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진소희 근무하는 맹호부대 방문 일기문
글 장순희
맹 호 부 대
맹: 猛獸(맹수)의 氣相(기상)을 이어받아
호: 호랑이의 勇猛(용맹)처럼
부: 부지런히 갈고 닦아
대 :代代孫孫(대대손손) 영원히 맹호부대이여라
맹호부대는 우리나라 군장병들을 월남 전투에 파병되어서 용감하게 용맹스러움을 날렸던 부대로 알려져 있는 부대라고 한다.
그런 부대에서 현재 군생활의 군대 내에서 장병들의 생활을 영상으로 공개하는 행사를 했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용사 부모님들이 부대를 방문한 것 같다.
소희는 용사는 아니지만 우리가족도 시골 시댁에 시어머니 모시고 부대를 방문했었다.
5/4 나는 진부막동 시댁으로 가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원주로 나왔다.
다음날 5/5일 아침 8시에 원주에서 가평으로 출발을 했다.
혹시 몰라 소희가 근무하는 부대장님에게 작은 떡 선물을 하나 마련했다.
그런데 것도 김영랑법에 저촉된다고 안된다고 하여 우리가 먹고 말았다.ㅋㅋㅋㅋㅋㅋ
가는 도중 내내 나는 피곤해서 차안에서 잠을 잤다. 소영아빠진기영과 시어머니 김달명 두 분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은지
옛날 콩죽 밭죽쑥었먹던 일까지 시시콜콜 끝까지 주거니 밭거니 했다. 시동생 진기순 군대시절 면회 갔던 것부터 동네 시어머니에게 잘 대해주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 까지 속으로 나는 저런 이야기를 글로 좀 써보시면 어떨 가 생각되었다.
비가 오는지라 운전을 달리지는 못하고 천천히 운전했다. 소희가 근무하는 부대 도착한 시간은 9시 36^~7분쯤 되었다.
부대 도착했을 때는 먼 곳에서 오시는 장병 부모님들은 먼저와 부대 안에 외부 손님들 차로 곽 차 있었다.
시어머니는 차 안에서 멀정하시던 분이 차 밖에 내리니까 추워 그런지 못 걸어가시겠다고 하며 몇 걸은 걸으시더니 힘들다고 하셨다.
그래서 소희가 차를 가지고와서 할머니를 태워 부대행사 장소로 왔다. 아침을 드셔야 하는데 왜 애들 아빠 아침 먹는데 아침을 드시지 않으시더니 허기가 져서 그런지 걸음을 못 걸으시는 것 같다. 계단 오르는 곳이 2군대있어 내가 애들 아빠에게 업고 올라가라고 하니까 그것도 싫다고 하시며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셨다.
그래서 부랴부랴 군대 내에 있는 복지마트 가서 베지 밀과 빵을 사다드리니 베지밀만 드시고 빵은 먹지 않으셨다.
부대 내 군마트에가서 집에서 사용할 헤어삼푸와 가게에서 쓸 커피믹스랑 이것저것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사복차림의 사단장님이 오시어 마트가 잠시 소란했다.
아마도 tow star님 오시니까 부대장증령님 외 대령님 한분 하고 같이 오시어 나도 간단히 인사를 드렸다. 소희는 직업이라 그런지 그 장소에서도 카메라 서틀을 누를려고 하니까 오늘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부대행사장소를 갔는데 소희가 영상 제작한 맹호부대 위상과 군장병들의 군대생활을 영상편집해서 이모저모 군인가족들에게 시청하게 했다.
부대 내에서는 군인들이 사용하는 여러 장비들과 훈련 때 쓰는 텐트 외 배냥 침냥 등 비상식량 등을 모두 공개되어 관람 온 군인가족들 입어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직접체험 해볼 수 있게 하는 행사도 했다. 나도 철모랑 군인들이 훈련 때 입는 쪼끼를 입어 보았다 철모는 생각보다 무직했다. 아마도 철로 만들어 그런가보다.
철모 하면 비목이라는 가곡을 떠 올린다. 어느 이름 없는 용사를 생각하며 지은 우리가곡 비목을( 6,25 전쟁때 )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으로 쇼프라노, 바리톤으로 성악전공한 분들이 많이 부루는 가곡이다.
영상관람 끝내고 부대 내 간부 소개를 했다. 각 중대마다 중대장들과 부대 살림살이하는 고참상사 그런데 왜 부대장 소개는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난 다음 진난 날 맹호부대를 근무했던 용사님들의 아빠외할아버지들 의 지난 추억 들려주는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부대장님 특권으로
제비뽑기로 휴가를 주는 프로는 아마도 병사군인들에게는 가장 즐겁고 신나는 일일 것이다. 각 중대마다 한명씩 제비뽑기를 통해 휴가가 주어진 용사는 부대를 방문한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오전행사는 11시부터 행해지고 12시가 30분쯤 끝났다. 우리가족도 부대를 나와 점심을 먹었다 시어머니가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아 점심부터 먹어야 될 것 같아
소희가 좋아하는 청국장을 먹자고 하는데 시어머니 때문에 따듯한 설렁탕으로 먹기로 했다. 비가 내려 추기도하고 나이 드신 분들이 먹기는 따듯한 설렁탕이 낳을 것 같아.
