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기도도량 / 통도사 적멸보궁
생불 발원한 천년 세월 간절함에 번뇌 망상도 쉬어간다
기도는 절절한 갈망이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배고픈 아이가 어머니 젖을 찾듯,
중병 앓는 이가 의사를 찾듯, 닭이 알을 품듯 간절함이 배어야 한다.
간절한 기도는 내면을 바꾸고 그 공덕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참회로 업을 소멸하고 정진으로 내면을 바꾸면 영험을 경험하기도 한다.
한국의 기도도량을 찾아 격주로 연재한다. (편집자)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을 세운 자장율사는
계단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청소 한 번 안 한 금강계단은 놀랍게도 날짐승의 오물 한 점 없이 깨끗했다.
8마리 용 쫓은 뒤 절 창건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인게지.”
노보살은 기도의 시작을 말씀했다. 덮어놓고 부처님을 믿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었다.
김현중(84, 보덕화) 보살은 영축산 통도사 대웅전과 응진전, 관음전 등
모든 전각을 돌며 절을 올렸다. 하루 1000배를 했다.
한 순간 마음을 놓으면 ‘나’가 올라온댔다. 도로 아미타불이랬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으니 절에서 머물며 계속 절을 올리고 기도한다고 했다.
다시 어떤 몸을 받아 윤회하며 고통 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통도사 화엄산림 53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3000배를 해왔다.
작년까지 5년째 그랬다. 화엄산림동안 기도는 먼저 보낸 남편과 아들을 불러왔다.
남편과 아들이 밥그릇을 들고 그녀를 찾았고 더욱 더 간절해진 기도는
남편과 아들을 극락왕생하도록 도왔다.
▲관음전엔 기도하는 이들이 많았다.
기도가 무르익자 그녀는 자신의 경계가 알고 싶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을 참배하기 전날 밤 ‘자신의 자리를 보여 달라’ 기도했다.
다음 날 금강계단에서 밝은 빛이 나오는 걸 봤다.
더 자신을 낮추고 낮추며, 비우고 비워 마음을 닦으라는 경책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녀는 기도했다. 허리를 접고 무릎을 꿇으면 굽은 등은 한 없이 초라했다.
가슴께 합장한 두 손엔 세월이 주름졌다.
하지만 성불하고자 하는 그녀 서원은 통도사에서 얻은 부처님 가피로 익어가고 있었다.
불자들은 불지종찰(佛之宗刹) 통도사(通度寺)에서 저마다 서원과 소원을 품고 기도하고 있다.
통도사 원주실서 자원봉사 하는 어느 보살은 기도하면 좋은 기운이 감돈다고 했다.
기도를 게을리 할라치면 분명 자신이 아니더라도
주위에 나쁜 기운이 생겨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곤 한단다.
통도사 객실서 만난 이남순(77, 대덕화) 보살이 기도로 얻은 부처님 가피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관음기도 중인 그녀는 통도사 적멸보궁서 기도하다 향기롭고 은은한,
세상에서 맡아본 적 없는 향기를 느꼈다. 기도를 열심히 하다보면 가끔 그 향기가 난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다시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린다.
화엄산림 기간 중에는 건물 안에서 쏟아지는 사람들 앞에 평소처럼
두루마기 입은 사별했던 남편을 봤다. “지옥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었다”고 그녀는 감격했다.
그녀는 요즘 무릎이 아파 매일하던 108배도 힘들다. 부처님을 붙들며 절했다.
“신기하게도 다리가 펴지고 일어서졌다”며 그녀는 또 감사 기도했다.
가슴이 벅차 눈물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부처님 가피가 곁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꼭 올 때가 있다고 확신했다.
작년부터 아들 승진을 빌고 비는
박용순(73, 환희지) 보살은 윗사람이 잘 돼서 나간 자리에 아들이 올라가길 빈다.
“기도가 부족하다”며 찬 겨울에도 통도사를 찾았다.
