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비공개 입니다
지리산둘레길 10구간(위태-하동호)
여행일 : ‘22. 2. 5(토)
소재지 : 경남 하동군 옥종면과 청암면 일원
여행코스 : 위태마을(1.9km)→지네재(0.6km)→오율마을(2.2km)→궁항마을(2.2km)→양이터재(2.6km)→나본마을(2km)→하동호(거리 및 시간 : 11.5km/ 실제는 11.07km를 3시간 20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1,915m)은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남원·구례·함양·산청·하동)에 걸쳐있다. 또한 아흔아홉 계곡과 500여 개의 자연마을을 품는다. 그 지리산의 둘레를 걷기 길로 이은 게 ‘지리산 둘레길(현재 20개 읍·면, 100여 개의 마을을 지난다)’이다. 오늘은 10구간인 위태-하동호 구간을 걷는다. 7개 코스(68km)로 이루어진 하동 권역의 첫 번째 구간으로 거리는 11.5km 밖에 되지 않으나 상당히 높은 고개를 3개나 넘어야하는 탓에 난이도가 ‘상’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롯이 걷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마을안길·숲길·계곡길·호반길·임도 등을 두루두루 걸으며 다양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는 것도 장점이라 하겠다.
▼ 들머리는 위태마을(하동군 옥종면 위태리)
통영-대전고속도로 단성 IC에서 내려와 20번 국도를 타고 지리산(중산리) 방향으로 달리다가 창촌삼거리(산청군 단성면 창촌리)에서 좌회전 1005번 지방도, 월회리 삼거리(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서 1014번 지방도, 마지막으로 회신삼거리(하동군 옥종면 회신리)에서 우회전하여 59번 국도로 옮기면 잠시 후 위태마을에 이르게 된다.
▼ 위태마을(하동군 옥종면)에서 하동호관리사무소(하동군 청암면 평촌리)까지로 거리(11.5km)에 비해 난이도가 높은 코스이다. 위태리에서 지네재, 오율마을에서 궁항리, 궁항리에서 양이터재에서 만만찮은 오르막을 만나기 때문이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인데도 오롯이 둘레길 순례자들의 차지가 되어버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고갯길·호숫가길·개울길 등이 조화로운 옛길을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며, ‘인월-금계’에 이어 ‘가장 좋았던 길, 제일 기억에 남는 길’ 2위로 꼽는 기사도 있었다.
▼ 지난번 9구간 때 발견하지 못했던 시·종점 엠블럼(emblem)은 체육공원 앞에 세워져 있었다. 체육공원 옆에 있는 버스정류장과 간이화장실을 쉽게 이용하라는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이정표랄 수 있는 벅수(하동호 11.5㎞←위태→덕산 9.7㎞)는 이곳에서 150m쯤 떨어진 지점(9코스가 53번 국도와 처음으로 만나는 곳)에 있다.
▼ 체육공원 근처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입구에 벅수(하동호 11.3㎞/ 위태 0.2㎞)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잖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 이곳 위태마을은 진등·안몰·중몰·괴정지 등의 자연부락을 합한 행정 단위이다. 마을회관이 있는 이곳 ‘진등’은 마을 뒤에 긴 산등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둘레길은 이곳 ‘진등’에서 서쪽에 위치한 ‘안몰’로 이어진다.
▼ 마을 앞에는 ‘상촌제’라는 자그마한 저수지가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지만 일제 때 팠다니 그 역사만큼은 무시할 수 없겠다. 마을의 옛 이름인 ‘상태’를 아직까지 고집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위태’는 새로 얻은 지명이다. 지난 2003년, 청암면에서 옥종면으로 마을이 넘어오면서 본래 이름이던 ‘상촌’이 옥종면에 이미 있던지라 이를 피해 ‘위태’가 되었다.
