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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수필
자연, 인사(人事), 만반에 단편적인 감상, 소회(所懷), 의견을 가볍고 소박하게 서술하는 글이다.
수필(隨筆)이란 하고 싶은 대로 자기를 표현하는 글이다. 논조(論條)를 밝히고 형식을 차릴 것 없이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글로, 한 감상, 한 소회, 한 의견이 문득 솟아오를 때, 설명으로든 묘사로든,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이다. 솔직하기 때문에 논문보다 오히려 찌름이 빠르고 날카롭고, 형식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경(詩境)이나 가벼운 경구, 유머가 적나라하게 나타나 버린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수필을 강의나 연설이 아니라 좌담과 같은 글이라, 혹은 정식(定食)이나 회석(會席) 요리가 아니라 일품(一品) 요리와 같은 글이라 하였다. 그럴듯한 비유다. 단적이요 트여 있어서 글쓴이의 됨됨이가 첫마디부터 드러나는 글이 이 수필이다. 그 사람의 자연관, 인생관, 그 사람의 습성, 취미, 그 사람의 지식과 이상, 이런 모든 ‘그 사람의 것’이 직접 재료가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수필은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세사 만반에 통달해서 어떤 사물에 부딪치든 정당한 견해에 빨라야 할 것이요, 정당한 견해에서 한 걸음 나아가 관찰에서나 표현에서나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가져야 할 것이다.
창(窓)
김진섭
창을 해방의 도(道)에 있어서 잠시 생각하여본다. 이것은 즉 내 생활의 권태에 못 이겨 창 측에 기운 없이 몸을 기대었을 때 한 갈래 두 갈래 내 머리로부터 흐르려던 사상의 가난한 묶음이다.
철학자 게오르크 짐멜은 일개 화병의 손잡이로부터 놀랄 만큼 매력 있는 하나의 세계관을 도출하였다. 이것은 적어도 하나의 유명한 사실임을 잃지 않는다. 이 예에 따라 나는 여기 한 개의 창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하나의 버젓한 세계관이 될지 또한 하나의 ‘명색수포철학(名色水泡哲學)’에 귀(歸)하고 말지는 보증의 한(限)이 아니다. 그 어떠한 것에 이 ‘창 측의 사상’이 속하게 되든 물론 이것은 그 나쁘지 않은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오히려 하나의 미숙한 소묘에 그칠 따름이다.
창은 우리에게 광명을 가져오는 자이다. 창이란 흔히 우리의 태양임을 의미한다.
사람은 눈이 그 창이고 집은 그 창이 눈이다. 오직 사람과 가옥에 멈출 뿐이랴. 자세히 점검하면 모든 물체는 그 어떠한 것으로 의하여서든지 반드시 그 통로를 가지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그 사람의 눈에 매력을 느낌과 같이 집집의 창과 창에 한없는 고혹(靈惑)을 느낀다. 우리를 이와 같이 색인(索引)하여 놓으려 하지 않는 창 측에 우리가 앉아 한가히 보는 것은 그러므로 하나의 헛된 연극에 비교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 즉 그것은 자연과 인생의 무진장한 풍일(豊溢)이다. 혹은 경우에 의하여서는 세계 자체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창 밑에 창이 있을 뿐 아니라, 창 옆에 창이 있고 창 위에 또 창은 있어 눈은 눈을 통하여 창은 창에 의하여 이제 온 세상이 하나의 완전한 투명체임을 볼 때가 일찍이 제군에게는 없었던가?
우리는 언제든지 되도록이면 창 옆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 사람의 보려 하는 욕망은 너무나 크다. 이리하여 사람으로부터 보려 하는 욕망을 거절하는 것같이 큰 형벌은 없다. 그러므로 그를 통하여 세태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주는 창을 사람으로부터 빼앗는 감옥은 참으로 잘도 토구(討究)된 결과로서의 암흑(暗黑)한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창을 통하여 보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 보기를 무서워하면서까지 그것을 보려는 호기심에 드디어 복종하고야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을 한없이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이 창에 나타날 터인 것에 대한 가벼운 공포를 갖는 것이다. 문은 어떠한 악마를 우리에게 소개할지 사실 알 수 없는 까닭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고을과 고을 사이에 도로 산천을 뚫고 우리와 우리에 속한 것을 운반하기 위하여 주야로 달음질치는 기차 혹은 알기도 하고 혹은 모르기도 한 번화한 거리와 거리에 질구(疾驅)하는 전차, 자동차 -그것은 단지 목적지에 감으로써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것이 이 세계의 생활에 직접으로 통하고 있는 하나의 변화무쌍한 창으로서 더욱 의미가 있는 듯싶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차를 탈 때면 조망이 좋은 창을 선택하려는 것이다. 그럼으로 의하여 우리는 흔히 하나의 풍토학(風土學), 하나의 사회학에 참여하는 기회를 잃지는 않으려는 것이다. 여행자가 잘 이용하는 유람자동차라는 것이 요새는 서울의 거리에도 서서히 조종되고 있는 것을 나는 가끔 길 위에서 보지만 그것을 볼 때 나는 이것이 흥미에 찬 외래자(外來者)의 큰 눈동자로서밖에는 느끼어지지 않는다. 모르는 땅의 교통과 풍속이 이러한 달아나는 차창에 의하여 얻을 수 없다면 여행자의 극명한 노력은 지둔(遲鈍)한 다리와 발에 언제까지든지 지불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 가령 비행기가 떴다 하자, 여기 가령 어디서 불이 났다 하자, 그러면 그때에 우리는 가장 가까운 창에 부산하게 몰린다. 그때 우리가 신사 체면에 서로 머리를 부닥침이 좀 창피하다 하더라도 관(關)할 바이랴! 밀고 헤쳐서까지 우리는 조망이 편한 창측의 관찰자가 되려 하는 것이다. 점잖스럽게 창과는 먼 곳에 앉아 세간에 구구한 동태에 무관심을 표방하고 있는 인사가 결코 없지 않으나 알고 보면 그인들 별수가 없는 것이다. 비행기의 ‘프로펠러’에 그의 조화는 완전히 파괴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항상 창 측의 좌석에 있게 하는 감정을 사람은 하나의 헛된 호기심이라고 단정하여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보려 하는 참을 수 없는 충동은 이를 헛된 호기심으로만 지적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것 같다. 참으로 사람이란 자기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것이고 그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활에 의하여 또는 다른 사람 생활을 봄으로 의하여 오직 살 수가 있는 엄숙한 사실에 우리가 한번 상도(想到)하여 보면 얼마나 많이 이 창 측의 좌석이 이 위급한 욕망에 영양을 제공하고 있는가를 용이하게 알 수가 있다. 이리하여 우리가 가령 달아나는 전차에 몸을 싣는다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목적지를 지향하고 있는 구실 밑에 달아나는 가로(街路)에 있어 구제하기 어려운 이 욕망의 충족을 꾀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사람의 무리, 은성(殷盛)한 상점의 ‘쇼윈도우’ -우리가 흔히 거리의 동화에 가슴에 환영을 여러 가지로 추리하는 기회를 여기서 가짐이 무엇이 나쁘랴? 도시의 가로는 그만큼, 충분, 풍부하다. 달아나는 창은 무엇보다도 그것을 또 잘 보여준다.
