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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JK는 아침에 거울을 본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정리되지 않은 수염은 까칠하게 서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얼굴을 보며 가끔씩 한마디를 던진다. “미친놈으로 돌아갈까?” 그랬었다. 이 남자는 호랑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매니저들을 긴장시킨 미친 호랑이였고, 무대 뒤에서는 함께 공연하는 래퍼들에게 큰 형님 대접을 받는 산중의 왕, 힙합 크루 무브먼트의 대장 호랑이였다. 그는 세상에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고 울부짖었고, “방송정지 먹는 것을 즐겼”을 만큼 발톱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타이거 JK의 외침은 동물원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호랑이의 마지막 몸짓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처음 밟은 서울은 “나 힙합 알아! 젝스키스”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도시였다. 어떤 PD들은 그와 그의 친구들을 ‘사이코’ 취급했고, 음반사는 “다들 100만 장 파는 시대에 20만 장밖에 못 파는” 드렁큰 타이거에게 “앨범이나 내주는 걸 다행으로 알라”고 했다. 힙합하는 가장, 힙합 신의 대장 호랑이
그렇게 10년이 지나는 사이 도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산중의 왕은 지치고, 상처입고, 어깨 위에 더 무거운 짐을 얹었다. 가요계에서는 클럽에 어울릴법한 ‘클럽튠’의 힙합 음악들만 성공했고, 랩은 예쁜 멜로디를 부르는 여자 보컬 사이의 양념처럼 여겨졌다. 척수염은 타이거 JK에게 매일 ‘걷는 연습’을 하도록 만들었고, 그 와중에도 ‘JK 형’을 믿고 들어온 소속사 식구들은 늘어만 갔다. 그리고 그는 이제 아내와 아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MBC <무한도전>의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 편은 이 과거의 ‘성난 호랑이’에 관한 짧은 스케치였다. 홍대나 강남이 아닌 의정부에 자리 잡은 그의 작업실에는 거창한 스튜디오 대신 단출한 몇 개의 기기만 있었고, 보컬 녹음실에는 흡음재 역할을 하는 이불이 놓여 있었다. ‘블링블링’한 힙합은 거기 없었다. 대신 얼마 전 의정부의 30평대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아이 키우는 기쁨에 흠뻑 빠지고, 방송 중에도 아내와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힙합하는 가장이 있었다. 불쌍해 보일 수도 있다. 타이거 JK가 정글 엔터테인먼트를 꾸리느라, 아내와 전 소속사 사이의 계약 문제를 해결하느라, 척수염을 치료하느라 많은 돈을 모으지 못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면 돈 안 모으고 뭐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통장 잔고로만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타이거 JK가 더 이상 뛰지 못하고, 더 이상 발톱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이, 그의 주변에는 그를 ‘힙합 호랑이’로 인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겼다. <무한도전>에 참여한 뮤지션들 중 정확히 절반은 타이거 JK와 음악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윤도현은 그의 새 앨범 <Feel good music>의 ‘Monster’에 기타를 쳤고, 에픽하이는 무브먼트의 일원이며, 길이 소속된 리쌍은 계약금 없이 정글엔터테인먼트에 들어왔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기대주 랍티미스트는 음악을 관둬야 할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타이거 JK가 날 인정했다”는 한마디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는 다시 살고, 랩을 쓴다
가진 것 없으나 모두가 인정하는 산중의 왕. 타이거 JK만이 가진 이 위치는 더블 앨범임에도 각종 음반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전곡이 음원차트 100위 안에 오른 <Feel good music>에 대한 예상치 못한 반응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힙합 뮤지션으로서의 타이거 JK는 더 이상 어깨에 힘을 줄 이유도, ‘힙합 정신’을 소리칠 필요도 없는 힙합계의 수장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조단이의 아버지이자 생활인 타이거 JK는 “조금만 걷다 보면 다리 아파”(‘Feel good music’)라고 털어놓고, 의정부 작업실에서 “밤마다 밤새 마감일의 압박”에 쫓기는 “창작의 노예”(‘Monster’)다. 누구나 알고 있는 힙합계의 수장이 큰 돈을 벌지도 않고, 돈 때문에 자신의 음악을 놓아버리지 않을 때 만들어진 건강한 삶의 목소리. 