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스포츠가 위기다. 야구가 지난해 관중 400만명을 회복했다지만 현장 체감지수는 현저히 떨어지며 그마저도 축구, 농구, 배구로 넘어가면 결코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야구단의 경우 연간 200억원 안팎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어 최근 야구단 창단과 관련된 KT의 현실적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한국 프로스포츠 위기의 실체를 진단하고, 대안은 없는지 살펴봤다.
◇뭐가 위기냐?
이미 위기였는데 뭐가 새삼스레 위기냐는 도발적인 반박이 가능한 명제다. 하지만 구단의 재정, 운영 주체의 만족도, 스포츠 수용자의 만족도 면에서 총체적 위기라는 진단이 가능하다. 더 안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작부터 부실했던 재정은 각 구단의 경쟁, 국제화, FA(자유계약선수) 등의 요인으로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기업이윤의 사회환원과 회사 홍보라는 목적으로 프로스포츠에 뛰어든 구단입장에선 어차피 적자가 나는 상황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프로스포츠가 더이상 홍보효과가 높지 않다고 판단하며 적극적 운영을 꺼리는 자세 또한 또다른 위기의 실체로 판단된다. 여기에 관중마저 케이블TV를 통해 중계되는 해외의 축구 야구 농구와 게임, 인터넷, 영화 등 대체 엔터테인먼트 수단에 눈을 돌려 스포츠를 외면하는 형국이다. 이미 세계화된 눈높이를 국내 스포츠가 맞춰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용 축소 방법있다!
구단 재정 건전화 방안에는 비용 축소, 수익 증대, 정부보조 확대, 이 세가지가 원론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
운영비중 가장 비율이 큰 것 중 하나인 선수들의 연봉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수술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다. 샐러리캡(연봉총액제한제), 리저브 클로즈 시스템(선수 보유 숫자 제한), FA 기간 제한 등을 통해 천정부지로 뛰는 연봉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한양대 체육학과 김종 교수는 "적자에 허덕이던 일본 J리그 클럽들은 연봉을 반으로 줄인 뒤 살아났다. 선수나 구단이나 동업자 정신이 필요하다. 홈런 몇개를 치는 게 중요치 않다. 연봉은 구단이 주는 것이 아니라 팬들이 주는 것이다. 흥행없는 고액연봉은 공허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스포츠산업이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선수들의 연봉은 더이상 성역이 될 수 없다.
◇통합 마케팅, 글로벌 마케팅, 연말정산혜택 등으로 수익증대의 길 개척
수익 증대는 구단 수입의 3대 축, 즉 입장료 수입, TV중계권료, 스폰서십 면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야할 것이다. 입장료 수입을 높이려면 정부보조가 필수적이다. 기업이 스포츠입장권을 사서 돌릴 때 세제혜택을 받는 문화접대비는 지난 9월부터 실시되고 있지만 스포츠는 별반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스포츠관람권에 대해서는 연말정산시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볼 일이다. 스폰서십과 연관된 리그 통합마케팅도 추진할만하다. 스포츠산업경제연구소 정희윤 소장은 "축구 같으면 14개구단 유니폼 상의 5센치 정도를 통으로 모아 같은 광고를 붙이는 게 대안이다. 이 경우 TV노출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져 타이틀 스폰서 만큼의 수입이 생길 수 있다. NFL이 통합마케팅으로 성공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TV중계권료는 글로벌 마케팅을 추진해서 국내의 돈이 아닌 외국의 돈을 벌 수 있길 기대한다.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이승엽의 연봉(올시즌 약 50억원)은 국내 방송사가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일본 야구를 안방에서 보고 있다. 일본 야구가 아시아 선수에 대해서는 쿼터제한을 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도 중국 등 아시아 선수들을 프로스포츠에 끼어들이면 TV중계권료는 물론 아시아 마케팅을 통해 구단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한양대 김 교수는 "구단 입장에선 스타 용병이 있는 나라에도 TV중계가 나간다면 홍보효과가 국내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마케팅이 되기 때문에 더 동기부여를 느낄 것"이라고 말한다. 즉 운영주체의 만족도까지도 해결가능하다는 얘기다.
