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기원전 740 - 680년 경입니다. 때는 이사야서 1:1에서 밝힌대로 유다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와 히스기야왕등 4명이 통치하였던 시대였습니다. 그는 약 20세에 소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최고 격동기에 40년에 걸쳐 유다와 예루살렘등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답니다. 웃시아 왕이 죽던해(BC 740) 소명을 받았는데 그 시기는 앗시리아 제국과 애굽이 세계지배의 패권을 놓고 각축하고 있는 때였지요. 자연히 주변의 약소국들은 원치 않는 전란에 휩싸이게 되고 그 와중에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속해있는 팔레스틴 땅도 예외일 수느 없었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왕좌왕 어쩔줄 몰라했죠. 정치적 혼란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궁중에서는 어느편에 붙는 것이 유리한지 날마다 이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앗시리아와 애굽에서는 상대방을 비방하고 자기편에 투항하여 영화를 누리라는 회유와 협박이 계속되었습니다.
한편 국내적으로는 사회적 부정의, 도덕적 타락, 불신앙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종교의 부패는 극에 달하였습니다.(이에 관해서는 이사야 1: 10-17 참조) 이사야 선지자는 이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살찐 제물도, 안식일에 모이는 성회도 구역질 나 견디지 못하겠다고,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두 아들에게 시대를 상징하는 이름을 지어 붙였습니다. 장남에게는 스알야숩(사 7: 3)이라는 이름을 차남에게는 마헬살랄하스바스(사 8: 3)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죠. 스알야숩은 '남은자는 귀환하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세에 의존하는자는 멸망하게 되고, 악을 행하는자는 심판을 받으나 계속 주님을 신뢰하는 자도 있으리라는 이사야의 희망을 투사하고 있는 이름입니다. 차남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노략이 속히 온다'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급속한 파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북 이스라엘 왕국은 이사야의 활동시기 중에 멸망하였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 왕국의 왕은 호세아 였는데 호세아는 앗수르의 지원을 등에 업고 모반을 일으켜 베가를 살해하고 왕이 되었습니다(왕하 15: 30). 일이 이렇게 까지된 원인은 친 애굽파였던 전왕 베가가 수리아와 동맹을 맺고 애굽의 지원하에 앗수르에 대항한데 있었지요. 이것이 앗시리아왕 디글랏 빌레셋 3세의 분노를 일으켯습니다. 급기야는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되었죠. 이 과정에서 베가의 정책에 불만을 품은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앗시리아와 내통하여 베가왕을 죽이고에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베가 왕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군요. '사마리아에서 20년을 다스렸는데 여호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저지르고 우상숭배와 음행에서 떠나지 않았다.'(왕하 15: 27-28)
왕이된 호세아는 처음엔 앗시리아에 복종했으나 애굽이 더 강성한 것으로 판단하고 애굽에 조공을 바치도록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는 이스라엘의 태도 표변으로 팔레스틴의 균형이 깨져 군소 왕국들에 애굽편을 들어 앗시리아에 대항할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애굽을 치러가는 길을 제공하라는 구실로 북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은 메소포타미아와 메데에 강제 이주되었습니다.(왕하 17: 1-6)
이런 상황을 경험하면서 이사야는 남 유다 왕국의 운명도 풍전등화에 처해 있음을 알리려 애썼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외세에 의존하는 정치행태와 극악한 파당 싸움, 종교 사회적인 타락과 백성들의 불감증으로 진단하였지요. 이것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고서는 남 유다왕국도 북 왕국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말라, 사람에게 신뢰하지 말라, 다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만 의뢰하라'(사 30: 15)는 멧세지를 전하였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므낫세 왕의 노여움을 사서 그는 많은 고난을 당하고 비통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히브리서 11: 37에 기록된 '돌로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라는 기록은 바로 이사야 선지자가 받았던 수난을 기독교인들이 당하는 박해와 관련하여 묘사한 구절입니다.
