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쓰는 오늘이 실은 12월 19일 휴일 밤입니다.
숙제가 많이 밀렸다 싶어 열어봤더니 수요일부터 밀렸군요
하긴 연말이라 송년이라 하루 몇차례 얼굴 디밀어야 할 때죠.
저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자 휴일이라도 숙제는 해야겠죠. 오늘은 간단히 올리겠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자식들 편지를 받았나 봅니다.
척 보니 날씨는 춥고 먹을 건 변변찮고 체면 치레는 해야겠고
사람 노릇 할 수 없다 싶었던지 귀양살이 간 아버지한테 투정을
했나 봅니다. 사람치고 자기 자식이 집에 애비가 없어 고생이라는데
만고에 역적이거나 충신이거나 간에 애비탓이다 그랬을거란 거죠.
헌테 다산은 호되게 자식을 나무랬다는겁니다. 그 필설이 마치
지금 내게 호통치는 말 처럼 들리니. 글이란 뼈에서 혼에서 우러난
것이면 백년 천년을 이리도 사람 가슴을 울리나 봅니다. 그 이야깁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정약용의 두 아들에 부치는 편지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일깨움은 되새겨 보고
이 시대에 적절한 처세와 마음가짐을 풍자와 함께
모색해 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오늘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고향의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잠시 돌아볼까 합니다.
초란 다산 정약용이 그 오랜 유배지 생활을 하면서
고향에 있는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어디 한두통이겠어요?
놀보 그 많은 편지 중에서 다산 정약용이 한겨울 고생한다며
불만을 토로한 자식들 편지에 답장하는 글인데요.
초란 아버지가 오랜 세월 귀양살이를 하니깐 그 자식들 고생이
오죽했겠어요. 그러니 강진 유배지로 이 추운 겨울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그런 하소연을 했던 모양이군요.
놀보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래 내탓이다. 애비가 못나서
니들이 고생이 참 많구나. 그래도 어떡하느냐 나도
이 모양 이꼴인데 너희들이라도 어머니 모시고 부디 잘
이겨내기 바란다. 뭐 이런 식으로 달랬겠지요.
초란 그럼 다산 정약용은 겨울에 얼어 죽겠다는 자식들 편지에다
어떤 말을 했는데요? 설마 그 고생 달게 받거라. 그런건
아니겠지요?
놀보 자, 그럼 다산이 자식들에게 어떤 글을 보냈는지
그 핵심 부분만 간추려 돌아 보도록 할까요?
(낭송) 아들아, 너희들은 여러 일가 중에 며칠째 밥을 짓지 못하는
자가 있을 때 곡식을 주어 구제하였더냐. 이 추운 날
눈 속에 얼어서 쓰러진 자가 있으면 너희는 땔나무 한 묶음
나누며 따뜻하게 해 주었느냐. 이웃간에 병이 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이 있을 때, 너희는 약간의 돈으로 약을 지어 주어
일어나게 하였느냐. 늙고 곤궁한 자가 있으면 너희는 때때로
찾아 뵙고 공손히 존경을 하였느냐. 동네에 우환이 있는
이웃이 있으면 너희는 근심스런 얼굴빛과 걱정스런 눈빛으로
우환의 고통을 그들과 함께 나누어 잘 처리할 방도를 의논해
보았더냐. 어떡습니까?
초란 겨울에 못 살겠노란 자식들에게 되레 어려운 이웃을
한번이라도 돌봐 주고 구해 준 적이 있었는가 물어보라는
준엄한 자기 성찰을 하게 했군요.
놀보 다산은 그 편지 끝에 이런 소리로 자식들 훈계를 갈무리 하고
있는데요. (낭송) 이웃을 돕는 이런 일 한두가지도 안하고
어떻게 여러 집안간이나 이웃이 너희를 돕기 바라느냐?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남이 먼저 나에게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희들의 오만한 근성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란 제가 잠깐 다산의 편지 앞 부분을 보니깐 이런 구절도
있더군요. ‘내가 집에 있을 때 조금 아프고 힘들면 주변
사람들이 찾아와 약을 주고 먹거리 주고 했던 걸 자주
봤을 것이다. 그걸 너희들도 가만히 앉아서 바라는게냐?’
놀보 그렇죠. 평소 다산이 이웃에 베푼 자그만 공덕이나
가르침에 감사해서 그리도 이웃이 찾아와 줬던 것인데
너희들은 가만히 앉아서 애비처럼 대접 받고자 하는 것이냐
너희가 먼저 돕거라. 그 형편에서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어찌 돈이 없다 못하랴. 몸이 있지 않느냐?
