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봉이 초등학교 중급 쯤 됐지 않나 싶은 데 확실하진 않구먼요.
며칠 전부터 모월 모일 저녁 학교 운동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니 보러 오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때는 방학 중인 무더운 여름철 장마때로 길 옆엔 쑥, 칡넝쿨, 우리가 씨 받으러 다닌 적 있는 찍미리?
등등이 무성하게 자라 꼬맹이들 키를 훌쩍 넘게 자라 있었습니다.
꼬맹이 자주봉이 제 몸 단도리는 할 만큼 자란 동생 둘을 데리고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에서 청태산 방향으로 설퉁바우 지나 섬바우 초입 왼켠 아름드리 솔밭을 돌아가면
커다란 노가지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아래 겨울에는 얼지 않고 여름엔 시원한 샘물이
잠시도 쉬지않고 솟아나며 우물과 조그만 빨래터와 못을 채우고 흘러 갈대 자라기 좋은
습지를 만들었죠. 저희 집은 그 샘터에서 2~30여 미터 떨어진 양지바른 곳이였구요.
지금과는 다른 옛길 신작로에서 솔밭 오르는 소롯길로 갈라지는, 그러고 보니 일종의 삼거리로군요.
이렇게 생긴∠ 표 왼쪽에서 쭈욱 똑바로 가면 삽교 2리 1반 명물 선바위 지나 선바우님 아로마님 등
집을 지나고 매봉 맷돌거리(어릴 때 부르던 지명 그대로 부를께요)에 이르죠.
집은 띠엄띠엄.. 산모랑가지 하나 돌으려면, 알죠?
낮에야 수려한 산능선 아래로 펼쳐진 비탈 수목들과 바위들이 근사하지만
밤이면 달이 있건 없건 식은 땀 흐르는 삽교리 길..
꽤 많은 주민들과 꼬맹이들이 운동장에 모였고,
해가 학교 서편의 약물산 능선에 노을을 남기며 넘어가 어두워질 무렵 영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어두워야 스크린에 영상이 비치는 이유가 꼬맹이 3형제의 험난한 밤길을 예약한 셈입니다.
지금 내용은 기억되지 않지만 어른들이 많이 웃고 즐거워 했던 걸로 보아
만담류를 영화로 만들었지 싶어요.
예나 지금이나 영화는 두어시간 분량이고 여덟시 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여름철인지라
하얀 스크린에서 빛이 사라진 때는 아마 열시쯤 되었겠죠?
이제 돌아가야 합니다. 집으로..
꼬맹이 3형제는 착한 지라 좋은 구경을 하고도
"기분이다. 막걸리 한 잔 걸치구 가자" 씩이나는 아직 할줄 모르죠. 헤에..^^
볼 일 마쳤으니 얼른 집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같은 방향으로 갈 어른이나 동무들이 하나도 없어요.
밤엔 설퉁바우길이 사납죠 아이들에게..
두 동생 손을 꼭 잡고 캄캄한 밤, 산길 설퉁바우길을 갑니다.
보호능력이 있든 없든 서로 의지는 되죠.
한 동생은 초등학교 1년 전후 쯤, 또 한 동생은 다섯살 전후 쯤.. 꼬맹이 셋.
'뭔 영화를 본다구 지들이..'
'뭔 소리, 을매나 재밌었는 뎅?'
'사람이 하얀 광목천 같은 곳에 들어가 이야기 하는 거 아무데서나 봐?'
그러니 이 밤길, 설퉁바우길은 감래해야지.
" 꼭 붙어. 넘어지지 말구."
어띠케 저띠케 설퉁바우 신작로, 솔직히 말이 신작로지
여태 자라는 동안 삼판차 한때 드나들구 차라곤 안댕기니 풀만 무성하구
사람 댕기는 길만 좁다랗게 난 길을 꼬맹이 셋이 얼싸안듯 하구
어둠 속을 느리게 걸어가는 데,
번~쩍~.. 우루릉.. 또 번쩍 우르릉.. 쏴~ 무지하게 쏟아집니다.
지금이야 전봇대 없는 길 찾을래두 없지만 영교님들은 한두번 경험해 보셨을 거에요.
여름철 용고개나 짜장모텡이, 산비탈 밤길에서 소낙비 만나면
얼매나 깜깜 캄캄인지.. 뭐 모래두 뿌려진대나?
지는 모래 뿌리는 넘은 몰랐는데 그 소릴 듣고 언젠가 달이 휘영청한 가을 밤길에서
그 생각이 나자 무슨 울음소리 같은게 들리면서 진짜 모래가 날아오는 걸 느낀적이 있어요.
'에구야~ 간이 이렇게 콩알만 하다니.. '
아마 가랑닢 부대끼는 소리에 뭔가 바람에 날린거겠죠?
이때는 모강지 없는 넘 얘기두, 모래 뿌리는 넘 얘기두 생각날 새가 없었답니다.
이 캄캄함 속에서 두들기듯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동생들과 가는 게 숨막히도록 바빴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신작로에서 요렇게 생긴 ∠ 갈림길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구
짐작으로 그곳입니다. 표 왼쪽 꼭지점 전이 지나온 길이구 요렇게 ↗ 왼쪽 위로 올라가야 하는 삼각지점인데
아마 조금 지나쳐 갔나 봅니다.
