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선생의 생가를 가다
(기행 수필 전남 강진 제2편)
루수/김상화
아름다운 가우도(駕牛島) 트레킹을 마쳤다. 바람이 몹시 분다. 모자를 쓰지 못할 정도로 바람의 위력이 대단하다. 출렁다리 위를 걸을 때는 파란 바다로 딸려가는 듯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다. 그래도 훗날 기념이 될 사진을 극성맞게도 찍고야 만다. 기상 악화로 청산도행 배 결항이 내게는 또 다른 행운을 안겨준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이 먼 곳까지 와서 영랑 선생의 문학관을 보겠는가? 문학 기행을 온 듯 착각할 정도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영랑(永郞) 생가 전용 주차장에 멈췄다. 버스에서 내리니 제일 먼저 "시문학파기념관"이라고 쓴 세움 간판이 보인다. 이곳은 1930년대 시문학파의 시혼이 깃든 대한민국 최초의 유파 문학관이다. 그리고 "세계모란공원"이란 큼직한 세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우측에는 영랑(永郞) 선생 문학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앞에는 초가집인 선생의 생가가 있다. 강진을 여행 와서 대한민국 현대 시 문화를 바꾸어 놓은 영랑(永郞) 선생의 생가와 문학관을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하느님께서는 필자에게 축복을 내려주신 날인 것 같다. 그래서 하늘이 필자를 도우려고 본 산악회 장선덕 본부장의 마음을 움직였나 보다. 참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느님께 드리고 또 장 본부장께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덕바지에 벽을 만들어 그 벽에는 당대 유명한 시인 김영랑, 정인보, 변영로, 이하윤, 박용철, 정지용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고 다음과 같을 글을 써놓았다. 한국 현대 시의 탯줄 "시문학"은 1930년 카프(KAPF)의 정치성이나 사상성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고자 1930년 3월 5일 창간하였다. 핵심 시인은 영랑 김윤식과 용아 박용철, 정지용이며, 여기에 위당 정인보, 연포 이하윤의 참여로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뒤이어 수주 변영로,김현구가 제2호(1930.5.20)에, 신석정, 허보가 제3호(1931.10.10)에 동참하였다. "시문학"은 우리나라 순수문학 운동의 기반을 다졌으며, 이후 "시원" (1935)과 "시인부락"(1936)으로 이어지면서 1930년대 한국 현대 시의 맥을 형성하였다. KAPF는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약자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약칭이며, 1925년~35년에 활동했던 진보적 문학예술 운동단체이다.
옆에는 시문학파 9인의 동판을 만들어 붙여놓았다. 시문학파 9인은 다음과 같다. 영랑 김윤식(1903~1950),
신석정(1907~1974), 김현구(1904~1950), 허보(생물연대 미상), 수주 변영로(1897~1961), 연포 이하윤(1904~1974), 위당 정인보(1893~납북), 정지용(1904~납북), 용아 박용철(1904~1938), 이다
큰 돌 위에 새겨놓은 詩속에 작가의 아름다운 마음이 엿보인다. 필자 역시 선생이 빚어놓은 아름다운 시(詩)에 빠져들고 말았다
*내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 가치
둘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내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
오날하로 하날을 우러르고 십다
새악시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詩의 가슴을 살프시젓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 십다
영랑 선생의 생가(永郞生家)를 먼저 들어갔다. 고즈넉한 생가는 지금은 비록 초라하게 보이지만 당대는 부태가 나는 집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서정시인이자 항일 민족지사였던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은 이곳에서 1903년 1월 16일 부친 김종호와 모친 김경무 사이에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5년 3월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이듬해 상경하여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한 후 휘문의숙에 진학하였다. 휘문의숙 재학시절이던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넣고 강진에 내려와 독립운동 강진4.4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 등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靑山學院)에서 수학한 선생은 용아 박용철 선생 등과 친교를 맺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후에는 시(詩) 창작활동에 몰두하였다.
