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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의 미인계
천하일색 대교와 소교
공명은 주유를 회유하기 위해 범려의 미인계를 인용한다.
조조를 쉽게 물리치려면 천하일색의 대교.소교를 탐하는 조조에게
두 여인을 보내는 것이라 하고 동작대부의 내용을 바꿔 읊는다.
이에 주유의 분노는 충천하고 조조와의 전쟁을 결심한다.
주유가 수군을 조련하고 있는 중에 조조의 대군이 한수로 짓쳐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주유는 조조군을 막을 방책을 세우기 위해 밤을 틈타 시상군으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주유는 동오의 선주 손책과는 같은 나이이며 그의 아내는 손책의 처제이므로 손권과는 친족간이었다.
일찍이 손책에게 발탁되어 그의 장수가 되자 약관 스물넷으로 중랑장이 되었을 정도의 영걸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동오의 사람은 이 연소 홍안의 장군을 군중의 미주랑이라 부르며 우러르고 있었다.
주유가 강하태수로 있을 때 교공이라는 명문가에는 두 딸이 있었다.
자매가 다 절색의 미인이어서 '교공의 두 명화' 라고 하면 동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손책은 자매 중 언니를 맞아 비로 삼았고, 주유는 그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손책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었지만
동생은 지금도 주유가 더없이 사랑하는 아내로 가정을 지키고 있었다.
당시 동오의 사람들은 이들 자매를 부러워하며 축복했다.
"교공의 두 명화는 언니가 그의 지아비와 이별하였으나 천하에서 으뜸 가는
신랑들을 만났으니 이 또한 으뜸 가는 복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주유였으나 수군도독의 중책을 맡아 파양호에 부임한 이래 애처와는 따로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그토록 즐겨하는 음악으로 귀를 씻을 짬도 없이 오로지 동오의 대수군을 조련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주유는 손권의 사자가 막 길을 떠나려고 할 즈음 이미 시상에 이르른 것이었다.
주유는 노숙과 교분이 두터운 사이였으며 손권에게 노숙을 천거한 사람도 바로 주유였다.
노숙은 주유를 맞이하여 그 동안의 일을 자세하게 들려 주었다.
"자경은 염려하지 마시오.
내게 생각이 있소이다.
아무튼 그 공명이라는 사람이나 불러 주시구려."
노숙이 말을 타고 공명에게로 떠나간 뒤 장소.고옹.장굉.보즐 등 네 사람이 주유를 찾아왔다.
손권의 휘하 중에서 주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으므로 부전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주유를 움직여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킬 요량이었다.
주유는 그들을 집 안으로 맞아들였다.
오랫만에 만나는 사람들이라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은 뒤 자리에 앉자 장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도독께서는 강동의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잘 알고 계시는지요?"
장소의 물음에 주유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고 있습니다."
장소는 주유의 대답에 그를 설복시키려는 듯 힘주어 말했다.
"지금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한수 일대에 포진하고 있는 조조가 며칠 전 우리에게 격문을 보내 왔소이다.
주군께 강하에서 만나 함께 사냥이나 하자고 청했소.
들어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뜻은 우리에게 항복하라는 권고가 아니겠소?
이에 우리들은 강동을 전란의 재앙에서 구하기 위해 주공께 항복을 권하고 있는 바이오.
그런데 노자경이 강하에서 데리고 온 유비의 군사 제갈량이 자신들의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한 속셈으로
교묘한 변설로써 주공을 격동시키고 있소이다.
우리의 힘을 빌려 조조에 대한 원한을 앙갚음하기 위해 강동을 조조와 싸우도록 권하고 있소이다.
그런데도 자경은 제갈량은 검은 속셈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 실로 한심스러운 일이외다.
주공께서는 이 일을 정하지 못하시다가 도독께 묻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장소가 말을 끝내고 주유를 바라보았다.
주유가 자신의 뜻을 밝혀 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유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대신 네 사람을 둘러본 후 물었다.
"그렇다면 공들의 의견은 모두 다 같으시오?"
"그렇습니다.
의논을 해 본 바 네 사람이 모두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한결같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주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오래 전부터 항복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소.
오늘은 그만 돌아가십시오."
주유의 말에 장소 등은 갑자기 얼굴이 밝아졌다.
주유가 자기들과 같은 뜻이라면 일은 자기들 뜻대로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장소가 감사해하며 물러났다.
잠시 후에 또 한 무리의 손님들이 몰려왔다.
정보.황개.한당 등의 장수들이었다.
각기 인사를 끝내자 정보가 격양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독께서는 우리 강동이 머니않아 남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주유는 장소를 대했을 때와 같은 심정으로 표정 없이 무덤덤한 채 그저 짧게 대답했다.
"모르오만은...."
"우리들은 선군 파로장군께서 창업의 기초를 다질 때부터 수백 차례의 크고 작은 싸움을 치른 끝에
겨우 이 강동 6군을 거두어들였소.
그런데 지금 주군께서는 모사들의 말에 현혹되시어 조조에게 투항하려 하니, 실로 한심하고 분한 일이오.
우리는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결단코 그런 수모를 겪지 않을 것이오.
바라건대 도독께서 주공께 권하시어 군사를 일으키도록 해 주시오.