창에 대한 건축가적 정의가 아니다. 생활인으로서 인생관으로서 자기류로서, 창의 정의를 음미·천명했다. 가장 평범한 대상에 학적 술어를 끌어 이론하는데, 탈속·청기(淸奇)한 풍미가 있다. 수필의 좋은 경지다.
권태 (일부)
이상
길 복판에서 6, 7인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적발동부(赤髮銅膚)의 반라군(半裸群)이다. 그들의 혼탁한 안색, 흘린 콧물, 두른 베 두렁이, 벗은 웃통만을 가지고는 그들의 성별조차 거의 분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아가 아니면 남아요 남아가 아니면 여아인, 결국에는 귀여운 5, 6세 내지 7, 8세의 ‘아이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아이들이 여기길 한복판을 선택하여 유희하고 있다.
돌멩이를 주워온다. 여기는 사금파리도 벽돌조각도 없다. 이 빠진 그릇을 여기 사람들은 내버리지 않는다.
그러고는 풀을 뜯어온다. 풀 -이처럼 평범한 것이 또 있을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초록빛의 물건이란 어떤 것이고 간에 다시없이 심심한 것이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곡식을 뜯는 것도 금제(禁制)니까 풀밖에 없다.
돌멩이로 풀을 짓찧는다. 푸르스레한 물이 돌에 염색된다. 그러면 그 돌과 그 풀은 팽개치고 또 다른 풀과 다른 돌멩이를 가져다가 똑같은 것을 반복한다. 한 십 분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이렇게 놀아본다. 십 분 만이면 권태가 온다. 풀도 싱겁고 돌도 싱겁다. 그러면 그 외에 무엇이 있나? 없다.
그들은 일제히 일어선다. 질서도 없고 충동의 재료도 없다. 다만 그저 앉았기 싫으니까 이번에는 일어서 보았을 뿐이다.
일어서서 두 팔을 높이 하늘을 향하여 쳐든다. 그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본다. 그러더니 그냥 그 자리에서들 겅충겅충 뛴다. 그러면서 그 비명을 겸한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그만 눈물이 났다. 여북하면 저렇게 놀까. 이들은 놀 줄조차 모른다. 어버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들 귀여운 애기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뻗치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는 그들의 유희가 내 눈엔 암만해도 유희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하늘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 산은 벌판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는, 조물주에게 대한 저주의 비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들은 짖을 줄조차 모르는 개들과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이 찾느라고 눈이 벌건 닭들과 놀 수도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너무나 바쁘다. 언니 오빠조차 바쁘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노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하나. 그들에게는 장난감 하나가 없는 그들에게는 영영 엄두가 나서지를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듯 불행하다.
그 짓도 5분이다. 그 이상 더 길게 이 짓을 하자면 그들은 피로할 것이다. 순진한 그들이 무슨 까닭에 피로해야 되나? 그들은 우선 싱거워서 그 짓은 그만둔다.
그들은 도로 나란히 앉는다. 앉아서 소리가 없다. 무엇을 하나. 무슨 종류의 유희인지 유희는 유희인 모양인데 -이 권태의 왜소인간들은 또 무슨 기상천외의 유희를 발명했다.
5분 후에 그들은 비키면서 하나씩 둘씩 일어선다. 제각각 대변을 한 무더기씩 누어놓았다. 아 이것도 역시 그들의 유희였다. 속수무책의 그들의 최후의 창작유희였다. 그러나 그중 한 아이가 영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는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그는 이번 유희의 못난 낙오자에 틀림없다. 분명히 다른 아이들 눈에 조소의 빛이 보인다. 아 조물주여. 이들을 위하여 풍경과 완구를 주소서.
우습다. 그러나 우습지만 않고 슬프다. 그리고 또 즐겁게 읽혔다. 다시 읽어도 즐거울 것이다. 내용을 아는데도 다시 읽어도 즐거운 것은 필자의 유머러스한 말솜씨에 있다. 우습지만 얼른 잊히지 않는 것, 무슨 글이나 그런 글은 좋은 글이다.
그믐날
김상용
연말이 되니, ‘외상값’이 마마 돋듯 한다. 고슴도치는 제가 좋아서 외를 진다. 그러나 그는 심성이 원래 지기를 좋아해서 빚을 진 것은 아니다. 굳이 결벽을 지켜보고도 싶어하는 그다. 그러나, 벽(癖)도 운이 있어야 지키는 것 -한데 운이란 원래 팔자소관이라 맘대로 못하는 게다. 그도 어쩌다 빚질 운을 타고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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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은 섣달입니다. 이달엔 끊어줍쇼” 한다.
언즉시야(言則是也)다. 정월서 열두 달이 갔으니 섣달도 됐을 게다. 섣달에 청장(淸帳)하는 법쯤이야, 근들 모를 리가 있겠느냐?
또한 “줍쇼, 줍쇼” 하는 친구들도 꼭 좋아서 이런 귀찮은 소리를 외며 다닐 것은 아니다. 그들도 받을 것은 받아야 저도 살고, 남에게 줄 것도 줄 게 아닌가? 듣고 보면, 그들에게 더 눈물겨운 사정이 있을 적도 많다. 그러나, 손에 분전(分錢)이 없을 때 이러한 이해성은 수포(水泡)밖에 될 것이 없다. 정(情)도 그러하고 의(義)도 역시 그러하나, 현실의 얼음은 풀릴 줄을 모를 때 그의 ‘딜레마’엔 비애의 구름이 가린다.