▼ 저수지를 지나 건너편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이때 둘레길 특유의 풍경이 펼쳐진다. 산골마을과 이를 둘러싼 대나무 숲. 마을 앞엔 정자나무가 터를 잡았다. 둘레길은 그 사이사이를 누비듯 이어진다. 맞다. 둘레길은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들일 나가던 길, 옆 마을에 일보러 가던 길, 장보러 가던 길이였다. 그런 길들을 모아 지리산 둘레를 둥글게 연결했을 뿐이다.
▼ ‘안몰’ 마을 앞.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당산(堂山)은 상수리나무가 지키고 있었다. 당산은 한 고을의 지킴이신을 모신 성역이다. 하지만 세월의 부침은 성역까지도 인간에게 되돌려 주었나 보다. 아니 정자(인간의 쉼터)의 옆 신목(상수리나무)·신석(돌부처를 닮았다)이 아직도 생생하니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셈이다.
▼ 아직은 마을길이다. 하지만 ‘지네재’라는 고갯마루로 올라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 뒤라도 돌아볼라치면 위태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이곳 출신 정규화 시인의 기억을 빌어 잠깐 살펴보자.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인 조리터에 마을이 있으니 상갈티라 한다. 상갈티는 진등과 암몰과 중몰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중략- 사방을 막은 산은 냇물을 흘려보내려고 남쪽만 열려 있었고 그 길을 따라 6·25전쟁의 피비린내가 몰려오기도 했다. -중략- 산비탈엔 가을마다 산국화가 하얗게 피어 있고 무더기 무더기로 모여 있는 억새더미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 길을 나선지 10분. ‘정돌이 민박’을 스치듯 지난다. 자기 집에서 묵었던 여행객들을 하동호까지 길라잡이 해준다는 진돗개 ‘정돌이’로 유명한 집이다. 따라오는 이들 중 뒤처지는 사람이라도 있을라치면 그 자리에 멈춰 기다려주기까지 하던 명물이었다. 오죽했으면 개의 이름으로 상호까지 삼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2년 전 안내를 자처하고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 민박집 우물.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 산골의 매화(梅花)는 꽃망울을 한창 부풀리는 중이다. 이른 봄의 매화는 눈꽃이 덮인 양 화사한 모습으로 봄소식을 전하지만, 2월의 매화나무는 아직 무채색으로 텅 비어있었다.
▼ 8분쯤 더 걸었을까 물레방아가 예쁜 민가(이곳의 벅수는 거리표식이 없다) 앞에서 오른편으로 난 농로로 들어선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삼거리(벅수 : 하동호 10.1㎞/ 위태 1.4㎞)에서는 왼편이다. 지내재로 오르는 산길로 접어든다고 보면 되겠다.
▼ 톱니바퀴가 달려있는가 하면, 비록 벗겨져 있지만 체인도 눈에 띈다. 그렇다면 얼마 전까지 이 물레방아로부터 동력을 얻었다는 얘기가 아닐까? 그걸 또 가사생활에 필요한 동력원으로 삼았을 거고 말이다. 참고로 물레방아는 ‘물레(실을 자아내는 둥그런 틀)’와 ‘방아(곡식을 찧는)’의 복합어이다. 물에서 얻은 동력으로 방아를 돌리는데, 방아가 없어진 요즘은 그 동력을 소소한 일상생활에 활용해가는 추세다.
▼ 골짜기로 들어서자 온통 감나무 세상이다. 감나무 생육의 최적지라는 산청 땅을 벗어나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거기다 지리산 줄기인 것도 같다. 지리산의 높은 일교차가 최고 품질의 곶감을 만들어 낸다니, 그 달콤한 유혹을 어찌 떨쳐낼 수 있겠는가.
▼ 길은 돌(石)축대 사이사이를 누비며 나있다. 우리네 조상들이 흘린 땀의 흔적들이다. 끼니를 걱정해야만 하던 시절, 우리네 어버이들은 돌멩이 하나하나 쌓아올려 다랑이 밭을 만들었고, 그 밭에서 나온 잡곡으로 겨우겨우 보릿고개를 넘겼다.