나이 마흔을 한 해 앞둔 한 보살은 금강계단 찬 바닥에 무릎을 아낌없이 꿇고 절을 올렸다.
탑돌이를 한 뒤 통도사 전각 곳곳을 돌며 기도했다.
그녀는 이리저리 재는 마음과 탐욕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달라 기도했다.
계단에 부처님 사리 봉안
과거 도량을 창건한 자장율사도
깨달음을 구하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지극한 기도로 모든 것을 이뤘다.
그리고 이 기도로 금강계단(金剛戒壇, 국보 제290호)에 봉안한 진신사리를 얻었다.
중국 오대산을 찾은 율사는 문수보살상에서 기도하고 명상했다.
꿈에 모습을 드러낸 문수보살은 율사의 이마를 만지며 범어로 된 게를 줬다.
꿈에서 깬 율사는 아무리 궁리해도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이튿날 한 스님이 나타나 “비록 만 가지 가르침을 배운다 하더라도 이보다 나은 것은 없다”며
가사와 사리를 율사에게 주고 사라졌다.
마침 선덕여왕 요청으로 643년 신라로 돌아온 율사는 대국통으로서 불법을 펼쳤다.
신통방통한 그의 법력 앞에 계를 받고 불법을 받든 이가 열 집에 여덟 혹은 아홉이나 됐다.
스님 되기를 청하는 이는 늘어갔고, 율사는 646년 통도사를 세우고 계단을 쌓아 법을 폈다.
‘삼국유사’ 제4권 제5 의해편 자장정률조 기록이다.
▲대웅전엔 불상이 없다.
수미단 뒤로 보이는 금강계단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해서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에서는
“자장이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 드리고 있을 때,
문수보살이 승려로 화하여 자장에게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00과, 두골, 지절, 염주, 경전을 주면서
‘이것은 내 스승 석가께서 친히 입으셨던 가사이고
또 이 사리는 부처님 진신사리며
뼈는 부처님 머리뼈와 손가락뼈다’고 했다”고 적고 있다.
계단이란 계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다.
부처님 당시 누지보살이 비구들 수계의식 집행을 청하자
부처님이 허락해 기원정사 동남쪽에 단을 세우게 한 데서 비롯됐다.
자장율사는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세우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
‘삼국유사’ 제3권 제4 탑상편 전후 소장사리조는 이렇게 적고 있다.
“(자장율사가)당나라에서 부처님 머리뼈와 어금니와 사리 100과,
부처님이 입었던 붉은 깁에 금점이 있는 가사 한 벌을 가지고 왔다.
그 사리는 세 부분으로 나눠 한 부분은 황룡사 탑에 두고,
한 부분은 태화사 탑에 두고, 한 부분은 가사와 함께 통도사 계단에 뒀다.”
기도하는 이에 영험 보여
‘삼국유사’ 저자 일연 스님은 통도사 금강계단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한 사람 얘기를 전한다.
그리고 마음상태를 경계했다.
고려 때 지역 관리 2명이 계단에 예를 드리고 돌 뚜껑을 들고 사리를 보려했다.
처음에는 긴 구렁이가 함 속에 있었고, 다음에는 큰 두꺼비가 쪼그리고 있었다.
그 뒤로는 돌 뚜껑을 감히 들고 보지 못했다고 한다.
또 100과인 사리가 4과뿐인 이유는 숨겨졌다 나타났다하는 신이함으로 풀이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 수가 많고 적음은 괴이히 여길 것 없다”는 일연 스님 말씀이다.
믿음과 기도의 간절함이 영험을 부른다는 얘기다.
기도는 절절한 갈망이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배고픈 아이가 어머니 젖을 찾듯,
중병 앓는 이가 의사를 찾듯, 닭이 알을 품듯 간절함이 배어야 한다.
간절한 기도는 내면을 바꾸고 그 공덕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참회로 업을 소멸하고 정진으로 내면을 바꾸면 영험을 경험하기도 한다.
