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마지막 배웅하는 '장례지도사'
갈색 정장을 입은 남녀가 차량을 타고 서울 내부순환도로를 질주했다. 목적지는 수유동 D병원 장례식장이다. 운전대 잡은 박순태(47)가 말했다. "내비게이션 없어도 된다. 10년 넘게 하다 보니 장례식장 위치를 다 안다."14일 오후 그 병원 장례식장에서 암 투병하다 숨진 이의 입관식이 예정돼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이향미(여·27)가 두 손을 모으고 창 밖을 보다 말했다. "3년차가 됐는데도 의전이 발생하면 마음이 무겁다."
- ▲ 알코올을 만지는 이향미의 손은 거칠다. 그는“시신 상태를 보면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짐작이 간다”고 했다. ☞ 동영상 chosun.com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오후 12시 30분, 이향미가 동료 김대근(35)과 여행용 가방, 화장품 박스를 챙겨 지하 1층 염실로 갔다. 두께 4.5㎝짜리 오동나무 관이 보였다. 이들은 1번 냉장 안치실에서 고인을 꺼냈다. "하나, 두울, 셋!"
염습(殮襲)은 2~3명이 한다. 사수와 부(副)사수 같은 관계다. 5년 전쯤부터 여성 장례지도사들이 늘면서 여성 시신은 여자가 사수를 하고, 남성 시신은 남자가 사수를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두 사람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이향미가 트렁크를 열어 수의·탈지면·종이를 꺼냈다. 알코올을 묻혀 고인을 닦기 위해 탈지면을 10×20㎝ 크기로 잘랐다. 수의를 정리한 다음 관에 얇은 종이를 깔았다.
김대근은 고인의 입·코·귀를 솜 집은 핀셋으로 닦았다. 이향미가 고인의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폈다가 접어 내렸다. 굳어 있던 얼굴을 쓰다듬고 턱관절을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염실과 유리창 섀시 하나로 연결된 입관실에서 유가족들이 흐느꼈다. 장례지도사들은 무표정하지만 질서 있게 고인을 닦았다. 고인이 수의 입고 턱수염 깎고 로션까지 바른 무렵 한 여성이 외쳤다.
"저기요, 잠깐만요! 큰딸이 잘못했다고 전해주세요…! 아빠, 잘못했어요. 아빠, 죄송해요…." 대렴(大殮·입관 전 시신을 베로 감아 매듭짓는 절차)은 고인 유가족의 종교적인 이유로 하지 않았다. 입관식은 오후 2시 7분에 끝났다.
이향미는 2008년 여름 이 일을 시작했다. 2005년 10월, 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향미는 아버지 입관식에서 염을 해주던 박현연(여·27)을 만났다.
"천사처럼 보였다. '울 아빠 좋은 데 가겠구나' 싶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웠다. 그때까지 레스토랑에서 일했는데 이걸 배워야겠다 싶었다. 그 고마운 감정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이듬해 사회복지·장례지도사 과정을 가르치는 전문대에 입학했다. 재작년 여름에는 장례식장 '울산 영락원'에 취직했다. "할 일이 없어 그런 일 하느냐"고 말리던 어머니는 요즘 "어리기만 했던 딸이 남 생각부터 하고 예의 바르다"며 기특해한다고 한다. 이향미는 작년 11월부터 상조업체 '예다함'에서 일한다.
그의 상사 박순태는 IMF 직전까지 포항에서 트레일러 운전을 했다. 1997년 실직 후 사고사 시신을 담당하는 장례식장 문을 두드렸다.
"절망하기보다 뭐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박순태는 무연고 시신의 말라붙은 손가락을 불려 지문을 채취하는 일도 했고, 한강에 빠진 시신 염습도 해봤다. "저수지에 빠진 시신이 몇년 만에 발견돼 병원으로 왔다. 겉은 뽀송뽀송한데 피부는 소보로빵 같은 모양이었다. 만지면 물이 쭉쭉 나왔고…. 동료·후배가 냄새를 못 참고 뛰어나갔지만, 나는 괜찮았다." 박순태는 "비염 때문에 냄새를 못 맡는 게 도움이 됐다"고 웃었다.
박순태는 작년 9월 스카우트됐다. 그는 "다양한 삶을 살다 간 사람들 마지막 배웅해주다 보니 나도 참 많이 배웠다"고 했다. "만물이 왕성해지는 여름에는 죽음도 적다. 그래서 6월부터 8월까지 일이 20% 정도 줄어든다. 자연의 섭리다."
첫댓글 무더위에 수고많으시죠
우...정말 어려운 직업이지만 나름되로 사명과 경제적인 도움은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