▼ 재만 넘으면 편해질 것 같은데, 산등성이는 여간해서 보이지 않는다. 경사도 누그러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가파른 오르막길이라고 해봐야 길이가 500m에 불과하니, 느릿느릿 걷다가 그마저도 힘들 경우 잠시 쉬어가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 트레킹을 시작한지 35분.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오율마을과 위태마을을 잇는 ‘지네재(해발 416m)’에 올라설 수 있었다. ‘지네재’라는 지명은 주산(오대주산)에서 뻗어 내려온 능선이 지네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게 또 좌우로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이라고 해서 능선 전체를 ‘무등(舞)’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고갯마루에는 벅수(하동호 9.6㎞/ 위채 1.9㎞) 외에도 이곳이 주산의 등산로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지리산 능선을 보며 걷기에 좋다는 주산 등산로가 오른쪽으로 나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반대편 오율마을을 향해 내려간다. 길은 올라올 때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하지만 내려서는 도중 만나게 된다는 백궁선원의 팻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대사의 옛터를 잠시 들여다볼 요량이었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참고로 백궁선원은 ‘국선도’의 기(氣) 수련장이다. 하지만 내 관심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오대사(五臺寺)라는 절간에 있다.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가 ‘큰 법이 머무를 곳(大法住處也)’이라 하고, 진억(津億, 고려 인종 때 승려)이 연 ‘수정결사(水精結社)’에 3천명이나 참여했을 정도라니 그 터가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 지네재에서 7분쯤 걸려 내려선 임도에는 쉼터(벅수 : 하동호 9.2㎞/ 위태 1.3㎞)가 조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보다는 아까 고생고생하며 올랐던 지네재 고갯마루에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랬다.
▼ 쉼터의 주인은 편의시설인 돌의자도 그렇다고 벅수 등의 안내시설도 아니다. 그 옆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는 커다란 바위가 더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앗! 남근석이다’라는 내 탄성에 쉬고 있던 여성분이 헛웃음을 짓는다. 조금도 안 닮았다나? 하지만 몇 십억의 남성 가운데 저렇게 생긴 것 하나 없을까?
▼ 주산(831m)의 이정표(정상 1.9㎞)와 ‘등산안내도’도 세워져 있었다. 주산(主山)의 옛 이름은 오대주산(五臺主山). 조선 후기 ‘두류전지(頭流全志)’를 쓴 김선신(金善臣, 1775-1855)은 주산을 ‘오대산’이라 일컬으며 지리산의 명승지 중 하나로 꼽고, ‘시천 서쪽으로 한 봉우리를 넘으면 다섯 봉우리가 열 지어 서 있는데 마치 대(臺)와 같다’고 했다. 참! 인근 산청(시천면) 땅에 오대주산(642.6m)이 하나 더 있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 시멘트 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자 닥나무(한지의 원료)가 많다는 ‘오율(五栗)’ 마을이다. 고작해야 두서너 채의 민가가 전부인 산골인데, 둘레길이 지나는 이곳은 오율마을(밤실·불당골·여차골·시양골·오대)에 속해있는 ‘오대’라는 단위부락이다. 옛날 이 부근에 ‘오대사’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 집안이야 모르겠지만 입구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꾸며놓았다. ‘ㅏ’자 모양의 틀이 플라스틱 물통을 뒤집어썼는가 하면, 대야를 탐험가의 모자삼아 쓴 장승은 지금 기타 연주가 한창이다. 낡은 우체통에 인쇄물 하나 꽂혀있는데, 저 바위에 쓰인 ‘소승당’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 마을은 가구 수도 적은데다, 그나마 있는 집들마저도 평일에는 비어있는 경우가 많단다. 하지만 매실을 이용한 와인 생산업체가 들어선 다음부터는 제법 활기를 띠고 있단다. 그렇다면 마을을 통과하는 내내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대체 뭘까?
