)의 모호리를 병합하고 산내면 도청리로 개설하였다. 1987년 산내면을 변산면으로 개칭하였다. 도청리는 변산반도 서남쪽 끝에 자리해 갑남산[425m]을 중심으로 대부분 지역이 산지와 해안으로 이루어져 대부분 주민이 어업에 종사한다. 모항 해수욕장은 줄포만에 돌출한 곶(串)에 파식대와 해안 사구가 발달한 아담한 해수욕장으로 동쪽 모항마을 주변은 방조제가 축조되어 있다. 솔섬은 밀물과 썰물 때에 따라 섬이 해안에서 분리, 연결을 반복한다. 석양이면 분재처럼 보이는 명승지이다. 도청리 호랑가시나무 군락은 모항 해수욕장 위편 덕거리 고개에 있는데, 호랑가시나무 북방 한계선의 대규모 자생 군락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천연기념물 제122호 지정되었다. 호랑가시나무 700여 그루가 밀생한다. 호랑가시나무는 변산반도를 대표하는 식물로 부안 군내 공원이나 학교, 관청, 교회는 물론이고 웬만한 집 정원에서 한두 그루는 쉽게 볼 수 있다. 키는 2m~3m까지 자라며 겉가지가 많다. 잎의 길이는 3~5㎝ 정도이며 타원형 육각형으로 매끈하니 광택이 난다. 잎의 각점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나 있는데 호랑이 발톱처럼 무섭게 생겨서 ‘호랑범 발톱’이라고도 부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모항마을 유래 : 모항마을은 조선조 중엽 인조왕 때 최 씨 일가가 맨 처음 정착하였으며, 띠가 자라는 곳이라 하여 띠 모(茅) 자와 배가 지나가는 목이라 하여 목 항(項)자를 써서 모항(茅項) 또는 띠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송림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항해수욕장, 호랑가시나무 군락지, 생각하는 바위와 지질명소 등 많은 관광자원이 있어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고, 주변 바다에서는 수산물(주꾸미, 꽃게 등)이 철마다 생산되며 아름다운 시(안도현 시인 '모항으로 가는 길')의 주제가 되는 마을이다.
모항 어촌체험·휴양마을 : 해양수산부로부터 2005년 이촌체험마을 조성 사업비를 지원받아 안내센터, 갯벌체험장, 숙박 및 편의시설을 갖추었고 주요 체험프로그램으로는 갯벌조개잡이, 선상 바다낚시, 조개공예품 만들기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2017년 어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어 매년 많은 체험 및 탐방객이 방문하고 있는 부안의 대표적인 어촌마을이다.
건너편 왼쪽은 고창군 심원면 일대일 것이다. 곰소만 바다가 모항 깊숙하게 파고 들었다. 모항길을 따라간다.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짓밥 먹다가 석삼 년만에 제 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
먼데서 오신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자고,/ 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 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마디 던지면 돼/ 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말이야/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
모항 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왔듯이/ 구불구불하지, 이 길은 말하자면/ 좌편향과 우편향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한데/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저 잘난 세상쯤이야 수평선 위에 하늘 한 폭으로 걸어두고/ 가는 길에 변산 해수욕장이나 채석강 쪽에서 잠시/
바람 속에 마음을 말려도 좋을 거야/ 그러나 지체하지는 말아야 해/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조금만 더 가면 훌륭한 게 나올 거라는/ 믿기 싫지만, 그래도 던져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너는 물어오겠지
아니, 몸에다 마음을 비벼 넣어 섞는 그런 것을/ 꼭 누가 시시콜콜 가르쳐 줘야 아나?
걱정하지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 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안도현의 '모항으로 가는 길' 전문
모항경로당을 거쳐 나가면모항항(茅項港)이 있다.
모항(茅項)은 이곳 지역명이므로, 어항은 모항항(茅項港)이라고 불러야 한다.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에 있는 모항항(茅項港)은 어촌 정주 어항. 어촌 정주 어항은 어촌의 생활 근거지가 되는 소규모 어항을 의미한다. 모항항은 지역 주민의 생활 편의 향상, 어업 기반 시설 확충을 통한 어선의 안전 수용, 어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 등을 위해 조성되었다. 1972년 4월 12일 소규모 어항으로 지정되었고, 2008년 12월 16일에 어촌 정주 어항으로 지정되었다. 모항항은 변산반도 및 전라북도 부안의 최남단에 있는 어항이다. 인근에 모항 해수욕장과 모항 갯벌 체험장이 있고, 가장 가까운 도청항과는 육상으로 4.4㎞, 해상으로 4.6㎞ 정도 떨어져 있다. 칠산어장을 주요 어장으로 삼고 있으며, 주요 어종은 주꾸미, 전어, 오징어, 새우 등이다. 2008년 어촌 정주 어항으로 지정된 이후로 어촌 정주 어항 개발 계획에 의해 방파제 등을 갖추었다. 2019년에 해양수산부가 선정하는 ‘2020년 어촌 뉴딜 300 사업’ 지역으로 선정되었고, 2022년까지 83억 원을 지원 받아 물양장, 방파제, 편의 시설, 마실길 고향길, 식당 등의 개발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모항해나루호텔로 가면서 북쪽을 바라보니 중앙 오른쪽에 갑남산이 우뚝하다. 오른쪽에 모항갯벌이 보인다.
