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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내면 속에는 우리도 모를 냉전적 사고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다음의 칼럼을 통해 냉전에서 평화로 그리고 협력과 상생하는 길에 대해 생각했으면 합니다. -김기홍샘 생각^^
[박노자칼럼] 반갑지 않은 옛 ‘추억’
[한겨레 2006-05-24 14:15]
인생에서 우리를 무척 아프게 하는 일의 하나는 불행한 과거 기억이 우리를 엄습하는 경우다. 대한민국의 많은 예비역들은 제대를 하고도 몇 해 동안 군대시절의 악몽을 꾼다. 필자는 최근 그런 ‘악몽’을 대낮에 꾸었는데,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게 검찰이 4년을 구형했다는 보도를 접한 것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강한 인상을 준 것은 한 일간지에 인용된 다음과 같은 문구였다.
“(검찰은) 재판에서 ‘피고인은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등 북한 정권에 동조하는 주장을 되풀이해 젊은이들의 정신적 무장해제를 시도해 왔다’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 구절을 읽은 뒤 왜 가슴이 두근거리게 되었을까? 그것은 20여년 전, 처음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필자가 소련의 관영 일간지에서는 읽은 내용의 문구와 너무나 동일했다. 어법도 같았다! “반소감정을 부추기고, 미국 제국주의에 동조하는 주장을 되풀이함으로써 시민들의 정신적 무장해제를 시도하는 ‘내면의 망명객’”…. 소련 관영 일간지의 비난을 받은 이는, 노벨상을 받았고, 요즘은 전세계에서 인권 투사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는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였다.
당시 필자는 신문에 누군가를 두고 쓴 이런 글이 실릴 때마다 그날 저녁 단파라디오로 ‘그들’에 대한 서방 쪽 방송사들의 소식을 탐구했다. 구속인가? 유배형인가? 연루자들이 몇 명인가? 그런데 이번 강정구 교수 구형 내용을 읽었을 때에 문득, 독재 정권의 반대파 탄압에 대한 소식을 찾느라 단파라디오를 돌렸던 암울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아직도 북한 정권을 규탄하느라 핏대를 세우는 이들의 표현방식이 다름 아닌 북한 정권의 사고·어법을 베낀 듯한 인상을 주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꼭 ‘무장’해야 하는가? 평화롭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 안 되는가? 서로 다른 정견을 가지는 이들의 민주적인 토론을 ‘국론 분열’이라고 하는 전체주의적 어법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관들이 사용하는 가관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악몽보다는 덜하겠지만, ‘국론을 통일시키기 위해 이 공적에게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나니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물론 박해를 받았다고 해서 소련의 자유주의적 반대파의 주장에 그대로 동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하로프 박사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시오니즘을 인종주의적 차별 이데올로기로 규정한 유엔의 결의문을 비판하여 살인적인 차별의 이념인 시오니즘을 ‘유대인의 민족적 부흥 이데올로기’라고 치켜세운 것은, 소련 정권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발이라고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 명성에 오점을 남긴 일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일부 ‘민족주의적 좌파’의 북한 정권의 성격에 대한 부풀려진 기대들은, 냉전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반응이라고 이해되기는 하지만 지배계급의 비민주적 통치와 착취를 당하는 북한의 피지배계급의 처지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국론 통일’을 위한 사상 재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북한 현실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를 도울 수 있을까? 차라리 대북 교류를 넓혀 북한의 현실과 모습이 궁금한 이들에게 스스로 연구를 해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자유민주주의’답지 않을까? 남·북의 출판물 교류, 주민들의 자유 왕래, 사상·표현의 자유만이 우리를 냉전적 야만의 잔재로부터 구출해줄 수 있을 것이다.
☞ 조기 영어 교육 과연 바람직한가요? 사고력 향상이 중요한가요? 아니면 도구적 기능형 인간 양산이 더 중요할까요? 아래 칼럼을 통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언제든 논구술 시험에 출제될 수 있는 논제입니다. -김기홍샘
[하재근 칼럼] 체력성장 멈춘 초등 1~2학년까지 영어교육도입 옳은가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6-05-24 11:12]
나도 누구 못지않게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국제적인 인재로 자라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그 반대 방향으로만 가는 우리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며 이렇게 분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민주화 후 대한민국 교육부는 역적질을 하고 있다. 교육정책으로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고,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고, 나라를 정치적 불안상태 속에 밀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초등학교 1, 2학년에게까지 영어교육을 확대하기 위해 조기 영어교육 시범학교를 선정, 발표했다. 항상 그래왔듯이 교육부는 자기들 논리 속에서의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교육개혁을 밀어붙일 태세다.