우리들은 죽기로 싸워 욕됨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소."
정보가 비장한 목소리로 외치듯이 말을 끝냈다.
"다른 분들의 의견도 다 같으시오?"
주유는 정보의 격양된 태도에도 아랑곳없이 여전히 그들을 둘러보며 똑같은 물음을 던질 뿐이었다.
"이 목이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맹세코 조조에게는 항복하지 않겠소."
황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주먹으로 자기의 이마를 두드리며 외쳤다.
다른 장수들도 한 목소리로 외치며 뜻을 같이했다.
"우리 모두 차라리 싸워 죽을지언정 항복은 할 수 없소이다."
"그 말씀 장하시오.
이 주유도 조조에게 투항할 마음은 추호도 없소.
장군들은 그만 돌아가시오.
이 주유가 주공을 뵙는 대로 장군들의 뜻에 따라 계책을 정해 보겠소."
주유는 장소에게 했던 말과 같이 이번에는 장수들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주유가 태연히 그렇게 말하자 장수들은 기뻐하며 물러갔다.
주유가 양쪽의 의견에 모두 따르겠다고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하고 난 뒤 쉬고 있는데 해질녘이 되자 또 한 무리의 손님이 왔다.
감택.여범.주치.제갈근 등의 문관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중립파였다.
싸워야 하느냐, 항복하여 강동의 평온을 유지하느냐에 대해 아직 뜻을 정하지 못해 주유를 찾은 것이었다.
주유가 제갈근을 보고 먼저 물었다.
"공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오?
공의 계씨 제갈량은 유비의 뜻을 받아 동오와의 동맹을 도모하여 함께 조조와 싸우자고 설복하려 왔다고 들었소이다만...."
"저로 말씀드리자면 친동생이 유 예주의 사자로 온 터라 감히 여러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도독께서 오셔서 이 일이 정해지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제갈근의 말에 주유가 다소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의 처지는 헤아릴 수 있소만 형이니, 아우니 하는 것은 사사로운 일이오.
이번 일은 그런 사사로운 일에 얽매여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제갈량은 이미 유 예주의 신하이며 공은 동오의 중신이니 사리는 분명하지 않겠소?
그러니 물어 보겠소.
동오의 신하로서 공이 생각하는 바는 싸우는 데 있소, 아니면 투항하는 데에 있소?"
주유가 정색을 하고 묻자 제갈근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더니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투항하면 쉽게 편안함을 구할 수 있으나 싸우면 지키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제갈근은 두 가지 의견 중 끝내 어느 한쪽의 의견을 택하지 않은 채 그렇게 말했다.
주유는 그런 제갈근을 보며 가만히 웃고는 말했다.
"이 주유도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
내일 주공을 뵙는 자리에서 함께 의논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오."
주유도 제갈근 일행에게 속마음을 감춘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제갈근 일행이 물러간 뒤 여몽.감녕 등의 젊은 장수들이 찾아왔으며 문관들이 잇달아 주유를 보러 왔다.
역시 두 가지 의견을 놓고 각기 자기들의 주장을 폈다.
주유는 앞서 온 일행과 같이 그들의 속마음을 떠보았을 뿐 자신의 뜻을 털어놓지 않았다.
밤이 초경에 이르렀을 때 시종이 들어와 주유에게 가만히 전했다.
"노숙 공께서 제갈량이라는 분과 함께 방문하셨습니다."
주유도 나직하게 시종에게 일렀다.
"다른 손님들이 모르게 별채로 모시도록 하라."
주유는 아직도 시끄럽게 자기들의 주장을 펴고 있는 내방객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들 하시오.
모든 일은 내일 주공을 모신 자리에서 결정하면 될 것이오.
다들 돌아가셔서 내일을 위해 푹 주무십시오."
그들을 내쫓듯 물리친 후 주유는 홀로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주유는 의복을 정갈히 갈아입고 노숙과 공명이 있는 수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주인이나 손님이 모두 마음 속으로 궁금하게 여기는 바였다.
주유가 들어서자 공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고, 주유도 주인의 예로써 첫 대면의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노숙이 주유의 흉중을 알기 의해 물었다.
"지금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그들과 화친을 하느냐 아니면 싸우느냐 하는 두 가지 대책을 놓고 주공께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계십니다.
장군의 의향을 듣고 뜻을 정할 터인즉 장군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노숙의 물음에 주유가 앞서 문무관원들을 대했을 때와 달리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조조가 천자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으니 어찌 그 군사와 맞설 수가 있겠소?
거기다가 그 군세가 강성하니 가벼이 맞서 싸울 수가 없소이다.
그들과 싸운다면 패할 것이며 항복하면 편안할 것이오.
내가 이미 뜻을 정했으니 내일 주공을 뵙고 즉시 사자를 조조에게 보내 항복을 받아들이시도록 권고할 작정이외다."
주유를 은근히 믿고 있었던 노숙은 뜻밖의 말에 어안이벙벙해질 정도였다.
노숙은 동오 제일의 호걸로 일컬어지는 주유가 한마디로 항복을 선언하자 문득 화가 치솟아 언성을 높였다.
"도독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무릇 동오의 기업은 파로장군이래 3대째 전해 오고 있는 터입니다.