설렁탕과 수육한접시를 주문해서 아침겸 점심겹 먹었다. 시어머니도 시장해서 그런지 따듯한 국문에 밥을 말아 드시는 것 같아 고기는 못 드신다고 건저 놓고는 아마도 틀리가 말을 잘 안 들어 그런지 고기는 못 드신다고 하셨다.
점심을 먹고는 가평현리에 야외에서 전시하는 기갑전차 장갑차 지뢰탐지를 하는 포크레인등을 전시하며 그곳에 관련된 군인들은 관람 오는 관람객들에게 설명도 자세히 해주고 있었다. 포크레인차는 너무도 컸다. 내부에 들어가는 출입문은 작아 허리를 푹 숙여 들어가 봤다. 컴퓨터시스템으로 조정되어 안에서 외부를 보면서 작업을 하게 되어 있었다. 아마도 포크렌인특수 특수운전 면허를 취득해야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관을 둘러보고는 어린이날이라 한쪽에서는 군악대군인들이 어린이날 행사를 하고 있었다.
어린이를 위한 여러 가지 게임도 하고 또 한쪽에서는 6,25 사변 때 흙속에 묻혔던 옛 장비들의 역사시간을 알려주는 파편들을 전시해주고 있었다. 나는 개머리판 개머리 판 하는 말을 들었는데 총의 개머리판이 어떤 것인지 몰랐는데 이제 서야 녹이 쓴 개머리판을 보았다. 총도 여러 종류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려고 전시 하고 있었다. 물론 총알은 없었다. 나는 권총을 들어 몇 뻔 사격을 해봤다.
딸 소희는 사격을 잘 하는 편에 속한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포수를 해서 그런지 손녀 딸 소희도 사격을 거의 만점 수준으로 견양한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가족은 어린이날 행사 까지 모두 관람을 마치고 예약한 숙소팬션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가평은 서울에서 가깝고 군인들이 많아 팬션사업 사업주들이 많다. 이곳 곳곳이 널널 하게 팬션들이 들어서 있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서 가져간 짐을 옮기고 떡을 주문했던 것을 풀어봤다. 약밥과 경단 그리고 찹쌀떡으로 예쁘게 정성 것 떡을 만든 것 같다. 너무 예뻐 먹기 악까을 정도로 떡이 예뻤다.
나는 사진 두 컷트를 찍고는 시어머님께 드셔보라고 몇 가지 떡을 드렸다. 다른 떡을 이가 없어 못 드시고 물렁한 경단 몇개를 드셨다. “펄벅 소설 대지에 황황히 먹다.” 시어머니가 드시는 모습이 왠지 펄벅 소설 내용이 생각났다. 아무튼 그 떡을 부대장께 드리고 시어머니 않드렸으면 너무 서운했었을 것 같았다.ㅋㅋㅋㅋㅋㅋㅋ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저녁식사준비를 했다. 준비해간 고기랑 ( 삼겹살 갈매기살 LA갈비 수입소갈비살)로 고기를 굽고 밥을 지었다. 고기는 소희가 밖에서 숯불로 굽기도 하고 LA갈비는 내가 주방에서 후라이팬에 구어 저녁을 지어먹었다. 아마도 시어머니는 이런 팬션에서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팬션이 벌 것은 아니지만 아들 손녀 며느리 따라 같이 함께 외박하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가져간 된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고기랑 함께 가족 모두 저녁을 먹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입이 즐겁다. 그래서 가족이 화목한 것은 행복한 일이다.
가정 가정이 행복해야 나라도 잘되고 경제도 잘 돌아간다. 크게는 수신제가평천하고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작게는 애들 아빠 진기영 늘 말 하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아마도 그런 것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즐겁게 하루 밤을 가평팬션에서 보내고 다음날 원주로 다시 돌아왔다. 소희도 원주로 왔다가 가느라 같이 원주로 왔다. 우리 차는 시어머니 애들 아빠 그리고 나랑 셋이 타고 소희차는 소영이랑 같이 왔다.
오는 날도 시어머니는 가는 날 하던 이야기를 또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누가 당신보고 말 못한다고 할까 그러는지
마치 言語의 천재가 되듯 리바이벌을 하기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참다못해 무슨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시냐고 했떠니 잠 못 자게 해서 그러냐고 하시며 짜증을 내셨다. 애들 아빠야 본인 어머니니까 그렇다 하지만 듣는 나는 며느리로서 내가 짜증스러웠다.
이번 시어머니랑 동행 한 것은 손녀딸 군인 생활하는 곳 걱정하시는 것 같아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뜻으로 모시고 갔었다. 그러나 다시는 시어머니 모시고 먼 곳을 가는 일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