▼ 궁항(옥종)저수지 방향으로 4~5분쯤 내려가다 삼거리(벅수 8.7㎞/ 위태 2.8㎞)에서 ‘5시’ 방향의 임도로 빠져나온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그냥 길 따라 무심코 걷다 보면 한참을 내려간 후에야 둘레길이 아님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둘레길이 하도 급하게 꺾어 올라가기 때문에 자칫 길을 놓치기 쉽다는 얘기이다.
▼ 이어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50m쯤 오르다가 이번에는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는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 이후부터는 산길을 따른다. 돌계단을 놓아야만 했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10구간(위태-하동호)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누군가는 산길의 난이도는 길을 가다 뒤돌아보는 횟수에 비례한다고 했다. 자꾸만 멈춰 서서 뒤를 보아진다는 것이다.
▼ 스틱에 의지해가며 힘들게 올라오는 순례꾼들의 모습에서 동병상린(同病相燐)을 느낀다. 저리도 힘들어하지만 그 고생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 첫 번째 안부(벅수 : 하동호 8.5㎞)에서 한숨 돌리는데, 오히려 더 가팔라진 오르막길이 우리에게 손짓을 보내는 게 아닌가. 문득 난이도가 ‘9구간’ 수준이라던 이대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말만 믿고 스틱을 챙겨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되돌아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 지리산둘레길을 순례길로 분류하는 이들도 있던데, 코로나가 풀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미리 걷는 셈치고 걸어보자.
▼ 오르막과의 힘겨룸을 시작한지 15분. 벅수(하동호 8.4㎞/ 위태 3.1㎞)가 버티고 있는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그런데 고생고생해가며 올라온 보람도 없이 이름조차 없단다. 하다못해 두 마을을 합성한 이름(오율+궁항)이라도 지어놓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거기다 두 마을의 처녀·총각에 얽힌 애틋한 사랑이야기라도 하나 덧붙이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게고 말이다.
▼ 고개를 넘자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사자성어에 딱 어울리는 상황으로 변한다. 갑자기 길이 고와졌기 때문이다. 솔숲을 헤집으며 난 오솔길이 경사까지 없는 것이다.
▼ 이때 소나무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궁항저수지가 손에 닿을 듯이 나타난다. 옥종면 일대의 들녘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이다.
▼ 이곳은 지리산. 산이 크면 품고 있는 동물까지도 몸집을 부풀리는가 보다. 조심하라는 야생동물이 늑대나 멧돼지가 아니라 반달곰인 걸 보면 말이다.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의 방생을 시작한지도 어언 19년, 그게 세를 부풀리는가 싶더니 이젠 텃새까지 부리는 모양이다.
▼ 솔잎이 깔린 흙길은 스펀지 위를 걷는 듯 푹신하다. 거기다 코끝을 스쳐가는 진한 솔향기. 산을 오르느라 지쳐있던 내 심신은 어느새 말끔하게 치유되어 있었다.
▼ 그렇게 20분쯤 진행하자 둘레길은 임도(벅수 : 하동호 7.4㎞/ 위태 4.1㎞)로 내려선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 임도를 따라 5분쯤 더 걸으면 궁항마을(벅수 : 하동호 7.0㎞/ 위태 4.5㎞)이다. ‘궁항(弓項)’이란 지명은 지형의 생김새에서 유래했다. 약 200년 전 김씨가 입거해 주변을 살펴보니 활(弓/궁)처럼 생겼더란다. 마침맞게 그 활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에 마을이 들어앉았기에 ‘활목(활의 목)’이라 부르다 한자로 변형하면서 궁항이 됐단다.