2. 이사야의 소명
오늘 본문은 이사야의 소명담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6장은 3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1-4절은 이사야의 소명 신비체험을 기록하였구요, 5-7절은 내적 수련을, 8-13절은 시대상황에 대한 예언과 소명자로서의 책무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보통 하나님께서 에언자를 세우실 때는 신비체험을 하게 합니다. 모세는 불붙는 떨기나무에서 부르셨고,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강신무가 되는거죠. 나약한 인간이지만 죽음의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힘을 받는거죠.
시대의 소명자로 택함받은 이사야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먼저 이사야는 신비 체험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되죠. 허위와 기만에 찬 자신의 껍질을 보게 되는 겁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입술이 부정한 자로다'하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허물을 보게되고 회개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거짓된 나를 발견함으로써 그 안에 감추어진 진실된 나, 하나님과 단단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나를 보게 된거죠.
이제 이사야는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기꺼이 그뜻을 쫓게 됩니다. 참된 자기(眞我)를 찾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밖에 없습니다. 늘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이죠. 이사야는 곧 망하게 된, 위기에 빠진 유다 왕국을 봅니다. 하나님은 그 왕국이 완전히 쑥밭이 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게 되어 그루터기만 남게되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제 이사야는 자기의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몸으로 응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이사야의 응답은 소명에 대한 비장한 각오였습니다. 고난받는 종 그리스도처럼 살겠노라는 확신에 찬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소명에 응답한 이사야는 40년을 한결같이 유다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으로 부터 벗어날 것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전 586년 이사야의 예언대로 남 유다왕국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 갔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가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기억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강가에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면서 남은 그루터기가 되기로 작정했을 때 하나님은 예언대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3. 시대의 소명
강대국 사이에서 외세 의존으로 나라를 지탱하려는 어리석은 정치 지도자들이 통치하는 나라, 그러면서도 부정과 부패로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정객들이 목청을 높여 악을 써대는 나라. 갖은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하나님께 뇌물만 바치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며 세상과 짝하는 종교, 화려한 교회당의 첨탑은 높아만 가지만 세상은 더욱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하나님을 팔아 호의 호식 온갖 축복을 누리는 종교인들. 돈이면 다되는 세상이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 모으느라 혈안이 된 사람들, 돈 있다고 온갖 추태에, 갖은 악행을 일삼으며 거드름 피우는 이들이 대접받는 사회, 매일 신문 지상에 비리, 사기, 살인, 강도, 추행기사가 실려도 별반 반응없는 이들이 멍한 모습으로 사는 곳, 자신보다 가진게 없다고 멸시하며 노예처럼 부리다간 푼돈마져 사기쳐 먹는 사람들이 즐비한 곳. 여기가 어딜까요? 이사야가 살았던 시대겠지요. 우리가 사는 시대이기도 한가요?
요즘 신문에 조선족 사기 피해에 대한 보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피해당한 중국동포들이 협회까지 결성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더군요. 좀 잘살게 된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해 먹을 수는 없는거죠. 어떤 사람은 잘나가는 회사 직원이었는데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유령 무역회사 사장의 꼬임에 빠져 1600만원이라는 거금을 사기 당하고 갚을 힘이없어 죽음을 생각하는 지경에 빠져 있다는 피혜사례가 우리 방송에 보도되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외국 노동자 문제가 심각한 것 아시죠. 지난 달 청년회원들과 성문밖교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피해 사례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함께 가신분들은 우리 기업들이 그들에게 행하는 그 끔찍한 사례를 들으면서 분노와 수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횡포도 굉장합니다. 어쨌는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은 아주 질이 나쁜 나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동남아 여행을 할 때 여행사에서는 개인행동을 금지시킬 정도로 테러의 위협이 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자초한 결과입니다.
계속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 시대를 탄식하며 '내가 누구를 보내며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며 소명자를 찾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사야 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할 수 있을까요? 내가 결단할 때 마지막 때 그루터기가 되살아 나는 희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운명은 바로 내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건너면 세계도 건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