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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바다숲입니다.
오늘부로 10학년 아이들 9박 10일 간의 들살이를 시작했습니다.
1학기에 아이들과 들살이 준비를 하며 자기 들살이 주제와 관련된 글작업을 하기로 했고, 이렇게 공유하기로 했답니다.
다녀와서는 문집 형태로 만들 예정이에요.
아이들은 숙소에서 매일 8시 반에 모임을 가지고, 저는 글을 모아서 이곳에 정리해서 올립니다.
아이들 글은 수정하지 않고 날 것으로 올려요. 혹 개인적으로 빼고 싶은 건 미리 말해서 빼긴 하지만요.
그럼 매일 이곳에서 만날게요~!!
바다숲 올림.
1. 김영민
글 하나
화정 터미널에 가서 고속 버스에 올라탔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제 의자에 앉았다는 안도감과 편안함, 뭔가 스스로 해냈다는 뿌듯함에 여행에 대한 설렘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생각해봤다. (물론 그것도 잠시, 그냥 잤다.)
내 가방은 매우 크고, 생각보다 무겁다. 커봐야 큰 백팩 정도를 매고 가는 사람들 틈에서 걸어가는데, 되게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그냥 갔다.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해보니, 나는 이미 지쳐있었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한옥마을의 중심거리가 어딘지 몰라서 헤맸다. 왜냐하면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사실 여기에서 ‘외국인과의 대화’라는 버킷리스트를 수행해야 하는데 내가 힘들었던 탓인지, 외국인이 많이 없었던 탓인지 외국인이 보이지를 않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외국인과 ‘하이~’ 한 마디 해보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다.
오늘 길 고양이를 무려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길 가다가 계속 ‘야옹~’ 소리가 들리길래 주의깊게 살펴보니, 웬 길 고양이 한 마리가 거리 가운데 풀숲에서 낯선 사람 두 명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나도 가까이 갔더니, 금세 도망 가버렸다. 두 번째 고양이는 길 가고 있는데 왠지 고양이 사료를 팔 것 같은 (아니 진짜 팔지도) 오픈식 가게 앞에 다 젖은 고양이가 앉아서 나는 아무런 상관도 안 하고 그루밍을 하고 있길래, 콕 하고 찔러봤더니, 움찔! 한 번 하더니 태연하게 그루밍을 다시 시작하더니, 나는 본체만체길래, 그냥 보면서 몇 번 건드려보고, 사진 찍고 그냥 발길을 돌렸다.
글 둘.
한옥마을을 지나다보니 공예, 수공예체험이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전부 닫혀 있어서 계속 돌아다녔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팔찌나 반지에 Trust Me(들살이 제목)라고 쓰고, 그걸 들살이 동안 끼고 다니면 어떨까?’ 상징물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원래부터 악세서리를 좋아했던지라 아주 마음에 드는 생각이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팔찌, 반지 만들기 체험 가게에 불이 켜진 걸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생각에 가죽 팔찌에 ‘Trust Me’라고 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 후 찾아가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결국 가죽 팔찌는 포기하고 만원짜리 써지컬 이니셜 반지에 ‘Trust Me’라고 새겨서 끼고 있다. 굉장히 만족스럽다.
2. 노어진
글 하나.
여행 첫날이어서 그런지 식당에 가서 주문을 잘 못했다. 버스 타는 것은 잘 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도 보는 법이 아직은 어렵다. 어디를 중심으로 놓고 찾아야 하는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혀서 약간 헤맸다. 들살이를 하는 동안에는 길 찾는 실력이 늘었으면 좋겠다. 여행 첫날이어서 용기를 못 내는 것 같다. 남은 날 동안은 잘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버스타는 게 걱정이다. 내가 과연 잘 탈 수 있을까와 가야 할 장소에 시간 맞춰 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오고 나니깐 걱정이 많이 밀려온다. 밥을 잘 먹을 수 있을지(먹을 수 없는 재료가 많다.) 빨래를 잘 할 수 있을지, 장소를 잘 찾아갈 수 있을지 등등 무수히 많다. 아직은 겁이 나서 용기 있게 행동을 못 하겠다.
