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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8년
2월 초
요즘에도 예나 다름 없이 구정을 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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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거의 수직이나 다름없는 북쪽으로, 북쪽으로 고속화 도로를 따라 약 50km 가면 안주시가 나온다.
그곳에서 다시 북, 동쪽으로
약간 커브 진 길을 따라 약 15분 달리면
개천 읍내를 지나
또 곧 바로 직선 길을 따라 약 10분 달리다 보면
묘향산 줄기의
자그마한 첫 골짜기가 시작 되는 평안북도 구장군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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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짜기 바로 입구 오른편 소나무 숲 속에
아담하게 자리한
파란색 골판지 같은 양철 밑에 약 한 뼘 정도 되는 두께의 보온용으로 스치로폴 넣은 지붕에
회색 빛
가로 줄 무늬의 철판 베랑빡으로 된
건물 한 가운데에 일부분이 툭 튀어 나온 현관 문 두 짝이 굳게 닫혀 있는 듯이 보이고
건물 아페는 배꼽 높이로 된
유리창들이
좌우 일렬로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붕 양쪽 끝 모서리에는 약 3m 높이의 피뢰침이 각각 솟아 있고
건물 가운데쯤 되는 지붕에는
남쪽방향으로 기울어진
소 여물 쓰는 가마솥 단지 뚜껑 크기의 접시 안테나인
다 목적용 수신 안테나가 자리하고 있다.
즉
남향으로 지어진 본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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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본관 건물 앞에는
겨우살이에 죽어간 회색 빛 잔디 이파리들로 꽉 찬
그 이파리 틈새엔
좁쌀 크기의 어름 알겡이들이 서걱 서걱 꽉 차있다.
약 300 여 평 넓이의 운동장이 한가히 겨울 햇살을 받고 있다.
그 운동장
왼편에는 스레트 지붕으로 된 부속 건물이 한 채 늘어져 있고
본관과 연결된
지붕만 덩그러니 있는 약 1.5m 폭으로 연결통로가 약 10m 쯤 있다.
그리고는
맨 남쪽에 위치한 그 운동장 귀퉁이에는
정문이 하나 있고
유리창 안으로 기웃거려 보니
먼지 쌓인 석유 난로 한 개가 자리한 조그만 수위실 비슷한 건물이 하나 있다
그 주변을 둘러싼 재산 분계선의 표시는
낮은 하얀색 페인트 칠한 브로크 담장으로 둘러 쳐져있다.
수위실 왼쪽 기둥에는 세로로 된 나무 원목 간판이 하나 있어
이렇게 쓰여져있다.
“묘향산 양지바른 실바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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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곳 실바타운에는
현재
영감텡이, 할망구 총 63명이 살고 있다.
대 부분이
토끼띠, 용, 뱀, 말, 양, 잔나비띠 들이다.
즉
7학년 3반에서
7학년 8반까지 인갑다.
학시리는 잘 모르지만.
구성된 姓 比로 보아
자연의 이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억울한 감이 들기도 한다.
63명의 학생 중엔
할망구가 35명
영감텡이가 28명이다.
얼토당토 맞지 않는 姓 比 임에도 불구하고
그 묘향산 양지바른 실바타운 개원 이래로
아직까지
큰 스켄달이
없을 정도로의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안정된 생활임에 틀림없다.
단
총 인원 숫자가 자주 들쭉 날쭉 바뀐다는 그 점 외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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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에도 구정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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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2028년 설날 아침…….
모두가
아침 기상 시간대에 일어나서 본관 건물 안에 있는 복도를 따라 세면장으로 가서 세수들을 하고 머리를 감고
거울에 얼굴을 비추면서 화운데이션으로 양 볼따구를 토닥이며
빨강색 맆스틱으로
주디에 대고 그려싼다.
그 중엔
까시리도, 민들레도, 건달아짐도 있다.
그리고 대추씨, 꼴통, 멋쟁이 영감텡이드른 턱에 염소털 같은 수염을 면도로 다듬어쌓고
콧 속 삐져 기 나온 털 몇 개를
손꾸락 두개를 합장 하여 힘껏 잡아 당기다가 제체기를 해싼다.