“물론 주지, 그믐날 줄 게니 집으로 오소” 하였다.
그는 이 순간 감히 물론을 ‘주지’ 위에 붙일 정도로 돈 끼호떼가 되었다. 그러나, 이 ‘물론’이 전연 영(零)에서 출발한 물론은 아니다. 그도 4년 전에 50원 하나를 어느 친구에게 꿔준 일이 있다. 딱한 사정을 듣고 나서, “무슨 방도로라도 그믐께쯤은 갚아드리리다” 하는 답이었다. 이것이 그에게, ‘물론’을 뱉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빚을 얻고 그 빚을 4년이나 못 갚았다면, 그 친구의 실력도 짐작할 만하다. 이런 때의 문제는 실력이지, 성의 유무가 아니다. ‘들어올’ 가능성 1에 ‘들어 못 올’ 확실성 9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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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믿다니……과연 어리석지 아니한가? 그도 산술시험에 70점을 맞아본 수재다. 그만 총명으로 이 ‘믿음’의 ‘어리석음’을 모를 리가 없다. 말하자면, 그는 이 ‘어리석음’을 자취(自取)한 데 불과하다.
이런 때 떠내려오는 ‘지푸라기’를 안 잡는댔자, 별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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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그는 ‘그믐’이란 안질환자의 파리채로 빚쟁이들을 쫓아버렸다. 이마를 만져보니 식은땀이 축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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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선악인(善惡人)의 지붕을 택(擇)치 않고 우로(雨露)를 내려준다. 게까지는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채(債)의 권무(權務)를 가리지 않고, ‘그믐’을 함께 보내심은 그 항혜(恒惠)가 지나쳐, 원망의 눈물이 흐른다. 마침내 ‘빚쟁이’들에게 ‘줍쇼’ 날이 오는 날, 그에겐, 주어야 할 ‘그믐날’이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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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기다리는 50원이 나 여깄소 하면야 근심이 무에랴? 그러나, 스무아흐렛날이나, 그믐이 돼도 들어와야 할 50원은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종내 찾아들 줄을 모른다. 그에겐, “물론 주지! 그믐날 집으로 오소” 한 기억이 반갑지 못한 총명 덕에 아직도 새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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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소” 해놓았는지라 ‘빚쟁이’들이 다행 일터까지는 달겨들지 않는다. 평온한 하루 속에 일이 끝났다. 일이 끝났으니 갈 게 아니냐? 제대로 가자면, 그믐날도 되고 하니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게다. 그러나 천만에……이런 때 집으로 가는 건 맨대가리로 마라리 둥지를 받는 것과 똑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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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며오며 만책(萬策)을 생각해본다. 생각해봐야 다방 순례밖에 타계(他計)가 없다. 가장 염가의 호신(護身)피난법이다. 그러는 군자(軍資)는? 그는 다 떨어진 양복 주머니에 SOS를 타전한다. 일금 30전야유(三十錢也有)의 보첩(報牒)! 절처봉생(絶處逢生)은 만고에 빛날 옥구(玉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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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방문을 연다. 뽀이의 ‘드럽쇼’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 소리에 대해 모자를 벗지 아니할 정도로 오만하다. 30전 군자는 그에게 이만한 오만을 가질 권리를 준 것이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활동화보(活動畵報)나 들추면, 세 시간을 있어도, 여섯 시간을 있어도 당당한 이 집의 손님이다. 그는 우선, 거미줄 같은 ‘니코틴’ 망 속에 무수한 삶은 문어대가리를 보았다. 그는 그들을 비예(脫睨)하며 가장 점잖게 좌(座)를 정해본다. 1리(匣)에 투매(投賣)되는 ‘샬랴삔’의 ‘볼가의 뱃노래’는 그 정취가 과도로 애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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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커피' 한 잔을 명하였다. 얼마 아니해 탁(卓) 위에 놓여진다.
‘오 거룩하신 커피잔’ 하고 그의 기도는 시작된다. 어서 염라대왕이 되사. 이 하루를 옭아가 주소서 하는 애원이다. 어쨌든, 그의 군자(軍資)가 핍진(乏盡)키 전에 그는 이날 하루를 착살(鑿殺)해야 할 엄훈(嚴訓)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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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이 열시 반이면, 밤도 어지간히 깊었다. 그는 이 사막에서 세 오아시스를 찾느라 30필의 낙타를 다 잃은 대상(隊商)의 신세다. 그는 지금 가진 것을 다 버린 가장 성결(聖潔)한 처지에 있다.
“지금까지야, 설마 기다리랴?”
“지금 또야 오랴?”
비로소 안도의 성(城)이 심장을 두른다. 거리의 찬바람이 휘 지날 때, 그는 의미 모를 뜨거운 두 줄을 뺨에 느꼈다.
누가 그의 왼볼을 치면, 그는 진심으로 그의 바른볼을 제공했으리라. 문간을 들어서자
“오늘은 꼭 받아가야겠다고 다섯 사람이나 기다리다 갔소” 한다.
이건 누굴 숙맥으로 아나, 말 안하면 모를 줄 아나봐 대꾸를 하고도 싶다. 그러나, 부엌을 바라보자마자, 그의 배가 와락 고파진 이때, 그에겐 그 말을 할 만한 여력이 없다.
그는 꽁무니를 툇마루에 내던졌다. 그리고, 맥 풀린 손으로 신발끈을 끄르려 한 이때다. 바로 이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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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때,
“참 아까, 50원 가져왔습니다!” 한다.
귀야, 믿어라! 이 어인 하늘 음성이냐?
“무어? 50원을 가져와? 50원을!”
이런 때 아니 휘둥그레지면, 그의 눈이 아니다.
자 기적이다! 기적을 믿어라,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래도 기적이 없다는 놈에겐 자자손손 앙화(殃禍)가 내려야 한다. 오 고마우신 기적의 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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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시가 다 뭐냐? 새로 한시, 아냐 세시라도 좋다.
50원아! 가자. 감금된 청백고결(淸白高潔)을 구하러, 50원아 십자군의 행군을 어서 떠나자!
어느 놈이고, 올 놈은 오라, 그래, 너희들의 받을 게 얼마냐? 주마 한 그믐날이다. 주다 뿐일까, 장부의 일언(一言)을 천금 주어 바꿀 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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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지금 공복도 피로도 없다. 포도(鋪道)를 울리는 그의 낡은 구두는 개선장군의 말굽보다 우렁차다.