글 둘.
한옥 마을에서 있다보니 매우 심심했다. 한옥 마을 근처에는 식당이 별로 없어 밥 먹기가 불편했다. 나중엔 일정이 너무 빨리 끝나서 할 것이 없었다. 오늘은 많이 힘든 날인 것 같다.
3. 노효찬
글 하나.
내 큰 주제는 이번 들살이 주제와 매치시켜 주로 ‘진로’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나의 요즘 머릿속에 드는 생각들은 진로에 대한 생각들밖에 없다. 이런 장래희망을 갖고 싶은지 머릿속에서 좁혀지긴 하는데 확신을 못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주로 하고 싶은 직업은 검사(법학) or 행정직 공무원이다.
나에게 충분히 매력있고 관심있는 직업으로 다가왔고 마침 ‘연우 심리 개발원’에서도 나에게 맞는 직업으로 결과가 나왔다. 나는 이 2개의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 재판 나오는 사람책, 문체부에서 근무 중이신 공무원님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TV, 인터넷, 소문으로만 들었던 20대의 로망 직업인 공무원에 대한 현실을 알았다. 나는 KBS 뉴스에서 공무원(행정)들이 규정된 점심시간을 안 지키고 칼 퇴근 4시~5시, 당구를 치다 걸린 뉴스를 보고 많은 생각들이 들었지만, 가장 뚜렷하게 먼저 떠오르는 생각들은 부러움과 정말 다 저래? 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경험도 정말 진실인지 궁금해서 질문을 시작했다. 대답은 X였다. 정말 소수의 공무원들만 저런 행동들을 하고 원래는 점심 시간도 바짜서 점심을 못 챙겨먹는다고 했다. 이러한 나의 환상 속에 있던 행정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진실을 듣고 나니 진로 고민은 더 깊어져갔다...
나에게 행정 공무원이 매력적인 이유는 사무직과 조직적인 업무를 진행하는 것, 그리고 다른 직업에 비해 오래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확신이 없었다. 100대 1의 경쟁률(통계상으로는 100대 1이지만 제대로 공부하는 시간으로 한다면 사실 30~40대 1) 고난이도의 시험 난이도를 보고 선뜩 확신이 안 섰다. 몇 년, 몇 십 년이 걸렸는데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난이도여서 살짝 두렵기도 했었다.
그리고 검사는 역시 공무원과 비슷한 이유로 관심도 가지게 되었고 어렸을 때 검사에 대하여 동경을 가지기도 했다. 변호사의 경우에는 남을 변호해주는 것은 안 맞고 범죄자에게 더 강한 한 방을 주고 싶어 검사란느 직업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번 들살이로 진로에 대하여 뚜렷하게 잡기를 마음 먹었고, 그렇게 할 것이다.
글 둘.
벌써 들살이가 시작되었다. 방학도 시원섭섭하게 끝나버렸다. 그래도 방학 계획은 잘 지켜서 다행이다. 들살이 중 글을 쓰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전 학교에 다닐 때랑 일반 학교에 다닐 때 기억이 난다. 고1이 되고 보니 내 주변 친구들은 모두 입시준비, 내신관리 중이다. 어렸을 때 수능은, 고3은 아직 멀어서 고민이 없었는데 수능 볼 나이가 다가왔으니...감개무량하다. (?)
SBS 아카데미 게임 학원을 그만 둔 것도 잘한 것 같다. 어차피 코딩에는 흥미도 없었고 내 진로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만둔건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 서울은 굉장히 복잡하다. 사람도 많이,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직업도 전부 다르다. (물론 대다수는 회사원이거나 방송국에서 일하시는 분들 이셨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나도 서울에서 근무해야겠다는 의욕이 솟는다. 수도권. 편ㅇ리한 시설도 많고 아무래도 인구가 밀집된 곳이니 교통도 자연스럽게 편리해져 고민 중인 두 직업 검사, 공무원에게 모두 유리하다.
