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는 고백교회 설립자 중의 한 사람으로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한 반나치 투쟁가입니다. 1943년에 나치에 체포되어 1945년에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1954년 공산주의 동독을 피해 서독으로 피난하는 행렬의 반대 방향으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넘어가는 수백 가구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회퍼 목사의 정신을 따르는 수백 명의 고백교회 목사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강보에 싸인 딸을 안고 묵묵히 동독으로 향하는 호르스트 카스너 (Horst Kasner 1926~2011) 목사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종교가 탄압받는 공산주의 치하를 잘 알고 그 고난의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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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동독에서 목회가 허락되면 허락되는 데로 허락되지 않으면 평범한 동독의 인민으로 성실하게 살아갔습니다. 카스너 목사의 품에 안겨 동독으로 갔던 그 아이가 바로 통일 독일의 수상,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1954~)입니다. 동독과 서독이 비록 이념을 이유로 갈라져 있었지만 본회퍼 목사의 정신을 따르는 카스너 목사와 같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친 티나지 않는 민족애가 있었기에 통일 독일의 기적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본회퍼 목사의 고백교회 정신을 따르는 한국기독교 장로교회가 있습니다. 김재준 목사, 강원용 목사, 문익환 목사, 강희남 목사, 문동환 목사, 은명기 목사, 안병무 박사, 한상열 목사 등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분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노란장미 이상원님의 블로그에서 인용. 밑줄은 인용자)
개학 직전이었던 3월 1일. 성래원 일을 도우러 갔다가 자신을 "'한살'이라고 불러달라"고 소개하는 목사 한 분을 뵈었다. 영산성지사무소에 새로 부임한 소장님의 지인으로, 전주에서 목회일을 하시다가 퇴임하시고 이곳 영산성지의, 특히 삼밭재 기운이 좋아서 달포쯤 지내며 기도를 하실 분이라 하였다. 한 눈에 뵈어도 기운이 맑고, 음성이 화통한데다, 늘 표정이 한결같이 밝으셔서 특이한 목사님이라고만 여겼다. 내가 출가자란 사실을 아시곤, '진리는 서로 통합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기독교와 원불교의 상통하는 점에 대해 대화를 해 봅시다'고 하셔서 내심 대화자리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내 일상이 바쁜 터라 어느 날엔 인근 교당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다 하고, 또 어느날은 누구 누구와 모임 자리를 연다는 말도 들었지만 참석하질 못하고 있었다.
법회에 참석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주말 당직 출근을 채비하던 차에,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떠날 날도 다가오니, 그간 사귄 지인들 모시고 평생 해 오신 통일운동관련 강의를 할까 하는데 짬이 나면 오라는 초대였다. 성래원 육타원님으로부터는, 그간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오시고, 옥살이도 여러 해 하신 분이라 들었기에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수도 있는 진지한 만남이라고 여겨, 직장상사들의 허락을 받고 일과를 쪼개어 참석하였다. 행사도우미였던 윤진교무님 말로는, 처음엔 예닐곱명이었는데, 10명으로 늘어나더니, 20명이 되었다가, 40명으로 참석예정인원이 늘어, 결국 성래원이 아닌 영산교당으로 장소를 옮기게 되었단다. 윤진교무님을 도와 소소한 강연준비를 하자니, 1년 동안 참여했던 인문학까페 헤세이티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았고, '이런 것이 바로 이소성대(以小成大)이지' 싶어 오랜만에 좋은 기운을 음미하기도 하였다.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진 강연회였다. 중간에 아이들을 살피러 잠시 학교로 돌아오긴 하였지만, 온 몸으로 역사의 모순을 뚫으려 한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어떤 고난 앞에도 물러서지 않고 오직 신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신앙인으로서, 대학의 총학생회장-전민련-통일운동가로 이어지는 한 시대의 상징적인 삶의 궤적 속에서, 기독교 목회자 특유의 달변과 거침없는 파토스를 뿜는 설교자이자 선동가로서의 면모를 중층적으로 느낄 수 있는 풍성한 자리였다.
그러다 강연을 듣는 내 안에 갑자기 한 이름이 떠올랐다. 내가 섬기는 두 분 선생의 스승이셨던 철학자 '윤노빈'. 한번도 뵌 적이 없지만(-83년에 홀연히 월북하셨다), 계기마다 떠오르는, 이제는 기억하는 이조차 손꼽을만한 내 선생들의 선생이셨던 그 분을, 한상열 목사를 만난 덕분에 다시 한 번 기리고, 기념하고자 한다. 색신은 사라져도, 본회퍼의 이름이 기억되듯, 그분의 형형하게 빛을 발하던 얼이 유일무이한 저서 <신생철학>과 함께, 역사 속에 살아 숨쉬길 기원한다. 주말이 되면 <신생철학>을 다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