영랑은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김현구, 허보 등 최고의 작가들과 더불어 우리 현대시의 새 장을 열었다. 1934년 4월 [문학]지 제3호에 불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시를 발간하였으며 1935년 [영랑시집]을 1949년에는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선생은 조국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및 삭발령을 거부한 채 흠결 없는 "조선인으로 외롭고 의롭게 살았다. 광복 후 신생 조국 정부에 참여하였던 선생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상당하여 9월 29일 서울 자택에서 4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영랑생가는 1948년 선생이 서울로 이사한 후 몇 차례 전매되었으나, 1985년 12월 강진군이 매입하였고, 1986년 2월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10월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격되었다. 정부는 2008년 선생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선생의 생가 뜰에는 해피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선생의 아름다운 흔적을 눈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런가 하면 매력적인 눈의 소유자 손지 회원과 늘 정감이 흐르는 심명자 부회장 그리고 해피의 매력 덩어리 김인숙 부장은 카메라에 추억을 담기 바쁘다. 하나하나 보고 감상하는 자세는 문학인들이 문학기행 와서 진지하게 배워가려는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아름다운 마인드를 지닌 정창희 회원도 역시 무엇인가를 열심히 배워가려고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다닌다. 필자가 보기에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배워가려는 해피가족들이 대견해 보인다.
선생의 시 한 편을 너무도 아름다워 옮겨 적어본다. 짧으면서 향기가 물씬 풍긴다. 단풍이 들 무렵 추석을 앞둔 누이의 걱정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빚어낸 시이다.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 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래 기둘니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계단을 올라 생가의 뒤로 올라갔다. 여기가 세계 모란 공원이다. 집 뒤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아름답게 울타리를 만들었다. 대나무 숲에서는 우리를 환영해주는 듯 우리나라 텃새인 참새떼가 몰려들어 조잘대며 잔치를 벌리고 있다. 새들의 대화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지 잠시 넋을 잃었다. 그 위에는 영랑시인 시비 조형물이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봄이 그리워 애틋한 모란꽃 한 송이. 영랑 선생의 아름다운 서정시가 새겨진 선형과 어우러져 보이지 않는 향기를 세상에 흩날린다 라고 새겨놓았다. 옆에는 선생께서 쓴 시 몇 편을 새겨 놓았고 중앙에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란 선생의 최고의 작품을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들어 새겨 놓았다. 한옆에는 선생께서 앉아 책읽는 동상도 세워놓았다. 뒤에는 육각 정자를 만들어 놓았고 선생의 글을 대표하는 "모란"을 상징하기 위해 세계 모란공원에 온실도 지어놓았다.
이곳엔 한국 모란 왕이라 할 수 있는 이 모란은 폭과 키가 약 2m에 이르는 나무로 수령은 350년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모란으로 추정되는 나무가 있다. 이나무는 대구광역시의 경주김씨 고택에서 이곳 세계모란공원으로 옮겨왔다. 한국의 모든 모란을 대표한다는 의미로 "모란왕"이라 불리고 있다.
*모란은 설총의 "화왕계(花王戒)에서 모든 꽃을 대표하는 왕으로 등장한다.
*모란은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목단이라고도 한다. 모란꽃은 4월 말에서 5월 초에 피며 약 1주일 정도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선생의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아름다운 시를 기억할 수 있게 사계절 모란원을 만들어 놓았다. 온실을 들어가 한참을 관람하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세계 각국의 모란을 한자리에 전시해 놓은 느낌이다. 강진군은 모란과 인연이 깊다고 한다. 강진 출신 영랑 김윤식 선생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서정시 중 하나이다. 모란꽃은 봄에 피지만 개화 기간이 3~7일 정도로 짧아 일찍 져버린다. 이에 따라 강진군에서는 모란꽃을 연중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사계절 모란원"을 조성하였으며, 이곳에서는 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의 정서와 모란꽃의 향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사계절 모란원"은 한국 토종 모란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일본, 독일 등 8개국의 모란과 아열대식물, 난대성아교목과 관목, 그리고강진 군에서 재배되고 있는 화훼류가 식재(植栽)되어 있다. 이것으로 2편을 마무리하고 3편에서는 영랑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쓰려 한다.
2018년 04월 07일
첫댓글 강진 가우도
잘다녀오셨군요
감사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주말은 잘 보내셧는지요
더위가 무르익어가고있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