서해랑길은 모항해나루호텔 왼쪽 뎈길로 이어진다.
모항해나루호텔 옆 뎈길을 따라 모항 해수욕장으로 간다.
왼쪽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섬은 쌍여도는 아닌 것 같고 대죽도일 것이라 추정한다.
흐릿하지만 건너편 오른쪽은 곰소만 남쪽 입구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 동호항일 것이라 가늠한다.
모항 해수욕장과 왼쪽에 모항레저타운, 오른쪽 산봉은 투봉? 그 오른쪽 산기슭에 부안 도청리호랑가시나무 군락지가 있다.
"모항(茅項)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에 있는 전북 서해안권 국가 지질 공원 명소. 모항(茅項) 지역에 분포하는 석포 응회암은 괴상(塊狀)에서 희미한 층상이며, 중립사에서 잔자갈 크기의 암편, 부석편 그리고 결정편들이 세립(細粒)의 화산회 기질에 포함되어 있다. 분급은 불량하고 모항 해변에서는 최대 직경 약 1.5m의 거력질 암편으로 구성된 두께 약 4.5m 정도의 응회 각력암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부석을 함유하는 화산력 응회암 내에 발달하는 어골형 석영 광맥계와 페퍼라이트(peperite), 용결 구조, 원통형 파이프 구조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어골형 광맥계를 형성하는 석영 광맥은 화산력 응회암이 퇴적된 후 열수 작용(熱水作用)으로 형성된 두 개 조의 석영맥군의 교차에 의해 형성되며 하나의 광맥군은 다른 광맥군을 관통하여 발달한다. 이는 마치 물고기 뼈 모양을 연상하게 해서 어골형 석영 광맥계라 한다. 또한 이곳에는 화산재가 쌓이면서 화산 가스가 빠져나간 흔적인 원통형 파이프 구조도 관찰할 수 있어서 화산 활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한 지질 명소이다.
페퍼라이트는 일반적으로 수분이 많고 고화되지 않은 퇴적물에 용암이 흐르거나 관입할 때 퇴적물 내에 수분이 끓게 되어 수증기가 폭발하거나 퇴적물과 용암이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용암과 퇴적물의 불규칙한 덩어리들이 굳어지게 된다. 그러나 모항 해수욕장 근처 페퍼라이트는 화산력 응회암과 중성 암맥의 접촉 경계부에 형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페퍼라이트는 물 또는 습기를 포함한 퇴적암 외에 화산 쇄설암에서도 형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여러 견해가 있다. 017년 9월 13일에 인증된 전북 서해안권 국가 지질 공원의 부안군 지질 명소 6개소[직소 폭포, 적벽강, 채석강, 솔섬, 모항, 위도] 중 한 곳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변산면 도청리 모항야영장의 해송숲이 일품이다.
모항해수욕장은 백사장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노송과 수평선에 비치는 저녁노을 감상에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변산면 도청리에 있는 모항 해수욕장은 변산반도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모항 갯벌 해수욕장으로도 불린다. 띠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 하여 띠 모(茅) 자, 배가 지나가는 목이라 하여 목 항(項) 자를 써서 ‘모항’이라 하였다. 변산반도를 아우르는 국도 30호선과 인접해 있으며, 변산반도를 가로지르는 지방도 736호선과 교차하는 마동 삼거리에서 남서쪽으로 직선거리 약 2.6㎞ 지점에 있다. 갑남산(甲南山)[413.3m]을 끼고 있고, 해안가에는 모항 해수욕장의 랜드마크인 해송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해수욕 이외에도 갯바위 낚시와 갯벌 체험을 하려는 가족 여행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해안침식지 복구사방사업 모항 표석과 지질명소 모항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지질명소 설명글을 옮긴다.
지질명소 모항해수욕장에는 중생대 백악기,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지질단서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해수욕장에서부터 탐방로를 따라 사진과 같은 구조들을 찾아봅시다. 알록달록 표범무늬를 띄고 있는 페퍼라이트 암석(A), 바위에 박힌 하얀 생선뼈 모양의 석영광맥(B)과 풍화작용으로 인한 벌집모양의 구멍 타포니(C)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 설명안내판
서해랑길 45·46코스 안내도가 앞쪽 모항야영장 취사장 앞에 세워져 있다.
전체 거리 14.7km, 소요 시간 5시간, 난도 쉬움으로 되어 있다.
45코스를 너무 가볍게 걸었다. 살피고 조망하고 들러야 할 곳을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탐방 거리 15.34km, 탐방 시간 3시간 49분, 무려 1시간 11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소요 시간 5시간이 주어졌을 때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모항야영장을 해안 쪽으로 돌아서 뒤쪽에 보이는 모항해수욕장을 거쳐 야영장 취사장 앞으로 와서 탐방을 마쳤다.
서해랑길 46코스는 야영장 취사장 앞에서 출발하여 모항길을 따라 국도30호선 변산로로 나가 솔섬 방향으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