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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년
그 시각, 고조영과 고승은 후고구려 사자들과 함께 마차에 올라 옛 요수遼水(난하) 하류 동쪽의 노룡새盧龍 방향으로 길을 재촉하고자 우선 계성의 북문으로 들어갔다. 계성의 남문을 나와서 남행하다가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무종無終 즉 옥전玉田을 거쳐 노룡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은 지금의 요하 동쪽으로 향하는, 해안에서 가까운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훗날 북경으로 향하던 근세조선의 사신들도 이 도로를 이용했다.
그러나 옥전을 지난 후 관도를 따라 일백 오십 여리를 가면, 옛 번한성番韓城 즉 번조선의 수도가 나온다. 거기서 동쪽으로 백여 리를 나아가면 노룡현에 도달하고, 노룡현의 동남쪽 팔십여 리에는 위만의 왕험성이자 고구려의 옛 요동성인 지금의 창려가 있다.
그들이 옛 번한성에 도달했을 때 성벽은 이미 죄다 허물어지고 차가운 적막강산에 쓸쓸한 자취만 휑하니 안전에 전개되었으며, 그 곳에 작은 촌락들이 형성되어 있어서, 고승 일행은 무심한 세월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야 했다.
고승 일행이 그곳을 막 떠나려 할 때, 고승과 고조영 조손祖孫을 안내하던 고려국 사자가 입을 열었다.
“노황 기하, 이곳에서 중요한 손님과 만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손님이라면?”
“본국에서 보낸 사자들입니다.”
“우리의 신변을 염려해서 보낸 사자들입니까?”
“그렇습니다.”
과연 얼마 후 고려인의 의복을 입은 낯선 사람 둘이 고승 일행에게 다가왔다. 후고구려 동모성에서 재차로 보낸 사자들이다.
고려에서 온 두 번째 사자들은 조영 일행에게 간단한 눈인사만 건네고 말했다.
“여기에 본가에서 나리께 보내는 서찰이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한 언행이었다.
그는 고승에게 직접 서한을 건네었다. 고승이 편지를 펴보니, 거기에는 간략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버님, 노구를 이끌고 오시느라 얼마나 신고가 많으십니까? 소자는 아버님을 찾아뵙지 못한 불효를 어찌 씻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곳까지 오시기에는 너무 번거로우실 터이니, 그냥 그곳에 계시면, 시국이 태평해질 때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병술년 섣달 초
후고구려 임금, 불초소자 중상仲象 올림
고승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활짝 펴며 중얼거렸다.
“내 아들의 친필임이 틀림없군. 하지만, 이 애비를 그토록 믿지 못하고서야 어찌 대임을 완수할 수 있겠는가?”
“할아버지, 무슨 말씀···?”
곁에서 지켜보던 조영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니다. 별거 아니다. 우리가 새 집으로 갈 필요는 없겠구나. 그냥 여기에 있어도 될 성 싶다.”
이렇게 말하며 고승은 자신들과 동행하던 후고려의 두 사자에게 서한을 보여주었다.
후고구려의 사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고승이 그들에게 말했다.
“우린 여기에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내 아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게나.”
“나리, 명심하겠사옵니다.”
네 사자가 일제히 대답했다. 고승은 편지를 통해 고중상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속으로 좀 언짢았으나, 시절이 하 수상하니 개의치 않았다. 사실 고중상이 그의 부친 고승과 아들 조영을 부른 것은, 그들의 안위를 염려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두 사람의 속뜻을 떠보는데 더 큰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대중상은 당나라 무 태후의 시위장수 노릇을 하는 아들 조영과 그의 부친 고승이 당나라에 아주 투항해서 그의 적대세력이 되지 않았나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그 자신은 그렇게 의심하고 싶지 않았으나 좌우의 신하들이 당나라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온다며, 그에게 상소를 올리곤 했을 것이다.
신하들의 염려도 잠재울 겸, 마음을 푹 놓고 당나라와의 일전을 준비할 겸, 고중상은 부친과 아들이 자신의 뜻을 따르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했으리라.