S상점의 문을 두드린다. 아무 대답이 없다.
고연 놈들! 벌써 문을 닫다니……받을 것도 안 받고 벌써 문을 닫었어, 고연 놈들!
“문, 열우.”
하고 또 문을 두드린다.
“누구십니까?”
한참 만에야 문이 열렸다.
“내요 돈 받으소, 아까 왔드래는 걸, 어 마침, 친구에게 붙들려서……하하, 친구에게 붙들리면 어쩔 수가 없거던……”
“그렇습죠! 하하!”
“줍쇼” 때에 비해 그의 음성은 간지러울 정도로 보드랍다.
“어 한데, 사람이란 준대는 날은 줘야지! 그렇지 않소, 어 헌데, 모두 얼마드라……”
S상점의 셈을 마치고 다시 개선장군의 말굽소리를 내며, 그는 다음 상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라 하였으나 아마 자기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3인칭을 만든 것은 자기를 좀 더 풍자적으로 다루어보려는 자기에의 야심이다. 자기를 시켜 돈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비장한 복수가 아니라 ‘한번 그래보는’ 정도다. 낙관이다. 그러나 인생의 엄숙한 일면의 표현이다.
시선(施善善)에 대하여
변영로
며칠 전에 어느 걸인 하나를 보고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독일의 염세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시선(施善)이란 걸인으로 하여금 그 빈궁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빈궁상태를 연장하여주는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총명한 말이다.
걸인을 근본적으로 그 걸식상태에서 구하지 않고 자기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한도 안에서 분전척리(分錢隻匣)를 급여하는 것은 걸인생활을 연장하여줌만 아니라, 비록 걸인에겔망정 용서할 수 없는 인간적 모욕일 것이다.
이론 일방(一方)으로는 어디까지 그러하나 그 걸인을 근본적으로 구제할 만한 방편이 없는 이 불완전한 사회제도가 완전화할 때까지는 완전화한다는 것은 일개의 망상일는지는 모르나 고식적(姑息的)이고 불철저하나마 노방(路傍)에서 기한(飢寒)으로 우는 걸인에게 “걸인상태를 연장하는 것이니라” 하는 엄숙한 주의 표방하에 본 체도 않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분동(分銅)이나마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인생은 주의와 이론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논설보다 오히려 찌름이 빠르다. 수필도 논문과 다름없이 늘 비평정신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다락루(多樂樓) 야화(夜話)
양주동
가을과 독서. 이 두 가지를 생각할 때 얼른 연상에 떠오르는 것은 “구양자(歐陽子) 방야독서(方夜讀書)”를 모두(冒頭)로 한 「추성부(秋聲賦)」와 예의 “신량입교허(新凉入郊墟), 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이란 구가 있는 퇴지(退之)의 권학편(勸學篇)이다. 편집 선생이 나에게 이 제목을 줌도 생각건댄 때가 등화(燈火)를 친(親)할 만한 계절에 가까웠기 때문이겠다.
한유(韓愈)가 아들에게 준 그 시 가운데 내려가다가 “사람이 학문이 없으면 마우이금거(馬牛而襟椐)”란 구가 있다. 왜 안짝은 기억하지 못하고 바깥짝만 기억하느냐 하면 바깥짝에는 ‘이(而)’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而)자를 포함한 이 일구가 나로 하여금 20여 년 전 옛날 가을밤의 독서를 연상하게 한다.
열두 살 때에 신학문을 뜻하고 멀리 서경(西京)에 급(芨)을 부(負)하였던 나는 1년 후에 연명(淵明)의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원(牧園)에 돌아와 즐기는 한문을 독습(獨習)하였었다. 나의 촌에는 ‘서당’이 있었으나 훈장 되는 이가 글자대로 초학 훈장이라 속문(屬文)은 어림도 없는 터이었다. 아이들이 배우는 「연주시(聯珠詩)』인가 하는 책에
“전군야전도하북(前軍夜戰渡河北), 이보생금토욕혼(已報生擒吐谷渾)”
이란 구가 있었는데, 해선생(該先生)이 흉노명(匈奴名) ‘토욕혼(吐谷渾)’을 알 리가 없는지라 “이미 생금(生擒)을 보(報)하여 곡혼(谷渾)을 배앝았다” 새기므로 그 의(義)를 물은즉 “곡혼은 지명(地名)인데 적국이 그것을 먹었다가 도로 배앝았다”고 궁한 끝에 현묘(玄妙)한 대답을 하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야말로 소화(笑話)에 나오는 대로 ‘수아이사(遂餓而死)’를 ‘드디니까 아 하고 죽었다’ 하는 식의 선생이고 보니 아무리 초학일망정 『맹자(孟子)』과 『수호(水滸)』과 『방옹집(放翁集)』 『태평광기(太平廣記)』를 보던 나로서는 그에게 배울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에 서당에는 가더라도 글은 독습하기로 하였다.
그러면 나의 그때 한문실력은 어떠한가. 지금도 그러하거니와 애초부터 독학무사(猫學無師)인 데다가 모를 데를 만나면 예의 ‘독서불구심해(讀書不求甚解)’를 표어로 내세우는 판이니 문리(文理)는 다소 낫다 하더라도 워낙 황당한 지식에 껄렁한 해석이 많았다. 그때 보았던 ‘『소림광기(笑林廣記)』란 책에 모 촌학구(村學究)가 「적벽부(赤壁賦)」를 읽는데 부(賦) 자를 적(賊)자로 오인하여 ‘전적벽적(前赤壁賊!)!’ 하니까 마침 도적이 앞벽에 숨었다가 대경하여 뒷벽으로 피한즉 이윽고 ‘후적벽적(後赤壁賊)!’ 하는지라 도적씨 실색 도주하면서 “차가에 불용축구(不用畜狗)”라고 감탄하였다는 소화(笑話)가 있던 것이 생각나거니와 나도 그「적벽부(赤壁賦)」를 읽는데 벽두(劈頭)에 가로되,
“임술지추칠월(壬戌之秋七月)에 기망(旣望)이러니 소자(蘇子)가 여객(與客)으로……”
하였다. 내 딴에는 ‘기망(旣望)’을 ‘진작부터 선유(船遊)를 희망하였던 바’의 뜻으로 해석하였더니 16이 ‘기망’이라 함은 그 후 매부 되는 이에게 들은 파천황의 신지식이다. 『맹자』를 읽다가 “백이피주(伯夷辟紂), 거북해지빈(居北海之濱)”에 이르러 ‘벽(辟)’이 ‘피(避)’와 통하는 줄을 모르고 ‘백이벽주’라 고성대독(高聲大讀)하던 것도 그때이다.