기도는 불가사의한 위력을 가진다.
▲일주문에서 천왕문 가는 길목의 돌탑.
특히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통도사는 더 남다르다.
한 줄기 빛을 보고 향기를 맡은 이들의 가피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
‘통도사 사적기’는 8가지 놀라운 점을 밝히고 있다.
사부대중 가운데 누구든지 사리를 공양할 땐
다섯 가지 법신 향기가 산내에 드높아 도량에 머문 사람들이 향기를 맡고 감탄한다.
인연 따라 사리가 보이거나 안 보이고, 밝게 빛난다.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거나 홀연히 개거나 폭풍이 일기도 한다.
지극한 마음을 가진 이가 동구로 들어올 때면 계단 석종 위에서
먼저 오색광명이 크게 천지를 비춰 훤히 산과 골짜기를 밝힌다.
향과 초를 태워 공양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면
계단 반상에 변신사리가 모래알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친견하려는 사람 몸과 마음이 부정하고 하심하지 못하면
비위가 상하는 고약한 냄새가 나서 그 사람이 미친다고 전한다.
실제 정말 놀라운 점은 계단 위 모든 날짐승이 날지 않고 오줌과 똥을 누지 않는다는 거다.
취재 차 종일 금강계단에 서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했지만
새 한 마리 지나가거나 배설물을 누지 않았다. 청소 한 번 안 했다는 금강계단은 깨끗했다.
법신의 위력은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이 금강계단은 불보사찰 통도사 대웅전에 불상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어 굳이 불상을 모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웅전은 특이하게도 정사각형 건물 대웅전 바깥 사면은 각각 다른 이름 편액이 걸려 있다.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대방광전 편액을 등지고 서면 구룡지가 보인다. 본래 통도사 절터는 큰 연못이었다고 한다.
문수보살은 “용이 사는 이 못 위에 금강계단을 쌓고 사리를 봉안하면
만대에 이르도록 불법이 오래 머문다”고 자장율사에게 일렀다.
그러자 율사는 아홉 마리 용 가운데
여덟 마리를 쫓고 터를 지키겠다 맹세한 한 마리 용을 위해 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았다.
그 못이 바로 대방광전 편액 앞에 보이는 구룡지다.
통도사 사중 스님은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수량이 전혀 줄지 않는다”고 했다.
▲구룡지.
통도사(通度寺)는
‘스님이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이 계단을 통과해야 한다
(위승자통이도지, 爲僧者通而度之)’는 뜻이다.
‘만법을 통달해 중생을 제도하라(통제만법도제중생, 通諸萬法度濟衆生)’는 의미도 숨겨져 있다.
불제자로 거듭나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과 기도가 통도사에서만은 절절할 수밖에 없다.
밤공기와 아침햇볕이 몸을 섞는다.
통도사 객실서 맞는 1월4일 새벽 3시 영축산에 깃든 모든 중생들이 잠에서 깼다.
15분 동안 계속된 도량석과 사물소리, 뒤이어 예불이 시작됐다.
한 생각 스쳤다. 사찰은 중생의 번뇌와 업을 녹여 부처님 세계로 인도하는 도량이다.
생불을 만드는 곳이다.
일주문 앞에서 서면 마땅히 인과 도리를 믿고 성불하겠다는 발심을 해야 한다.
불보사찰 통도사는 성불하겠다는 기도가 영글고 있었다.
자장율사가 대웅전에 남긴 불탑게가 가슴을 훑는다.
“만대까지 불법의 수레를 굴린 삼계의 주인(萬代轉輪三界主) /
쌍림에 열반하신 뒤 몇 천 년이던가(雙林示寂幾千秋) /
진신사리 오히려 지금도 있으니(眞身舍利今猶在) /
널리 중생의 예불 쉬지 않게 하리(普使群生禮不休).”
2012. 01. 18.
최호승 기자
출처 :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