진로고민은 복잡하다. 고민해야 할 것도 너무 많고 해야 하는 문제여서, 그리고 자신의 진로 계획대로 실천 하기도 어려우니 많이 힘들다.
... 벌써 1일차가 끝나간다. 나는 후회없는 들살이를 보내기 위해 나에게 던져진 질문들을 깊게 고민해 볼 것이다.
4. 박주연
글 하나.
너무 다 가본 곳이여서 깊숙히 들어왔더니 차길가에 굉장히 큰 정자가 있다. 물론 한옥마을 한 바퀴를 돌고 왔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건 '지코모자'. 지코모자를 왜 팔까? 한옥마을에 있는 것 모두 한옥마을에 있는 물건일 뿐이지 다 뻔하고 재미가 없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떡하면 좋아. 이곳도 그리 쾌적하지 않다. 내가 기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나? 뒤로 보이는 풍경이 좋을 뿐이다. 6시 8분...
글 둘.
지도를 보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건 이제 쉽게 할 수 있는데
어딘가에 와서 아무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무언가를 찾는 건 너무 어렵다.
5. 정보근
글 하나.
이상하게 이번 여행은 설렘이 없다. 여행가기 위해 버스를 타면 엄청 설렜는데, 왜 없을까? 궁금하다. 거의 다 오니 드디어 설렌다.
글 둘.
나는 지금 전주에 와 있다. 오늘 여행의 분위기는 여유롭다. 내가 바쁜 곳에서 일하다 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간도 넉넉하고 마침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여유롭게 쥬스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주는 상업화가 돼있어서 별로 볼 것도 즐길 것도 없다. 단지 여유로울 뿐.
6. 정세연
글 하나.
600년 넘은 나무를 보았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나무에서 600년 전 이곳의 풍경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2017년. 이 나무에게는 지금의 풍경이 어떻게 느껴질까? 나에게는 10년도 무거운데 600년의 긴 시간은 어떨까?
부러운 점도 있다. 사람은 1분 1초를 바쁘게 살아가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나무가 600년의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건물 곁에 있다. 하지만 600년 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글 둘.
나는 최근 게임의 꿈을 포기했다. 내가 좋아하던 게임인 만큼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만둔 이유는 게임은 어디까지나 취미로 하는 게 내가 더 즐거울 것이라는 판단이다. 솔직히 내가 게임으로 먹고 살만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제일 큰 이유는 한 번 소설에 전념해보고 싶다.
하지만 소설은 게임에 비해 경험이 부족하다. 게임이야 뭐 어릴 적부터 했지만 소설에 빠진 건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들살이에서 고민할 것이 하나 줄었지만 다시 하나 늘어났다.
7. 정예린
글 하나.
처음 와 본 꽃시장, 길을 엄청 헤맸다. 들어가는 입구도 안 보이고, 3층이라는 말에 무작정 계단을 올랐다. 방화문을 열자마자 공기가 확 달라졌다. 들어서자마자 생화시장 인가보다 하는 냄새가 나서 3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간 시간은 아침 꽃시장이라고 하기 에는 조금 늦은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장이 바글바글하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인지 사람들은 저마다 다 바빠 보였고, 내가 길을 막고 있거나, 방해가 되는 듯 했다. 2시간 정도를 아무것도 사지 않고, 사진만 찍고 둘러본 것 같다. 2시간이라는 시간이 짧지도 않고, 그 시장이 2시간씩 볼 수도 있겠지만 생화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근데 힘이 드는 지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같은 곳을 돌고 돌았나보다. 이런 것들을 보았을 때 꽃을 좋아하나보다.