더 이상 맹수처럼만 살 수는 없지만, 호랑이의 명예를 잃지 않은 이 남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고민과, 해답과, 위안들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냈다. 여전히 “들판으로 자유롭고 싶고”(‘Monster'), “지금도 미련을 못 버려 꿈을 아직도 못 버려”(‘내 눈을 쳐다봐’)라고 외치는 ‘몬스터’와 이제는 자신의 노래에까지 참여시키고픈 아들을 키우는 가장의 삶의 의지 사이에서, 타이거 JK는 힙합을 음악 장르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체화시킨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그가 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연 랍티미스트로부터 미국 힙합의 전설 라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도움을 통해 더 큰 세계를 만들어간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랩으로, 랩이 다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내는 연대로. 타이거 JK가 <무한도전>에서 힙합을 모르는 유재석을 모든 제작과정에 참여시키며 그의 모든 것을 힙합 음악의 한 부분으로 만든 것처럼, 그는 힙합을 자신의 삶과 일치시키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있다. 그래서, <Feel good music>은 바로 지금 이 순간 한국 힙합씬이 탄생시킨 또 하나의 ‘힙합’이다. 10년 전, 그는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성난 호랑이’가 아니다. 대신, 그 모습을 마음 속에 담아둔 채 자신의 삶으로 힙합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삶은 대중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진 것 없으나 모두가 인정하는 힙합 호랑이. 그는 오늘도 거울을 보며 이야기한다. “미친놈으로 돌아갈까?” 그리고 다시 랩을 쓴다. 의정부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
+ 이어지는 기사 | ||
타이거 JK│호랑이는 살면서 이름을 남긴다 | ||
타이거 JK│“<무한도전> 출연으로 조카들의 영웅이 되었다” -1 | ||
타이거 JK│“힙합은 지문처럼 나에게만 있는 자국을 표현하는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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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JK│“힙합은 지문처럼 나에게만 있는 자국을 표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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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음악 하는 태도도 달라진 것 같다. ‘숫자 놀이’는 가사 안에 숫자를 숨겨놓은 곡인데, 곡만 들을 때는 그런 의도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스킬을 굳이 과시하지 않으려는 느낌이다. 왠지 초탈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자세는 역시 가족의 변화에서 시작된 건가. “나 같은 놈 하나쯤은 균형을 맞춰줘야 할 것 같다”
삶이 음악을 바꾸는 건데, 요즘 당신의 생활은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음악의 감성에 의정부라는 지역이 특별한 영향을 미치나? 보통 뮤지션들은 홍대나 강남에서 작업을 하곤 하는데. 하지만 삶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책임져야할 사람들도 많아진다. 앨범을 만들 때 상업성에 대한 부담 같은 건 안 생기나. 트렌디한 음악을 해야 한다든가. 여전히 당신 음악은 요즘 트렌드와는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심지어 더블 앨범을 냈고. 하지만 회사 사람들은 걱정이 많겠다. (웃음) 한 회사를 이끌면서 어려운 점이 많겠다. “같이 음악하는 친구의 어머니를 위해 인증샷을 보내드리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리쌍 같은 팀들도 아무 조건 없이 당신의 회사에 들어온다. 소속 뮤지션은 점점 늘어나고. 그 비결은 어디에 있나. 앨범에 들어있는 유일한 스킷(곡 사이 사이 굉장히 짧게 들어가는 대화나 음악)에서 뮤지션 랍티미스트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타이거 JK에게 인정받았으니까 계속 음악 할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당신은 지금 후배 뮤지션들에게 그런 의미를 갖는 것 같다. 랍티미스트의 어머니는 어떻게 당신을 아나. 라킴이 당신의 앨범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서로 지구의 반대편 끝에 있지만, 힙합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서로 똑같이 나란히 가고 있다”는 글을 보낸 게 떠오른다. 한 사람의 생활이 결국 미국에 있는 힙합 뮤지션까지 참여한 힙합 앨범이 됐다. 그러면 마지막 질문. 당신에게 힙합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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