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국의 여름은 눅눅하고 더운 날씨이다.
3년만에 하는 고국나들이. 결혼하고 많은 시간을 한국밖에서
살다보니 늘 친정 어머니에게는 이웃사촌보다 더 쓸모없는 딸일것이다.
나이 90을 바라보는 친정 어머님에게 가고 싶은 곳을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더니
돌아가시면 자신이 묻힐 강원도 월정사를 생전에 딸과 함께 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 남의 손 잡고 가시는 것 보다는 딸의 손을 잡고 가보시는 것이 더 편할 지 모르겠다.
수의까지 이미 다 장만해좋으셨으니 그 곳도 걸을 수 있는 이 시간에 가보시고 싶은거로구나.
강원도 산골이 만들어내는 먼 산들의 실루엣이 너무도 아름다왔다 산이 없는 넓은 지평선만 바라보고사는
내 눈에는.
어릴 적 무심히 바라보던 지붕위의 기와 하나하나가 오늘 내게는 고국의 아름다움으로
살갖게 다가온다.
촌스럽게 생각되던 사찰의 단청 색깔이 이렇게 정겹고 친근하게 느껴지다니....
사찰 담당자를 만나 수목장( 장례식후에 나무밑에 묻히는 방식)이 치루어 지는 계약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제야 자신의 돌아갈 곳이 확실히 정해진 것을 보고 안심하시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웬지 눈물이 흐른다.
엄마는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분인데 딸인 나는 어머님이 이 세상밖을 나갈 자리를 봐드리고
있으니 마음이 어두워진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걱정해주고 사랑해주는 두 여자 , 엄마와 언니.
그들 곁에 가까이 살지 못하는 것이 늘 미안하다.
이민가는 딸을 공항에서 배웅해 주시던 엄마의 그 뜨거운 손이 오늘 나를 지탱하게해주는 힘이다.
늦둥이로 태어나서 다른집 엄마들보다 우리 엄마가 항상 먼저 돌아가실까 늘 조마조마했는데
오래 사셔서 늘 감사하다. 이민가는 동생때문에 팔자에 없는 외동딸이 되어 엄마를 보살피는 언니.
저 두 여자를 생각하면 난 10초안에 언제든지 울 수 있다.
타국에서 늘 꿈꾸던, 상다리가 휘어질 것같은 한식 밥상. 그것도 강원도 산나물이 가득한 식사가
어두어진 내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일산에 모셔진 시어머니늘 찾아뵈었다. 하나뿐인 며느리를 늘 존대해주시던 어머님, 좀 더 내가 늙어보니 어머님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추를 말리는 모습. 가정집 뒷마당도 아닌데 사무실 앞까지 고추를 널어놓은 모습이
특이한 한국의 모습이다. 한 집안의 먹거리 준비가 공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져도 서로 이해하는 분위기말이다.
고운 염색으로 한국의 미를 잘 보여주는 닥종이 얼굴들.
어린 시절부터 서양의 노랑머리 코쟁이 인형을 가지고 놀아던 세대이지만
나이들고 보니 우리의 얼굴이 친숙하고 너무 정감있다.
다시 육아를 담당하는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런 인형을 우리 딸들에게 사주고 싶다.
아름다움을 남의 나라의 잣대로만 재지않으려면
인형의 모습도 좀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
청실 홍실 한국의 색감들.
삼청각안의 레스토랑
식사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고상하고 단아한 한식이 나올 것같은 식당이다.
외국의 력셔리 결혼 피로연같은 분위기이지만 삼청각에서는 이런 식의 피로연준비를 해준다고 한다.
전통 혼례식을 재연한 이벤트. 신부의 예복이 참으로 아름답다.
섬세하게 한땀 한땀 자수를 놓은 예복이 너무 아름답다.
한국의 전통 혼례식에 서양식 피로연이라...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세대가 살아가는 문화코드가 아닐까 싶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지만 우리 것만 가지고서는 살아날 수 없는 시대.
우리 것위에 남의 것을 빌려와서 우리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퓨전의 문화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전통 악기로 연주되는 '베사메무쵸'
귀에 익은 멜로디에 국악의 장단과 소리가 어울려 한국과 서양의 퓨전 음악으로 연주되니 서양악기로
연주되던 베사메무초와 비교할 수 있어서 국악이 내는 소리의 가치를 더 빨리 감지하게된다.
서양악기가 주는 감동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색다른 감흥을 전해준다.
