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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설은 고향교회로 가자”
미래목회포럼, 고향교회 방문하기 캠페인 전개
미래목회포럼(대표 정성진 목사)이 오는 설 명절에도 농·어촌 고향교회와 작은교회 방문하기 캠페인을 전개한다.
‘농·어촌 고향교회, 작은 개척 교회에 생기를! 격려를!’이란 표어로 9일부터 진행하는 이 캠페인은 설 연휴인 20∼25일 원래 출석하던 교회 대신 미자립교회나 고향교회를 찾아 그곳 목회자와 성도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포럼은 연휴 전 주일 주보 광고 등을 통해 개교회 성도의 캠페인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명절 기간에는 교회 차량 운행을 중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권했다. 이는 주일 예배뿐 아니라 새벽기도회, 금요 철야예배 등에도 적용된다.
포럼은 농·어촌 교회나 주변의 미자립교회에 출석해 그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한국교회의 일선을 지켜준 데 감사하는 헌금을 드리자는 것이며 매년 명절 때마다 캠페인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럼은 40초 분량의 캠페인 동영상을 홈페이지(miraech.com)에서 다운받아 개교회에서 홍보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포럼은 2009년 추석 명절 때 처음으로 이 운동을 벌여 매년 설과 추석 명절에 1000여 교회의 동참을 끌어냈었다. 성도 100명 이상이 출석하는 전국 어느 교회라도 시행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담임목사가 교인들에게 연휴 기간 본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하기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포럼 측은 설명했다.
정성진 대표는 “중·대형교회가 명절에 시골 농어촌 교회의 고향교회, 작은 개척 교회와 일선 목회자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배려와 격려하는 넉넉한 마음이 필요하다”며 동참을 호소했다. 사무총장 이효상 목사는 “이 캠페인이 지치고 힘든 작은 교회의 목회 현장에 은혜와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02-747-8291). (2012.1.8. 국민일보 / 유영대 기자)
설날(The first of the NewYear)의 표상과 의미
홍성남(한신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외래교수)
『三國遺事(삼국유사)』 권1 紀異篇(기이편)에 기록된 射琴匣(사금갑 : 거문고 갑을 쏘라)설화는 까치설날의 의미와 연관이 있다.
신라 21대 비처왕(혹은 소지왕) 때 왕비(善兮 선혜)가 한 스님(妙心 묘심)과 내통하여 왕을 살해하려 하였는데 까치, 쥐, 돼지, 용의 도움으로 이를 모면했다. 그런데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에 드는 동물이라 기념할 날이 있지만 까치만 빠졌기에 설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윤극영(1903~1988)의 동요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 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예로부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나 소식이 온다고 했다. 또한 설날 새벽에 까치소리를 들으면 ‘聽讖(청참)’이라 하여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행운이 온다고 하였다. 까치설날은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그 하루 전날인 섣달 그믐날에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까치의 이름을 붙여 설날의 기쁨을 기대하고 누리게 하려는 정겨운 배려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아진다.
정월 초하루가 일 년을 막 시작하는 날이라면 섣달 그믐은 한 해를 마감하는 끝 날이다. 어릴 적에 설날이 임박하면 흩어졌던 가족들을 한자리에서 뵐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가득했던 때가 있었다. 이전에 간직했던 순수한 꿈은 이제 웃어른들이 영면한 뒤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아프다기보다는 그 시절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함을 지닌다.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지새는 것을 ‘해지킴(守歲 수세)’라 한다. 부모님들은 이 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했으며, 아이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잠들면 이 사이에 아이들의 눈썹에 떡가루를 발라 놀려 주곤 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에 문설주나 시렁, 광에 걸어두는 복조리는 신년의 액을 막고, 만복을 긁어 담는다는 상징성이 있다. 또한 조리는 밥을 지을 때, 물에 담근 쌀을 긁어 담는 기구로 이처럼 만복을 긁어 담으라는 의미로 행하는 습속이다.
