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5장1-7절 방패와 상급이신 하나님 260626금요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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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본문 (창세기 15:1~7)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게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니라. 아멘.“
2. 의도치 않게 적이 생긴 아브라함의 두려움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와 상급이 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창세기 14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에 전쟁이 일어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바벨론 갈대아 우르에서 이주해 온 객지 사람이자 유목민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척을 지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카 롯이 붙잡혀 가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아브라함은 집에서 기른 청년들을 데리고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다행히 대승을 거두고 롯을 구출해 돌아왔지만, 아브라함에게는 큰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중립을 지키는 줄 알았던 아브라함이 군사를 일으켜 참전한 것을 보고, 전쟁에서 물러난 세력들이 이제 그를 원수로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부러 적을 만들면 안 되지만, 하나님의 정도를 걷다 보면 의도치 않게 척이 지는 상황이 발생하곤 합니다.
3.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
그 두려움의 자리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방패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방패가 되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크고 작은 교전은 있었을지언정 큰 전쟁 없이 지내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5년마다 여진이나 중국, 일본 등 외세의 침략으로 전쟁을 겪던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가 7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한 것은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터전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뒤가 막히고 온전히 지켜져야 합니다.
4. 우리의 방패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겐 눈에 보이는 대적뿐만 아니라 우리를 노리는 영적인 원수 사탄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친히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자신들의 힘으로 막을 수가 없자,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법궤를 전쟁터로 메고 나왔습니다. 법궤를 앞세우고 나가면 항상 승리했던 여호수아 시대의 역사처럼, 하나님이 자신들을 무조건 지켜 주실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 시절, 철기 문명을 가진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했고 심지어 법궤마저 빼앗겼습니다. 법궤가 이방 다곤 신상 앞에 놓이자 다곤 신상이 엎어져 머리와 팔이 부서졌고, 블레셋 땅에 독한 종기와 전염병이 돌자 그들은 "여호와의 신이 우리를 친다"며 두려워했습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 자체에는 분명한 임재와 능력이 있었지만, 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는 이스라엘을 지켜주지 않으셨을까요?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인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 편인가?" 내가 하나님 편에 서지 않으면서 하나님 보고만 내 편이 되어 달라고 외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마음에 합한 사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부족할지라도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설 때, 하나님의 지키심은 동심원처럼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먼저 영혼을 구원하시고 지키시는 것부터 시작하여, 육체를 지키시고, 내 가족을 지키시며, 더 나아가 내 사업장과 나라와 민족을 지키시는 손길로 뻗어 나갑니다. 내가 하나님 편이 될 때 주님의 방패가 내 삶의 모든 터전 위에서 강력하게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5. 지극히 큰 상급이십니다
주님은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사람들을 구출하면서 소돔 왕이 빼앗겼던 모든 재물까지 도로 찾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 전리품의 10분의 1을 구별하여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이후 소돔 왕이 고마워하며 "사람은 내게 돌리고 물품은 당신이 다 가지라"고 제안했을 때, 아브라함은 거절했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세상 사람들이 "소돔 왕 때문에 아브라함이 부자가 되었다"고 말할까 봐 실 한 가닥, 들메끈 한 줄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주는 물질적 복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구별하여 드린 아브라함에게 주님은 친히 상급이 되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은 우리에게 꼭 맞춘 선물이며, 세대를 거듭할수록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당대에 받은 상급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 하나가 전부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세대를 거쳐 이삭의 대에 이르자, 유목민이던 이삭이 농사를 지어 당대에 100배의 결실을 거두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다음 야곱의 대를 보면, 야곱이 빈손으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쳤으나 하나님이 복을 몰아 주셔서 풍성한 가부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 한 대를 넘어가 요셉의 대에 이르러서는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올라 온 세상의 기근을 해결하고 세상 앞에 빛나는 인물로 세워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을 지키며 바르게 살아가면 한 대, 두 대, 세 대가 지나면서 반드시 그 가문에 엄청난 믿음의 거장과 인물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당대에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핍박을 받고, 겨우 직장 생활을 하며 하루 먹고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고비를 넘기며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세우십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 리더십의 30~40%가 기독교인인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중심을 가질 때, 하나님은 가정과 삶의 자리에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와 꼭 맞는 상급으로 역사하십니다.
6. 목숨을 걸고 언약을 맺으신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하나도 없을 때,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밤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지고 빛나게 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은 짐승을 반으로 쪼개어 마주 보게 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 언약을 맺고 공증하는 방법은 매우 엄숙했습니다. 오늘날처럼 법원에 가는 대신,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두 당사자가 쪼갠 짐승 고기 사이를 함께 걸어가며 맹세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약속을 어기고 조공을 바치지 않거나 배반한다면, 내가 섬기는 신이 벌을 내려 오늘 이 쪼개진 짐승처럼 내 생명을 쪼개어 죽여도 좋다는 목숨을 건 계약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는 장면을 보면 매우 특이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아브라함도 함께 걸어가며 맹세를 해야 마땅한데, 아브라함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고 타는 횃불(하나님의 임재)만이 홀로 쪼갠 고기 사이를 확 지나갔습니다. 이 행동의 영적인 의미는 엄청납니다. 아브라함의 어떠함이나 그의 인간적인 조건, 행위와 상관없이 "나 여호와가 신실함으로 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반드시 이루어 주겠다"는 선포입니다. 만약 이 약속을 이루지 못한다면 영원하시고 영존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목숨을 걸고 쪼개어지겠다는 피의 맹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자신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당신의 존재와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7. 언약 아래 있는 삶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이 생명의 언약대로 그 가정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찢으심으로 그 언약을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우리가 의롭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사랑과 신실한 성품 때문에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 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대단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 행위로 완벽하게 살아서 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을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말씀대로 바르게 살고 심은 대로 거두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복을 받는 진짜 비결은 '어린 양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데 있습니다. 비록 삶의 자리에서 넘어지고 쓰러졌으며 남들보다 늦게 일어난 인생일지라도, 예수의 보혈 앞에 나아가 나 자신을 찢으며 정직하게 회개할 때, 아브라함에게 임했던 방패와 상급의 역사가 우리 삶에 고스란히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상급이 되어 주시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에게는 질병의 고침(여호와 라파)으로, 어떤 이에게는 자녀의 길을 열어 주심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지혜와 재능, 물질, 만남의 축복, 혹은 사명을 감당할 능력으로 다가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의 자리에서 앞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여호와 로이'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의 방패이시며 지극히 큰 상급이십니다. 우리가 죄인일지라도 정직한 태도로 주님과 마음을 같이하여 걸어갈 때, 이 언약의 축복이 삶 속에 온전히 임할 줄 믿습니다.
8.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저희가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상급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날마다 넉넉한 승리를 거두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올려드리는 우리의 간구의 제목마다 주님의 평강이 깃들게 하시고,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온전히 세워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늘 함께해 주시기를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