어찌 하루 아침에 남에게 내준다는 말입니까?
지난날 백부께서 돌아가실 때 바깥 일은 장군께 당부하시는 말씀을 남기셨소.
지금 강동의 모든 사람들이 장군을 하늘처럼 의지하고 나라를 보전하려 하는데 장군께서 그런 소리를 하실 수가 있다는 말이오?
어찌하여 저 겁쟁이들의 의견을 좇아 동오를 조조에게 바치려 하십니까?"
노숙의 격한 목소리를 듣고도 주유의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강동 6군의 백성이 얼마나 많소?
이 사람들이 난리통에 해를 입게 되면 그들의 원망은 나 한 사람에게 쏟아질 것이오.
그러므로 주군께 투항할 것을 권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외다."
주유가 자신의 뜻을 주저하지 않고 거듭해 밝히자 노숙도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지 않소이다.
도독의 무용과 우리 동오의 험준한 지세를 근거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 내면
아무리 조조라 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그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외다."
노숙이 격한 목소리로 주유를 공박하자 주유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두 사람이 제 뜻을 주장하니 대화는 차츰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설왕설래를 잠자코 지켜 보던 공명은 소매에 손을 넣은 채 차갑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주유가 문득 그런 공명을 보고 언짢은 얼굴로 나무라듯 물었다.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웃고만 계십니까?"
공명이 여전히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도독을 보고 웃은 게 아니올시다.
자경이 세상 일에 너무 어두워서 그만 웃음이 나왔소이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도 격해 있던 노숙이 대뜸 언짢은 낯색이 되며 공명에게 쏘아붙였다.
"아니,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내가 세상 일에 어둡다 하시오?"
공명이 마땅히 자기 말을 옹호하고 나설 줄로 알고 있던 노숙이었는데 공명의 엉뚱한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 물음에 대한 공명의 대답은 더욱 기가 막혔다.
"공근께서 조조에게 항복하시려 함은 지극히 옳으신 판단이기 때문이외다."
공명은 주유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자 주유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과연 공명 선생은 세상사에 정통하시니 필경 나와 뜻이 같으신 줄 알았소이다."
주유가 그렇게 말하며 공명을 바라보았다.
항복을 주장하여 공명을 떠보려 했던 주유였다.
그러나 공명은 주유의 뜻대로 말려들지 않았다.
다만 노숙만이 더욱 언짢은 얼굴로 공명에게 노기 띤 음성으로 되물었다.
"공명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오?"
공명은 그런 노숙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주유를 보고 말했다.
"생각해 보시오.
군사를 부림에 있어 당금 천하에 조조와 견줄 사람이 어디 있겠소.
지금까지 여포.원소.원술.유표 등이 겁도 없이 그와 맞서 싸웠으나 그들이 다 조조에 의해 멸망하고 보니
이제 그와 맞설 사람이 없소이다.
다만 우리 유 예주만이 천하의 대세를 모르고 무턱대고 그와 맞서다가 지금은 그만 강하로 쫓겨가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입니다.
주 도독께서 투항하기로 뜻을 정하신 것은 가솔들도 안전하게 지키고 또 부귀도 누리실 수 있는 마지막 방도가 아니겠습니까?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건 그것은 모두 하늘의 뜻이므로 굳이 애석해할 것도 없소이다."
주유가 공명을 떠보려 했으나 어느 새 공명이 주유를 슬쩍 건드려 그의 심사를 긁고 있었다.
주유가 그런 공명에게 걸려들지 않기 위해 불끈 치솟는 화를 참고 있었다.
다만 노숙만은 공명을 애써 주유에게 이끌어 주었는데 그 목적도 호의도 저버린 듯한 말에 내심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대는 우리 주공으로 하여금 무릎을 꿇는 욕을 당하게 할 작정인가?"
노숙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노숙이 드디어 크게 화를 내자 공명은 슬며시 말머리를 돌렸다.
"실은 나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소이다.
이 계책이 성사되면 동오의 명예도 그 존립도 아무런 탈 없이 그대로 보존될 것입니다."
화를 냈던 노숙이 그 말에는 귀가 솔깃해졌던지 공명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주유도 입을 열지 않았으나 공명을 지켜 보고 있었다.
공명이 말을 이었다.
"만약 이 계책대로만 된다면 구태여 양을 잡고 술통을 준비하고 강동 땅과 인수를 바치려 강을 건너갈 필요가 없소이다.
다만 사자 한 사람을 뽑고 두 사람을 딸려 배에 태워 조조에게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만일 조조한테 이 두 사람만 보내면 당장 백만 군사의 갑옷과 투구를 벗기고 깃발을 말아든 채 군사를 몰아 물러갈 것이오."
노숙이 공명의 말에 다급한 목소리로 계책을 재촉했다.
"만약 그런 묘책이 있다면 이는 동오로서는 더 바랄 나위 없는 일입니다.
바라건대 자세히 그 계책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숙의 말에 공명이 가만히 웃었다.
공명이 노리는 것은 노숙이 아니라 주유였다.
그러자 아까부터 공명의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뜸을 들이고 있으므로 참다못해 급히 물었다.
"그게 누구요?