나도 아이들에게 영어교육을 시키겠다는 교육부의 취지에 100% 동의한다. 영어 뿐만이 아니라 한 3개국어 쯤 가르치고 싶다. 세계 최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처지에 말이나 잘 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제대로 하자는 거다. 영어교육의 방법이 꼭 조기 교육이어야만 하는가? 근거가 있는가? 난 인간의 언어습득 메커니즘을 모른다. 하지만 곳곳에서 모국어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어느 한 가지 언어를 확실히 잘 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국어를 배우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언어능력이 발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고능력의 발달 또한 지체된다는 주장이다. (사람은 무조건 말을 통해서만 사유하기 때문에 고도의 말 능력이 없으면 생각의 수준도 낮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말 못하면 영어도 하이, 헬로우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소리다.)
부모님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거나 어려서부터의 환경 자체가 다국어 환경인 경우는 예외라고 한다. 한 가지 말을 쓰는 일반적인 가정의 아이일 경우 모국어 학습의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등교육 수준에서 조기 유학을 간 아이들도 수준 높은 모국어 토대가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어 세례를 받게 되어 발달이 지체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이에 반대되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상황이 명쾌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교육개혁을 추진할 때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 기세가 씩씩하다 못해 장하기 이를 데 없다. 좀 침착해지자. 과학적으로 연구도 좀 하고, 사회학적으로 실태조사도 좀 하고, 민주적으로 의견 수렴도 좀 하고, 그렇게 개혁하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는가.
난 교육부가 1995년부터 시작된 11여 년 교육개혁 대장정의 평가부터 했으면 좋겠다. 교육개혁 몽땅 정지시키고 지난 11년 교육개혁의 평가와 분석만 앞으로 2년 동안해서 대국민보고서 작성하고, 그걸 바탕으로 국민들이 정치적 선택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으면 한다. 교육부가 나라 말아먹는 꼴을 봐주기가 너무 힘들다. 누가 우리 씩씩한 교육부 좀 말려 달라.
초등학교 영어교육도 1995년에 시작된 것이다. 그 후 지금에 이르러서 뭐 하나 좋아진 게 있는가? 한국의 초중등 학생은 세계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한다. 영어와 수학은 그 중 핵심이다. 이미 70년대부터 그래왔다. 그렇게 공부해서 한국인이 영어를 잘하는가? 뭐가 문제지? 한국인이 지구상에서 가장 외국어습득능력이 떨어지는 민족일까? 아니면?
한국의 아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하고도 시험 잘 보는 것 이외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험 잘 보기 위한 공부만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 서열 체제는 변별력을 요구하고, 변별력은 아이들 능력의 계량화를 요구하고, 계량화는 진정한 능력을 고사시킨다. 계량화된 아이들의 능력이 바로 점수와 등수다. 바로 점수 따기 위한 교육, 등수 올리기 공부 속에서 교육은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우리 민족이 특별한 바보민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하고도 이상하게 뭔가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 인재와 학문을 갖게 된 이유다. 이런 특수한 상황, 즉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단지 초등학교 1,2학년에 영어 교과를 개설한다고 영어능력이 좋아질까?
영어광풍이다. 95년 이후 초등학교에 영어교과가 들어간 다음부터 아동 영어 사교육 시장은 거대한 호황을 맞이했다. 교육부의 초등학교 1,2학년 영어교과 개설은 영어 사교육 시기를 더 끌어내리는 본격적인 신호탄이 될 것이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유아 영어 사교육 시대 선언을 하는 셈이다.
기존에 3학년부터 하던 영어 교육도 문법 위주의 구닥다리 방식이라고 악평이 자자했다. 공교육에서의 질 높은 영어 교육 필요성은 늘 제기됐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됐던 건 예산이었다. 3학년 이상 초등, 중등 부문 영어 교육 예산을 대폭 늘리기라도 했나? 3학년 이상은 그냥 버려두고 1, 2학년 영어교과를 위한 예산만이라도 마련할 셈인가? 하지만 대대적인 영어교육예산 확충에 대한 얘기는 없다. 그런데 교과는 만든단다.
