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은이정
진담 외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2층 화장실 손잡이 위엔 화석이 있어요
고생대 슈크림이
그대로 말라붙었어요
리버 뷰의 카페를 유적지로 바꾸는 재주가 있네요
이만하면 눈길을 외면한 손길도
조예가 깊어요 가늠할 날은 많지 않아도 손대면 안 된다는 것쯤 숙지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뼈가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돌입니다
피를 고르지는 마세요
굳은 품을 아슬아슬하게 파고듭니다
나란히 누웠다고 합장이라뇨
허깨비와 반쯤 나누며 사는 시간도 무거웠어요
오늘은
헤어지러 나왔다는 말
인류가 두 발로 걸으며 생긴 변화 같아요
버려진 마음은 살살 흙을 털어야 합니다 당신의 위에서는 에티오피아 원두로
마르고 갈던 많은 지문이
속삭이던 목소리가 출렁이지만
확인되지 않은 논의는 발굴이 필요하고
땅 밑 증거를 인정하지 않으려면 서둘러 덮을지도 몰라요
새끼손가락은 물든 채로
닫기로 해요
얼룩 선을 매달아 건 마을은 테두리부터 부스러질 거예요
커피를 단번에 마셨더니
농담처럼 속이 번지네요
슈크림 붕어빵은 강물에 놓아주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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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완료
식사가 끝날 즈음
봉투 안에 준비한 낮달을 건네려 했다
자꾸 이러면 또 볼 수 없다 남은 갈비탕엔
국물만 그득하고
후회하기 싫을 거예요
오래전에 죽은 블랙 밍크를 삼십 년째 기르는 솜씨는 여전했지만 한 번에
발 하나씩 덜컹대면
방수 팬티를 한없이 치키는 당신을
거울 앞에서 기다리고
립스틱을 돌리니 꽃대는 부러져 숨어 있다 지속력을 따졌는데
좀전의 쿵 소리가 이것이었나
새끼손가락으로도 만져지지 않고
애써 바른 홍조가 땀 흘리며 경사로에 섰지만
무작정 업어주던 등은 밀어낼 만큼 휘어 있고
여덟 정거장 오기가 다른 언어만큼 낯선
실금마다 깨질 화살표가 점점이 즐비하고
얘야 나는 갈수록 가짜가 되어가는구나
찾지 않는 주민증에는 누군가 비좁게 웃고
검버섯보다 짙은 건 낮달을 파는 기념품 매장에 있다고
겹겹이 접힌 자리는
할 만큼 한 얼룩처럼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비결은 뚜껑에만 가르쳐 주세요
한나절만 지나도
짭짜름한 먼지가 쌓여요
쓰지 않게 되는 일은 소식으로도 배가 부르고
피해 가며 애쓰다 다시 노란 흔적 흥건하고
무엇을 얻기 위해 자주 걸음을 멈추는 건지
당신이 골라 디디는 블록은 게으르게 기지개를 켜는데
블랙 밍크는 언제 눈을 뜰까요
오후는 낮달에 걸려 넘어졌고
입술은 묽게 흘러내리며 달싹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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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정 (이은정)
서울 출생
2023년 《시와경계》 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