설은 曆法(역법)으로 음력 정월 초하루를 말하며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전통 명절이다. 설은 정월 대보름, 단오, 추석을 우리네 4대 명절로 친다. 음력을 역법으로 사용해온 동양문화권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설을 가장 큰 명절로 삼았다.
금세기에 들어서 동양의 여러 나라들도 모두 陽曆(양력)을 정부의 공식 역법으로 쓰고 있지만 설을 비롯한 전통 명절들은 陰曆(음력)의 역법에 따라 쇠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明治維新(명치유신)을 계기로 1872년에 太陽曆(태양력)을 채택하면서 정초 사흘간을 ‘국민의 축일’이라 하여 이내 양력으로 쇠고 있다.
우리네는 고종 32년(1895) 양력을 공식 역법으로 삼으면서 양력 1월 1일을 新正(신정)이라 하고 정부에서는 이 날을 공식적인 설로 정하였으나 설 명절이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인들이 세배 객에게 먹물을 뿌리기도 하고 설 명절의 전통 음식인 떡을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떡 방아간을 설 무렵에는 폐쇄했을 정도였다. 이후 1945년 정부수립 이후인 1949년 설 명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고, 1960년대 박정희 군부세력 때에도 여전히 정책적으로 이중과세 근절이라는 명절을 내세워 양력 설을 강요하였다. 하지만 당시에 우리네 정서상 반대의 여론이 많아서 양력 1월 1일은 新正(신정), 음력 1월 1일은 舊正(구정)이라 부르고 이후 수차례 여론을 수렴하여 1999년 신정 연휴를 2일에서 1일로 줄이고, 설 연휴가 늘어나게 되었다.
신정이 ‘왜설’이라는 세간의 인식으로 인해 그간 정부 당국의 고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경이 중심이었던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양력 역법보다는 음력 역법에 입각한 생업력과 조상숭배의 전통이 투철한 농민들의 정신에 힘입어 음력설을 쉽게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음력설의 전통을 지켜낸 우리네 부모들은 세상을 뜨거나 연로하신 탓에 본디 우리 고유의 설은 후대에도 존속될 수 있을런지 의문이 든다. 부모의 의존도 높은 우리 자녀들은 농촌보다 도시에서 자라고 성장한 까닭에 우리 고유의 세시풍속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일본에서 들어온 화이트데이, 삼겹살데이, 밸런타인데이, 로즈데이, 빼빼로데이 등등 商術(상술)에 익숙해진 요즘 젊은 층의 문화는 민족적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교육기관의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방식의 문제점도 있으나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젊은 층에게 본디 우리 고유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체험할 기회를 적게 만든 기성인들의 책임에 있다.
옛날 承政院(승정원)에서도 설날부터 3일간 公務(공무)를 쉬고 감옥도 비웠다고 한다. 이처럼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큰 명절로 여긴 것은 묵은 것을 걸러 내고 새것으로 바꾸려는 의미 외에도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하려는 갓 태어난 아이의 풋날의 의례(rites)나 다름없다.
설날은 漢字語(한자어)로 元旦(원단), 元日(원일), 上日(상일), 歲首(세수), 歲初(세초), 年頭(연두), 年始(연시), 愼日(신일)이라고 하는데, 신일은 새해에 익숙하지 못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을 뜻한다.
설은 새해의 첫 시작이다. 묵은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다시 출발하는 첫날이다. 이 설의 어원에는 몇 가지 說(설)이 있다.
첫째로, ‘섧다’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조선 전기 학자인 金宗直(1431~1492) 등의 문집에는 설날을 ?日(달도일)이라 했다. ‘ (슬플 달)’은 슬프고 애달파한다는 뜻이고, ‘?(근심할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다.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자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 한다는 말이다.
둘째는 ‘사리다(愼 삼갈 신)’의 ‘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각종 歲時記(세시기)에 설을 愼日(신일)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표현했다.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으로 본다.
