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해안관광도로는 연인들의 드라이브코스
싱그러운 햇살이 좋았다. 바람이 불어서 더욱 좋았다. 게다가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올라 천상의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여인네들은 언제나 주변에서만 맴돌 뿐 마땅히 안주할 곳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생각이 나지 않음이겠지. 이런 날 마음 비우고 훌쩍 떠나보자!
서산 땅 밟은 지도 어언 14년 차 되는 중년의 모습. 이대로 썩어 문드러질 육신을 어느 곳에 눕힐 것인가. 가느다란 신음에도 깜짝 놀라 일어서며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이 빠지면, 그땐 어느 모습이려는가.
아, 드넓은 바다와 푸른 안면송이 어우러진 곳에서 나를 부른다. 서산에서 태안을 경유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장을 가노라면 가을날 꽃게 축제의 마당인 백사장해수욕장이 눈에 띄게 되는데 그 이정표를 보고 좌로 핸들을 꺾으면 바로 <태안해안관광도로>가 이어진다.
2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되어 지난 4월19일부터 전면개통이 되었는데 이 도로는 전 구간이 108km이며, 2차선으로 소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거창함보다는 어느 인심 좋은 한적한 시골풍경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이번 '2002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개최에 발맞춰 교통대책에 큰 역할을 했으며 개통과 함께 지난달 21일에는 '제1회 전국 구간 마라톤대회 겸 마스터즈대회'를 가졌는데 이곳을 코스로 활용하여 참가선수와 관람객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인 바 있다.
가다가다 보면 오른쪽 해안을 따라 생소하고도 예쁜 이름의 해수욕장이 많이 눈에 띄게 되는데 백사장해수욕장을 거쳐 삼봉, 기지포, 안면, 두여, 밧개, 방포 등 어쩌면 내 마음의 향수를 그린 것처럼 정감 어린 이름들이라 느껴질 것이다.
드라이브하면서 각 해수욕장을 스쳐 지나노라면 좌측으로 군데군데 다소곳이 아릿땁고 포근한 모습의 민박집이 보인다. 마치 궁전 같기도 하고 테라스가 있는 가정집 같은 모양인데 이곳으로 휴양 목적으로 온 손님들에겐 최고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해안관광도로를 달리다 보면 밭이나 논, 그리고 촉촉이 젖은 땅 위에선 여지없이 물안개가 꿈틀꿈틀 피어오름을 가슴에 담을 수가 있는데 바닷가 근처에 다다르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자욱한 물안개의 절정을 감상할 수가 있다. 요 때 차 세워놓고 뽀뽀 타임.
가도 가도 걷히지 않는 물안개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이 마음은 못내 토해내지 못한 대지의 꿈틀거림에 대한 미련인가. 절규하는 여인의 말 없는 미소 이려는가. 나는 그 물안개 꿈틀거리는 아련함 위에 누워 편안히 쉬고 싶다.
방포해수욕장을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곳. 지난 19일 폐막을 치른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개최 장소인 꽃지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곳은 야외정원과 부속물들은 그대로 유지를 한 채 체육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오는 8월에 재개방을 할 예정으로 있다.
꽃지해수욕장의 바닷가를 걸어 끝에 다다르면 호텔형과 콘도형으로 뭇 연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휴양지의 안식처인 롯데오션캐슬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품격과 분위기를 갖춘 모습.
푸른 바다를 감상하며 시원한 공기를 직접 마신 후 테이블에 앉아 서로 눈 마주하고 거품 있는 생맥주 한잔할라치면 저절로 흐느끼는 색소폰 연주에 블루스 댄스를 하고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낭만 있는 야외 식당도 행인들에겐 유혹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철썩이는 파도와 날으는 갈매기를 가까이에서 느끼노라면 누구든지 詩 한편은 나올만한 분위기와 경치에 빠지리라. 모래 위를 걷는 발자국마다엔 수많은 사연 담아 꼭꼭 묻어놓고 돌아 와 보지만 밀려오는 물살에 어김없이 또 씻겨 나가겠지.
백사장해수욕장에서 약 15분 정도가 소요되는 이곳 태안 해안관광도로는 다른 지역에서 느낄 수 없는 안면송과 크고 작은 해수욕장, 모래언덕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사구, 드넓은 바다가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가슴을 확 트이게 하고 큰 꿈과 이상을 가져다준다.
특히, 해안관광도로의 개통은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호남권과 대전권에서 2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동안 개발에서 소외됐던 안면도 지역이 2000만 수도권 및 중부지역 배후 관광지로 크게 주목받을 수 있는 모습이라 하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본격적인 피서철로 접어 들 것이다. 매년 서해안을 찾는 피서객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갖춘 셈이고 9개소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의 통행과 수산물 운반이 수월해 짐에 따라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과 주민들의 소득증대에도 크게 이바지 할 것이다.
꽃박람회 행사가 모두 성공리에 치러지고 난 후의 도로 곳곳은 그야말로 속 시원히 뻥 뚫린 연인들의 드라이브코스로 손색이 없다.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저 여유와 시간만 가져오면 된다. 아울러 세상사는 아름다운 지혜를 마음껏 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참으로 서산인은 축복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가까이에 명산과 올망졸망 다다를 수 있는 해수욕장이 즐비하고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작성일: 2002/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