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전서3 : 9 “말로 복 받는 비결”
1.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금주라는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다섯 살 때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을 하고 새 엄마를 통해 동생들을 줄줄이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느 겨울 날 그나마 고구마 농사를 지어 먹고 살던 밭을
도박으로 날려 버리고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남은 가족들이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새엄마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많은 식구가 배고픔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고구마 한 개로 세 끼를 때우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학교 갈 때 신을 그 흔한 고무신도 없어서 추운 겨울에도 맨발로
산길을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집도 가난하고 아버지도 안 계시고, 엄마도 친엄마가 아니고,
헌옷에 신발도 싣지 못하고 그렇게 다니니,
학교에 가서도 주눅이 들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운동장을 터덜터덜 걸어가는 데,
누군가가 금주의 축 늘어진 어깨를 붙들었습니다.
돌아보니, 1년 365일을 한 번도 웃는 일이 없다 하여 별명이
‘얼음 선생’인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선생님이 자기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금주야, 넌 보통 놈이 아니여!” 라면서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의 그 말 한 마디가 그 여자 아이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하루는 반 아이들이 청소일지를 만만하게 보이는 금주에게 맡기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혼자서 청소일지를 쓴 후에 교무실에 막 들어가려는 데
순간 귀에 익은 담임선생님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 반에 금주라는 애가 있는데, 어려운 처지에서도 공부를 하겠다고
애쓰는 것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해요.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어요.
장래성이 있어요.......”
다른 반 선생님과 나누는 얘기였습니다.
선생님이 자기를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었습니다.
금주는 너무 감격하여 청소일지를 교무실 문 앞에 가만히 내려놓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부터 그 작은 여자 아이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배가 고프고 자나 깨나 눈앞에 먹는 것만 아른 거리곤 했는데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지 자신감 있었고 떳떳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당돌하게 면장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중학교 입학금을 꾸어 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용기를 기특하게 여긴 면장님이 입학금을 흔쾌히 꾸어주었습니다.
그 다음 등록금은 교회 전도사님에게 가서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줄곧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시골 고등학교에서 사상 처음으로
서울의 명문대학교인 경상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가슴에 새겨진
‘금주야 넌 보통 놈이 아이여!’라는 그 말이 자꾸만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더 큰 사람이 되려고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10년 전 유명한 상담학교수인 정태기 목사가 어느 신학대학원에서
만난 한 조교의 이야기입니다.
10년 전 대학원의 조교였으니 지금쯤은 그 여학생이 박사학위를 받아
어느 대학교에 교수로 학생들에게 축복과 희망의 말을 전해주고 있을 것입니다.
2. 진심어린 한 마디의 격려와 축복의 말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말에는 엄청난 위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쓰는 칼이 주부에 손에 들려져서 풍성한 요리를 만들 때
그것은 가족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데 유용하게 쓰입니다.
그런데 만일 흉악한 강도가 들어와서 그 칼을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칼은 생명을 위협하는 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말이 말을 듣는 사람에게 생명력을 주고
축복이 될 수 있는가 하면, 도리어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저주가 아니라 도리어 복을 비는 축복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심이라.”
이 성경 말씀을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첫째,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악은 악담을 말하고, 욕은 욕설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악한 말을 하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마구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런 때 어떤 기분이 듭니까? 어떻게 해 주고 싶습니까?
같이 악담을 하고 욕을 하고 싶지요?
아니 더 악한 말을 하고 더 심한 욕으로 되갚아 주고 싶지요?
그게 솔직한 감정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도리어 복을 빌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저 사람이 지금 내게 악담을 하고 욕을 하는 데 그를 축복해 줄 수 있습니까?
감정적으로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순종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나도 당신처럼 악담을 하고 욕을 하고 싶지만 우리 예수님이 축복하라고 하시니까,
내가 축복합니다. 당신은 나를 저주했지만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1)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이유가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통해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되 직접주시지 않고 우리의 말을 통해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 인간에게 복을 주실 때 그 말씀으로 축복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첫 번째 복이라는 단어가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시길 세 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둘째는 땅을 정복하라.
셋째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자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 무엇을 쥐여 주시면서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라고 말씀으로써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말씀 그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졌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이렇게 복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때도 하나님은 세 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큰 민족을 이룰 복,
둘째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는 복,
셋째는 축복의 뿌리가 되는 복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에 금은보화를 들려주신 것도 아니고 강력한 무기를
들려주신 것도 아닙니다. 거저 말씀으로 축복하신 것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아브라함이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믿고 행동으로 옮길 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도우셔서
하나님 자신이 한 축복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세기 12장 3절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듯이 우리 인간이 누구든지 말로 축복하면
복을 내리고, 말로 저주하면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에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말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면 복을 내리시되,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도 복을 주시고, 그 사람을 축복한 사람에게도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저주하기 위해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축복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말로 축복을 해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사업이 잘 되고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면 말로 남편을 축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현숙한 아내가 되길 바라면 아내를 말로 축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면 말로 축복해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되고 잘 되기를 바라면 교역자들을 말로 축복해야 합니다.
성도들끼리 서로 말로 축복해야 합니다.
2) 둘째로, 오늘 말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축복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다 같이 복창하겠습니다.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서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누가복음 10장 5-6절)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예수님도 말로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말로 평안할 것을 축복했는데 그 사람이 그 말을 받으면
그 평안이 그 사람에게 머물러 있을 것이지만, 그 사람이 받지 않으면
그 평안의 복이 평안을 축복한 사람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데 인색할 이유가 없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서는 축복하는 사람을 축복하신다고도 하셨으니,
우리가 말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만큼 우리 자신이 그 복을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축복을 아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부터는 우리 모두 말로 축복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고 다음 주일에는 좀 더 자세하게
“어떻게 축복의 말을 할 것인가?” 라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3.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쉬운 축복의 도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루에도 수 없이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제부터 말로 저주를 하지 말고 도리어 말로 축복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거울을 볼 때 마다 자신을 축복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자녀, 그리고 부모에게 축복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생애와 가정에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가득해지는
그날이 오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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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아침에 기도하면서 친구를 위해기도했어요..나를 비방하는친구이지만 먼가 내가 친구를 그렇게 만든것인지도 모른다는자책을했죠..친구를 사랑하고 그친구에게 힘이되길 원한다고요,, 며칠동안 고민하던 마음이 오늘 너무가벼워졌네요..오늘 여기 참좋은 글을 또 읽고나서 마음이 친구에게 달려갑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