▼ 도로변에는 감사장 역할을 하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로 내려오는 도중 만났던 팻말. 즉 주민들이 애써 가꾼 농작물에 손대지 말라던 내용과 연계시키면 되겠다. 그런 난처한 상황이 예상되는데도 둘레길 순례자들에게 길을 내준 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 궁항마을에는 ‘새참사랑방’이 있다. 마을회관(2층)에 일회용 커피와 컵라면, 즉석밥 등을 비치해 두고 둘레길 순례자 스스로 양심껏 값을 지불하고 먹게 하는 ‘무인매점’이다. 참고로 하동권역의 새참사람방은 아까 지나왔던 상존티마을과 앞으로 지나게 될 서당마을과 원부춘마을에도 있다. 하나같이 인적이 드물어 간이매점이 들어서기 난감한 곳들이다.
▼ 마을회관 마당은 홍보의 장으로 꾸몄다. 지리산둘레길(하동호-위태)의 지도를 옛 기법으로 그려놓았는가 하면, 궁항마을의 지도와 마을에 대한 설명, 그리고 마을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꽃들을 월별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 궁항마을은 새터·뒷골·안몰·양이터·빙이터·질매재 등의 자연부락을 합한 행정 단위이다. 마을회관이 있는 이곳은 ‘새터’, 새터의 뒤쪽 골짜기에는 ‘뒷골’이 있다. 새터에서 도로를 따라 서북방향으로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안몰’이고 왼쪽 길을 따라가면 ‘질매재’에 이른다. 질매재(궁항에서 묵계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르다 개울 건너로 보이는 동편 마을은 ‘빙이터’이다.
▼ 잠깐의 눈요기를 즐긴 후 다시 길을 나선다. 궁항마을회관 앞에서 차도를 가로 질러 농로를 지나면서 길은 오르막 콘크리트 임도로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도 대나무밭을 자주 만난다. 지난 9구간의 중태마을을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한 대나무가 이제는 고개만 들면 눈에 가득 차오른다.
▼ 뒤돌아보면 ‘궁항마을(새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농촌 인구의 노령화가 사회문제가 되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곳 궁항마을은 다른 곳들과는 달리 해마다 정착민들이 늘어나고 있단다. 이중환(擇里志)의 택리지에서 거론되는 가거지지(可居之地)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배산임수에 위치하여 땅기운이 좋은 ‘지리’, 생업에 유리한 ‘생리’, 좋은 사람들이 있어 베푸는 ‘인심’, 풍광이 아름다운 ‘산수’...
▼ 얼마쯤 걸었을까 좌우로 길게 뻗어나간 낙남정맥의 안부. 즉 양이터 고갯마루가 눈에 들어올 즈음 ‘양이터 마을’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양씨(梁氏)와 이씨(李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피난 와서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선지 궁항마을에는 지금도 양씨와 이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단다.
▼ 이 구간은 편백나무 무리를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가로수 삼아 심어놓은 탓에 규모는 물론 작다. 그렇다고 지닌 향까지 작겠는가. 짙은 솔향이 코끝을 스치는가 싶더니 이곳까지 오면서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싹 쓸어가 버린다.
▼ 궁항마을을 출발한지 30분. 양이터재 조금 못미처에서 길이 둘로 나뉘는데, 이곳(벅수 : 하동호 4.8㎞/ 위태 6.7㎞)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가로세로로 걸쳐진 저 파이프는 대체 뭐며,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는 두레박 모양의 통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아서라! 상상은 예술을 낳고 예술은 지나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면 되지 않겠는가.
▼ 근처 시멘트바닥에는 ‘우주사고’라고 적힌 스테인리스 판도 박혀있었다. 판에는 외계인의 실상을 알고 싶어 초대했다는 ‘ET’를 그려 넣었다. 저 ET는 영화에서처럼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절개지에 부딪혀 죽고 말았단다. 이전에 그려놓은 지형이 하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나? 하지만 ET가 타고 왔다던 자전거는 언제부턴가 치워버렸다. 전시가 불가능할 정도로 낡았던 모양이다.