대체 어떤 사람 둘을 보내면 조조가 군사를 이끌어 물러난다는 말씀이오?"
"동오의 여성들은 하늘의 별만큼 많습니다.
이들 중에서 단 두 사람을 보냄은 마치 큰 나무에서 잎사귀 두 닢을 따는 것이나 곳간에서 좁쌀 두 알을 집어내는 것과 같소.
그러나 조조로서는 그 두 사람만 얻으면 필시 기뻐하며 돌아갈 것입니다."
공명은 주유의 물음에 대한 답을 피한 채 말꼬리만 잇고 있었다.
주유가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두 여성이라니, 대체 어디에 사는 누구,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것을 말해 보시오."
공명은 그제서야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이 양이 융중에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을 때 조조가 장하 강변에 누대를 쌓고 이를 동작대라 이름지었다는 얘길 들었소.
공사를 시작하여 완공까지 천여 일을 소비하여 호화로운 누각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천하의 미녀들을 널리 뽑아 그 안에 모아들였다 했소."
공명이 주유의 묻는 말에 명확한 답변은 않고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자 주유가 더욱 언성을 높여 물었다.
"선생께서는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만 말해 주시오."
주유의 말에 노숙도 그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공명은 여전히 변함 없는 어조로 뒷말을 이었다.
"조조는 원래 여자를 좋아하는 자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 말을 꺼낸 뜻은 이곳 강동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조는 일찍이 강동의 교공이란 이에게 두 딸이 있는데 큰딸 대교, 작은딸 소교가 모두 고기가 물에 살랑이며
기러기가 앉은 듯한 자태로 맵시가 뛰어나며 그 용모가 달도 빛을 잃고 꽃이 부끄러워할 만한 얼굴을 지녔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소.
그리하여 조조는 일찍이 맹세하기를 내게 두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하나는 사해를 평정하여 제업을 이루는 일이요,
하나는 강동 교공의 두 딸을 얻어 동작대에서 만년을 더불어 보내는 것이니,
이 두 가지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죽은들 어찌 한을 남기겠는가' 했다는 것이오.
그러고 보면 그가 지금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강남을 노려봄은 실은 그 두 여인을 얻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비록 천금을 주더라도 그 두 딸을 사서 사람을 시켜 조조에게 보내시도록 해야 할 것이오.
조조는 그 두 여인만 얻으면 원래의 뜻을 이룬 셈이니 반드시 군사를 물리칠 것이외다.
이것은 곧 범려가 미희 서시를 보내서 멸망시킨 계책과 같으니 급히 서두르셔야 할 것이오."
공명은 말을 마치며 주유를 재촉했다.
그러나 주유는 공명의 재촉을 가볍게 일축하려는 듯 나직한 어조로 물었다.
"그것은 흔히 항간에 떠도는 말일 것이오.
조조가 대교.소교를 얻고자 하는 다른 증거라도 있소?"
주유가 자기의 말을 미덥지 못하게 여기자 공명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증거가 없는 말을 어찌 함부로 하겠소?"
"그렇다면 그 증거를 대 보시오."
"조조의 둘째 아들로 식이 있는데 자를 자건이라 하오.
아비를 닮아 곧잘 시를 짓더니 이제는 천하의 문장으로 알려지고 있소이다.
조조가 이 아들에게 부를 하나 짓게 하였는데 '동작대부'라는 그 글귀는
곧 저희 집안이 천자의 집안이 되는 것과 2교를 데려다가 누대의 꽃으로 삼으리라는 바람을 노래한 것이오."
"선생은 그 글을 기억하고 계시오?"
공명의 말에 주유가 다시 물었다.
" 그 문장이 유려하여 외고 있지요."
"그럼 어디 한 번 외어 보시오."
주유가 공명에게 청했다.
공명도 증거를 대야 하는 터이라 목소리를 가다듬고 '동작대부' 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억양은 느리고 목소리는 맑았다.
영명하신 아버님 모시고
높은 대에 올라 정취 즐기리라.
태부는 눈앞에 활짝 열린 채
힘없는 성덕으로 차 있네.
으리으리한 전각을 세웠으니
두 대궐은 덩실 높이 솟아
중천에 우뚝 버티고 섰는가.
공중 누각이 서성에 있노라.
장하의 물 길게 흐르는데
바라보니 동산의 과일이 영글었구나.
좌우에 세운 한 쌍의 누대
옥룡과 금봉이로다.
이교를 데려다 동과 남에 두고
아침 저녁으로 함께 즐겨 보리라.
임금 계신 장려한 도읍 굽어보니
구름과 안개 속에 아련히 떠 있노라.
천하의 인재들이 한데 모였으니
어찌 비웅의 길한 꿈이 없을소냐.
화창한 봄바람을 우러름이여
뭇 새들이 쉼 없이 지저귀도다
하늘의 크마큰 조화를 빌어
기운이 더 힘차게 뻗치려는가.
온 세상이 인화를 펴고 보니
모두가 도읍을 향해 공경하고 우러르네.
제 환공과 진 문공의 패업은
어찌 성명에 미칠까 보냐.
좋구나! 아름답구나!
은혜를 멀리 드날리는도다.
우리 황실을 경건히 모시어
이 천하 어디나 화평하네.