딱 교육부 방식이다. 학교는 폼으로 두고 실질적인 욕구는 학원 가서 풀라는 것이다. 지난 교육 개혁 11년 공교육 붕괴의 역사를 다시 한번 재탕할 셈인가? 교육부는 리바이벌이 취미인가? 교육부가 국민들 앞에서 “이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해야 합니다~!” 총성을 꽝 울리면 국민들이 알아서 가처분소득 쏟아 부어 영어사교육 구매하는 공교육 붕괴 주말의 명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영어는 한 국가를 두 개로 쪼개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교육부가 그렇게 계속 영어를 다그치면 잘 사는 집 아이들은 물론 따라올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집 아이들은 탈락하게 된다. 소수가 영어를 잘 해서 얻는 공동체의 효용과 계급을 분리시켜서 치러야 하는 국가적 비용 중에 어떤 것이 더 클까? 그런데 아마도 영어를 잘할 그 소수가 얻을 효용은 그들의 사적인 이익으로 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사회가 잘 사는 집 아이들에게 사회적 책무감을 가르치지도 강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계급분리로 인해 치러야 할 정치적, 사회적 불안, 내수파탄, 공동체 붕괴의 비용은 얼마나 큰가. 교육부와 재경부, 우익들이 주도하는 교육개혁은 계급 분리를 목표로 해왔다. 그들은 분리되어 승천한 소수의 엘리트가 국가공동체를 먹여 살릴 거라고 주장하지만 거짓말이다. 귀족이 된 소수는 자신들만의 성을 짓고 탈락한 국민을 멸시하며 살 것이다. 그것이 미국이나 남미 등에 사설 경비 산업이 발달하게 된 배경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도 머지않았다.
교육부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영어교육을 시키고 싶다면 기존에 하던 교육이나 잘할 일이다. 중등 영어교육 정상화에 쓸 예산도 없으면서 무슨 초등학교 1,2학년인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공부 많이 하는 지옥같은 나라다. 교과를 늘릴 때는 신중해야 한다. 대학서열, 입시지옥 체제인 한, 아이들이 공부할 가짓수를 줄여주는 것이 최선의 교육정책이다. 제발이지 애들 좀 그만 잡으라.
아이들의 체력 성장이 멈췄다. 새 생명이 더 나지 않아 사회도 급격히 노령화하고 있다. 태어난 지 60년 된 나라가 벌써 사양길에 접어든 것이다. 교육부는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있는가?
☞ 아래 칼럼은 샘이 늘 존경하는 김우창 선생의 글입니다. 김우창 선생의 글에는 깊이가 있고 인간이 있습니다. 정치는 일상이자, 공동체를 위하는 진정성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김기홍샘
[시대의 흐름에 서서] 동상과 말라리아
[경향신문 2006-04-26 18:45]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지방 선거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에는 많은 공약이 등장한다. 최근 경향신문에도 연이어 공약을 분석하는 기사들이 실렸다. 공약을 두고 우선 묻게 되는 것은 그것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또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따지는 일이다.
공약을 포함하여 각종 정치 계획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브레히트의 ‘쿠얀불락의 양탄자 직조공들이 레닌을 기리다’라는 시에 적힌 이야기는, 오래전 다른 환경에서 쓰인 것이지만, 지금에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소련 혁명 후 레닌 상이 세계 도처에 세워졌다. 타지키스탄의 작은 마을 쿠얀불락에서도 레닌 축일에 맞추어 레닌 상을 세우기로 하고 모금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관장하던 소련군 장교는, 어렵게 번 돈 몇 푼씩을 헌납하러 와서 줄서고 있는 직조공들을 보고 그들이 신열이 나서 몸을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말라리아에 걸려 있었다. 말라리아 감염은 마을의 늪에 서식하는 모기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장교는 레닌 상 건립보다는 모기 퇴치가 급선무라는 것을 깨닫고 직조공들과 협의하여 모았던 돈으로 석유를 사서 늪지대에 뿌리는 작업을 벌인다. 그리고 그들은 레닌 상 대신에 이 일의 경위를 기록한 작은 패를 세운다. 결론은 이렇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레닌을 기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방선거 공약 의미 따져봐야-
브레히트의 이야기는 방금 말한 바와 같이 다른 시대, 다른 체제 즉 소련의 공산 체제와 관련해서 쓴 시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조상(彫像)을 세우는 일이지만,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체제에서는 대체로 정치의 추상적 이념과 사람들의 실생활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는 삶을 추상화한다. 그리하여 삶의 구체로부터 벗어날 위험을 갖는다. 그러나 삶의 추상화가 반드시 추상적인 이론 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치 현상은 추상적인 것이면서도 구체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는 군중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추상적 이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쓸모가 있으려면 그것은 한층 단순화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상징이나 이미지로, 또 구호로 집약되어야 한다. 기이하게 이 이중의 단순화를 통하여 정치 이념은 대상화된 구체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게 된다. 그중에도 가장 구체적인 인상을 주는 것은 동상이나 기념관과 같은 상징적 조형물이다. 말도 구호로서 되풀이되면 사실처럼 실체가 생긴다. 그러나 상징적 조형물들은 보고 만지고 할 수 있는 물건으로 존재한다. 동상이나 기념관은 그것만으로도 마치 삶 자체의 구체성을 대표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 낸다. 브레히트 시의 조상은 추상화의 결과이면서 구체적인 것으로 보이는 상징물이다.
