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자사,중국도자기 관요
다음은 중국 남송 관요자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자료를 소개한다.
북송 말기에 '정강의 난'이 일어나 북송은 멸망했습니다.
송황실은 임안으로 도읍을 옮기고 남송조정을 세웠으며, 수내사관요와 교단하관요를 차례로 축조하여 궁중 전용의 청자를 굽는 '남송관요(南宋官窑)'라고 불렀습니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남송 시대의 관요는 모두 린안(지금의 항저우) 근처에 있었고 수내사관요와 교외의 관요 두 곳이 있었습니다.
송황실이 남으로 옮겨진 후 가장 먼저 건립된 관요는 수내사요였고, 그 뒤를 이어 교단 아래에 '별립신요'가 있었습니다.
남송 관요 청자는 청자 중 가장 좋은 제품으로 '자구철족', '분청유색', '얼음균열편(빙렬)', '얇은태 후유'의 4가지 특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모양과 수정같이 반짝이는 유약 색상은 절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외의 관요에서 구운 기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종류는 생활용기에 속하며, 그릇, 접시, 상자, 대야, 병 등이 있습니다.
또 다른 유형은 주로 주나라와 한나라의 솥, 그릇, 혼수 등의 형태를 모방한 향로, 종 모양의 병, 술잔, 귀관, 화구호, 화분 등입니다.
두 가지 유형과 비교하여 주로 도자기를 굽습니다. 그러나 베이징 고궁 박물관과 타이베이 고궁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관요 도자기의 대부분은 장식용 도자기입니다.
이는 일상용 도자기의 손상률이 높고 배치용 도자기의 손상률이 낮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송의 관요는 북송 관요와 남송 관요로 대별된다. 북송 관요는 변경에 세워졌고, 남송 관요는 송이 남쪽으로 옯겨간 후 항주(杭州)에 세워졌다.
북송 관요에서는 청자를 제작하였으나 색이 각기 달라 유색이 분청(粉靑), 월백(月白), 유회(油灰), 청황(靑黃) 등이 있었다.
비록 색은 각각 차이가 있었으나 모두 푸른 색조였다. 이러한 청색은 보기에 그저 파랗기만 한 것이 아니어서 태질(胎質)의 변화를 통하여 유색도 풍부하고 다채롭게 되었다.
태토의 색은 흑회색, 짙은 회색, 옅은 회색, 황토색 등이었는데, 태토의 색이 달라짐으로 해서 자기의 색이 서로 다른 청색을 띠었다. 태토는 일반적으로 비교적 짙은 색이었으므로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아마도 이것이 바로 당시 문인들이 추구하던 미감이 아니었을까?
관요에서는 철의 함량이 비교적 많은 흙을 사용
하였으므로 짙은색을 띠게 되어 일종의 자구철족(紫口鐵足 : 유약이 얇게 발린 구연부는 태토의 흑자색이 은은하게 나타나고, 족부에는 유약이 묻지 않아 흑색을 띠게 되는 현상)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태토에 철분이 많이 함유
되어 있어 소성 과정에서 강한 환원염으로 인하여 태토의 색
이 검게 변하기 때문에 빚어
지는 현상이다.
관요 자기는 또 여요의 균열을 이용한 장식의 전통을 받아들여 유색의 단조로움을 피하면서도 고풍스럽고 은은한 정취를 더하게 되었다.
이러한 유약을 흘려 만드는 기법과 공예 기법의 변화를 통하여 만들어낸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만물의 자연성과 본연성이 서로 일치하는 송대 이학 사상의 원칙에 부합되었다.
남송 관요의 도요지에 관하여는 문헌에 '관요는 봉황산 아래에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위치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1996년 9월, 우연히 봉황산의 남송 황성(皇城) 유적지 부근
에서 노호동(老虎洞) 도요지
가 발견되었는데 그 지점이 공교롭게도 바로 남송의 수내사영(修內司營)이 있던 곳이었다.
출토된 대량의 자기 파편 가운데 자기 밑면에 유하(釉下) 방식의 갈색 안료로 '수내사(修內司 : 궁중의 건축물을 짓거나 고치는 관청)' 와 '관요(官窯)' 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후 항주시 문물고고소(文物考古所)가 고고학적 조사와 발굴을 진행하여 대량의 관요 자기 파편과 도구가 출토 되었다.
남송은 또 제2의 관요를 지어 교단관요(郊壇官窯)라 하였는데 그 지점은 지금의 항주시 남쪽 교외 오구산(烏龜山) 일대 이다.
남송 관요 청자는 주로 유색, 균열 무늬 및 조형으로 승부하였는데 기물의 조형은 소박하고 고풍스러우면서 단정하고, 유색은 옥같이 윤기가 흐른다.
따라서 장식 소재가 그리 다양
하지 않아 흔히 볼 수 있는 동식물 문양 외에 각종 줄무늬, 팔괘문(八卦紋), 구름, 번개, 소용돌이, 동심원, 점 등이 있는 정도이다.
장식은 보통 각획(刻劃 : 칼로 새기고 긋기), 모인(模印 : 모양틀로 누르기), 퇴첩(堆貼 : 쌓아올려 붙이기), 날조(捏雕 : 흙을 이겨 손으로 눌러 만들기), 투각(透刻), 투조(透雕 : 문양이나 바탕의 어느쪽을 오려내 효과를 내는 기법) 등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각획은 주로 완이나 반 같은 일상용기에 사용 하였으며, 모인은 비교적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퇴첩은 병, 호, 로, 고, 등 고기(古器)를 본떠 자기를 만들 때 많이 사용되었고 투각과 투조 기법은 기물의 뚜껑이나 받침 부분에 많이 사용되었다.
장식 기법의 다양함, 가마재임(구울 물건을 가마 안에 재어 넣는일) 기술의 발달, 재임 도구의 다양한 형태등은 모두 남송 관요 자기가 생산 기술 면에서 얼마나 중요시 되었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의 품질이 뛰어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중국도자사,중국도자기 관요
[출처] 중국도자기 C50) 송대/교단관요/분청유/관이병|작성자 석강 suck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