이런 정도로서 낮에 재미있게 제서(諸書)를 섭렵하다가는 밤이면 동중(洞中)의 ‘다사(多士)’들과 함께 모여서 글을 읽다가 혹은 촉각시(燭刻詩)를 짓고 혹은 사운(射韻)을 하여가면서 밤 가는 줄을 몰랐다. 장소는 나의 매부 되는 이의 뜰 앞에 있는 서루(書樓)에서다. 나의 매부는 사형제가 모두 한학에 능하여 시나 문(文)으로 일읍(一邑)에 이름을 떨치는 ‘문한가(文翰家)’였다. 따라서 그 서루도 해학미 있게 좌(左)에 편(扁)하되 '다락루(多樂樓) 우(右)에 편하되 ‘정좌정(靜坐停)’이라 하였다. 좌중에는 동내(洞內)의 제사(諸士)가 나를 합하여 무릇 십여 인.
위에 말한 이(而) 자 이야기는 이 회석(會席)의 일과목(一課目)인 ‘사운(射韻)’과 연락된다. 사운이란 것은 아는 이는 알려니와 고인(古人) 시구를 많이 외우기 위하여 안출한 놀음이다. 임의의 자를 떠서 그 자를 첫 자로만 시구를 외우고 그 다음 다른 자를 떠서 5언이면 제3자, 7언이면 제4자에 그 자가 있는 구를 외우고 또 그 다음 자를 떠서 그 자가 맨 밑에 있는 구를 외워 이렇게 돌아가면서 많이 외우는 사람을 장원으로 하는데 보통 두 편으로 갈라 승부를 결(決)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 이 놀음의 이름이 '사운'인 줄은 모르고 당초에 누가 초장, 중장, 종장의 의(義)를 감하여 ‘초중종(初中終)’이라 하였던 것이며 와전(訛傳)하여 '초둔장'이 되고 또 누가 잊었던 글을 찾는 놀음이라 하여 ‘초둔장(招遁章)’이라 명역(名譯)한 것이다. 그런데 이 '초둔장' 놀음이 시작되면 보통 인(人), 지(之), 불(木), 위(爲), 천(天) 같은 글자는 고시(古詩)에 많이 나오므로 누구나 능히 한 구씩을 부르지마는 약부(若夫) ‘이(而)’ 자가 중장에나 말장에 나오면 그때 우리 실력으로써는 중장은 누구든지 전기(前記) ‘마우이금거(馬牛而襟裾襟)’를 부르면 기타는 그만 단념하고 마는 소위 ‘독장(獨章)’을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각기 벽자(僻字)가 있는 시구를 찾노라고 비밀히 이서(異書)를 구하다가는 공부를 하였다. 염락(濂洛), 두시(杜詩), 당시선(唐詩選) 같은 것은 공통의 지식인지라 소용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때 서울로 『검남시초(劍南詩鈔)』를 주문하여다가 혼자만 보고 종종 ‘독장(獨章)’을 하였다. 그 『방옹집(放翁集)』 첫머리에 「화진노산(和陳魯山)」 제1수에 ‘회한이목고(灰寒而木枯)’라는 이(而)자 중장을 발견하였을 때 나는 얼마나 광희(狂喜)하였는지! 그러나 이(而) 자 말장이면 아무도 개구(開口)를 하지 못하였다. 지금 같으면 『패문운부(佩文韻府)』의 이자조(而子條)라도 찾아보았으련마는 그때는 아무도 『운부(韻府)』는 보지도 못하였다. 오늘 우연히 『지봉유설(芝峰類說)』을 읽다가 권14 창화조(唱和條)에 소노천(蘇老泉)과 왕형공(王荊公)의 이(而) 자 창화시(唱和詩) '담시구호이(談詩究乎而)’ ‘풍작린지이(風作鱗之而)’ 3구가 있음을 보고 다시금 옛날을 회억(回憶)하였다. 명년 여름에 가면 그 몇 형제분이 또 '초둔장'으로 도전할터이니 이(而) 자 말장은 내가 독장(獨章)을 해야 하겠다.
글 이야기다. 서재로 찾아온 글벗과 더불어 눕거니 기대거니 하고 한적(漢籍)을 뒤적거리며 하는 이야기 같다. 먼저 자기가, 또 자기 주변 사람들이 즐겨야 할 것이 수필이다. 대중은 수필의 독자가 아니다. 여기 수필이 서재문학(書齋文學)인 고고한 일면이 있다.
비 (전반 생략)
정지용
오피스를 벗어나왔다.
레인코트 단추를 꼭꼭 잠그고 깃을 세워 터가리까지 싸고 쏘프트로 누르고 박쥐우산 알로 바짝 들어서서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가리어 디디는 것이다.
버섯이 피어오르듯 후줄그레 늘어선 도시에서 진흙이 조금도 긴치 아니하려니와 내가 찬비에 젖어서야 쓰겠는가.
안경이 흐리운다. 나는 레인코트 안에서 옴츠렸다. 나의 편도선을 아주 주의하여야만 하겠기에 무슨 정황에 뽈 베를렌의 슬픈 시 거리에 내리는 비를 읊조릴 수 없다.
비도 추워 우는 듯하여 나의 체열(體熱)을 산산히 빼앗길 적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같이 날씬하여지기에 결국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였다.
여마(驪馬)처럼 떨떨거리고 오는 흰 버스를 잡아탔다.
유리쪽마다 빗방울이 매달렸다.
오늘에 한해서 나는 한사코 빗방울에 걸린다.
버스는 후루룩 떨었다.
빗방울은 다시 날아와 붙는다. 나는 헤어보고 손가락으로 비벼보고 아이들처럼 고독하기 위하여 남의 체온에 끼인 대로 참하니 앉아 있어야 하겠고 남의 늘어진 긴 소매에 가리운 대로 잠착해야 하겠다.
빗방울마다 도시가 불을 켰다. 나는 심기일전하였다.