셋째로 ‘설다, 낯설다’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곳이며 낯선 사람이다. 때문에 설은 새해라는 정신적 · 문화적 낯섦의 의미로 ‘낯설은 날’로 생각했고, ‘설은 날’이 ‘설날’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한 해를 새로 세운다는 뜻의 ‘서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정월 초하루에 닭과 호랑이를 그려 문에 붙이는 풍습은 세화(歲畵)의 일종으로, 계호화(鷄虎畵)라 한다. 이 풍습은 닭을 잡아 직접 문에 매달거나 피를 발라 邪(벽사)하였던 것이 그림으로 바뀐 것이다.
설날 아침 차례와 성묘를 지낸 후 친척과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는데, 이 놀이는 설날 뿐 만 아니라 정월 대보름날까지 즐겼다. 대표적인 놀이로는 널뛰기, 윷놀이, 연날리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쥐불놀이 등이 있다. 지신밟기, 石戰(석전), 횃불싸움 등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정월은 天地人(천지인)이 하나 되여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것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기도 하다.
설 음식으로는 節食(절식)으로 먹는 ‘떡국’이 있다. 설의 떡국은 제사 음식으로 차례상에 반드시 오른다. 평소 제사에는 메밥을 올리는데, 설에는 떡국을 올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떡국에 든 떡은 희다. 흰떡은 쌀가루로 빚은 떡 외에는 아무 것도 섞이지 않았기에 순수함 그대로다. 따라서 떡국은 밝음과 깨끗함과 처음을 상징한다. 새해의 티없이 밝은 한 해를 소망하는 뜻을 담고 있다. 둥글게 썰어 넣은 떡의 모양은 새로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다. 새해 새 아침의 설날 음식으로 제격이다. 떡국의 형상과 흰빛이 가지는 정결의 상징성은 근래에 들어서 떡국의 맛을 돋우기 위해 쇠고기, 닭고기, 꿩고기 등을 넣고 끓이지만 옛부터 내려오는 풍습에서는 깔끔한 흰떡과 간단한 장국으로 만든 湯餠(탕병 : 떡국)으로 절식을 삼음은 아주 먼 옛날 祭典(제전)이 지금까지 이어준 遺痕(유흔)이 어린 것은 아닐까?
설날에 술을 마시는데 ‘설술은 데우지 않는다’는 뜻으로 ‘歲酒不溫(세주불온)’이라 하여 찬술을 한잔씩 마셨다. 이는 옛사람들이 정초부터 봄이 든다고 보았기 때문에 봄을 맞으며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 생긴 풍습이다.
상술한 까치설날은 아이들이 설빔으로 까치 저고리와 까치 두루마기를 입은 까닭에 부쳐진 이름이기도 하다. 까치 저고리나 두루마기는 한결 같이 오색 천으로 알록달록하게 만든 옷이다. 굳이 저고리나 두루마기는 아니더라도 원색의 여러 색깔을 써서 알록달록하게 만든 옷이나 신을 때때옷 또는 때때신이라고 한다. 까치 옷은 곧 때때옷의 일종이다. 때때옷은 색깔이 아름답고 고와서 때때옷이라고 하는데, 섣달 그믐날은 바로 아이들이 설빔으로 만든 까치옷을 미리 입어보고 손뼉치며 좋아 날뛰는 날이다.
설날은 왜 까치옷과 같은 알록달록한 새 옷을 설빔으로 차려 입을까? 새해 새날을 처음 맞이하는 날이자, 새해 첫 삶을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낯선 객지로 길을 떠날 때 몸단장을 깨끗이 하고 손님을 맞이할 때에도 용모를 단정하게 하여 좋은 인상을 주고자 함에서 이다. 맞선을 볼 때나 입사를 위한 면접시험을 치를 때, 처음 보게 되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몸치장을 애써 하는 것처럼, 설날도 같은 맥락에서 설빔을 차려 입는 것이다. 설빔은 새해 들어 처음 뵙는 조상들께 세배와 차례를 올리기 위해서도 몸차림을 단정히 하기 위함이고, 새해맞이의 첫인상을 밝고 신선하게 하는 기본적인 몸가짐이다.