-정치이념과 실생활 사이 간격-
정치의 추상성은 국가를 그 바탕으로 할 때 강화된다. 국가는 하나의 자족적인 세계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전체는 추상적으로 설정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하여 지방선거는 그런대로 구체적인 제안들을 쟁점의 대상이 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추상적인 이념이나 구호보다 구체적인 것을 약속하는 말들을 듣는다. 이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많은 공약들에 대한 비판은 그것들이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삶의 구체성이라는 관점에서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에 나온 많은 공약들은 관광지를 개발하고 문화 중심을 짓고 도로를 개설하고 철도역을 신설하고 하는-각종 개발 사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공약에 나오는 공공사업들은 추상적인 이념이나 구호 또는 동상 건립과 같은 일보다는 구체적인 일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참으로 삶의 현실에 즉한 것인가? 지방에 따라서는 이 공약들이 정당화될 만한 개발의 필요를 적출해낸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또 공공부문의 투자는, 어떤 것이 되었든지 간에, 고용을 확대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개발 공약들은 보다 근본적인 것에 이어지고 넓은 테두리와의 관련 속에서 생각되지 않는 한, 사람들의 삶의 현실을 겉도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공사업은 더 큰 비전의 일부로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면, 일과성의 일이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단순한 개발 열기를 타려는 계획들이다. 오늘날 중앙이나 지방에서 남발되는 국토개발이나 도시계획들은 은근히 사람들의 부동산 이해에 호소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러한 계획은 장기적인 국가 발전의 관점에서 국토의 문제를 생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매우 구체적인 것처럼 보이는 계획이 깊은 의미에서 구체적인 삶의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실 편협하게 생각된 개인들의 이해 또는 그러한 이해의 산술적 평균이 심각한 의미에서의 삶의 현실의 전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쿠얀불락의 사람들이 레닌 상 대신 모기퇴치를 택한 것은 반드시 개인적인 이익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삶에 관계되고 또 삶의 기본 조건의 향상에 관계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사사로운 이익을 넘어선 근본성과 공공성을 나타낸다.
이렇게 보면, 처음에 말한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삶의 추상화가 반드시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정치적 차원에서 의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라는 것은 개인의 삶을 넘어서 보다 깊게 그리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에 답할 때에, 사람의 삶은 보다 높은 차원으로 고양되고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 없이는 진정한 공동체는 성립할 수 없다. 또 공동체는 최선의 상태에서는 단순한 집단의 명령을 넘어 삶의 근본에 뿌리 내린 것이라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깊고 넓은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높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지탱하는 뿌리와 연관을 되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러한 여러 연관의 지평 안에서만 삶의 진정한 구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호·상징은 삶에서 검증토록-
브레히트의 시에 정의를 설명한 것이 있다. 그는 이 시에서 정의를 인민의 빵이라고 말한다. 빵은 사람들이 그날 그날 필요로 하는 양식이다. 정의도 빵과 같은 삶의 양식으로서, 사람들은 그것을 매일 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삶은 기쁨의 삶이 될 수 있다. 정의를 빵에 비유하는 것은 정의가 추상적으로 저 멀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빵처럼 일상생활의 결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물론 역으로 사람의 삶은 낱낱이 정의에 입각하는 것이 됨으로써 행복한 것이 된다. 이러한 설명에서 빵과 정의의 관계는 쌍방 통행의 것이다. 그러나 이 후자의 경우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그것은 인민의 삶이 정치적 이념-정의라는 정치적 이념에 완전히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것은 삶의 추상화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정신의 노예화를 의미할 수 있다. 빵은 정의에 의하여 검증되어야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것은 빵에 의하여 정의를 검증하는 것이다.