토론토에서는 감상하기 힘든 생음악 국악의 가락을 들으니
서울 한복판에서 타향의 외로움이 더 진하게 몰려드는 것 같다.
고향으로 comeback하고 싶은 마음이 슬슬 뼈쳐 오른다.
평생 전업주부였던 언니가 개업한 예쁜 일식집.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편리한 한국, 빠른 택배와 배달 서비스, 빠르고 값싼 대중교통, 값싼 인건비,
몸둘바 모르게 친절한 서비스- 저임금과 질 좋은 인력.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편리하지만 이런 사업에 종사해야하는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살벌한 경쟁구도안에서 살아남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밤 11시가 다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는 언니, 시간당 오천원이면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저임금 구조.
그런 기반이 위에서 소비자는 언제 어디서나 왕대접을 받지만 그 소비자도 어디에선가는
공급자 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생존의 법칙.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극찬하는 이 값싸고 편리한 한국의 시스템은 무엇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늘 그리워하던 포장마차의 떡뽁이, 순대.
맛있는 접시너머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크게 보인다.
언니의 창업덕분에 가게운영과는 무관하게 살 던 내가 모르던 세상에 눈을 뜨는 느낌이다.
안국동 삼계탕. 정말 맛있다.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가게, 줄을 서 있는 동안 뭘 물어본다고 옅사람에 말을 건네었지만
멀뚱히 얼굴만 쳐다본다. 서울에 외국인이 많다더니
정말 실감난다.
한국을 떠나기 며칠을 남겨두고 창녕의 아버지 묘소를 가보았다.
비 많은 여름이라 잡초가 우거져 묘소를 가는 길도 없어지고 수풀더미를 헤쳐서 도착했다.
한여름, 손길이 닿지 않은 아버지의 무덤위에 왕관처럼 두개의 나무가 치솟았다.
추석을 얼마 앞두고 있어서 벌초를 아직 못했다고 미리 걱정하는 큰집의 장손 오빠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뭐 누구를 원망할 처지인가. 이렇게 불쑥 한번 오고나면 또 언제 올 지 기약못하는 딸인데...
평생에 돈과 땅이 인생의 길이요 진리라고 생각하며 사신 아버지,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었지만 팔자에 없는 아들 욕심때문에
우리 세여자에게 정신적으로 상처를 준 아버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땅 한모퉁이만이 자신의 욕심때문에 아무와도 교감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외로움을 반추하는 듯하다.
한국을 떠나는 날, 언니와 군대에서 휴가나온 조카가 나를 마중한다.
배웅도 마중도 없이 늘 단촐하게 입장하고 퇴장하고 싶은 나를 방해하는 방해꾼이다.
면세점에서 무념 무상으로 구경하며 빠져나오고 싶은데 이렇게 배웅하러 나오면
내 마음이 아파진다.
3주간의 나만의 고국 방문. 거기엔 늘 내가 만나고픈 사람이 있어 다른 여행과 차별된다.
벌써 그들을 또 ' 보고 싶다' 노래 불러본다.
곡: 보고 싶다.
노래: 김범수
첫댓글 반가운 사진들이네. 어머님이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이제 사진을 올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바빴나보다.
사진을 보는 내내 그리움이란 단어가 머리속에서 맴돈다...
그래, 많이 그립다. 이미륵의 소설을 읽었다.이미륵은 일제시대에 도망을 가서 독일에서 평생 조국을 그리워하며 죽어간 과학도라고해. 이제는 마음 내키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고향인데 찍어온 사진을 보니 고향과 더불어 혼자 여행 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그립다. 열심히 일해서 좀 더 늙으면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쪽으로 노년의 포트폴리오를 짜느라 바빴다 ㅋㅋ. 건강해라.
TV에서 봤는데 남해에 독일마을이 있더라. 인터뷰한 분은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퇴직을 한 후에 독일서 만난 독일남편과 함께 연금으로 어디서 생활할지를 고민하다가 독일시골과 한국의 전국을 다 다녀보고 남해가 너무 좋아서 남해에 정착을 했다고 하더라. 두 노부부의 모습이 더없이 좋아보이더라.
나도 본 적이 있어. 아내때문에 아니면 아내 덕분에 낯선 나라에서 사는 남편이 대단해 보이더라. 그리고 한 집이 아니라 여러 가족이 마음을 모아 공동체를 이룰 정도로 같이 행동했다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이더라. 하나가 내지 못하는 용기와 아이디어를 여럿이서 했다는 점말이야. 노년에 같이 하는 모임을 시도해봤는데 참 어렵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