설날에는 예를 갖추어 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조상께 차례를 올린다. 다른 명절에는 어른들게 세배를 하지 않는데, 하필 설 명절에는 세배를 하고 덕담을 주고 받을까? 이유는 새해 첫날이기 때문에 평소와 달리 특별히 큰 절을 올려서 새해를 맞이하는 첫 인사를 올리는 것이다.
세배에 관련된 우리네 설화를 보자.
閔大生(민대생)이란 자는 나이 90인데, 정초에 여러 조카들이 세배를 왔다. 한 사람이 “아저씨께서는 100세까지 壽(수)하십시오.”하고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민대생이 화를 내면서, “내 나이 지금 90여 세인데, 100세까지라면 몇년 안 남았으니 그런 복 없는 말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쫓아내 버렸다. 다른 한 사람이 나와, “아저씨께서는 100세에 또 100세까지 누리십시오.”라고 인사하니, 민대생은 칭찬하고서 잘 먹여 보냈더라.
90여 세를 살고도 또 100세를 더 살고 싶다면 이것도 분명한 탐욕적인 품성을 가진 사람이다. 첫인사를 나눌 때 서로 인사말을 주고 받듯이 세배를 할 때에도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이를 德談(덕담)이라고 한다. 새해 덕담도 1년의 삶을 막 출발하는 사람들끼리 새해에 이루고자 하는 삶이 온전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呪術的(주술적) 의미도 있다. 따라서 옛사람들은 말에 言靈(언령)이 있다고 믿는 까닭에 언어의 신성한 힘을 염두에 두고 금기어와 길조어를 상정했다. 덕담도 이러한 언어의 신성한 힘을 믿어서 덕담의 내용대로 성취되리라 여긴 주술적 사고에 기인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세배를 받는 이가 먼저 덕담을 들려준 후 이에 화답하는 예로 겸손하게 얘기를 한다. 덕담은 덕스럽고 희망 섞인 얘기만 하는 것이 좋으며, 지난해 있었던 나쁜 일은 굳이 꺼내지 않는 게 미덕이다.
특히 설에 주고받는 덕담은 하루의 일처럼 1년의 처음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또는 ‘아침부터 재수 좋다’라고 하듯이 시작의 시간에 일어난 일을 근거로 하루를 점치는 것처럼, 정초에 일어난 일을 근거로 점칠 수 있다.
이렇게 새해에는 모든 언행과 행동을 삼가고 좋은 말만 골라 덕담으로 나누며 가족들끼리 모여 土亭秘訣(토정비결) 등 가족들의 신년 운수를 보는 것은 시작의 시간에 앞날을 미리 점쳐보고 적절히 대비함으로써 1년을 무사히 넘기고자 하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 설을 쇠고 나면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이 때의 나이는 인간의 성장 정도를 나타내 는 수학적 준거의 나이를 말한다. 설을 쇠면서 조상께 각종 의례를 바치고 일가와 이웃 어른들께 세배 드리며 상하질서를 다지는 한편,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며 용모를 단정히 하고삼가는 가운데 신년계획을 세우는 해맞이 태도를 익힌 연륜이 곧 정신적인 연령이자 문화적인 나이인 ‘살’이다. 설을 쇤 회수를 가늠하는 나이는 순전히 물리적 시간의 연도 수를 나타내는 것과 다른 의미를 지니다.
다음으로 타국의 설 명절 풍속을 보자.
러시아는 식사하기 전에 보드카를 귀밝이술처럼 마시면서 한 해의 복을 빈다. 베트남은 수박의 익은 정도에 따라서 한 해의 길흉을 점친다. 인도는 설날에 온 식구가 모인 마당에 불을 지펴 냄비에 우유와 쌀로 죽을 끓여 한 해의 길흉을 점친다. 이란은 씨르(sir, 마늘), 쎄르케(serke, 식초), 씨브(sib, 사과) 등 7가지 재료를 써서 음식을 장만하는데, 이 재료들은 각각 풍요, 즐거움, 건강, 행복 등을 상징한다. 멕시코는 12월 31일 밤 자정에서 시계탑 종이 12번 울리는 것에 맞추어 포도알을 먹으며 소원을 빈다.