이런 준엄한 가르침으로 겨울철 못 살겠노라 편지한
자식 둘을 가르쳤던 다산의 편지.
초란 새삼, 오늘 같은 한파에 우리가 우리 형편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이 무엇일까 돌아보게 하는 편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신 명심보감’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사모’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다산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싶다면
다음 글을 시간내 읽어 봤으면 한다. 요즘 같이 바쁜 때 이 장문의 편지를
끝까지 보실 분 기대하지 말아야 양반인데. 그래도 자료 삼아 올려본다.
이땅의 아비와 자식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 생각으로 오해들 하면서 사는지
아마 다산 시대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계산으로 보고 있는 사이는 아닌지.
다산이 자식에게 준 편지는 그가 남긴 '악서고존'(樂書孤存) ---20대 후반
서울 두곳의 대학원에서 석사급 연구원들과 함께 시도했던 다산의 음악과
예술철학서 번역과 강의, 그땐 내가 젊어서 겁도 없이 덤벼 원서 520페이지 강의를 마쳤는데
왜 아직 그게 심화된 번역과 연구를 거쳐 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이 없는 지 모르겠다.
벌써 25년 전 일인데. 다산의 음악예술 철학서가 운명적인 책 제목 처럼
'음악의 원류를 논해 외롭게나마 보존 되기를.....' 바랬던 '악서고존' 처럼
오늘 여기 자식에게 주는 다산의 편지도 외롭게 전해지고 말 운명인듯 싶어
일단 번역된 편지 전체글을 올려 보도록 하겠다. 누군가는 오며 가며 보리라,
그리고 다산이 그 자식을 향해 준엄하게 나무랐던 정신을 어떤 아버지인가는
새겨 보리라 믿으면서..... .
다산이 두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
너희들은 편지에서 항상 일가친척 중에 한 사람도 돌봐주고 긍휼히 여겨 주는 이가 없다고 이르면서, 신세가 기구하여 구당(瞿唐)의 염예(灩澦)라 하기도 하고 태행(太行)의 양장(羊膓)이라 하기도 하며 한탄하는데, 모두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말이니, 이것이 큰 병통이다. 내가 벼슬할 때에 약간의 우환과 질병이 있을 적마다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크게 입었다. 날마다 찾아와서 안부를 묻는 이도 있었고 다독거리며 부축해 주는 이도 있었고 약을 보내오는 이도 있었으며 양식을 대어 주는 이도 있었는데, 너희들은 이러한 일들을 눈에 익숙히 보아서 남의 은혜를 희망하는 마음이 있으니, 빈천한 자의 본분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본디 남의 보살핌을 받는 법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구나. 더구나 여러 일가들이 오래 전부터 모두 서울과 지방에 흩어져 살아서 서로 은혜로운 정이 없으니, 요즘 같은 세상에 서로 공격하지 않는 것만도 후(厚)하다 할 것인데 어떻게 그들의 보살핌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 하물며 너희들이 오늘날 이와 같이 잔패(殘敗)하기는 하였으나, 여러 일가에 비교한다면 오히려 부호하다. 다만 저들에게까지 미칠 힘이 없을 뿐이다. 매우 가난하지도 않고 또 남에게 미칠 힘이 없으니, 진실로 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모든 일을 규문 안의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음을 두어 계획 조치하고 심중에 남의 은혜를 희망하는 의사를 완전히 끊어 버린다면 자연히 심기가 화평해져서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병통이 없어질 것이다.
