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올 긍휼(矝恤)의 마음 없는 존구(尊舅- 시아버지의 존칭이라는구만)라는 자는 방금 출산한 며느리가 물 한 잔 떠 오는 사품을 틈타 갓 태어난 손녀를 목 졸라 죽인다. 시아버지란 자가 아들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며느리한테 일찍부터 다짐한 말, "아들이면 대를 잇게 하되 딸을 낳으면 그 즉시 자진(自盡)하라." 했음에도, 감히 며느리가 사뢰길 자신은 기꺼이 죽을 터이니 아기만은 살려 달라 애원했지만...
지독(舐犢). 말 못하는 짐승인 어미소도 지극한 사랑으로 새끼 송아지를 혀로 핥아주는데... 하물며 인간으로서의 어머니가 자식에게 모든 걸 주는 건 당연한 일이건만, 소설 속 주인공인 상룡의 먼 조상은 대를 이을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렇게 무참하게 손녀를 죽이고 며느리에게 자진하기를 다그친다. 해서리 며느리는 할머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말한다. "제가 죽어 팔만 팔천 번 윤회(輪廻)하더라도 나무나 돌로 다시 태어날지언정 비잠주복(飛潛走伏) 무엇이든지 암수 나뉘고 어머가 새끼 낳는 것으로는 다시 나지 않고자 하나이다."
장편소설『달의 제단』(심윤경, 문학동네, 2014)은 17대에 걸친 서안 조씨 가문의 흥망사(興亡史)를 짓밟힌 지독(舐犢)의 후환(後患)으로 그리고 있다. 오뉴월 서릿발맹키로 무서운 여인들의 한(恨)이 몇 백 년을 오롯이 버티어 내려오더니 이윽고 한 가문의 상징인 효계당을 한 줌 잿더미로 만들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하 소설의 줄거리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소갯글을 옮겨 적으려 하니 해량하시길...
한때의 꿈같은 영화가 지나고 이제는 쇠락해버린 서안 조씨의 종가 효계당에 17대 종손인 상룡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다. 할아버지는 한 지방대학의 국문과에 재학중인 상룡에게 봉분을 이장하다 발견된 10대 조모 안동 김씨의 언찰 10여 통의 해석을 맡긴다.
“함부로 소문을 내지 말도록 해라. 우리 집안을 음해하려는 세력이 무슨 삿된 수작을 펼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몸가짐을 무겁게, 신중히 해야 한다.”(14쪽)
평생 명문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봉제사와 법도에 애쓴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상룡의 생모인 서영희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했고, 결국 자신이 공들여 선택한 해월당 유씨를 아버지와 혼인시켰다. 그러나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이에 할아버지는 마지못해 상룡을 데려와 효계당의 종손으로 삼는다.
할아버지가 왜 상필을 제치고 나를 종손으로 삼았는지, 그 뜻은 지금까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 집안에서 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 일을 공공연히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나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할아버지가 없을 때, 나직한 목소리로 은밀히 오갔다. 내가 할아버지를 너무 많이 닮았기 때문에 핏줄이 당기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고, 평생 냉담한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일시적인 회한으로 나를 받아들였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36쪽)
상룡은 새어머니인 해월당 유씨의 손에 길러졌으나, 집안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식모 달시룻댁에게 더 큰 애착을 느낀다. 하지만 달시룻댁의 딸인 정실에 대해선 내내 못마땅한 감정을 품는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저는데다 못생기고 뚱뚱하기까지 한 부엌데기다.
달시룻댁이 효계당의 생활을 구성하는 데 있어 눈에 띄지 않으나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요소라면, 다리병신에 쌀 한 가마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정실은 효계당의 격을 떨어뜨리고 다소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더하는 희비극적인 존재였다. 정실은 대개 뒷밭 그늘의 두엄집에 파묻혀 살았다. 두엄을 뒤지면서 무슨 놀이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손톱 밑은 새까맸고 치마에는 흙물이 들어 있었고 지나간 자리에는 연한 두엄 냄새가 남았다.(72쪽)
상룡은 우연한 계기로 할아버지의 방에서 생모의 것으로 추정되는 명함을 발견하게 된다. 도심의 어느 호텔에 있는 초콜릿가게에서 그토록 그리던 생모를 만나게 된 상룡. 그러나 차마 알은척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움만 간직한 채 그대로 돌아오게 된다. 며칠을 헤매며 마음을 잡지 못하던 상룡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괴로워하다 정실에게 이상한 적개심을 품게 되고, 결국 그녀를 범하게 된다.