꽃 중에서도 생화보다는 드라이플라워랑 프리저버드가 더 좋다. 오래 간다. 나는 오래오래 유지되는 게 좋다. 빨리 시드는 건 너무 싫다. 꽃은 관상용의 용도도 있겠지만 선물이나 의미가 있을 때도 많다. 그런 추억을 더 오래오래 간직하려 나는 드라이 플라워와 프리저버드가 더 좋다. 내 눈에는 더 예쁘기도 하다.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더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조화시장으로 넘어갔다가 무엇을 살지 결정하고 구매하려고 다시 생화 쪽으로 갔다. 내가 구매한 꽃으로 결과물을 만들어서 선물하고 싶다. 그래서 조금이지만 장미 몇 단을 샀다. 많고 많은 장미 중에 붉은 장미가 가장 눈에 띄었기에 붉은 장미와 다른 종류의 장미를 샀다. 이 꽃들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선물을 줬을 때를 생각하며 예쁘게, 어떻게 나오든 만들어 볼 생각이다.
글 둘.
생화를 둘러보고 넘어간 조화시장. 조화시장은 정말 아무생각 없이 들어갔다. 온갖 물품들이 다 있었다. 근데 그 중에서 디퓨저 가게들이 꽤 있었다. 가게마다 앞의 시향을 할 수 있게 조향하기 전의 샘플들이 몇 십개가 놓여있었다. 정말 사진으로만 봤던 향 샘플을 실제로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달려가서 향을 하나씩 맡아 보고 있는데 ‘따로 찾는 향이 있냐’고 다들 물어보셔서 ‘관심이 많아서요’ 라고 대답하면 하나같이 다 ‘천천히 하나하나 다 맡아 보세요’ 라고 해주신다. 그 덕분에 맡아볼 기회가 없었던 향들도 많이 맡아보고, 가게에 계신 분과도 몇 마디 나눠 봤다. 내가 향을 어렵게 생각하는 게 보이셨는지 “배우면 되지 뭐.” 라고 말해주셨다. 사실 방학동안 향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뭐지? 생각했다. 별로 안 좋아하는 건가? 그냥 관심만 있는 건가? 그래서 이 여행에서 확실하게 구분해보고 싶다. 정말로 좋아해서 공부를 해보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 순간 잠깐 반짝 했던 것 인지.
소꿉놀이 같지만 향으로 기록도 해보고, 생각도 해보고, 다 해보면서 확인해보고 싶다.
8. 바다숲
글 하나. 여행이 주는 선물, 우연성.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던 중 어딘선가 들었던 ‘전주하면 역시 콩나물국밥이지.’ 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마도 학생이었던 거 같은데, 누구였는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전주에 도착하니 여기 저기 콩나물국밥집이었다. 그 중에서 어딜 가야하나 싶었는데 ‘왱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보였다. 안에 들어가보니 대통령이 다녀간 장소였다. 헉!! 반가워라!! 식사를 다 마치고 사진을 찍으려고 주인장에게 여쭤보니 사장님이 택배로 받은 무화과를 잔뜩 주시더니 좋은 기운받고 가라며 오래오래 있다가라고 하셨다. 점원은 손수 커피까지 뽑아서 가져다 주셨다. 좋은 기운 받으려고 기 모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이 셋과 전주를 여행하고 계신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왔던 자리가 궁금해서 오셨단다. 사진을 찍어드리고, 나도 부탁하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집에 두고 온 모래알과 새봄이가 떠올랐다. 싹터 아이들 마냥 들살이 첫날부터 가족 생각이 벌써 시작됐다. 하지만 울진 않았다. 아무튼 재미나고 독특한 경험이었다.
들살이 글작업을 하러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가장 저렴한 카페에 눌러 앉았는데, 여기엔 또 따님이 셋이나 있는 딸부잣집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숙제를 하고, 엄마는 쿠키를 만들고 계셨고 퇴근한 아빠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소소하고 재미난 풍경이었는데 또 가족 생각이 났다. 하. 심지어 오늘 잠시 들린 헌책방에서 ‘모래알 한가운데’라는 책을 발견했다. 결국 또 책을 사버렸다. 하.