여러 일가 중에 며칠째 밥을 짓지 못하는 자가 있을 때 너희는 곡식을 주어 구제하였느냐. 눈 속에 얼어서 쓰러진 자가 있으면 너희는 땔나무 한 묶음을 나누어주어 따뜻하게 해 주었느냐. 병이 들어 약을 복용해야 할 자가 있으면 너희는 약간의 돈으로 약을 지어 주어 일어나게 하였느냐. 늙고 곤궁한 자가 있으면 너희는 때때로 찾아 뵙고 공손히 존경을 하였느냐. 우환(憂患)이 있는 자가 있으면 너희는 근심스런 얼굴빛과 걱정스런 눈빛으로 우환의 고통을 그들과 함께 나누어 잘 처리할 방도를 의논해 보았느냐. 이 몇 가지 일을 너희들은 하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여러 집안에서 너희들의 급박하고 어려운 일에 서둘러 돌보아 주기를 바랄 수 있느냐.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남이 먼저 나에게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희들의 오만한 근성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유념해서 평소 일이 없을 때에 공손하고 화목하며 근신하고 충성하여 여러 집안의 환심을 사도록 힘써야 할 것이요, 절대로 마음속에 보답을 바라는 근성을 남겨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후로는 너희들에게 우환이 있는데도 저들이 돌보지 않더라도 너희들은 절대 마음에 한을 품지 말고 오로지 곧게 추서(推恕)하여 ‘저 사람이 마침 서로 방해되는 일이 있어서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절대로 입에 경솔한 말을 올려 ‘나는 일찍이 이렇게 이렇게 해주었는데 저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한다.’고 하지 말아라. 이러한 말을 한번 하면 그동안 쌓아놓은 공덕이 하루아침에 바람에 날리는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너희들은 사고무친(四顧無親)한 곳에서 생장하고 봄바람처럼 온화한 가운데서 양육되었으므로, 자제로서 부형을 섬기는 도리와 종족(宗族)을 섬기는 도리를 일찍이 보고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으로서 궁약(窮約)에 처하는 도리를 익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다하는 충성은 알지 못하고 먼저 남이 나에게 베풀어 주는 은혜만을 기대하며, 규문의 행실은 닦지 아니하고 인리(隣里)의 칭찬만을 바라니, 그래서야 되겠느냐. 옛날 방고조(旁高祖)이신 동지공(同知公)께서는 칠십이 넘은 나이로 풍증마저 겹쳐 수족이 마비되어 불인증(不仁症)을 앓고 계셨는데도 매일 아침 식사 후에 반드시 지팡이를 짚고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선인(先人)을 만나셨는데, 이는 선인께서 종손(宗孫)이셨으므로 날마다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옛날 칠십 노인이 종증손(從曾孫)을 섬기던 도리로써 백부(伯父)를 섬기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앞으로는 항상 맑은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안에 들어가 너희 어머니의 안부를 살피고, 다음에 동쪽으로 가서 백부를 찾아 뵌 뒤에 돌아와서 책을 읽도록 하여라. 여러 숙모(叔母)에 대해서는 한낮이나 저녁 때 틈나는 대로 찾아 뵈면 된다. 형님께서 팔을 앓고 계셨을 때에 너희는 촉시(蠋矢)를 줍고 초애(醋艾)를 잡으며, 약을 달이고 약탕관을 씻으면서 곁에서 주선하고 또 조석으로 떠나지 않고, 밤에는 모시고 자면서 연연히 차마 물러가지 않은 적이 있었느냐? 너희가 이렇게 하고서도 보살핌을 받지 못할지라도 오히려 더욱 효도하고 공경하여 감히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하물며 일찍이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음에랴.
그동안 너희들의 멋대로 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부형들은 노여움과 불평이 쌓여 있었으나, 다만 마음속에만 두고 밖으로 나타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너희들이 찾아와서 무엇을 요구하는 일이 있게 되자, 그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한 덩어리의 불평이 먼저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다만 눈앞의 일만을 가지고 의심하여 ‘이 일을 내가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어찌하여 이와 같이 처분하시는가.’ 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죄가 과거부터 있어 온 것이요, 당장 눈앞에 저지른 잘못 때문이 아니다. 부디 생각하고 생각하여 행실을 돈독히 닦아서 부형의 마음을 기쁘게 하라. 백부를 섬기는 데에는 별다른 절목(節目)이 없고 오직 아비를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너희는 분발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힘써 나간다면 한 달이 못 되어 백형(伯兄)의 마음이 환히 풀리실 것이다.
구당(瞿唐)의 …… 양장(羊腸) : 구당은 중국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의 동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며, 염예(灩澦)는 구당협(瞿唐峽)의 입구를 막고 있는 큰 암석임. 태항(太行)은 산 이름으로, 길이 험하기로 유명한데,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양장판(羊腸坂)은 특히 꾸불꾸불하여 험로(險路)로 알려져 있음. 여기서는 신세의 기구함을 비유한 말임.
촉시(觸矢)를 …… 초애(醋艾) : 벌레의 똥과 초에 담근 쑥인 듯한데, 자세하지 않다.
|
첫댓글 회심곡을 보는듯 합니다.
방송대본만 읽을 때는 다산 선생님이 자식들에게 모진 게 아닌가 싶었는데 편지 전문을 읽으니 그 맥락 흐름을 더 잘 알겠습니다. 꿋꿋한 선비의 기개와 나와 남에게 치우침 없는 사리분별을 배웁니다.
오늘도 공부하고 갑니다요 ..
강진의 다산 초당을 여러번 같었습니다..다산 선생의 발자욱 소리가 나고 동백 숲 사이 길로 걸어 나오시며
웃으시며..정곡 오셨는 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진정한 선비의모습을 봅니다
죄가 과거부터 있어온 것이요 당장 눈앞에 저지른 잘못때문이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