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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수도(閑麗水道)는 경남 통영시 한산도에서 사천, 남해 등을 거쳐 여수에 이르는 남해안 연안 수로다. 호수처럼 잔잔한 쪽빛바다에 유인도와 무인도등 4백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떠 있다. 임진왜란때 한산도대첩을 벌인곳이기도 하다. 청정지역으로 바다 위에 섬이 많아 아기자기할 뿐만 아니라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수려한 한려수도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경남 통영 미륵산 정상이다. '이국적인 풍광'이라는 말은 이럴때 쓰는것이다. 그 옛날 이런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곳에서 처절한 해상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제 전설처럼 남아있다. '언어의 감각미'를 개척했다는 시인 정지용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만큼 미륵산에서 조망하는 한려수도는 가슴벅찬 감동을 준다.
한려수도 바다백리길 1코스인 달아길(14.6km)은 트레킹코스라기 보다 산행코스다. 반드시 미륵산 정상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수월한 코스다. 미륵도 중앙에 우뚝솟은 '미륵산'은 웬지 귀에 익다. 동일한 이름의 산이 강원도 원주, 경남 거제, 전북 익산등 전국에 산재해 있다. 산이름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불교의 영향을 받은것 같다. 산중턱엔 용화사와 미래사등 고찰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미륵산을 타고넘는 달아길 코스는 미래사에서 시작한다. 해발 461m로 높지는 않지만 명산으로서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다. 길이 워낙 가파라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걸어가도 그리 힘든길은 아니다. 일단 짧기 때문이다. 효봉문중(曉峰門中)의 발상지 미래사(彌來寺) 주변엔 편백나무가 병풍처럼 서있다. 걸어서 편백나무 숲의 피톤치드를 맡으며 미래사를 거쳐 미륵산을 오르는 데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올라가는 길의 풍경은 평이하다. 흔하디 흔한 어느마을 뒤산의 고갯마루를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땀을 훔치며 9부등선의 나무데크에 올라서면 정상이 순식간에 나타나 어리둥절하게 만들만큼 놀라운 감흥을 준다. 산꼭대기엔 통제영의 봉수대 터가 복원돼 있고 한려해상이 부채처럼 펼쳐졌다. 국립공원 100경(景) 중 최고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운무가 끼어있는 흐린날인데도 감동이 반감되지 않는다.
통영엔 유명한 시인이 있다. 청마 유치환이다. 청마가 '향수'로 유명한 충북 옥천출신 시인 정지용을 초대해 함께 미륵산을 올랐다. 정지용은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이것은 만중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라고 보여진다"라고 묘사했다. 시인이 미륵산 정상에 느낀 감흥을 필자도 느꼈다.
산 정상에서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길은 짧다. 역시 가파르기 때문이다. 산길의 끝에 야소마을이 있다. 이 마을, 독득한 정취가 있다. 통영하면 동피랑 마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야소마을도 아기자기한 풍경이 골목 이곳저곳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그렇다고 시골스럽지도 않다. 웬지 도시 변두리의 오래된 동네같은 정겨운 분위기다. 원색적인 지붕과 소박한 벽화, 돌담위에 꽃망울이 터진 동백과 매화가 눈길을 끌었다.
<통영시청 제공>
야소마을에서 산양읍사무소를 거쳐 희망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달아길의 후반부에 해당된다. 읍사무소 정문 건너편에 '희망봉 등산로'라는 안내 팻말이 보인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임도는 곧장 산 쪽으로 향하다 우측으로 휘어지는곳에 소나무가 빡빡하게 서있다. 나무에 물이 올라 초록이 선명한 숲 사이로 가지런한 등산로가 희망봉과 망산까지 꿈결처럼 내내 이어진다. 희망봉은 해발 250m 남짓해 가볍게 올라갈 수 있다. 미륵산을 넘는 전반부가 산행코스라면 희망봉이 있는 후반부는 트레킹코스라고 할 수 있다. 통영에는 유독 도보여행 코스가 많다. 한려수도 바다백리길 5코스외에도 통영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토영이야기길, 바닷가를 이어주는 연안해변길등 곳곳에 다양하다. 하지만 통영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려면 바다백리길을 걸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