사실 들살이를 오면서 이것이 일이긴 하지만, 9박 10일 동안 집에서 혼자 육아를 해야 하는 모래알을 두고 오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둘이 살 때보다 새봄이를 맞이하고 부터는 집안일이 배로 늘었는데 나눠했던 것들을 온전히 혼자 해야 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잘 다녀오라고, 공부 많이 하고 오라고, 또 우리 숙제도 하고 오라고 한 모래알에게 고맙다. 감사합니다, 땡큐.
점심밥, 대통령, 가족, 아이들, 그리고 카페, 가족, 아이들, 또 헌책방, 가족으로 이어진 오늘의 만남들. 여행을 하며 마주하는 이런 우연성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런게 여행의 묘미이고 또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오늘 우리 아이들은 어떤 우연성을 맞이하고 왔을까? 처음이라 많이 낯설고, 또 부모님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이시겠지만, 아이들이 마주할 우연성과 그곳에서 발견하는 나를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8시 반이면 모이자마자 재잘재잘 자기 이야기를 떠들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짜식들, 쓰윽!!
글 둘. 공공지리(公共之理). 함께 산다는 것.
요즘 내 안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는 고민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공동체성을 추구하는 공간에서 일을 하며, 또 새로운 가족이 생기며 이런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사실 이번 들살이를 진행하며 몇 가지 과제를 가져왔는데, 하나는 가족회의에서 나온 가족의 미래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오는 것, 다른 하나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업에서 필요한 책들을 조금씩 읽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전주로 내려오며 만난 책에서 ‘공공지리’라는 개념을 마주했고, 고민의 답을 이어나갈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공공지리(公共之理)란, ‘모두가 공공하는 원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나는 ‘공공하는 것’, ‘공공함’에 대해 생각했다. 보통 공공성을 하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어떤 것이나 혹은 국가와 관련된 어떤 것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런 추상적인 명사보다 ‘공공한다’, ‘공공함’ 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동사, 함께 살기 위해서 하는 어떤 행위에 초점을 맞춰봤다.
지난 몇 년 간 내 안에서도, 나와 가깝게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도, 내 주변의 세상과도 많은 ‘공공함’이 있었다.
먼저 그동안 내 안에 자리 잡은 공공함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에서 오는 자기 비판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상적인 가치는 항상 밖을 향했지만, 정작 내 안에 있는 공공함, 나를 온전히 돌보고, 내가 나 스스로 함께 살 수 있는 일에는 소홀했다. 그러다보니 마주하는 사람들도, 더 크게는 세상과도 일방적인 것이 정답이었고, 내 밖에 있는 것을 향한 마음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이런 몰두는 희생이란 이름으로도 포장할 수 없을 만큼 잘못된 것이었다. 이런 방식의 결과는 뻔했고 결국 다시 자기비판으로 다가왔다. 그것들은 주로 책임의식으로 귀결됐고, 모든 것이 내 탓이라 여겨지는 자학에 가까운 느낌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종종 삶을 살며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숙명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운명론적으로 여기며 체념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나와 나를 둘러싼 타인, 그리고 세상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 줄다리기를 해나가고 있다. 어쨌든 점점 내가 흐릿해져갈 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가 강렬하게 다가왔고, 어떻게든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다는 세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우물 밖으로 나갔다.
새로운 경험을 찾아 헤맬 때, 나와 다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이전보다 더 깊이 있는 관계를 맺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고, 지금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공공함을 치열하게 마주하고 있다. 아주 가깝게 지내는 가족의 관계에서는 지금까지 맺어온 수많은 관계들보다 훨씬 더 솔직하면서도 때론 거리를 둬야하는 공공함이 필요했는데, 이것은 나만의 사고방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도 고려해야 되고, 마땅히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타인에 대한 존중의 진정한 의미를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에서 여실히 깨닫고 있다.