갈림길 꼭지점까지 후퇴해서 ↗이렇게 가느니 그냥 지나친 지점에서 바로 이표∠ 아래 우측 지점에서
질러 가면 되겠지 싶어 길을 벗어났습니다.
신작로 왼쪽으로 들어서 똑바로 위로 몇 걸음만 올라가면 당연히 요길↗이 있을테니
거기만 이르면 눈 감고도 집까지 갈 수 있으니 캄캄한 것쯤 문제도 아니거든요.
물론 그곳은 길이 아니니까 우리 꼬맹이 셋 보다 더 높이 풀이 자라 있었음으로
서로 손을 꼭 잡고 몸과 얼굴에 풀 줄기와 잎을 비비며 올라갔는 데..
시상에나 아무리 풀과 씨름하며 올라가도 길이 안나오는 거에요.
방향이 잘못됐나 하고 약간 왼쪽으로 나아가도 없고 원위치로 돌아간답시구
되돌아 가지만 원점도 어디로 사라지고, 왼쪽 오른쪽, 이쪽 저쪽..
이젠 이쪽 저쪽도 감이 없어져 선 자리에서 무조건 왼쪽 앞쪽 오른쪽 뒷쪽
마구 삶아 대 봅니다.
그래도 길이 없어.. 아이구 이거.. 환장하겠네.. 미치겠네 증말..
저는 불혹을 지나 지천명이란 계절을 지날 때 까지
이 때 만큼 환장해서 미치겠다는 의미를 더 크게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옷은 쫄딱 젖은 데다 땀은 비오듯, 그러구 보니 어느샌가 비는 멎었지만
칠흑같은 어둠은 변함없이 꼬맹이들을 괴롭힙니다.
너무나 깜깜하여 두 동생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얼마나 목타고 놀래고
당황할까 싶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키 보다 큰 풀 속에서 숨소리만 거칠어요.
그래두 벗어나야죠?
몇 번인지 알 수 없도록 나아가 오르고 내려도 가보고, 또 이쪽 저쪽,
갸우뚱 왼쪽, 필사적으로 오른쪽..
목이 바싹바싹 타다 못해 따끔거리도록 풀숲을 헤매며 지쳐갑니다.
그러다 부둥켜안고 풀숲에 주저 앉아
어둠 속에서 더 검은 산그림자 위로 뿌연 하늘을 봅니다.
짙은 먹구름 틈새 한 둘 별이 보이고
여태까지 느끼지 못했던 한줄기 바람이 스쳐갑니다.
거칠던 숨도 편안해 집니다.
검은 비탈 몇 발짝 위로 요 길도↗ 느껴집니다.
" 얘들아, 됐다. 가자."
헤매느라 반들반들 다져진 숲 윗쪽으로 서너발짝 더 오르자
날마다 오가는 길이 발바닥에 닿아요.
길 윗쪽으로 풀밭 아랫쪽도 풀밭, 맨땅 가지런히 길이 있지요.
이 때의 환희와 편안함, 안도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동생들에게서 똑같은 의미의 기운으로 전해 오는 감동..
이날 밤 꿈속에서 아주 멋지고 근사한 초원에 서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깨어보니 아랫도리와 이불까지 푸욱 젖었다는.. 아구야 민망, 쯧..
* * *
밝을 때 일부러 그 곳엘 갔지 않았겠수?
도대체 왜, 어디를 그렇게 헤맸는 지 궁금해서.
무진장 돌아쳤거든요.
헌데 웬걸?
요∠ 갈림길의 요만큼◀, 열평두 되지않을 공간에서
온 산 헤매듯 뱅글뱅글 돌아쳐 숲이 초토화 됐더란 말입니다요..^^
원인은 지금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입니다.
첫댓글 영교국민학교 마당에서 영화 보여줬던 기억이 저도..나구만요...하하~~!!ㅎㅎ
그런데 그게 제가 마당대기 살때인지...노루목 이사내려와서 인지는 잘 모르겠구..
(자주봉님이 꼬맹였을때니..아마두 마당대기 살때인듯한데..^^)
헌데...그 쪼끄마한ㅋ 꼬맹이 셋이서 깜깜한 밤에..!! 헉~!!
그라니 귀야신이 ~~ 칭구해준답시구..ㅋㅋ
그란데요..
자주봉님..어무님 아부지님은..그 어린 꼬맹셋을..!! 지금 같으면 그런 부모님 암두 엄쓸...ㅎㅎ
이궁~ 지녕이 님아요.
그 날 밤 그 방향으로 꼬맹이 셋만 갈 줄 누가 알았나요.
글구 이담에 손자녀석이, "책임지고 동생들 델꾸 다녀오겠습니다" 하문?
자주봉이는, "그래 함 해보거라." 글텐데요?^^..
단지 모강지만 없는 넘이 아니구
몸뚱이두 없는 그것이야를 만난능가부요..
별이 보이기 시작 하문서 만사 정리 됐지만서두..
잊혔던 기억이 새록새록 용트림 합니다, 한여름밤 저녁 일찍 먹고 학교 운동장에 영화보러 갔던 기억이 몇번 있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