◇장기임대를 통한 하드웨어 개선 및 수익증대 방안 모색
외국 선진 구단의 수입 발생처는 총 23가지다. 그 중 경기장 관련수입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외국의 경우 운동장을 장기임대한다. 구단은 그동안 재투자하며 발생수익의 극대화를 노린다. 잠실야구장의 경우 3년으로 국내 최장이다. 수입이 늘지 않아도 물가가 오르면 인상되는 등 단기적 안목에서 임대료가 결정된다. 스포츠산업경제연구소 정 소장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조례를 개정해서라도 장기 임대가 모색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경기장 명명권(Naming Right)을 판다든지 부대수입을 노릴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런 동기부여가 있을 때 구단은 시와 분담해서 운동장 시설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등 의욕을 보일 수 있다.
◇콘텐츠도 문제
이미 팬들의 눈높이는 세계 톱을 달리고 있는데 국내 프로스포츠의 수준은 지리멸렬하다. 잉글랜드 축구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실제 경기시간(Actuall Running Time)이 60분 이상으로 스피디하다. 우리는 중간중간 끊기면서 45분 안팎이다. 한국프로야구는 투수 인터벌, 타격 준비 등에서 시간을 많이 뺏기며 걸핏하면 4시간이다.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이내로 압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프로농구의 경우 걸핏하면 판정이 문제가 돼 팬들을 진절머리나게 한다. 모든 스포츠 공히 팬들을 위한 공격축구, 야구 , 농구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수용자의 만족도 제고도 가능
스포츠 팬들의 만족 여부는 선수와 구단과 해당 스포츠에 대한 호감, 관전장소가 주는 만족감, 경기의 질, 다른 대체수단에 대한 비교우위 등 다양한 부분에서 평가될 것이다. 비용 축소, 수익 증대, 콘텐츠 강화, 운동장의 현대화 등이 이뤄지고 여기에 세제 혜택까지 겸해진다면 운동장에 나갈 동기부여가 돼 가족 단위의 운동장 나들이는 급증할 것이다. 외국 프로스포츠의 팬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운동장 나들이간 어린아이들때부터 키워진다. 그래서 국민적 여가(National Pastime)란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학업에 비해 운동이 등한시되는 사회분위기 역시 평생체육 분위기 조성을 통해 장기적으로 개선되어야 더욱 건강한 국가로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조병모기자 bryan@
관중 많다는 A구단도...적자폭 무려 176억원! |
스포츠서울이 구한 프로야구 A구단의 회계장부는 프로야구의 현 주소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타 구단에 비해 관중도 많고, 마케팅 역량도 좋다는 평판을 듣고 있지만 적자폭이 무려 176억원에 달했다. 지출 220억원에 수입은 고작 44억원. 역시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부문은 선수단의 몸값. 연봉 및 계약금을 포함해 모두 122억5000만원을 지출해 55.7%를 차지했다. 구단의 만성적자에 선수단의 몸값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를 통해서 여실히 입증됐다. 지출규모에서 선수단 운영비(40억원)와 제반비용(57억 5000만원)은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맬 수 없는 수준으로 슬림화됐다. 따라서 지출에서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어쩔 수 없이 거품논쟁에 휩싸인 선수단의 몸값에 메스를 대야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 비용절감을 통해 경영의 호전을 기대하는 것 처럼 저급한 발상은 없다. 오히려 공격적인 스탠스를 취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는 편이 좋겠지만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말처럼 쉽지 않다. A 구단 역시 다른 구단과 견줘 관중동원에 있어서는 우위를 점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관중수입은 고작 15억원에 그치고 있다. A구단의 한 관계자는 "스포츠가 아직 국내 문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못하고 있다"면서 "스포츠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선 해가 떨어지면 스포츠를 제외하면 도무지 할 게 없다. 그게 바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된다"고 냉철한 분석을 내놓았다. 스포츠보다 더 재미있는 다양한 유흥문화가 판치고 있는 게 바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 프로 스포츠의 서글픈 현실이다. 따라서 프로 스포츠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건전한 스포츠 문화를 주변부로 내몰고 있는 저급하고 소비적인 유흥문화를 제도적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와 닿는다. 고진현기자 jhko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