천지의 법도와 함께하니
해와 달의 광명과 다름없네.
존귀하사 끝없음이여
길이길이 장수하리, 우리 임금님.
용기를 휘날리며
난가에 올라 두루 노니시네.
그 은혜 널리 사해에 미치고
만백성 태평성대 누리네.
원하노니, 동작대여 길이 견고하여
그 낙이 영원하리라.
원래 조식이 지은 '동작대부'는 '두 다리를 동.서쪽에 이어 놓았음이여'의 이교를 음이 같음을 이용하여
공명이 교씨의 '두 딸 이교를 동남에서 데려와서'로 슬며시 바꾸어 읊은 것이었다.
뒷 연의 '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기리'는 공명이 원문에도 없는 구절을 그럴싸하게 바꾸어 넣은 것이었다.
공명이 동작대부를 다 읊자, 돌연 탁자 밑에서 '쨍그렁'하고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유가 손에 들었던 술잔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유의 머리털은 알알이 곤두서고 얼굴은 마치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공명이 주유를 슬며시 보고 있자 그는 술기운이 감도는 얼굴에 노기를 띠우고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다.
"그 교활한 역적놈이 나를 너무 욕뵈는구나!"
공명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으나 짐짓 놀란 체하며 일어나더니 주유를 달랬다.
"지난날 흉노의 세력이 성하였을 때 곧잘 중원 천지를 침노하여 당시 한의 천자도 시달림을 받았던 때가 있었소이다.
천자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사랑하는 공주를 오랑캐의 우두머리에게 시집을 보내 화친을 맺었소.
또한 원제가 왕소군을 오랑캐 땅에 보냈던 예도 있소.
그런데 장군은 어찌하여 한낱 백성의 두 딸을 잃는 것을 그토록 애석히 여기십니까?"
공명이 시치미를 떼고 달래는 말에 주유는 더욱 화가 나 소리쳤다.
"선생은 몰라서 하는 말이오!"
"무엇을 모른다는 말이오?"
"교공의 두 딸 중 대교는 바로 돌아가신 손백부의 부인이시고 소교는 바로 나의 아내이외다."
공명이 크게 놀라는 척하며 사죄했다.
"이 양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어 함부로 말씀을 드렸으니 참으로 송구합니다.
용서하십시오."
공명이 교공의 두 딸이 손책과 주유의 부인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주유도 손권처럼 격분시켜 화를 돋우기 위해 모른 척했을 뿐이었다.
공명이 거듭 황공해하며 사죄하자 주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터라 공명의 속셈을 헤아릴 만큼 냉철하지 못했다.
다만 소리쳐 맹세할 뿐이었다.
"이 주유는 그 늙은 역적놈과는 맹세코 같은 하늘 아래서 숨을 쉬지 않을 것이오!"
공명은 노기가 뻗친 주유를 부추기는 대신 다시 달랬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일이란 모름지기 세 번은 생각해 본 후에야 행하라고 하였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시려거든 다시 한 번 헤아리시오."
이미 격앙된 주유였다.
공명은 함께 조조를 치자고 섣불리 부추겼다가 공연히 속셈만 드러나는 결과만 될 뿐인지라
마음에도 없는 빈말을 하고 있었다.
주유는 공명이 달래자 치솟은 화를 가누지 못한 채 말했다.
"아니외다.
세 번은 커녕 오늘 종일토록 싸워야 하느냐, 아니냐로 심사숙고해 왔소.
내가 손백부 장군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 내게 이르신 당부를 명심하고 있는 터에 어찌 몸을 굽혀 조조에게 투항하겠소?
아까 항복을 주장한 것은 여럿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한 것이었소.
나는 이미 파양호를 떠날 때부터 이미 조조와 맞서기로 마음을 정하고 있었소.
비록 내 머리에 도끼가 떨어진다 해도 이 마음을 굽히지 않을 것이오.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나를 도와 함께 역적 조조를 물리쳐 주도록 하오."
주유가 노기에 들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공명도 정색을 하며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저를 버리시지 않는다면 미려하나마 제 모든 노고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언제든지 장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러나 손 장군을 비롯하여 중신들의 반대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공명이 염려하고 있던 바를 슬며시 주유에게 물었다.
그러자 주유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내일 주군을 뵙고 즉시 군사를 일으키도록 하겠소."
주유가 힘찬 어조로 이렇게 다짐하자 공명은 노숙과 함께 각기 자기의 처소로 물러났다.
이튿날 이른 아침이 되자 시상성의 크고 넓은 전각에는 문무관원들이 도열하여 손권이 당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왼편으로는 장소.고옹 등의 문관 30여 명이, 오른쪽에는 정보.황개 등 무관 30여 명이 늘어서 있었다.
모두들 의관을 바로 하고 허리에 칼을 차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정렬해 있는데
이윽고 손권이 나와 당상에 올았다.
손권과 문무관원들은 주유가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잖아 주유가 늠름한 모습으로 전각안으로 들어와 먼저 손권에게 예를 올린 후 유유히 자리에 앉았다.
손권이 주유에게 위로의 말을 끝내자 주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한수 상류에 주둔하고 우리에게 격문을 보냈다고 하는데,
주공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주유가 이렇게 묻자 손권은 대답하기에 앞서 격문부터 보여 주었다.