고승은 이어서 문방사보를 빌어 간략한 편지 한통을 고중상에게 보냈다. 이곳의 일은 아무 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으니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한편, 군사들을 거느리고 고가장을 찾아간 영주도독 조문홰는 고가장에서 노장주 고승을 만날 수 없었다. 무 태후의 행방을 캐내고자 고가장의 청지기와 하인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으나, 모두들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687년
그들을 관아로 잡아다 족칠까 생각했으나, 나중의 일을 염려해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조문홰는 돌아온 후 며칠 번뇌하다가 다시 고가장을 찾게 된다. 마침 그가 대문을 나섰을 때 조문홰는, 집으로 돌아오는 고승, 고조영 조손과 우연히 조우한다.
“아니, 이거 영주도독 조 대인이 아니십니까? 어쩐 일로 소인을 찾아오셨습니까?”
조문홰가 반색을 하며 되물었다.
“오히려 제가 여쭙고 싶습니다. 대인께선 그동안에 집을 비우고 어디에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내가 목을 빼 기다리다가 거의 목이 떨어질 뻔했습니다.”
고승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렇습니까? 제게 무슨 급한 볼일이라도 있는지요? 우선 안으로 드셔서 술이라도 한 잔 합시다.”
고승은 조문홰 일행을 영빈관으로 데리고 갔다.
“대인, 일전에 이곳에 폐하께서 친림하지 않으셨습니까?”
조문홰가 단도직입적으로 캐물었다.
“영광스럽게도 마마께서 누추한 곳까지 왕림해주셨습니다. 소인과 소인의 가문으로서는 크나큰 영예이지요.”
“에헴!”
조문홰는 한 차례 기침을 한 후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에게는 그런 큰 경사를 비밀로 하셨습니까?”
조문홰의 날카로운 공박에 고승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사람을 다루는 데는 백전노장이 아니던가?
“그건, 폐하의 뜻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거취를 비밀에 부치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미복잠행微服潛行(비밀 민정시찰) 중이셨기 때문입니다.”
“오, 그렇군요.”
조문홰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잠시 좀 어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폐하(무태후)를 알현하고 싶은데, 대인께 누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저를 안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 그래요?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고승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만일 폐하를 만나게 되면, 그분께는 무어라고 말씀드리지요? 그 분은 자신의 행방을 누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요?”
“그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제가 알아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요.”
조문홰도 이미 무 태후로부터 조영과 극시아의 신상을 감시하라는 밀명을 전해 받은 터라, 걱정할 게 없었던 것이다.
“오 그렇군요. 조대인의 지혜와 지략이라면, 그런 것쯤이야.”
고승은 조문홰를 은근히 치켜세우며 덧붙였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제가 있습니다. 지금 그분이 어디에 계시는지 저도 대충 짐작은 하지만, 정확히는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일전에 폐하 일행이 저의 고가장에 오신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며칠 묵은 후 곧장 고가장을 떠나가셨습니다.”
“네? 그게 사실입니까?”
조문홰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영손 조영은 어이하여 폐하께 시종하지 않고 여기에 홀로 떨어져 있는지요?”
조문홰가 날카로운 어조로 되물었다.
고승이 대답 대신 조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영에게 대답하라는 표시였다. 조영은 대답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아 속으로 진땀을 빼야 했다.
“폐하 곁에는 회의대사와 시위장수 이해고, 또 우림군 장수 사비우 등이 있습니다. 마침 제가 본가에 왔으므로 마마께서 저에게 며칠 쉬라고 말미를 주셨습니다. 본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시일이 좀 지나서 친히 찾아오실 것이라고 이르셨습니다.”
조영은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말을 뱉어놓고 보니, 이건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무태후가 이곳에 찾아오기로 했다니!
‘임씨노인과 그 장미여인 미시아, 여미아의 도움을 받는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조영은 태연한 얼굴로 조문홰를 쳐다보았다.
그 때였다. 우연의 일치란 말은 바로 이런 때에 사용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고려인의 속담이 이 경우에 딱 들어맞을 터.
하인이 급하게 뛰어 들어와 귀중한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나리, 폐하께서 일행과 함께 대문 밖에 와 계십니다.”
“뭐라고? 그게 사실이냐?”
고승은 깜짝 놀라 엉겁결에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내 자신의 침착하지 못함을 속으로 책망하며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네, 사실이옵니다.”
