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 탑골은 현재 봉천7동 218번지 일대의 자연부락으로 약 30여호의 민가가 있었다. 이 마을은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이다. 지금은 낙성대라 하지만 고려시대부터 삼층석탑이 이곳에 있어 옛부터 탑골이라 불려 왔다. 탑의 조성연대는 13세기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자재는 화강암으로 4.8m 높이의 탑이다. 앞면에 ‘강감찬 낙성대’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어 1974년 이곳을 성역화하면서 탑골이라는 지명이 낙성대로 바뀌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이같은 강감찬 삼층석탑이 북한의 개성박물관에 있다는 풍문도 있다. 이 마을에는 조선 성종 때 대사성 직제학 벼슬을 지낸 화순 최씨 최한량 공의 후손들과 전주 이씨 임영 대군 후손들이 살고 있다. 1973년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곳을 성역화하기로 하고, 봉천7동 산48번지 일대 1만여 평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1974년 6월 14일 서울시 유형문화재 4호로 지정하였다. 옛부터 낙성대 터에 있던 삼층석탑 안의 유물은 임진왜란 때 왜병이 탑 내부를 허물고 가져갔다고 이곳에서 수십 대를 살아온 동리사람들이 전하고 있다. 이 탑은 1974년 봉천7동 산48번지로 옮기고 강감찬 장군 생가 터에는 유허비를 세워 서울시 기념물 3호로 지정하였으며 이 유허비에는 노산 이은상 선생이 비문을 남겼다. 14대에 걸쳐 이곳에서 살아온 최재환 씨는 강감찬 생가터와 삼층석탑을 관리하였으며 은천초등학교도 육성한 분이다. 생가터 옆에는 강감찬 나무라는 향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는 수령이 약 700년으로 추산되는 서울시내에서 두 번째 큰 나무이다. 높이가 17m에 둘레가 4m 20cm이며 서울시 보호수(1-23호)로 예부터 강감찬나무라 불러왔다. 이 나무는 너무 늙어 생육이 좋지 않아 고사된 것을 1988년 연립주택을 지으면서 잘라 버렸다. 지금도 그 나무 밑둥을 이곳에 살고 있는 최범진씨가 관리하고 있는데 강감찬 장군의 생가와 700년이란 역사를 기리는 의미에서 지방 기념물로 보존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전에는 낙성대 자리를 능골이라 불렀으며 대학촌 마을을 건능골, 서울대 교수아파트 자리를 푼무골, 서울대 후문 뒷산을 국수봉, 서울대 기숙사 자리를 은정골, 지금의 낙성대 뒤편 약수터를 샘방이라 하였으며 구민운동장 정상 부분에 도당제가 있어 매년 10월 1일에는 도당제사를 지내왔다. 현재 낙성대길은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근방인 남부순환도로와 교차하는 인헌초등학교를 기점으로 서울대 후문에 이르는 길이 2,000m의 직선도로이다. 이 길은 1984년 11월 7일에 가로명으로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 길이 지나는 봉천7동 산48번지 내에 낙성대가 있었기 때문에 낙성대길이라 이름 하였다. 안골 안골 마을은 현재 봉천7동 1608번지 일대이며, 골짜기 안이 분지형으로 바람 한 점 없이 아늑한 골짜기라는 데서 이름 붙여진 자연부락이다. 새실 새실은 봉천7동 1597번지 인근에 있던 마을이다. 새실이란 이름은 청룡종합시장 부근에 이미 있었던 청능말보다 새실이 늦게 생긴데서 붙여진 것이라고도 하고, 또한 마을 입구에 3백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향나무가 있었는데 예전부터 이 나무들이 참새들의 은거지로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새실 마을 앞 관악로 건너 봉천4동 1507-1호에는 1974년 12월에 준공했던 옛 관악구청이 있었으며 현재 신청사가 건립중에 있다. 이 구청자리는 당시 이곳 새실에 살고 있던 김종수(김효겸 의원의 부친)씨를 비롯해 김은택, 김천만, 지치국 씨 등 네분이 기증한 땅에 대지 1,715평, 건평 약 3천평의 4층 건물로 지어져 60만 구민의 행정 요람지가 되었었다. 현재 봉천사거리에서 서울대학교로 넘어가는 고개를 새실고개라 불렀는데 이 고개가 1974년 서울대학교가 들어오면서 약 50m를 깎아 경사를 낮추는 바람에 고개의 명색이 없어지고 말았다. 새실 마을에서 현재 봉천사거리 쪽, 봉천 856번지 일대에는 사람의 시신이 누워있는 자세를 한 약 4천여평의 산이 있었는데 이 고장 사람들은 그것을 송장산이라 불렀다. 송장산 밑에는 여우꼬리 모양의 모퉁이가 있어 여우골이라 불렀는데 이 지역이 구획정리 되면서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다. 관악구민회관 뒤쪽 골짜기는 큰골이라 불렀으며 관악경찰서 뒤쪽 골짜기는 가는골이라 불렀다. 현재 새실고개 오른쪽 마루턱에는 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가 홍제동에서 1991년 9월 28일 이곳으로 이전하여 새로운 교사를 신축하였고, 문영여중고가 함께 개교하였으며 지방화시대에 부응하여 관악경찰서가 1994년 10월 24일 개청되었으며, 관악소방서도 1994년 11월 24일 개서되었다. 옛 관악구청 건물 앞에는 조그마한 기념비가 있었는데, 이것은 구청 대지를 기증한 김종수, 김은택, 김천만, 지치국 씨 등 네분에 대한 기념비로 1992년 12월에 설립되었다. 새실 마을 주변에는 지방자치화 시대를 맞아 구청, 경찰서, 소방서, 구민회관 등이 자리잡고 있어 구민들에게 필요한 행정타운을 이루고 있으며, 남부순환도로와 지하철 서울대입구역이 봉천사거리를 중심으로 역세권 도시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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