주유는 격문을 다 읽고 난 후 가소롭다는 듯 웃더니 흔쾌히 말했다.
"그 늙은 도적은 우리 강동에는 사람이 없다는 듯이 감히 이따위 글을 보내 욕을 뵈려 한단 말입니까?"
"장군의 생각은 어떠하오?"
주유가 격문을 보고 노기를 띠자 주유의 생각이 궁금한 터라 손권이 도리어 주유를 재촉하며 물었다.
"대답을 올리기 전에 묻고 싶습니다.
주군께서는 그 동안 여러 관원들과 이 일을 의논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화전 양론으로 갈리어 아직 결정을 보지 못하였소.
그 때문에 장군의 뜻을 물어 이 일을 정하려는 것이오."
"주공께 투항을 권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장자포를 비롯하여 그 열에 있는 사람들이오."
"바라건대 장 공께서는 항복을 주장하게 된 까닭을 말씀해 주시오."
주유는 전날 장소의 뜻을 들어 알고 있었으나 다시 물었다.
장소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다시 자기의 생각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장소가 압을 열었다.
"조조가 천자를 업고 사방을 정복하면서 걸핏하면 조정의 이름을 내 세우고 있습니다.
근자에는 또 형주를 얻어 그 위세가 더욱 커졌습니다.
우리 강동이 조조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장강을 의지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형주까지 취하게 되어 그 장강조차 일부는 조조가 차지하고 있으며
전선 또한 천 척이 넘게 그의 수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만약 물과 뭍으로 일제히 밀고 내려오는 날에는 우리가 어찌 그들을 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단 항복하여 싸움을 피한 다음 달리 계책을 세우자는 뜻입니다."
장소의 말을 듣고 난 주유가 차디찬 얼굴로 반박했다.
"그것은 책장이나 넘기면서 세상을 보는 선비들의 생각에 지나지 않소.
우리 강동의 기업이 이미 3대에 이르렀소.
어찌 하루 아침에 이 강동을 남에게 준다는 말이오?"
장소로서는 주유의 말이 전날과는 너무나 딴판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유의 꾸짖음에 가까운 반박에 장소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항복을 주장하던 문관들도 주유의 기세에 눌려 장소를 거들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떤 계책을 쓰면 좋겠소?"
이때 손권이 주유에게 물었다.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주유의 생각을 아직 말하지 않고 있어 다시 한 번 대답을 재촉한 것이었다.
손권이 그같이 재촉하자 주유가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조조가 한실의 승상이라고 하나 실은 역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주군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주군께서는 출중하신 무예와 뛰어나신 용병를 갖추고 계시며 부형께서 이루어 주신 기업을 계승하셨습니다.
또한 군사는 용맹하고 양곡도 넉넉하며 지켜 내기에 좋은 천혜의 요해가 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천하를 호령하여 이 동오를 위해 저 잔폭한 무리를 쓸어 버리지 않고 어찌하여 도리어
도적에게 항복하시려 합니까?
뿐만 아닙니다.
조조가 지금 대군을 이끌고 왔다고는 하나 여러 가지 병가에서 피해야 하는 일들을 범하고 있으니
군사를 움직이는 데 큰 결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 무엇이오? 자세히 말해 보오."
손권이 주유의 말을 듣고 있다가 말을 막더니 물었다.
"그 첫째가 아직 북쪽은 온전히 평정되지 않아 마등과 한수가 뒤를 노리고 있는데도 남쪽을 치고 있다는 것이요.
둘째는 북쪽 군사는 물에서의 싸움이 서툰데 말과 안장을 버리고 배를 타고 우리 동오와 싸우려 함입니다.
뭍에서만 싸워 온 장수와 군사들이 어찌 강물 위의 군사를 지휘하며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셋째는 지금은 추위가 한창인 겨울이라 군사를 움직여 군마를 먹이고 재우기 위한 풀이 없습니다.
또한 중원의 군사들을 먼 강호로 이끌었으니 물과 기후 풍토가 맞지 않아
지쳐 있거나 질병에 걸린 자들이 많음이 그 네 번째입니다.
조조는 이토록 군사를 부림에 있어 피해야 할 네 가지를 어기고 있으니
그 위태로움은 바위 위에 떨어지는 새알과 같습니다.
비록 거느린 군사가 많다 하나 반드시 패할 것이니 주공께서 조조를 사로잡을 기회는 바로 지금입니다.
이 주유에게 정병 수천을 주신다면 하구로 나아가 조조를 깨뜨리겠습니다."
불길이 타오르듯한 주유의 기상이었다.
물 흐르듯이 흘러 나오는 주유의 말에 좌중은 숨죽여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손권이 결연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도독의 말은 참으로 장하오.
그 늙은 도적은 오래 전부터 한실을 폐하고 스스로 천자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었소.
그러나 원소.원술.여포.유표 그리고 나를 두려워하였소.
지금 다른 영웅들은 이미 세상을 뜨고 오직 나 손권 한 사람만 남아 있을 뿐이니,
이 몸은 맹세코 그 늙은 도적과는 이 세상에서 함께 살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오.