은막(銀幕)에는 봄빛이 한창 어울리었다. 호수에 물이 넘치고 금잔디에 속잎이 모두 자라고 꽃이 피고 사람의 마음을 꼬일 듯한 흙냄새에 가여운 춘희(椿姬)도 코를 대고 맡는 것이다. 미칠 듯한 기쁨과 희망에 춘희는 희살대며 날뛰고 한다.
마을 앞 고목 은행나무에 꿀벌 떼가 두룸박처럼 끌어나와 잉잉거리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뛰어나와 이 마을지킴 은행나무를 둘러싸고 벌 떼 소리를 해가며 질서 없는 합창으로 뛰고 노는 것이다. 탬버린에 하다못해 무슨 기명 남스래기에 고끄랑 나발 따위를 들고 나와 두들기며 불며 노는 것이다. 춘희는 하얀 칠칠 끌리는 긴 옷에 검정띠를 띠고 쟁반을 치며 뛰는 것이다.
동네 큰 개도 나와 은행나무 아랫동에 앞발을 걸고 벌 떼를 집어삼킬 듯이 컹컹 짖어댄다.
그러나 은막에도 갑자기 비도 오고 한다. 춘희가 점점 슬퍼지고 어두워지지 아니치 못해진다. 춘희가 콩콩 기침을 할 적에 관객석에도 가벼운 기침이 유행한다. 철후의 탓으로 혹은 다감한 청춘사녀(士女)들의 폐첨(肺尖)에 붉고 더운 피가 부지중 몰리는 것이 아닐까. 부릇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춘희는 점점 지친다. 그러나 흰나비처럼 파닥거리며 흰동백꽃에 황홀히 의지하련다. 대체로 다소 고풍스러운 슬픈 이야기라야만 실컷 슬프다.
흰동백꽃이 아주 시들 무렵, 춘희는 점점 단념한다. 그러나 춘희의 눈물은 점점 깊고 세련된다.
은막에 내리는 비는 실로 고운 것이었다. 젖어질 수 없는 비에 나의 슬픔은 촉촉할 대로 젖는다. 그러나 여자의 눈물이란 실로 고운 것인 줄을 알았다. 남자란 술을 가까이 하여 굵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에 있어서는 그럴 수 없다. 여자란 눈물로 자라는 것인가보다. 남자란 도박이나 결투로 임기응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란 다만 연애에서 천재다.
동백꽃이 새로 꽂힐 때마다 춘희는 다시 산다. 그러나 춘희는 점점 소모된다. 춘희는 마침내 일가(一家)를 완성한다.
옆에 앉은 영양(令孃) 한 분이 정말 눈물을 흐트러놓는다. 견딜 수 없이 느끼기까지 하는 것이다. 현실이란 어느 처소에서 물론하고 처치에 곤란하도록 좀 어리석은 것이기도 하고 좀 면난(面暖)하기도 한 것이다. 그레타 가르보 같은 사람도 평상시로 말하면 얼굴을 항시 가다듬고 펴고 진득히 굴지 않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먹새는 남보다 골라서 할 것이겠고 실상 사람이란 자기가 타고 나온 비극이 있어 남몰래 앓을 병과 같아서 속에 지녀두는 것이요 대개는 분장(扮裝)으로 나서는 것임에 틀림없다.
어찌하였든 내가 이 영화관에서 벗어나가게 되고 말았다.
얼마쯤 슬픔과 무게를 사가지고.
거리에는 비가 이때껏 흐느끼고 있는데 어둠과 안개가 길에 기고 있다. 타이어가 날리고 전차가 쨍쨍거리고 서로 곁눈 보고 비켜서고 오르고 내리고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이 모두 영화와 같이 유창하기는 하나 영화처럼 곱지 않다. 나는 아주 열(熱)해졌다.
검은 커튼으로 싼 어둠 속에서 창백한 감상이 아직도 떨고 있겠으나, 나는 먼저 나온 것을 후회치 않아도 다행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시 한 떼를 지어 브로마이드 말려들어가듯 흡수되는 이들이 자꾸 뒤를 잇는다.
나는 휘황히 밝은 불빛과 고요한 한구석이 그리운 것이다. 향그러운 홍차 한 잔으로 입을 축이어야 하겠고, 나의 무게를 좀 덜어야만 하겠고, 여러 가지 점으로 젖어 있는 나의 오늘 하루를 좀 가시우고, 골라야 견디겠기에 그러나 하루의 삶으로서 그만치 구기어지는 것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후략)
비오는 날, 몸이 좀 고달픈 날, 영화 「춘희(椿姬)」를 구경한, 이야기라기보다 서경(敍景)이요 서정(抒情)이다. 아름답다. 전아(典雅), 진밀(鎭密)하다. 시경(詩境)을 산문으로 나타냈다. 수필의 포용력은 무한하다.
청가표 인간
최재서
시골서 가주 올라온 얼치기가 날씨가 추우니까 백화점 양복부에 가서 외부를 사 입고 의기양양하여 나온다. 뒷장 등엔 ¥25.00의 정가표를 붙이고 흔히 보는 광경이다.
하다못해 3, 4원짜리 셋방을 얻더라도 명함이 필요한 세상이니 문단엔들 명함이 고맙지 않을 리가 없다.
“그 사람 무엇하는 사람인가?” “아 그 유명한 소설가를 몰라, 000를 쓴?” “응 그래! 그런데 어딜 다니노?” “○○학교 영어선생이지.” “옳지!”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는 듯이 수긍한다.
그러나 문인은 이런 세속적 명함 이외에 또 문학적 명함이 필요하다. 보통 명함에도 견서(肩書)가 2층 3층으로 있다시피 문학적 명함에도 여러 층이 있다. 왈 ‘평론가 000주의 ㅇㅇㅇ론자 모모’ 문인도 이만큼 분업이 되지 않으면 우선 편집자의 명부에 오르지 못하는 모양이다.
펠랑데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의 사회적 역할을 떠나서 인간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즉 그는 일정한 목적을 향하여 일정한 사회적 코스를 밟는 성격자이다. 그러나 만일에 그가 성격자에 그치지 말고 그 성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혹은 반항하려고 하는 개성을 전연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성격자에게 성공의 월계관을 받드는 동시에 경멸의 조소를 보내야 마땅하겠다.