브레히트의 시를 어떻게 해독하든, 정의뿐만 아니라 추상적으로 표현되는 모든 정치 이상은 매일 매일의 삶으로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매일의 삶은 바른 정치의 큰 테두리에서만 진정한 구체성을 유지한다. 삶에 있어서의 정치의 기능은 이 테두리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일이다. 그 바탕 위에서만 여러 가지 상징과 개발의 축조물은 의미 있는 것이 된다.
☞ 과연 개발만이 능사일까요? 개발은 당장에는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우리의 항구적 미래를 보장할 수 없고,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겠지요.
선거치를 때마다 “생태계 파괴 가속”
[일다 2006-05-24 15:30]
지난 몇 년 간 지역자치와 생활정치의 중요성이 한층 강조된 것과 지방자치 10년이라는 역사적 의의에 비추어, 지방선거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이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막상 이번 지방선거는 정당공천제의 ‘공천헌금과 같은 비리와 잡음’으로 그 뚜껑이 열리면서 개시됐고, 현재 지역자치 의의는 간 곳 없다.
997개 공약분석 ‘대규모 건설공약 일색’
흔히 지방선거를 “민주주의 축제 혹은 지역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론의 장”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최근 지역단체들의 얘기로는 오히려 “지방선거를 한번 치를 때마다 지역 환경과 생태가 마구잡이로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각 자치단체와 지방의회 후보자들이 일제히 쏟아낸 ‘어디에 제방을 쌓아주겠다’, ‘관광레저타운을 건설하겠다’, ‘재개발사업을 추진하겠다’, ‘뉴타운을 건설하겠다’ 등 남발하는 개발정책과 선심성 공약들 때문이다.
지난 23일엔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결성한 지방선거시민연대는 “새로운 지역일꾼에 대한 관심과 기대보다는 실망과 우려가 더 크다”는 평과 함께 ‘10대 막개발 헛공약 리스트’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지방선거시민연대는 그간의 “전국 자치단체 어디서나 한결같이 이뤄지고 있는 마구잡이식 개발정책과 대규모 건설사업”과 “지방의 한정된 재원을 일부 토건세력에게만 몰아주는” 지방행정의 고질적인 부패를 지적했다
지방선거시민연대가 이번 지방선거 공약 997개를 분석한 결과는 “대부분 대형교통시설, 레저 및 관광단지개발, 뉴타운 개발 등”을 통한 주택건설과 일자리창출 관련 개발공약들로 평가됐다. 또, “지역경제 및 교통관련 공약의 비중은 총 551건으로 51.3%에 달하고, 이중 건설 관련 공약이 267건이나 된다.” 지방선거시민연대는 이번 지방선거 공약들이 개발정책과 대규모건설공약 일색이라고 우려를 표하며, “전국을 또다시 개발열풍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개탄했다.
강북시민연대 각 후보 공약의 ‘허와 실’ 분석
같은 날인 23일 서울시 강북지역에선 지역 시민단체들이 결성한 ‘531 매니페스토 강북시민연대’가 “강북구청장 후보자 공약 평가”를 발표했다. 특히 서울의 강북 지역은 강남 지역에 비해 지금까지 저개발이라는 점을 들어 개발공약들이 선심성으로 더욱 남발되고 있어 시민단체들의 비판과 감시가 주목되고 있다. 강북시민연대는 “후보자들이 공히 지역 개발이나 규제완화에 대한 공약을 제시해”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북지역의 14개 시민.여성.환경단체들은 ‘531 매니페스토 강북시민연대’를 결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 협약’을 체결하고, 지역적 상황을 감안한 “주민자치, 환경, 복지, 장애, 교육, 문화, 여성” 등의 공약을 각 후보에게 제안하고 전달했다.