그 묘향산 양지 바른 실바타운에는
클럽 활동 종목이
스포츠 딴쓰반
탁구 반
장기, 바둑 반
고스톱 반
에어로빅 반
게이트 볼 반
뜨개질 반
실에 구슬 꾀는 부업반이 있다.
그래도 설날이라고 그 날 아침 식당에서는 쇠고기 넣은 떡국으로 아침을 갈음 했다.
아침 밥을 먹고 나서
조금 쉬었다가
10시경에 각자가 소속되어 있는 클럽활동반에 가서
지도 교사의 가르침에 열심히 해싼다.
서른 다섯명 할망구 중의
까시리와 건달아짐
그리고
스물 여덟 명중의 영감텡중에 꼴통 은 같은 반인 스포츠 딴쓰반이다.
약 10명 정도 되는 스포츠 딴쓰반에
까시리, 건달아짐, 꼴통 셋은 서로간에 이해심이 많고 매우 가깝게 잘 지내는 편이다.
그 날도 설날 오전 11시경이었다.
겨울이지만
춥기는 하지만
아주 맑고 고운 햇살이 강하게 비추는 화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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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시리는 핑크색 지지미 롱 원피스에 머리엔 스카프를 쓰고
건달 아짐은 그 날 따라 나일론 꽃 가라 몸뻬 바지에
허리춤 고무줄 밖으로 드러낸 빨강색 앙고라 털쉐터를 입었다
그리고 꼴통 영감은
유달리 키가 대추씨만큼 작은데
허리띠가 없는 헐렁한 멜빵 배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다.
한참을
스포츠 딴쓰반 교실에서는 열을 올려가며 음악 소리에 장단을 마차가며 딴쓰를 추고 있는데
딴쓰를 추고 있는데…
추고있는데..
있는데..
딴쓰교실 출입구 문이 뜬금없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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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약 쉰은 족히 넘어 보일
건장한 남자와
부부인듯 해 보이는
아주 키가 작은 아짐씨가 등장 한다.
손엔 선물 꾸러미들을 들고 있는듯 해 보이기도 한다.
그 광경엔
약 열명의 이십개의 눈동자가 모두 그 문짝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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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까시리의
외동 아들 내외였다.
그러니까
약 3년 반 전인
까시리의 연세가 7학년 1반 시절쯤에
까시리는 이곳 묘향산 양지바른 실바타운에 입학을 한 학생이었다.
서울
남산 자락 장충동에 한옥 집에서 쭈욱 살아오다가
능력있는 영감텡이의 월급에만 의존하여 인생을 다 바쳐 오다가
영감텡이 정년 퇴직후
그 영감이 매달 받아오던 궁민년금인 노령년금으로 멫년을 버팅겨 오다가
5년 전에
뇌 경색으로 갑자기 영감이 세상을 하직한 후로는
그래도 영감텡이의 흔적으로 남겨진
몇 퍼센트 삭감된 유족 연금으로 자식과 항꾸네 한 지붕에서 버팅겨 오다가
자식과 매일 얼굴 쳐다봐가며 살아가기도 그리 쉽지않았던지
2024년도에 묘향산 양지바른 실바타운에 입학을 하게 되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온
까시리의 외아들 내외……………
잠시 까시리는 아들 내외와 함께 그 딴쓰장을 나와 휴게실로 갔다.
휴게실
소파에 나라니 안거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간의 피붙이간의 정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미 시집 장가 간 손주들 안부를 묻는 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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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이야기 나누다가
아들 며느리 내외가 장만 해 온
약간의 음식들을
들고
다시 그 딴쓰장으로 가서 풀어 헤친다.
평소에 까시리가 좋아했던
도토리 묵에, 똥그랑땡에, 호박 죽에….
건달 아짐도
꼴통 영감도
나머지 춤꾼들도 둘러 안거서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다.
그나마
일년에 한 두 번이라도 부모를 잊지 않고 멀리에서 이곳까지 찾아주는 자식이 있어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가 하면
피붙이 하나 없이 살고 있는 건달 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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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붙이가 있어도 이미 연락이 끊긴 꼴통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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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사연들을 품에 안고 이곳에서 모여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과연 설의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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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보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