‘같이 산다는 것’은 ‘상생’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과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상생이라고 볼 수 없듯이, 그 안에는 앞서 말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는 상생이 필요하다. 이것이 공공하는 것, 공공함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긴 시간동안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 둘이 상생의 가치를 좇으며 수없이 많은 갈등이 동반됐고, 또 우리는 그 갈등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함께 한 곳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갈등이 이뤄질 수 있는,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 자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우리 가족이 학교에서 하는 긴 회의 이후에도 지친 마음을 부여잡아가면서 가족회의를 빼놓을 수 없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쨌든 내 안에 타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공공함은 지금 나의 가족에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다.
마지막은 나와 세상이 맺는 공공함인데 지금의 나는 고양자유학교라는 거울로 바라보는 세상이 주를 이룬다. 내가 교육에 관심을 가지며 추구했던 핵심 가치는 ‘새로운 교육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여전히 새로운 교육이 무엇인지 새로운 세상이 무엇인지는 내 안에 명확한 답으로 찾아오지 않지만, 현재의 내가 이 꿈을 지켜나갈 수 있는 공간은 고양자유학교이다. 고양교육공동체의 정관에서도 다루고 있는 ‘공동체성’이란 단어 속에는 ‘공공지리’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생활하며 ‘우리는 공동체가 맞을까?’, ‘공동체라면서 이래도 돼?’ 같은 질문들도 내 안에서 또 바깥에서 들려오지만 앞서 말했듯 공동체성을 추구해가는 그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엄청나게 많은 갈등들과 풀리지 않는 숙제들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크게 봐서 구성원이 생각하는 공동체성도 서로 사뭇 다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갈등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동체를 추구해.’, ‘그러니까 이래야 해.’라는 각자가 생각하는 하나의 답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답이 없는 갈등을 끊임없이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함께 산다는 것’이 아닌 ‘상생’의 개념으로, ‘서로 존중하는 공공함’, ‘공공지리’가 가능하려면 이런 갈등들을 펼쳐낼 수 있는 장(場)이 필요한데, 우리는 여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있고, 그 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작업은 꽤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소모적이고 어렵고, 힘들고, 때론 답답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을 정도의 감정이 들 때도 있다. 많은 시도들이 좌절되는 경험이 쌓이거나 나와 다른 구성원을 비교한다면 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이젠 쉬엄쉬엄 갈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아이들에게 과제를 줄 때 아이들이 힌트를 얻어가게 적절한 참견을 해야 하고, 또 많은 기다림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공동체란 것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공공함을 위한 갈등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사실 이 이야기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다 알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누가 이것을 실행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에 대한 문제도 함께 고민해볼 때다. 결국엔 절박한 사람들이 이뤄내는 자발성인데, 정작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도 그런 면에 있어서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등을 피하고 싶진 않다.
함께 살고 있는가? 공공하고 있는가? 내 안에, 우리 안에 공공지리가 자리 잡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많은 여유를 가져야하고, 또 그럼에도 갈등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볼 때 지금의 나는, 내 가족은, 우리의 공동체는 건강한 공공함이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따끈따끈한 10학년 들살이 이야기 감사합니다 ~ 바다숲의 속 깊은 고민도 고맙네요. ~
혼자 떠나는 첫들살이 10학년 친구들과 바다숲의 이야기를 보면서 되돌아보게 되세요. 2번째날도 응원합니다!!
우리 청불 화이팅 오늘도 화이팅 내일 광주에서 봐요!
모두 파이팅~~!!!
다양한 여행이야기속에서 공감하며 저두 같이 느껴봅니다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며 즐거운 여행이 이어지기를...
전주는 상업화가 많이 진행되어 깊은 맛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곳이 곳곳에 있을겁니다.
그나마 평일이니 한가로움과 여유 맘껏 즐기다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