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한 짝 / 鹿井 서영석
검은 아스팔트 위에
신발 한 짝이
주인을 잃고
앉아 있다
앞차도
그 앞차도
그 앞의 앞차도
귀신 보듯 피해만 간다
살아 있는 토끼도
피할 줄 모르던
사람들이
숨도 없는 신발 한 짝
자꾸만 피해간다
덩그러니 한 짝의
신발은
밤이 새도록 홀로
앉아 있다
그 주인은 어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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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마 / 鹿井 서영석
아침부터
매미가 노래를 한다
유월도 다 가기 전에
똥개가 동그랗게 눈을 뜬다
맴맴맴
구루마를 끌고 언덕길을
철퍽거리며 오르는데
어제 그 길을 힘들다고
노래를 부른다
맴맴맴
생의 마지막을 찬미하듯
울어대는 구루마
바퀴가 흔들릴 때마다
소리를 지른다
맴맴맴
너도 이제 다 살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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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 鹿井 서영석
창 너머 어디선가 뻐꾸기가
노래를 한다
집도 없는 놈이 노래를 한다
남의 집에 알을 낳고 즐거워한다
유전자에 심어진 본능으로
천년만년을 살아온 놈이
배부르다고 노래를 한다
도시의 어느 격실에
또 다른 뻐꾸기가 살고 있다
DNA에 새겨진
본능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뻐꾸기를 찬미한다
뻐꾹 뻐꾹 뻐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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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지갑 / 鹿井 서영석
생일 선물로 지갑을 받았다
품위 있고 잘빠졌다
헌 지갑을 버리고
새 지갑에 넣으려니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 지갑도 버릴 날이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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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길 / 鹿井 서영석
낙엽 지는 오솔길을 걷는다
서편 산자락에 걸린 노을을
밟으며 밟으며
긴 회상에 잠긴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끝없이 달려온 길
긴 여행에서 이제는 돌아와 쉬고 싶은
내 영혼의 고단함에
비명을 지르는 낙엽을 밟는다
사각사각 울부짖는 길에서
내 영혼의 비명을 듣는다
나만의 세계에 가둬놓은
고독 그리고 아픔
아무도 동행할 수 없는 길이기에
더 깊은 발자국을 남긴다
이제는 자유롭고 싶다
사랑 미련 욕망 이상
모두 접어 두고 날고 싶다
쏟아지는 가을 별빛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