▼ 5분쯤 더 걸어 청암면과 옥종면의 경계인 ‘양이터재(해발 506m)’에 올라선다. 궁항리(옥종면)와 평촌리(청암면) 주민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로, 이곳은 또 ‘낙남정맥(洛南正脈,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분기해 낙동강 남쪽을 아우르며 내륙과 해안지방을 구분하는 길이 230㎞의 산줄기)’의 한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민과 둘레길 순례자들, 낙남정맥 종주꾼들로 항상 붐빈다. 파고라와 화장실까지 갖춘 반듯한 쉼터를 만들어 놓은 이유일 것이다.
▼ 벅수(하동호 4.5㎞/ 위태 7.0㎞) 곁에 나란히 놓아둔 다섯 개의 바위가 눈길을 끈다. 도법스님과 신영복 작가 등 지리산둘레길 조성에 기여한 다양한 사람들의 글귀가 자연석에 적혀있다. 지리산둘레길의 시작은 2004년 생명평화탁발순례였다고 한다. 지리산 댐 반대를 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지리산 살리기 운동으로 전환한 결과가 지리산둘레길이란다. 스님이 밥을 빌며 순례하는 수행이 탁발순례다. 밥을 빌려면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지리산둘레길의 가장 큰 특징이 지리산 자락 마을을 꼬박꼬박 방문하는 데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데 건너편에 지리산의 남부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중심에는 ‘깃대봉(981m)’이 있다. 깃대봉과 성제봉(1,116m)을 연계해서 다녀온 게 15년쯤 되었나? 하지만 몽중루님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저게 깃대봉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몽중루님의 해박함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잠시 후 임도를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초입에 벅수(하동호 4.1㎞/ 위태 7.4㎞) 말고도 팻말 하나가 더 세워져 있는 게 아닌가.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이 구간(지름길)은 비가 많이 오면 범람하게 되므로 임도를 따라 우회하라는 안내판이다.
▼ 들머리에는 작은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길을 나서기 전에 현재의 기상상태를 확인해 보라는 배려 차원의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장마철에는 이 구간을 이용할 수 없으니 말이다.
▼ 구절초·닭의장풀·얼레지·엉겅퀴·현호색 등 10구간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화를 게재한 안내판도 보인다. 다우니(P&G)와 함께하는 지리산둘레길 들꽃보호 캠페인. 다우니(섬유유연제)와 페브리즈(방향제)로 유명한 ‘한국 P&G’가 ‘사단법인 숲길’과 함께 지리산둘레길의 들꽃 보호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얘기일 것이다.
▼ 캠페인 차원에서 세워놓은 다른 팻말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국수나무. 들꽃뿐만 아니라 둘레길 주변의 모든 식생들을 함께 보호하고픈 모양이다.
▼ 길은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서너 곳에서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비가 많이 올 때 우회로를 따르도록 한 이유이다. 아무튼 이 구간은 그 어느 둘레길보다 아름답다. 개울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하늘을 가린 울창한 나무는 연신 상큼한 향을 품어낸다. 그래선지 냇가에 주저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선 숲이 지닌 진한 생명력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특히 후반부에 만나게 되는 대나무 숲은 아예 축복이다. 대나무 터널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마치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경계처럼 보인다. ‘이 숲에 잠시 들어가도 되나요? 이 길을 감히 걸어가도 될까요?’ 누군가 말했다. 다른 세상은 무턱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 울창한 대숲은 한낮인데도 해를 삼켜버렸다. 그 사이를 헤집고 한줄기 빛살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대나무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성이랄까?
▼ 대나무 숲이 끝나자 이번에는 편백나무 숲이 길손을 맞는다. 숲에는 작은 쉼터까지 만들어놓았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가 아니겠는가. 치료의 효능 외에도 심신안정과 피로회복의 기능까지 갖고 있으니, 걷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느긋하게 쉬면서 힐링까지 얻어가라는 모양이다.