고승이 조문홰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제가 직접 나가 폐하를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조문홰도 얼른 고승을 따라나선다.
“대인께서 앞장서시지요.”
고승이 조문홰에게 앞자리를 양보했다.
조문홰가 엉거주춤한 태도로 길을 나서자 고승과 조영이 뒤를 따랐다.
조문홰가 고가장의 대문에 당도하니 활짝 열린 대문 밖으로 여러 사람이 마상에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맨 앞에 서 있는 이는 평복을 입은 단아한 중년 여성이었다.
조문홰는 그녀가 곧 무 태후임을 알아보고 엎드려 절했다.
“신 영주도독 조문홰가 황태후폐하를 알현하옵니다. 폐하께서 이곳에 친림하셨으나 영접하지 못한 죄, 죽어 마땅하옵니다.”
“호호호! 지금 이렇게 영접하고 있으면서 영접하지 못했다니 무슨 말씀이오? 어서 일어나시오.”
조문홰는 무 태후의 행방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어떤 벌이 떨어질지 몰라 속으로 떨며 일어섰다.
“황태후 폐하의 은혜, 하해와 같습니다.”
그 사이 고승과 고조영도 무 태후에게 문안인사를 올렸다. 고려국으로 떠난다던 고승과 고조영이 집에 있는 것을목격하자, 무 태후는 일순간 안색이 변했다가 이내 온화한 표정을 짓는다.
“마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고승이 무 태후에게 권하자 무태후가 웃으며 대답했다.
“암, 들어가야죠. 사해에 위명이 쟁쟁한 고려거사의 장원에 왔는데, 이곳이 비록 선경낙원은 아니라 하더라도 도산검림刀山劍林이야 되겠어요?”
고승은 그녀의 은근한 비꼼에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으나 속으로 일말의 기쁨이 일었다. 그녀 일행이 임가장에 사실상 감금당해 있었는데, 임장청과 함께 이곳에 출현한 것은, 무 태후와 임장청 간의 대화가 잘 풀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조영이 그들의 면면을 훑어보니, 무 태후의 일행뿐만 아니라, 미시아와 그녀의 할아버지 임가노인, 그들의 부하들인 듯한 그 신비로운 몇몇 인물들도 면목을 드러낸 채 눈에 띄었다. 자기 앞에서 그토록 신비로움을 가장하던 인물들이 모두 얼굴을 드러내고 있어서 한편으로 그는 놀랍기도 하고, 적이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들이 영빈관으로 들어섰을 때 일행은 무 태후를 필두로 넓은 대청에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아마 과로 아니면 고려인들의 술수로 지쳐 쓰러져 있다가 쾌차한 후, 비록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나 사실상 감금당해 있었던 무 태후는, 어디서 그런 호기가 솟아났는지 호탕하게 웃으며 때로는 우스갯소리로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임대인은 참 복도 많소. 어찌 이토록 꽃같이 어여쁜 영손녀들을 셋이나 두셨소?”
무 태후가 임씨노옹을 돌아보며 물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손녀들이 하나같이 우준하기 짝이 없어 마마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했나 봅니다.”
임씨 노옹 임장청任長靑은 자기 곁에 나란히 앉은 세 손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혹시라도 폐하께서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곁으로 달려가 마마의 명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한다. 알겠느냐?”
“네, 할아버지.”
그들의 시원한 대답에 임씨노옹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무 태후가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아이고, 대인.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이 젊은 아가씨들이 어찌 늙은이 곁에 살 수 있겠소? 젊은 아가씨들에게는 젊은이들이 딱 어울리지.”
이렇게 말하며 무 태후는 조영과 이해고, 사비우 등을 두루 쳐다보았다. 조영은 무 태후가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자 속으로 뜨끔했다. 그녀의 시선이 사라지자 조영은 남몰래 임가삼교任家三嬌, 미시아, 여미아, 극시아를 슬쩍 훑어보았다. 그 때마침 어처 극시아도 조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얼굴에는 무언가 갈망의 빛을 가득 담고 있었다.
조영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얼른 시선을 회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그 사이 오찬이 나왔다. 그 때 무 태후가 뜻밖에도 이루하를 불렀다.