진실한 의미에 있어 개성의 소유자라면 우리는 그에게 어떠한 레테르를 붙여야 옳을까. 오직 ‘위대한 예술’라는 레테르가 있을 뿐이다. 과거에 있어서 괴테나 셰익스피어가 그러했고 현대에 있어서 지드가 그러하다.
편집자의 명부에서 분류된 레테르를 붙이고 득의만면하여 횡행(橫行)하는 친구들은 ¥25.00의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시골뜨기와 마찬가지로 정가표 인간이다.
무슨 가(家), 무슨 주의자(主義者)로 안처(安處)하는 소승문학인 (小乘文學人)에게 놓는 정문일침(頂門一鍼)이다.
이렇게 수필은 엄숙한 계획이 없이, 가볍게 손쉽게 무슨 감상이나, 무슨 의견이나, 무슨 비평이나 써낼 수가 있다. 인생을 말하고 문명을 비평하는 데서는 작은 논문일 수 있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경치나 감정을 표현할 때는 작은 작품들일 수 있다.
끝으로 수필의 요점을 들면,
(1) 너무 길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길어도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라야 한다.
(2)상(想)이나 문장이나 자기 스타일은 살리더라도 이론화하거나 난삽해서는 안 된다. 수필의 맛은 야채요리처럼 가볍고 산뜻한 데 묘미가 있다.
(3) 음영을 관찰해야 한다. 어떤 보잘것없는 사람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다 인생의 음영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보다 음영으로 움직이는 것을 표현해주는 데 현묘한 맛이 있다.
(4)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겸허한 경지라야지, 초연해서 아는 체, 선한 체, ‘체’가 나와서는 능청스러워지고 천해지고 만다.
(5) 예술적이어야 한다. 수필은 보통의 기록문장은 아니다. 어떤 사물을 정확하게만 기록해서 사물 그 자체를 보도 · 전달하는 데 그치면 그것은 문예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기의 감정적 인상, 주관적인 느낌과 생각을 갖고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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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境) ①시의 경지. ②시흥을 불러일으키거나 시정(情)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경지.
명색수포철학(名色水泡哲學) 허울만 좋을 뿐 물거품인 철학,
고혹(蠱惑) 남을 홀림,
색인(索引) 묶어서 당김
풍일(豊溢) 많아서 차고 넘침.
토구(討究) 사물의 이치를 따져 가며 연구함.
질구(疾驅) 빨리 달림.
상도(想到) 생각이 어떤 곳에 미침.
은성(殷盛) 번화하고 풍성함.
청기(淸奇) 맑고 기이함,
적발동부(赤髮銅膚) 붉은 머리에 구릿빛 피부
두렁이 어린아이의 배와 아랫도리를 둘러서 가리는 치마같이 만든 옷.
금제(禁制)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게 말림. 또는 그런 법규.
여북하면 오죽하면,
외(櫻) 흙벽을 바르기 위해 벽 속에 엮은 나뭇가지,
벽(癖) ①무엇을 치우치게 즐기는 성벽(性癖), ②고치기 어렵게 굳어버린 버릇.
언즉시야(言則是也) 말인즉 옳음.
청장(淸帳) 장부(帳簿)를 청산한다는 뜻으로, 빚 따위를 깨끗이 갚음을 이르는 말.
분전(分錢) 푼돈,
자취(自取) 잘하든 못하든 자기 스스로 만들어 그렇게 됨.
우로(雨露) 비이슬,
채(債)의 권무(權務) 빚을 받을 권리와 빚을 갚아야 할 의무,
항혜(恒惠) 한결같이 변함없는 은혜.
마라리 말벌,
만책(萬策) 만 가지 계책,
타계(他計) 다른 계책,
군자(軍資) ① 군사상 필요한 모든 자금. ②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금 30전야유(三十錢也有)의 보첩(報牒) 30전이 있다는 통지,
절처봉생(絶處逢生) 오지도 가지도 못할 막다른 판에 요행히 살길이 생김.
옥구(玉句) 옥같이 귀한 문구.
활동화보(活動畵報) 영화잡지.
비예(脫睨) 흘겨봄.
리(匣) 화폐의 단위. 1원(元)의 1000분의 1, 1전(錢)의 10분의 1에 해당.
투매(投賣) 손해를 무릅쓰고 상품을 싼 값에 팔아 버리는 일.
핍진(乏盡) 재물이나 정력 따위가 모두 없어짐.
착살(鑿殺) 뚫어 죽임.
엄훈(嚴訓) 엄한 훈계
대상(隊商) 사막이나 초원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에서, 낙타나 말에 짐을 싣고 떼를 지어 먼 곳으로 다니면서 특산물을 교역하는 상인집단
성결(聖潔) 거룩하고 깨끗함.
양화(殃禍) ①어떤 일로 인해 생기는 재난 ②지은 죄의 앙갚음으로 받는 재앙.
시선(施善) 좋은 일을 베풂. 여기서는 동냥질에 응하는 일.
분전척리(分錢隻匣) 푼돈,
고식(姑息) 잠시 숨을 쉰다는 뜻으로, 당장에는 탈이 없고 편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노방(路傍) 길가,
기한(飢寒)굶주리고 헐벗어 배고프고 추움.
분동(分銅) 푼돈,
구양자(歐陽子) 방야독서(方夜讀書) ‘구양수가 바야흐로 밤에 책을 읽는데.’
모두(冒頭) 말이나 글의 첫머리,
신량입교허(新凉入郊墟), 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 ‘맑고 시원한 기운이 들판에 이니 점차 등불과 가까이할 수 있네.’
마우이금거(馬牛而襟椐) ‘말이나 소에 옷을 걸쳐놓은 격’이라는 뜻. 무식한 사람을 가리킴. 전체 문장은 “人不通古今(인불통고금), 馬牛而襟椐(마우이금거).”
서경(西京) 평양의 별칭. 고려시대에, 사경(四京) 가운데 하나로 설정했음.
급(芨)을 부(負)하였던 ‘책 상자를 짊어졌던 공부하러 간다는 뜻.
고원(故園) ① 뜰. ②고향.
독습(獨習) 스승 없이 혼자 배워서 익힘,
속문(屬文) 문구를 얽어서 글을 지음. 작문(作文),
전군야전도하북(前軍夜戰渡河北), 이보생금토욕혼(已報生擒吐谷渾) '선발대가 밤에 싸우려고 하북을 건넜는데 이미 토욕혼군을 잡았다고 하네.