방금 경이 한 말은 바로 나의 뜻이오.
경은 하늘이 나에게 내리신 사람이오."
"신은 주공을 위해 만 번을 죽더라도 조조와 결전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주공께서 이제 정한 뜻이 흔들릴까 두려울 따름입니다."
주유가 다짐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손권에게 말했다.
그 말에 손권은 차고 있던 보검을 빼들어 앞에 놓인 탁자 한 모서리를 내리쳐 두 조각을 낸 후 외쳤다.
"두 번 다시 조조에게 항복이니 화친을 주장하는 자가 있으면 이 탁자처럼 베리라!"
손권은 자신의 매서운 뜻을 보인 후 그 보검을 주유에게 내렸다.
손권은 그 자리에서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고 정보를 부도독으로, 노숙을 찬군교위로 삼은 후 엄명을 내렸다.
"만약 문무관원들 중 명을 어기는 자는 이 칼로 참하라!"
손권의 명을 받은 주유는 보검을 받아들고 몸을 돌려 여러 문무관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불초 주유가 주공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내어 조조를 칠 것이오.
모든 장수와 관리들은 내일 아침 강가의 진영으로 나와 나의 영을 따르도록 하라!
만약 시각을 어기거나 오지 않는 자가 있으면 7금령에 의해 54참의 벌을 내리리라!"
여러 장수들과 문관들은 주유의 명을 받고 돌아갔다.
주유도 손권에게 절을 올린 후 부중에서 물러났다.
주유는 거처로 돌아오자 즉시 공명을 청하여 들인 뒤 오늘 부중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 주며 앞일을 의논했다.
"오늘 이미 결정은 보았으니 바라건대 이제는 조조를 무찌를 좋은 계책을 들려 주시오."
주유의 말을 듣고 난 공명은 엉뚱한 말을 했다.
"손 장군께선 아직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으니 아직 계책을 정할 때가 아니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주유가 공명의 뜻밖의 말에 놀라 물었다.
"손 장군께서는 조조가 군사가 많은 것을 근심하고 계실 것이오.
그러니 장군께서 손 장군에게 잘 말씀드려 의심을 풀어 주도록 하시오.
그런뒤에야 큰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공명의 말에 주유는 의아심을 감추지 못했다.
공명이 손권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본 듯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나라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이니
손권의 마음이 한 가지로 편치 않을 수 있다고 헤아린 주유는 그 길로 부중으로 들었다.
과연 손권은 아직 잠자리에도 들지 않고 있었다.
"공근이 이 밤중에 찾아온 걸 보니 필시 무슨 연고가 있겠구려.
그래 무슨 일이오?"
"내일 출전의 군마를 내려 하는데 다시 한 번 주공의 결심이 변함이 없는지 두렵습니다.
주공께선 혹시 아직도 의심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유가 넌지시 묻자 손권이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실은 근심이 없는 바도 아니오.
워낙 조조의 군사가 많으니 과연 우리의 적은 군사로 능히 대적할 수 있을까 그것이 근심이 되오."
'실로 공명 그 자는 놀라운 인물이로구나!'
주유가 손권의 말을 듣고 나자 얼른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공명의 말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는가?
주유는 손권에게는 내색하지 않은 채 짐짓 여유 있게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제가 이 밤중에 주공을 뵈러 온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조조는 격문에 물과 뭍의 군사가 백만이라 했으나 그 수효에는 허실이 있습니다."
"그렇소.
나도 다소의 허실이 있다고 여기고 있으나 그래도 우리 동오와는 차이가 너무 크오."
손권은 아무래도 동오의 군사가 너무 작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제가 헤아리건대 조조가 중원에서 거느리고 온 군사는 15, 6만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후에 원씨에게 얻은 군사가 7, 8만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태반은 아직도 마음 속으로는 조조를 따르지 않는 군사들입니다.
무릇 먼길을 오느라 지쳐 있는 군사나 속으로 의혹을 품고 있는 군사들은 그 수효가 많아도 두려워할 바가 못 됩니다."
"유표 휘하에 있던 형주의 군사도 적지 않게 가담하고 있지 않소?"
"형주의 군사도 조조를 따른 지 얼마 되지 않고 조조 또한 그 군사나 장수들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조조가 중요한 싸움에 그들을 선봉으로 쓰지 않을 것이며 형주의 군사들도 조조를 겉으로만 따르는 체할 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조조의 군세는 크게 잡아 20만에서 30만입니다.
그러나 우리 동오의 군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게 군사 5만만 주신다면 능히 조조군을 깨뜨릴 수 있으니 바라건대 주공께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자신에 넘친 주유의 힘찬 목소리였다.
주유는 실제보다는 군사의 수효를 줄여서 말하며 그 허실을 들어 손권을 안심시켰다.
손권은 얼굴이 밝아지더니 주유의 등을 쓸어 주며 말했다.
"공근의 말을 들으니 이제야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구려.
자포가 밝게 헤아리지 못하여 나를 크게 실망케 하더니 자경과 장군만이 내 마음을 알아 주었소.
장군은 즉시 자경.정보와 함께 군사를 내어 먼저 떠나 주오.
나도 장군을 뒤따라 군마와 양곡을 마련하여 장군의 뒤를 든든하게 받치겠소.