“송막도독의 금지옥엽인 이루하 아가씨.”
“네, 폐하 말씀하소서.”
이루하가 겉으로는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속은 어땠는지 모르나.
“내가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는데, 들어줄 수 없겠나?”
“뭐든 말씀하소서. 소녀가 힘닿는 일이라면 준행하겠나이다.”
“오, 그래? 기특하구먼.”
무 태후는 음식을 한입 먹은 다음, 천천히 말했다.
“그대의 시비 여미아 말일세. 그녀를 이제 내 보내주면 어떤가? 내가 속신贖身하겠네. 요구하는 대로 돈을 줌세.”
이루하가 즉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여미아가 급히 입을 열었다.
“폐하, 저는 제가 자발적으로 이루하 아씨의 하녀가 되었사옵니다. 아씨와 주인나리께서 길러주신 은혜는 하해와 같사옵니다.”
그것은 이루하를 떠날 수 없다는 의미의 우회적인 언사였다.
“허허! 남의 종살이가 그토록 좋은가?”
“이제는 아씨와 정이 들이 도저히 헤어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갸륵하구먼. 그대는 내 곁에 와서 나의 시비侍婢가 될 생각이 없는가?”
“폐하, 폐하의 은덕은 하늘과 같사옵니다. 어찌 배우지 못한 불학무식한 천녀가 폐하의 곁에 설 수 있사오리까? 삼가 아뢰오니, 그 말씀은 감당키 어렵사옵니다.”
무 태후가 혀를 끌끌 차더니 임씨노옹 임장청에게 고개를 돌렸다.
“임대인, 손녀의 뜻이 완강하군요.”
아마도 그가 거들어 주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애들이 자기 애비 어미를 일찍 여의어, 내 그녀들을 곱게 길렀더니, 아이들이 팥과 콩을 잘 분별하지 못하고 굴러들어온 큰 복도 알지 못합니다. 소인의 불찰이 큽니다. 폐하, 부디 소인의 허물을 용서해주소서.”
임가노옹 임장청도 손녀들을 어찌할 수 없다는 말투다.
“임대인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무 태후는 여미아를 그윽한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임장청에게 다시 말했다.
“내 그렇다면, 여미아는 단념해야 하겠소. 하지만 임대인, 대인의 첫 손녀인 미시아 아가씨는 성품과 솜씨가 어떤지 모르겠소.”
“폐하, 송구하옵니다. 그 아이는 성품이 강직하고 고집이 세며, 요리솜씨나 바느질솜씨도 보잘 것 없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안하무인으로 귀엽게 자라, 세상이 넓고 하늘이 높은 줄을 모르옵니다. 모두 다 소인의 탓이옵니다.”
“하지만, 미시아는 동생인 여미아처럼 고혹적이기 짝이 없는 미모를 소유하고 있소. 요리솜씨나 바느질솜씨가 좀 모자라도 괜찮소. 내가 데리고 가면, 쓸모가 많을 것 같은데, 어떻소? 그녀를 내게 맡기는 것이?”
“그거야말로 삼년 가뭄에 소낙비 내리는 소리외다. 어찌 아니 반가우리까? 하지만, 아이의 의사를 묻는 것이 우리 가문의 철칙입니다.”
임가노인 임장청은 이렇게 대답하며 미시아를 넌지시 바라다보았다.
그 때 미시아가 밥을 먹던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무 태후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폐하, 폐하의 은덕은 태산보다 큽니다. 소녀를 거두어주신다면, 그 은혜 백골난망이라, 분골쇄신하겠사옵니다.”
무 태후가 미시아의 선선한 응답에 오히려 놀라마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싱겁게 굴복하면, 네 몸값이 떨어진다는 것을 모르느냐?’
무 태후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 그대는 내 뜻을 이토록 잘 헤아려주니, 하늘이 큰 복을 내릴 것이네. 그 같은 결정에 훗날 후회하지 않겠는가? 황궁은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나오기는 더욱 어려운 곳이라네.”
“폐하, 소녀도 들었사옵니다. 하오나, 소녀도 폐하께 청탁드릴 일이 두 가지 있사옵니다.”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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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4. 7. 5. 장마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