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씨 4년만의 시집 '나무'
`섬진강 시인' 김용택(54)씨가 새 시집 <나무>(창작과비평사)를 묶어냈다. 앞선 시집
<그 여자네 집> 이후 4년 만이다.
시집 <나무>는 나무로 대표되는 무위자연의 삶에 대한 찬미이자 그런 삶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인위와 탐욕에 대한 고발이다. “어린 매화나무가/혼자 눈부시게/서 있”(<봄바람에 실려가는 꽃잎 같은 너의 입술>)는 모습이 시인에게는 한없는 경이와 감사의
대상이다. 강가 미루나무와의 교감을 다룬 표제시 <나무>에서도 시인이 도달하는 나무의 궁극은 “그냥,/있었어”라는 단 두 마디로 요약된다. 무려 열세 페이지에 이르는 산문 장시 <세한도>에서, 고향 마을에서 겨울을 나는 시인은 나무를 닮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에 옮겨 본다.
“해 뜨면 밥 먹고, 해 지면 밥 또 먹고, 어두워지면 불 켜고, 잠 오면 불 끄고 쿨쿨 잔다.”
그러나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이룬 세상”(<봄바람에 실려가는 꽃잎 같은 너의 입술>)은 시인과 나무의 단순소박한 삶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고향마을의 들과 산에는 점령군처럼 중장비들이 진주하고, 그들의 손과 발에 의해 길과 산이 절단난다. 시인은 건설의 굉음에 뿌리뽑히고 쫓겨난 나무와 짐승들을 대신해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대신'이 아님을 <세한도>의 마지막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 아, 시는 망했다. 애애앵 애애애앵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도는 저 산정의 기계 톱날 소리가 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싹둑 자르며 썬득 지나간다.”
고향의 산과 들, 나무와 짐승은 그의 시의 출발이요 든든한 자산이었다. 그것들이 전기톱과 굴착기와 불도저에 의해 도륙당한 것이다. 시의 근거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같은 파괴와 학살에 맞설 유일한 무기가 결국 시라는 사실은 시인의 축복이자 저주이다.
시인은 “푸른 산을 그리며 메마른 땅에 꽂히는 삼대 같은 저 소낙비”(<시의 집>)를
꿈꾸는 존재이며, “시는 죽어가는 것들을 살린다.”(<봄바람에 실려가는 꽃잎 같은
너의 입술>)
지난 5년간 전북 임실군 운암면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서 근무해 온 교사 시인은 새
학기부터 인근 덕치초등학교로 옮겨간다. 덕치초교는 시인의 모교이자 그가 가장 오랫동안 근무했던 학교이기는 하지만, 마암분교를 떠나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방학이 싫을 정도로 아이들과 정이 들었어요. 아이들도 섭섭해서 제 얼굴을 쳐다보려 하질 않고, 저도 마음이 영 심란하네요.”
최재봉 기자
한겨레 200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