장군이 나가 싸우다 뜻대로 되지 않거든 곧 나에게 알리시오.
그러면 내 몸소 나아가 조조와 결전을 벌일 것이오.
이제 다시는 주저함이 없을 것이오."
손권의 다짐을 받은데다 군사를 지휘하는 작전까지 듣게 되자 주유는 손권에게 감사하며 부중을 빠져 나왔다.
거처를 향해 가는 동안 주유는 공명을 생각하자 가슴이 무거웠다.
'공명이란 자는 주공을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 나 이상으로 주공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있다.
심중을 거울보듯 한다는 말은 곧 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주유가 공명에 대해 감탄을 하다 보니 은근히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그냥 두었다가는 뒷날 동오의 화근이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죽여 뒷날의 걱정거리를 없애야 되겠다.'
주유는 이렇게 생각하고 처소로 돌아오자 곧 사람을 보내 노숙을 불러 오게했다.
노숙이 방장안으로 들자 주유는 공명을 죽여야 한다며 노숙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노숙이 펄쩍 뛰며 말렸다.
"그래서는 아니 되오.
아직 조조를 치기도 전에 먼저 어진 선비를 죽인다면 우리를 도와 줄 사람을 스스로 없애 버리는 것밖에 안 되오."
"그러나 공명은 유비를 돕고 있으니 필경 뒷날 우리 강동의 큰 우환거리가 될 것이오."
주유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노숙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 주유에게 방책을 내며 달랬다.
"제갈근이 바로 그의 친형이오.
그에게 공명을 달래 형제가 함께 동오를 섬기게 한다면 이는 해로움을 이로움으로 바꾸는 일이 될 것이오."
주유가 그 말을 들으니 그럴 듯했다.
노숙의 말대로 된다면 동오에 천하의 어진 선비 한 사람을 얻는 격이니 그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실로 묘안이오."
주유는 머리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장강의 물은 새벽 바람에 일렁이며 강변에서 하얗게 부서지고 아침 햇살은 갑옷과 투구에 부딪혀 눈이 부셨다.
이윽고 우렁찬 북 소리가 나며 대도독 주유가 나타났다.
천천히 말에서 내린 그는 중군장에 높이 올라앉았다.
그의 좌우로는 칼과 도끼를 든 군사들이 늘어서고 모든 문관과 무장들이 그 앞에 도열했다.
다만 한 사람 정보만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정보는 주유보다 나이가 한결 위였으며, 손권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아버지 손견을 섬긴 숙장이었다.
동오가 그 기업을 다질 때부터 손씨를 섬긴 창업 공신인데다 세운 공도 주유보다 많았다.
그런데도 이번에 주유가 높은 벼슬에 오르고 자신은 그 휘하에서 명을 받드는 처지가 되자,
병을 핑계로 맏아들 정자를 대신 내보냈다.
이윽고 주유는 중군반이며 사령기에 에워싸인 장대에 올라서서 여러 장수들에게 훈령을 내렸다.
"왕법에는 추호도 사사로움이 없으니 여러 장수는 각기 자기의 직분을 다하라.
지금 조조는 조정의 권세를 빼앗아 희롱함이 지난날의 동탁을 능가하고 있다.
그는 천자를 허창에 가두어 놓고 군사를 우리의 경계선까지 이끌어 왔다.
이제 주공의 명으로 그를 토벌코자 하니 여러분도 모두 있는 힘을 다해 나아가라.
우리 대군이 나아감에 있어 죄 없는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 것이며, 공 있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고,
죄 지은 자는 벌을 주되 군령을 지킴에 추호도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
여러 장수들에게 영을 내린 주유는 한당.황개를 전부 선봉으로 삼았다.
"두 장수는 즉시 전선을 거느려 출진토록 하되, 삼강 어귀로 가 채를 내린 다음 명을 기다리도록 하라."
주유는 한당.황개에게 이렇게 명을 내린 뒤 장수들의 배치를 정했다.
"장흠과 주태는 제2대를, 능통과 반장은 제3대를 이끌도록 하라.
그리고 태사자.여몽은 제4대, 육손과 동습은 제5대, 여범.주치는 사방순경사의 임무를 맡도록 하라."
주유는 6대로 군사를 편성한 뒤 군사를 재촉해 물과 뭍으로 함께 나아가게 했다.
군사의 부서, 배진이 끝나자 모든 장수들은 각기 전선과 병기를 수습하여 출진하니 그 기세가 사뭇 하늘을 찌를 듯했다.
군사들이 출진하자 아비 대신 나아갔던 정자는 집으로 돌아가 정보에게 말했다.
"오늘 보니 주유가 군사를 부림에 있어 법도가 뚜렷하여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아들로부터 자세히 말을 전해 들은 정보가 감탄하며 말했다.
"나는 본래 주랑이 나약하니 장수감이 되지 못한다고 가볍게 여겨 왔다.
지금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실로 빼어난 대장감이로구나.
그렇다면 내가 어찌 그의 명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정보는 그 길로 군영으로 나가 주유에게 죄를 빌었다.
주유는 정보가 찾아와 죄를 빌자 오히려 겸허한 태도로 그를 대할 뿐 그 죄를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