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산(1,017m)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군 문경읍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예부터 이름난 고개가 많다. 5만분의 1 지형도를 훑어보면 지형도에 기록된 고개만 해도 1천개가 넘는다.
우리나라 산세는 동쪽 태백산맥을 등뼈로 하고 여러 산줄기가 서쪽으로 뻗어서 남과 북이 통하려면 험주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그중 경북 문경에서 충청북도 충주(또는 한양)로 넘어가는 문경새재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문경새재보다 먼저 뚫린 고개는 문경새재 동북쪽의 계립령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계립령은 신라 아달라 이사금 3년4월에 개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계립령은 지금의 미륵리로 넘어가는 지릅재와 미륵리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하늘재를 합쳐서 계립령길이라 했다.
조령산을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한 고개가 조령이라 부르는 새재이고 남쪽의 이화령은 일제때 새로 닦은 길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이화령을 문경새재로 잘못 알고 경우가 많다.
이화령(梨花嶺)도 일제때 일본인들이 지형도를 만들면서 한문을 잘못 사용했다. 본래의 이화령은 한문으로는 伊火嶺인 것이다.
조령산이란 산 이름을 낳게한 조령(鳥嶺)도 와전된 이름이다. <동국여지승람> 문경현 산천조에 조령은 속칭 초재(草岾)라 기록되어 있다. 초(草)는 억새 등을 말하는 '새'이고 재(岾)는 우리가 만든 한자로서 음은 '재' 또는 '점'으로 초재는 '새재'이고, 우리말인 억새의 새가 날아다니는 새로 변해 조령이 되었다.
새재에는 본래 관문이 없었으나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들의 제의에 따라 선조와 영의정 유성룡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선조26년(1593년)에 새재 세군데에 관문을 쌓자는 안이 나왔고, 새재의 지세에 밝은 충주출신 수문장 신충원이 관문을 쌓게 되었다.
오늘의 새재는 1974년부터 3년에 걸쳐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에 누각을 올리는 등 옛모습대로 복원했고, 10km의 오솔길을 확장하여 공원화했다.
새재에서는 광해군5년(1613년) 4월에 상인이 도적에게 은 수백냥을 탈취당한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도적이 많이 출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옛날이나 지금이나 새재를 넘으려면 옛날에는 도적에게, 지그은 공원관리사무소에 돈을 바쳐야 고개를 통과할 수 있다.
조령산 등산은 이화령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 때문에 한국등산연합회나 관광회사에서 조령산 등산을 할 경우 이화령에 사람들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버스를 다시 되돌려 절골 입구 신풍마을 조령휴게소 주차장에서 조령산을 넘어오는 등산인들을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백산맥 등허리인 이화령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뚜렷한 산길을 따라 1시간 가량 올라가면 동쪽 조령제1관문으로 뻗어내린 능선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를 밟게 된다.
이 삼거리에서 대개 휴식을 취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쉬는 것보다는 불과 3~4분 거리인 억새밭까지 더 올라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삼거리에서 조금 더 올라간 억새밭 한가운데에 샘터가 있어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일명 조령샘이라 불리는 이 샘터는 본래 몰지각한 등산인들에 의해 거의 파손되어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90년 6월 문경군청등산회에서 알루미늄대야와 비닐호수로 보수해서 수통에다 물을 받기 편리하게 만들었다.
조령샘을 뒤로하면 키를 넘는 억새밭을 지나 어둠침침한 잣나무밭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급경사를 이뤄 다소 힘이 드는 잣나무밭 수림속을 뚫고 10분 거리에 이르면 100여평쯤 되는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에서 북쪽 정상을 바라보며 7~8분 가량 올라가면 '백두대간 조령산'이라 음각된 돌비석이 반기는 정상이다. 정상에서 북으로는 톱날인듯 날카로운 조령산 주능선 너머로 신선봉 마폐봉 그리고 멀리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 방향에서 시계바늘 방향으로는 부봉 월항삼봉 만수산 포암산 등이 그림인듯 펼쳐져 보이고, 동으로는 마치 초가지붕처럼 보이는 주흘산이 손에 잡힐듯 시야에 와닿는다.
주흘산 아래로는 상초리에서 혜국사로 이어지는 새로 닦은 차도와 함께 제1관문에서 제3관문으로 이어지는 문경새재길이 실낱처럼 내려다 보인다.
정상에서의 하산길은 북쪽 능선길로 40분이 소요되는 안부 갈림길에 이른 후 서쪽 아래 신선암을 바라보며 절골로 내려서면 된다. 그러나 절골 하산로는 등산이들의 발길이 너무 잦아 신선함이 다소 퇴색된 것이 흠이다. 이 때문에 절골로 내려서는 안부에서 북으로 1km 거리인 신선암 동쪽의 아름다운 암봉을 넘어 새로운 갈림길이 있는 안부에서 서북쪽으로 패어내린 한섬지기계곡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한섬지기계곡길은 아직 태고적 자연미가 살아 있는데다 마치 초록빛 융단을 깐 듯한 산죽군락과 맑은 계류가 은빛 구슬을 쏟아내리는 널찍한 반석지대가 나타나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조선 숙종 45년 6월 실록 기사에 새재의 수목이 무성해서 관의 제목으로 쓰기 위한 밀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 조령산 일원의 울창한 수림을 알 수 있는데, 바로 한섬지기계곡 수림 속을 걷다보면 수백년 전 세월로 거슬러 올라간 신비가에 도취되게 된다. 그만큼 한섬지기계곡은 수림이 빽빽하기 이를데 없다.
장군이는 짐칸이가???? 장군이 좌석이 없넹!!
장군, 대장, 회장님은 앞쪽 복도에 있슴다.ㅎㅎ
마이다스는 앉아가고~~~~~~~~
구호대장(버디사랑) 참석이요, 그라고 산홍이 갑자기 일이생겼다네요 불참이요
보라님 무릅부상으로 불참이요. ㅎㅎ
지금 신청해도 가능한가요? 가능하면 태워주세요
네 좌석 여유 3개있습니다. 자리 배정하겠습니다.
정암부부,내원부부 KBS 앞에서 승차함.
녜``````~~~~알겠읍니다...~~~~
함께하는 우리뫼사랑이 앞으로 많이 발전하고 모범이 될수있도록 이끌어 주신 우리고문님 감사드림니다 ..회장님 산대장님 부대장님 총무님 ~~~~~수고 많으셨읍니다
늘 몸소 고생하시는 부회장님 넘 고맙습니다.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