팔십 킬로그램은 족히 넘어갈 비둔한 몸뚱이를 어린애 손목만한 두 발목으로 받치고 있는 정실은 쉽게 중심을 잃었다. 내가 신경질적으로 한 번 팔뚝을 잡아끌었을 뿐인데도 정실은 그대로 문지방을 넘어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문디 가스나. 달시룻댁 아니었으면 너 같은 가스나는 진작에 후두끼 났을 기다. 밥만 처묵었지 쓸 데가 어데 있노. 이까짓 가스나 이 자리에서 패죽인들 누가 뭐라 하겠노.(110~111쪽)
기이하고 엇나간 방법으로 시작되었으나 정실에 대한 상룡의 마음은 점점 깊어진다. 어린 시절부터 상룡을 흠모해오던 정실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가 알게 되면 둘은 온전히 지내지 못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일 터. 가문에 해가 될 내용을 담고 있는 언간을 믿지 않는 할아버지와 이를 믿고 지켜내려는 상룡은, 마침내 사랑을 지키려는 이와 이를 파괴하려는 이의 모습으로 화한다.
비겁한 놈, 무능한 놈. 네 자식을 밴 여자가 개처럼 두들겨맞고 어디론가 끌려갔단 말이다.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자지러진 네가, 그래도 사내냐? 그 사내들이 정실의 배를 으지직으지직 짓밟는 것을 네 눈으로 보았지? 아이는 성치 못할 것이다. 정실도 성치 못할 것이다. 너는 병신이다.(226쪽)
소설은 아름다운 의고체로 쓰인 언간의 내용을 발판 삼아 절묘하게 나아간다. 쉬이 읽어내기도 어려운 옛 언간의 문체를 작가는 몇 권의 사전을 밤새워 뒤져가며 실감나게 복원해냈다. 그것은 우리가 자세히 알지 못했던 과거의 모습들을 뚜렷이 되살린 실례實例이기도 하고, 가부장제 아래에서 고난을 겪었던 여성들의 아픔에 관한 처연한 세밀화이기도 하다.
어은이 보아라.
거둘이 바쁜 걸음에 순부順付하려니 긴 말 어려우나 일지성심一支誠心을 잃지 말 것이며 계집아해 낳더라도 자진하지 말지라. 소산 팔십 칸 집 어느 그늘에 네 모녀 쉴 자리 없으랴. 계집아해 낳거든 밤을 도와 기별하면 내 아모제나 업을아비 보내리니 자진하지 말지라. 애고 내 아해야, 자진하지 말지라.(193쪽)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폭력적인 시아버지에게 희생당한 상룡의 10대 조모 안동 김씨의 이야기는 효계당에서 쫓겨난 정실과 그 안위를 알 수 없는 뱃속의 아이로 재현된다. 긴 세월을 뛰어넘었음에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아릿하게 사라져가는 여인들. 가부장적인 억압 속에서도 은은히 빛나던 효계당의 여인들은 그래서 한없이 애달프다. 어두워지고 나서야 모든 것을 비추는 달처럼, 효계당의 처마 위를 천천히 오르던 저 그림자 같은 여인들은 어디로 간 것인가. 그리하여 마침내, 달의 제단에는 누가 오르는 것인가.
사족이지만 작가는 나의 고향인 경상북도 중부지방의 사투릴 잘도 재연해 내고 있는 게 내겐 신기할 따름이다. 영천시(永川市)가 배출한 글쟁이라면 여말 포은(圃隱) 선생이래 조선 중기 노계(蘆溪) 선생을 거쳐 현대에서는 하근찬 선생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의 작가 심윤경 선생은 생소한 이름이었는데...지금은 아련한 어릴 적 쓰던 그곳 사투리가 젊은 작가의 글에서 이리 쉽게 재연(再演)될 수 있다니...게다가 효계당에서 치러진 불천위제(不遷位祭)에 올려질 제수(祭需) 음식에 '돔배기'란 이름이 나오고 그걸 사러 영천장에 갔다는 말이 나오다니, 이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본 음식 이름이자 장터 이름인가? 돔배기 한 점 젓가락에 꿰어 들고 밥 한 그릇 뚝딱했던 60여 년 전의 그 시절을 돌아보면 문득 눈시울이 더워진다.
근디 '돔배기'란 음식 이름을 다른 지방 출신의 사람들은 알랑가 모르겠구만. '돔배기'란 경상도에서 쓰는, 상어고기를 소금에 절여 삭힌 음식인데, 같은 고기를 갖고 전국 곳곳에서 쓰는 이름이 제각각이라는구만글쎄. 아마도 우리 동기 중 나와 출신지가 가까운 포항 출신 L군이나 의성 출신 S군은 '돔배기' 맛을 알지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