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2 필리핀 리빠 연수원에서 -큰나무목장 우진숙 집사.hwp
필리핀 리빠 연수원에서
큰나무 목장 우진숙 집사
꾸야(아저씨)!~ 유턴 플리즈!~~~꾸야 히얼~
주일 아침 Victory 교회로 향하는 십여 명의 아이들은 목청을 한껏 돋우며, 운전석의 꾸야를 향해 소리치고 있다. 누군가 지갑을 두고 왔다. 연수원을 떠나온 지 한참이 되었지만 꾸야는 불편한 기색 없이 바로 유턴을 시도했다. 도로에 큰 신호등이 있지만 어디서나 깜빡이만 켜면, 유턴이나 끼어들기가 가능한 곳, 갑자기 뛰어들어도, 뛰어든 사람이나 당한 사람이나 당황(?)하지 않는, 마치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신호등이 존재하는 듯한 이곳... Lipa!! 한국의 대전 규모인 이곳에서 공부방 아이들과 우 집사의 짧은 ‘필리핀 달 연수’가 시작되었다! 리빠 연수원의 아침 새벽 6시부터 시작된다. 어디선가 국민체조 음악이 들리면 모두 기상해서 가볍게 몸을 풀고, 메인 룸에서 예배와 큐티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예배와 저녁 말씀 통독, 금요일 바이블 스터디, 현지 교회 주일 예배 참석은 누구나 다 참석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달의 큐티 본문은 ‘욥기’, 함께 본문을 읽으며 조별로 나눔을 하고 나면 어느새 식당에서 아떼(아줌마, 언니)가 식사시간을 알린다.
오전 8시! 필리핀 선생님들은 양산과 우산으로 햇빛을 가리고 반갑게 출근을 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대일로 수업이 이어지며, 두 시간마다 간식과 식사 시간이 있다. 5시에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약간의 자유 시간을 가진 후, 개인별로 하루 동안 채워야 할 분량의 학습을 진행하며 조별로 영어 성경통독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토요일에는 가까운 마트 SM에 가서 각자 받은 용돈으로 조별로 흩어져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며 그간 배운 영어를 나름대로 활용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다소 빡빡한 스케줄을 아이들이 소화하고 적응할 수 있을까? 염려되었다. 영어연수를 떠나 생각 하더라도, 나 혼자도 아니고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타 지역에서 온 아이들과 조금씩 양보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스마트 폰을 가져오지 말라는 단호한 연수원 원장님의 말에, 처음에는 나 스스로부터도 자신이 없었다. 핸드폰, TV, 인터넷을 차단당한(?) 아이들이 한 달 동안 살아갈 수 있을까??
우려는 현실이 되어, 늘 스마트폰을 손바닥에 두고 손가락 놀이를 해오던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방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나로서도 괴로운 일이었다. 열다섯 명의 아이들이 흩어져서 뭘 할지 몰라 손을 만지작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삼일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주위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서로 무리 지어서 마당에서 놀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끼리 조금 친해지자 아이들은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넷, 다섯으로 함께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누군가 주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모두 함께 놀 수 있는 거리를 찾아내고 있었다. 줄넘기를 연결해 ‘꼬마야, 꼬마야’를 하고, ‘말타기, 술래잡기’ 등을 하는 모습은 정말 요즘 아이들에게서 못 보던 신기한 광경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우루루~ 몰려다니며 모든 것을 거의 함께 즐기고 있었다. 연수원 마당의 한편에 채소를 심으려고 땅을 장만하던 때에는 소리 없이 와서는 땅을 파내고 돌을 주워내고 밭을 장만하는 작업들을 도와주었다. 언젠가 이웃집에서 키우던 닭이 들어와서 채소밭을 침범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분노하며 그 닭을 쫓아가서 풀숲으로 내쫓는 바람에 닭이 아예 도망가버린 일이 있었다. 닭 주인 꾸야에게 닭값을 배상하는 이른바, ‘마당에서 쫓겨난 암탉’ 사건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정에 바로 적응을 하였고, 학습뿐만 아니라 영적 훈련에도 조금씩 적응해 갔으므로 아이들을 대하고 관리하는 면에서도 훨씬 수월해졌다. 원어민 선생님과도 이제 아는 단어를 이것저것 막 사용하며 의사소통에 성공하는 요령들이 생겼고, 큐티 본문인 욥기를 통해 부모님을 떠나 나름 고생하는 현재의 상황을 적용해 보기도 하며, 어리지만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기도 했다.
한 달간 언어연수 과정에 참여하면서 ‘귀가 뚫리고? 입이 터지는?’ 큰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이 언어에 대해 내적 동기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하였고, 또 돌아와서도 꾸준히 배움의 속도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는데, 한 달 후 아이들은 기대 이상의 학습결과를 보였고, 한 달 전보다 더 의젓한 모습으로 주도적인 생활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 가게 된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는 과정 또한 내게는 놀라운 체험이었다. 예배와 큐티가 연수프로그램의 일부였던 점, 그리고 스마트폰 등 마음을 빼앗기는 매체가 없는 환경에서 아침저녁으로 쏟아지는 말씀의 소나기에,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나 예전에 교회 다녔던 적이 있던 친구나 처음 복음을 듣는 친구들 모두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동일한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인천 공항을 향해 고요하게 항해하던 비행기가 지면에 사뿐히 내려앉자 필리핀 항공사 특유의 늘어지지만 부드러운 발라드 음악이 흐른다. 연수원에서의 마지막 날, 일일이 작은 과자 선물을 주며 아쉬운 마음을 전하던 선생님들과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아이들과의 헤어짐은 쉽지 않은 듯했다. 어떤 상황에도 쉽게 격해지거나 분노하지 않으며,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겉치레나, 선물의 크고 작음에 구애 없이 작은 엽서를 건네는 나의 필리핀 친구들의 모습이.. 부지런한 지프니와 트라이시클의 매연 냄새와 함께 저 멀리 아득해진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나 믿음생활에서 절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제시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것임을 엄마로서, 교사로서 절실히 느낀 시간들이었다. 바쁘고 여의치 않은 현재의 나의 환경 가운데 짧고도 긴 특별한 소풍을 허락하심에 감사하며...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달려간다.
첫댓글 사진은 최종 편집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