▼ 30분 정도 이어지던 숲길이 끝나자 길은 또 다시 임도와 만난다. 아까 양이터재 부근에서 헤어졌던 임도다. 그래선지 벅수(하동호 2.6㎞)와 우회길 안내도에 들꽃보호 캠페인 표지판까지. 아까 들머리에서 만났던 시설물들을 똑 같이 세워놓았다.
▼ 이후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이때 하동호와 그 주변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그렇게 10분쯤 내려오자 하동호가 정원처럼 펼쳐지는 ‘나본마을(벅수 : 하동호 2.0㎞/ 위태 9.5㎞)’이다. ‘나본(螺本)’이란 지명은 나동(螺洞, 고동골)과 이곳 본촌(本村, 상배몰)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하동호가 생기면서 마을은 물속으로 사라졌고, 현재는 순환도로변에 몇 채의 집만이 남아 마을의 이름과 명맥을 이어간다.
▼ 나본(본촌) 마을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마을 앞 호숫가의 대형 쉼터에 지리산둘레길의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 나본마을에서 하동호 댐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로 하동호의 비경을 만끽하며 걷기 딱 좋은 구간이다. 하동호를 한 바퀴 도는 ‘하동호둘레길’과 겹치는 구간이기도 하다.
▼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산과 물이 만들어낸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청학계곡과 묵계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갇혀 산중호수를 이루면서 저런 비경을 만들어냈다. 저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청학동. 최치원이 매료돼 청학을 타고 신선이 되었다는 풍경이 저랬을까?
▼ 탐방로는 공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하다. 호숫가를 따라 난 데크로드는 기본. 곳곳에 작은 꽃밭을 만들었는가 하면, 공간이 조금 넓다싶으면 정자까지 갖춘 소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 둑(dam)에 이르자 수력발전소에서나 볼 법한 시설이 눈에 띈다. 맞다. 이곳 하동호에도 소수력발전소가 들어서있다고 했다. 작은 규모이지만 영농기인 4월부터 9월까지 약 6개월 동안 용수로를 통해 흘러가는 물을 재활용해 전력을 생산한단다.
▼ 댐에 올라서면 하동호(河東湖)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하동호는 1985년 착공하여 1993년에 준공한 농업용 댐에 청학동 계곡과 묵계 계곡의 물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거대한 산중호수이다. 이 물로 하동군 10개 읍·면과 사천시 서포면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 인공섬도 두 개나 만들어 놓았다. FRP로 만들었다는데 한가운데 소나무까지 심어져 있었다. 호숫가에 들어선 비바체리조트에서 조경용으로 만들어놓았지 않나 싶다.
▼ 날머리는 하동호관리소(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하동호의 빼어난 풍광을 눈에 담으며 걷다보면 어느덧 둑길이 끝나면서 호수를 등진 하동호관리소(한국농어촌공사)가 나타난다. 아담하고 색감이 정겨운 건물 앞 주차장이 10구간의 날머리이다. 관리소 건물 왼쪽에는 엄청나게 큰 표지석과 함께 ‘망향의 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망향(望鄕)은 고향을 그리워하다는 뜻. 그 고향은 하동호가 생기면서 물속에 잠기게 된 마을들일 것이다. 새터·몰랑몰·가마소·고래실 같은 정겨운 이름들이 저 푸른 물속에 잠겨있단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3시간 20분을 걸었다. 핸드폰의 앱에 찍힌 거리는 11.07km. 높다란 고개를 세 개나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 10구간과 11구간의 시·종점을 알리는 지리산둘레길 엠블럼(emblem)은 댐의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이번에는 ‘벅수(위태 11.5㎞←하동호→삼화실 9.4㎞)’와 함께이다. 또한 이곳에는 위태마을에서 대축마을까지 3개 구간(10~12)의 지도를 게시해 둘레길 나그네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
출처: 비공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