해선생(該先生) 그 선생.
토욕혼(吐谷渾) 4세기 초에 티베트계 유목민이 중국 칭하이(靑海) 지방에 세운 나라. 5호 16국 시대부터 세력을 떨쳤으나 663년에 토번에게 망했다.
생금(生擒) 산 채로 잡음.
소화(笑話) 우스운 이야기.
수아이사(遂餓而死) 드디어 굶어 죽었다.
독학무사(獨學無師) 홀로 배워 스승이 없음.
독서불구심해(讀書不求甚解) 책을 읽음에 지나친 이해를 구하지 않음.
문리(文理) 글의 뜻을 깨달아 아는 힘.
촌학구(村學究) ①시골 글방의 스승. ②학식이 좁고 고루한 사람.
전적벽적(前赤壁賊) 후적벽적(後赤壁賊)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앞 적벽에 적! 뒤적벽에 적!'이라는 뜻임. 이것은 전·후 두 편으로 되어 있는, 소동파(蘇東坡)의 「전적벽부(前赤壁賦)」와「후적벽부(後赤壁賦)」를 잘못 읽은 것임.
대경(大驚) 크게 놀람.
실색(失色) 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짐.
차가(此家)에 불용축구(不用畜狗) ‘이 집은 개를 기를 필요가 없겠다.’
벽두(劈頭) 글의 첫머리,
임술지 추칠월(壬戌之秋七月)에 기망(旣望)이러니 소자(蘇子)가 여객(與客)으로 ‘임술년 가을 7월 16일에 소동파가 객과 더불어.’
기망(旣望) 음력으로 매달 열엿샛날. 여기서 양주동은 ‘이미(旣) 바란(望) 바’라고 잘못 해석했음.
선유(船遊) 뱃놀이
파천황(破天荒)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해냄,
백이피주(伯夷辟紂), 거북해지빈(居北海之濱) '백이와 숙제가 주(紂)왕을 피해 북해 바닷가에 살았다.‘
고성대독(高聲大讀) 크고 높은 목소리로 글을 읽음.
제서(諸書) 여러 책.
동중(洞中) 마을 안.
다사(多士) ①여러 선비. ②많은 인재(人材),
촉각시(燭刻詩) 초에 금을 그어놓고 촛불이 거기까지 타들어가기 전에 짓는 시. 짧은 시간 안에 짓는 시.
서루(書樓) 책을 넣어 두거나 서재로 쓰는 집.
문한가(文翰家) 대대로 글과 글씨의 재주가 있는 사람이 난 집안,
편(扁)하다 종이, 비단, 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다.
다락루(多樂樓) 즐거움이 많은 다락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음이 같은 글자를 써서 재미있게 만든 말임.
제사(諸士) 여러 선비.
회석(會席)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임. 또는 그런 자리.
결(決)하다 결단하거나 결정하다.
약부(若夫) 만약,
벽자(僻字) 흔히 쓰지 않는 야릇하고 까다로운 글자.
이서(異書) 그리 흔하지 않은 진기한 책,
염락(濂洛) 『염락풍아(濂洛風雅)』를 일컫는 말. 송대 성리학자들의 시집. 원나라 때에 김이상이 펴냈음.
검남시초(劍南詩鈔) 송나라 시인 육유(陸遊)의 시를 뽑은 책. 청나라 때 오지진(吳之振)이 편찬했음. 방옹(放翁)은 육유의 호,
회한이목고(灰寒而木枯) ‘추위가 닥쳐 나무가 마르다.’
광희(狂喜) 미칠 듯이 기뻐함.
개구(開口) 입을 열어 말을 함.
패문운부(佩文韻府) 청나라 때 강희제의 명에 따라 장옥서 등이 운(韻)에 따라 분류. 편찬한 중국의 어휘용례집.
지봉유설(芝峯類說) 1614년에 이수광(李睟光)이 지은 책. 여러 분야에 걸쳐 지식을 담고 있음. 회억(回憶) 돌이켜 추억함.
명년(明年) 다음해 내년(年).
한적(漢籍) 한문으로 쓴 책.
터가리 '아래턱'의 방언,
박쥐우산 펴면 박쥐가 날개를 편 것과 같은 모양이 되는 우산
긴치 아니하다 긴요하지 않다.
산산히 좀 싸늘한 느낌이 있게.
여마(驪馬) 당나귀.
잠착(潛着)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골똘하게 씀.
춘희(椿姬) 프랑스의 소설가 뒤마가 지어 1848년에 발표한 장편 연애소설. 늘 동백꽃을 달고 있는 병든 창부(娼婦) 마르그리뜨와 청년 아르망의 비극적 사랑을 그렸음. 여기선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속 주인공을 가리킴.
두룸박 ‘두레박’의 방언,
기명(器皿) 살림살이에 쓰는 그릇을 통틀어 이르는 말,
남스래기 남은 부스러기 따위를 이르는 말. 남스렁이,
절후(節候) 절기, 계절,
사녀(士女) ①남자와 여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 남녀, ②신사와 숙녀를 아울러 이르는 말.
폐첨(肺尖) 허파 꼭대기
영양(令孃) 남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
느끼다 서럽거나 감격에 겨워 울다.
면난(面暖) 낯 뜨거움. 원래는 '면난(面赧)'으로 씀.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스웨덴 출신의 미국 영화배우,
먹새 ①먹음새. ② 먹성.
전아(典雅) 바르고 아담해 품위가 있음.
진밀(縝密) 곱고 세밀함.
가주 갓. 이제 막
견서(肩書) ‘직함’이라는 뜻의 일본말
득의만면(得意滿面) 일이 뜻대로 이루어져 기쁜 표정이 얼굴에 가득함.
횡행(橫行)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함.
안처(安處) ①아무런 탈 없이 평안히 지냄. ②출가한 중이 일정한 기간 동안 외출하지 않고 한곳에 머무르면서 수행하는 제도,
소승(小乘) 수행을 통한 개인의 해탈을 가르치는 교법. 여기서는 기존의 틀에 안주하는 문학인을 비꼬는 말로 쓰였음.
정문일침(頂門一鍼) 정수리에 침을 놓는다는 뜻으로, 따끔한 충고나 교훈을 이르는 말.
-이태준 『문장강화』 중에서
2025. 4. 13
맹태영 옮겨 적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