그러나 정외영 ‘531 매니페스토 강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강북지역에 북한산국립공원이 있는 점, 저소득층과 한부모 가정이 많이 거주하는 점, 미등록 장애인까지 포함해 2만여명의 장애인이 거주하는 등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제안한 정책들이 “후보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후보자들의 공약을 검토해 보면 여성정책 및 여타 교육, 청소년, 장애, 환경 분야 공약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개발공약이 난무하는 지방선거 풍토에서, “참공약 실천 운동”으로 불리는 메니페스토 운동이 그 취지와 의의가 발휘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강북구청장 후보자 공약을 주요하게 분석한 박운정 열린사회북부시민회 사무국장은 “재건축 및 재개발, 고도제한, 규제완화 등의 개발공약이 다수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특히 구청장으로 출마한 모 의원은 “강북구의 20년 이상 된 노후주책을 모두 재건축, 재개발하고, 미아-삼양선 지하경전철 조기 완공, 명문 중고를 설립하고 명문학원 유치” 등 개발공약들을 쏟아낸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531 매니페스토 강북시민연대’는 특히 이런 공약에 대해 “선심성 공약, 헛공약이 아니냐”며 공약의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분석했다. 강북시민연대는 앞으로 분석한 공약들의 허와 실을 주민들에게 알려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여성, 소수자 위한 정책은 ‘뒷전’
강북지역만 유독 개발공약이 남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양천구 주민인 30대 여성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소위 부자 동네라고 하는 이런 동네까지 뉴타운 한다고 난리”라고 한다. 그는 “목 2,3,4동의 경우 신시가지가 생기면서 이쪽이 상대적으로 낙후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구의원들까지 뉴타운 공약을 내거는데 실제로 구청장이면 모를까 시의원이나 구의원이 약속할 수 있는 공약인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또, “과밀학급 해소 등과 같은 지역 교육 현안들도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 특목고나 사립형자립고 유치, 설립 등으로 약속되고 있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과밀학급 해소는 초, 중학교들에서 심각한데도 특목고나 사립형자립고를 설립한다는 식의 해결책을 내놓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 선심성 공약이 아니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개발공약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지역 주민들 이기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에선 진정한 자치의 의미로서 주민들 사이에서 지역 현안들이 논의되고,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들이 설득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서울시뿐 아니라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방선거시민연대에 함께 하고 있는 김종남 대전여성환경포럼 사무처장은 “심지어 후보자들이 낸 환경, 복지공약도 개발공약인 수준”인 상태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누누이 지적되어온 지역 사안과 사회적 문제들뿐 아니라 “여성 고용이나 비정규직 문제, 장애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종남 사무처장은 “일부 어린이 방과후 학교나 보육예산지원 등이 여성공약으로 제시되긴 하지만, 그것들은 ‘보육’ 공약으로 얘기되어 하지 않냐”고 문제 제기하며 “(실제로) 여성공약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시민연대는 “이러한 막개발 헛공약들을 후보자 본인 스스로에 의해 전면적인 재검토나 철회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투표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리라는 전망 하에서 유권자들이 “환경의 질을 악화시키고 실현가능성도 크지 않은 막개발 헛공약들에 대해서 적극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수능 D-175 대비 핵심 개념 총정리 /
한정적 접사와 지배적 접사
먼저, 개념을 정확히 파악합시다.
'한정적 접사'라는 것은 품사는 그대로 두고 어근의 뜻만을 제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군소리', '선무당', '지붕'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군소리'는 '소리'라는 명사에 '군'이라는 접사를 붙여 뜻을 첨가했을 뿐이지, 품사를 바꾼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선무당'도 '무당'이라는 명사에 '선'이라는 접사를 붙여 뜻을 첨가했습니다. '지붕'은 '집'이라는 명사에 '웅'이라는 접사를 붙여서 '지붕'이 되었지만 품사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에 비해, '지배적 접사'라는 것은 품사를 바꾸는 접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덮개'는 '덮다'라는 동사에 '개'라는 접사를 붙여서 명사로 품사를 바꾸었고, '학생답다'는 '학생'이라는 명사를 '답다'라는 접사를 붙여서, 형용사로 품사를 바꾸었습니다. '놀이'는 '놀다'라는 동사에 '이'라는 접사를 붙여 '놀이'라는 명사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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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샘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 주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명랑한 기분으로 생활하는 것이 육체와 정신을 위한 가장 좋은 건강법입니다.
-우덕현의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됩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