중국은 덕담을 적은 빨강 봉투에 담아 주는 세뱃돈을 의미하는 압세전(壓歲錢)의 풍습이 있다. 일본은 연, 매화 등이 그려진 봉투에 세뱃돈을 담아 주는데, 돈을 그냥 건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하쓰모데(初詣, 초예)’라고 해서 신년 첫날 신사참배를 하는데, 보통 그믐날 밤을 신사에서 보내고 설날에 집으로 오는 관습이다.
다음으로 성서에 나타난 절기와 명절의 몇 구절을 보자.
출애굽기 10장 9절 “모세가 대답하였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절기를 지켜야 하므로, 어린 아이와 노인들을 비롯하여, 우리의 아들과 딸을 다 데리고 가야 하며, 우리의 양과 소도 몰고가야 합니다.”의 구절에서처럼 특별한 절기에는 가족 모두가 주님께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가족끼리 친교의 시간을 갖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된 의식인 듯하다.
역대지상 23장 31절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 주님께 번제를 드리되, 규례에 따라 정한 수대로, 거르지 않고 항상 주님 앞에 드리는 일을 맡았다.”의 구절에서 과거 우리네 민족이 농경이 중심이었던 때와 같이 일과 휴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돌아가신 조상이나 웃어른들을 기리는 특정한 날(잔치, 제사 등)에는 꼭 제사, 잔치 후에는 이웃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던 풍습과 같은 맥락이다.
호세아서 2장 11절 “또 그가 즐거워하는 모든 것과 그의 온갖 잔치와, 초하루와 안식일과 모든 절기의 모임들을, 내가 끝장내겠다.”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일을 감사하게 여기지 않고 방자하게 생각한 불신자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로 보아진다.
고린도전서 5장 8절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악독이라는 누룩을 넣은 빵으로 절기를 지키지 말고, 성실과 진실을 누룩으로 삼아 누룩 없이 빚은 빵으로 지킵시다.”의 구절에서 추하고 악한 누룩보다는 참되고 영적인 누룩으로 빚은 빵은 영과 육을 온전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마가복음 14장 2절 “그런데 그들은 백성이 소동을 일으키면 안 되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구절은 유대의 지도자들이 예수를 제거하려고 했다가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명절에 소요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이 시기에는 시행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마가복음 15장 6절 “○그런데 빌라도는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 주곤 하였다.”의 구절은 빌라도의 재판에 관한 언술로 죄수를 명절에 석방한 것은 고금에도 변함없는 듯하다. 다만 우리네 유명 정치인 내지 기업인들은 여전히 有錢無罪(유전무죄) 無錢有罪(무전유죄)의 사면 혜택을 선진국에 비해 월등하게 받는 것은 우리네 국가 신뢰도를 좀먹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한복음 7장 37절 “○명절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의 구절은 초막절 명절이 종료될 무렵에 대중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예수께서는 반석의 생명수를 자신의 비유로 들고서 그릇된 삶을 사는 자들에게 올바른 삶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메시지로 보아진다.
요한복음 13장 29절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자루를 맡고 있으므로, 예수께서 그에게 명절에 그 일행이 쓸 물건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하였다.”는 구절은 가롯 유다의 배반을 예언하신 예수님의 언술로, 주의 자녀는 겉과 내면이 시종일관 깨끗해야지 심성이 표리부동해서는 안 됨을 역설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 설 명절은 제멋대로 행하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조상께 출발의 시간에 정결한 상태에서 차례 지내되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바람직한 삶의 계기를 마련하는 동시에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예측과 점검을 통해 새해 설계를 수립함으로써 익숙하고 평안한 한 해를 꾸려가고자 했던 것이다. (2011.1.31. 에큐메니안)