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야 하기에 죽이는 것뿐이다'
보리밭을 걸어가는 한 남자의 손. <글래디에이터>의 시작은 매우 암시
적이며, 그것은 감독이 말하는 이 영화의 주제 '삶과 죽음'과 맞닿아 있
다. 인간만사 공수래공수거.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목숨을 건 싸움
에 불려나가 매일처럼 피를 뒤집어 써야 하는 막시무스에게 가장 어울리
는 인생의 교훈이다.
때는 서기 180년 로마제국.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게르만족과의 일대 결전장에 나섰다. 선봉
장은 막시무스. 몇 군데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막시무스 가는 곳에 승리뿐이다. 전장에 달
려온 황제 후계자 코모두스는 씁쓸한 치하의 말을 남긴다. 아우렐리우스는 너무나 공정한
왕이었을까? 왕의 자질이 부족한 아들 대신 위엄 있는 막시무스로 왕위를 이으려고 하고,
이 사실을 안 코모두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막시무스의 가족을 몰살한다.
홀로 살아남은 막시무스는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다. 검투사 상인 프록시모는 막시무스를 사
서 자기 휘하에 두며, 막시무스는 최고의 검투사가 되어 명성을 떨친다.
<글래디에이터>는 다분히 역사적인 영화다. 스토아 철학의 정수인 <명상록>의 저자로도
유명한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그의 아들인 폭군 코모두스 등은 실제 인물이다. 이 틈새에 끼
어든 것이 바로 검투사 막시무스. 그는 마치 야사의 주인공처럼 로마 역사의 핵심으로 작용
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코모두스는 측근과 친위대에 의해 살해당했고, 영화 속에서는 코모두스의
죽음 이후 평화가 오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군인 황제 시대가 도래하여 정
치 상황은 훨씬 더 엉망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배경 지식 없이도 <글래디에이터>는 충분히 즐길만하다. 특히 초반
10여 분에 걸친 게르만족과의 전투 장면은, <라리언 일병 구하기>의 도입과도 비교되는 압
권의 액션.
초당 프레임 수를 조절하며 약간 빠르게 혹은 느리게 움직이는 역동적 화면과, 전쟁 현장에
파견된 종군기자의 카메라처럼 생생한 카메라는 심장이 멎을 정도의 위압감을 준다(현장의
지형에 맞춰 트랙을 깔고 그 위에서 카메라를 움직였다).
웅장한 콜롯세움에서 벌어지는 검투 장면도 새로운 볼거리다.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장-레
옹 제롬의 그림
'Pollice Verso'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검투사 액션은, 잘잘한 기교는 없지만 선 굵은
정통 액션의 진면목이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의 정수는 완벽하게 재현된 고대 로마의 모습. 그리피스의 <인톨러
런스>(16)부터 시작된 할리우드의 '로마 강박관념'은 대작 서사극이 유행하던 50년대에 <쿠
오바디스>(51) <성의>(53) <벤허>(59) <스팔타커스>(60) 등으로 이어졌다. 스코트는 이후
40여 년 동안 끊겼던 '로마 영화'의 맥을 이었고, SF의 도구인 디지털 테크놀러지로 그럴싸
한 고대 사극 한 편을 빚어 놓았다.
그렇다면 <글래디에이터>는 스케일과 스펙터클만을 내세운 영화일까? 리들리 감독은 10편
의 전작에서 그랬듯이 그 중심에 인간을 놓으며, 러셀 크로는 콜롯세움 못지 않은 중량감으
로 영화를 압도한다. 이미 이나 <인사이더>에서 선보였던 그의 과묵한 카
리스마는 <글래디에이터>에서도 '꼭 할 말만 하는 사나이'의 위력을 발휘한다. 당대 최고의
파이터로서, 자신의 원수인 황제에게 "야욕에 취해 있을 날도 멀지 않았다"고 경고하는 장
면의 무게감은 러셀 크로만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묘한 섹시한 매력을 풍기는데, IMDB
에서 8.6의 평점(역대 54위)인 <글래디에이터>는 여성들에게 9.2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
다.
또한 <글래디에이터>는 당시의 사회·문화상을 잘 보여준다. 일명 '빵과 서커스' 정책의 일
환으로 시행된 콜롯세움의 검투 경기(80∼404년)에 로마 시민들은 마치 프로야구 시즌의 관
객들처럼 열광하고, 손가락의 위치로 가부를 결정하는 '콜롯세움 대중심리학'은 연구대상이
다.
언제부턴가 '망나니' 역할로 이미지를 굳힌 조아퀸 피닉스의 연기도 볼만하며, 프록시모 역
의 올리버 리드는 아쉽게도 촬영 중에 사망했다(그의 출연 분량 중 2분 정도는 컴퓨터그래
픽에 의해 합성된 것이다).
"죽여야 내가 사니까 죽이는 것뿐이요"라는 막시무스의 대사를 통해 삶과 죽음의 테마를 전
하는 <글래디에이터>. 이 영화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제기하는 질문 하나를 떠올
린다. "나 자신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