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파네마의 소녀(Garota De Ipanema)> 를 듣는다. 첫 코드는 D♭ 그리고 (당연히) 6/9이다. 집게손가락으로 파(F)와
내림시(B♭)를 짚고, 약지를 뻗어 내림미(E♭)를 그 위에 얹는다. 똑같이 팔을 벌린 이 세 음은 사이좋은 완전 4도를 이루고,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주앙의 엄지가 울리는 내림레(D♭)의 가지런한 근음(root)은 노래의 단단한 땅이 된다.
· 놀랍게도 C6/9코드가 악몽 장애(Nightmare Disorder, ND)를 완화해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S. Schwartz et al., Curr. Biol., 32 (2022) 4808.
수르두가 삼바의 심장이라면, 보사노바의 심장은 엄지손가락이다.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 엄지손가락 핑거링만 연습했다는
그의 뒷얘기가 떠오른다. 오죽했으면 먹지도 쉬지도 않고 연습만 하던 주앙의 기타 소리에 미쳐버린 고양이가 발코니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까.
왼쪽 멀리서 빛바랜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오른쪽 귀로는 미우톤 바나나(Milton Banana)의 사각거리는 하이햇(Hi-Hat)이
들린다. 주앙이 부르는 무덤덤한 1절이 끝나면,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샘물 같은
목소리. 그의 목소리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어릴 적 살던 그 바닷가, 그 아파트 단지로 순식간에 데리고 간다.
아직도 가끔 꿈에 보이는 하얀색 아파트, 삼익 비치 212동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연다.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우리집 냄새가
난다. 팥죽색 카펫과 등나무 가구가 보이고, 대우전자 마크가 찍힌 크림색 팬히터 소리가 들린다.
매일 도시락을 네 개씩 싸야 했던 젊은 엄마의 뒷모습, 덜 탄 등유 냄새로 가득한 마루가 보인다. 그리고 어떤 아이가 있다.
아이는 벽돌로 쌓은 TV장 위에 놓인 턴테이블 뚜껑을 열고 있다. 그리고 눈에 익은 주황색 그림이 박힌 재킷을 벌려 검은
LP판을 꺼낸다.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하염없이 볼을 맞대고 싶은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온다. 아스트루드의 목소리를 감싸안은 주앙의 기타와
조빔의 피아노가 연주하는 달콤 쌉싸름한 코드 사이로, 빼꼼히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아이의 누나가 거실로 나와 새침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이런 노래가 좋아? 정말?’ 늘 그렇게 묻던 누나가 웬일인지
오늘은 이런 말을 툭 던지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 기억난다. 분명히 그랬던 적이 있었다.
“나도 이 노래…… 이제 좋아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